정보의 힘 (1)
* * *
다음날. 오후.
강남구 수서역 인근.
‘수서역 10번 출구로 나오셔서 길 따라 걸어오시면 문벅스 보이실 겁니다.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우리가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줄 알고 이렇게 안내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서울 시내에 전철이 이어진 곳이면, 우리는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시간 약속 지키기도 쉽고, 일 끝나고 술 한잔하기도 편하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다.
“와~ 강남구에 이런 곳이 있어요?”
공기가 꽤 상쾌하다.
수유리 북한산 자락 공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울 치고는 공기가 꽤 쾌적하다고 느꼈다.
변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다. 강남구답지 않네.”
강남 하면 압구정동, 청담동, 대치동을 떠올리며 고급스럽고 도회적인 주택가를 상상하게 된다.
강남구를 떠올렸을 때 상상되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거리였다.
“오~ 문벅스가 아주 크게 있네.”
큰길에서 좁은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주차장까지 완비된 3층 높이의 문벅스가 있었다.
“이제야 좀 강남다워 보이네.”
변 이사는 먼저 문벅스 안으로 들어갔고.
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살피었다.
새소리가 많이 들리고.
문벅스로 이어진 좁은 골목 위쪽으로 언덕이 이어진 것 같다.
내가 사는 곳과 비슷하기에, 이런 유형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
‘근처에 산이 있을 것 같은데.’
수서역만 지도에 찍고 왔을 뿐, 지도에서 주변을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변 이사가 문벅스 현관 밖으로 나와서 말했다.
“강 사장~ 안 들어오고 뭐해? 어서 들어와.”
“아 네~”
덜컹.
난 문벅스 안으로 들어섰다.
문벅스 실내.
우리는 거의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김정식 의원이 먼저 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난 주변을 살폈다.
2층으로 연결된 계단 앞에 건장한 체격에 반듯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 남자는 날 알아보고 다가왔다.
아, 가까이서 보니 누군지 알겠네.
청화옥에서 김 의원 옆에 서 있었던 남자다.
“안녕하세요.”
난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고.
“안녕하십니까.”
그 남자는 내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깍듯이 인사했다.
심상치 않은 남자의 포스에 변 이사는 내 뒤에 숨어 있었다.
“김 의원님 도착하셨나 보죠?”
“네.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강 사장님. 뭐야?”
변 이사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뭐가요?”
“의원님이라니? 설마 내가 아는 그 의원이야? 국회의원?”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국회의원 아니에요~”
“그렇지? 아오, 깜짝이야. 놀랬잖아.”
변 이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날 따라 올라왔다.
“그냥 시의원님이세요.”
“뭐어?”
변 이사는 그 자리에 멈춰서 눈을 번쩍 떴고.
난 피식 웃고는 남자를 따라 올라갔다.
남자를 따라 2층으로 올라왔는데.
손님들이 여럿 있었지만.
김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계세요?”
“한 층 더 올라가셔야 합니다.”
근데, 3층으로 이어진 계단 앞에 바리게이트가 있었다.
‘출입금지. 영업 준비 중.’
난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못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요?”
남자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바리케이드를 열어주었다.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3층을 통째로 빌렸구나.
문벅스에서도 이런 게 되나?
문득, 김정식 의원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평 님. 돈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답니다.’
이 또한 그 힘의 일환인가.
남자는 우리를 3층으로 안내만 하고, 함께 올라가지는 않았다.
“강 사장님, 나 약간 무섭다.”
변 이사는 따라오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고.
난 김 의원 스타일 아니까, 대수롭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오니.
김정식 의원이 홀 정 중앙의 테이블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날 보자,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일어나 인사했다.
“태평 님, 오셨습니까.”
* * *
난 빠르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여 앉혔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를 앉힌 뒤, 난 변 이사를 소개했다.
“전화로 말씀드린, 회사 직원입니다. 제 오랜 선배님이기도 합니다.”
변 이사는 김 의원에게 허리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변성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고.
그 순간, 내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김 의원의 눈빛이 번쩍였다고 느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흠…… 좀 헷갈리네요.”
“네?”
김 의원의 뜬금없는 말에 변 이사는 반문했지만.
김 의원은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두 분 앉으시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와 변 이사는 김 의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문 먼저 하시죠.”
“네.”
김 의원은 전화로 커피를 주문했다.
“우선…….”
김 의원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말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아마 불쾌해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주제넘게 참견하지 않으려 했으나, 눈에 뻔히 보여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변 이사가 물었다.
“원래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나서지 않으신 거예요?”
“…….”
김 의원은 변 이사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고. 나만 바라봤다.
변 이사는 머쓱한 채 있었고.
결국, 내가 다시 말했다.
“방금 변 이사님이 하신 말씀. 저도 궁금합니다.”
김 의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전 강 사장님과만 대화합니다. 강 사장님께서 업무상 변 이사님이 함께 계셔야 한다고 해서 모신 것뿐이니.”
그리고 김 의원은 변 이사를 힐끔 바라보는데.
흠칫!
변 이사는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가만히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김 의원은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처음부터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강 사장님께서 거절하실 게 뻔했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랑 처음 만난 날에도 아무것도 안 받으려 하셨잖아요.”
“…….”
“전 언제든 도울 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정도 도움만 주셔도 충분합니다. 김 의원님 아니었으면 저와 회사가 큰 곤경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충분하긴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
“무엇을 한들. 목숨값보다 더하겠습니까.”
이 아저씨가 또 부담 느끼게 하네.
영문을 모르는 변 이사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날 바라볼 뿐이었다.
김 의원이 이렇게 나오면 뭐라 할 말이 없다.
사실이기에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잠시, 어색한 정적이 이어지고 있는데.
저벅. 저벅.
“커피 가져왔습니다.”
건장한 남자가 나와 변 이사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2층으로 내려갔다.
“회사 이전을 계획 중이신 듯한데.”
김 의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남으로 알아보신 건 가격 때문이겠죠?”
“네. 가격과 위치 때문입니다. 저희 레스토랑 영업장이 내곡동에 있으니까요.”
“흠. 그렇죠. 성남이면 내곡동과 비교적 가깝죠.”
김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서울이 좋지 않겠습니까? 직원들 대부분도 서울에 살고 있을 텐데.”
“그야 두말할 필요 없죠. 하지만 가격과 부지 규모 때문에…….”
혹시 이 남자가?
난 미리 못을 박았다.
“돈은 안 받습니다.”
“하하.”
김 의원이 표정 변화 없이 마른 웃음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안 받으시겠죠. 그리고 저도 돈은 못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신분이 신분이라서.”
그리고 김 의원의 눈이 살짝 빛났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조언과 정보는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난 그의 말을 되씹었다.
‘사업가로서의 조언과 정보?’
“의정활동을 통해 얻은 정보도 아니며, 힘을 통해 얻은 것도 아닙니다.”
“…….”
“부를 축적하려다 보니,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고. 그 과정에 이리저리 듣는 정보가 꽤 있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문벅스 3층.
꿀꺽.
변 이사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김 의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 * *
김 의원은 생소한 주제를 꺼내었다.
“토지 매입에 있어서 반드시 피해야 할 요건 중 하나인데…… 분묘기지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분묘기지권?
난 선뜻 이해가 안 갔지만, 눈치를 보니 변 이사는 아는 듯했다.
김 의원은 내 표정을 살피고는 살짝 미소짓고는 말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사자(死者)의 영원한 권리라고 할 수 있죠.”
뒤이어, 분묘기지권에 대해 김 의원이 해준 설명을 난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분묘기지권
1) 자기 땅에 묘를 쓴 후에 매각.
2) 땅 소유자의 승인을 얻어 쓴 묘.
3) 남의 땅에 묘를 몰래 쓴 후 20년 경과.
김 의원은 설명을 이어갔다.
“분묘기지권이 성립되는 한 내 땅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분묘 소유자와 합의를 하여 이장을 하거나, 혹은 그 분묘가 있는 땅을 제외한 땅만을 사용해야 하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묘기지권이 있는 땅은 사면 안 되겠네요.”
“그렇죠. 이런 땅을 사면 제한사항도 많고, 제대로 활용하기도 어렵죠. 그래서 피해야 할 땅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얘기를 왜 하는 거지?
“근데 거꾸로 생각해보면요.”
김 의원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땅은 가격이 어떻겠습니까?”
“다들 피하는 땅이니, 헐값이겠죠. 사려고 하지를 않으니.”
“그렇겠죠? 시세보다 훨씬 싸겠죠?”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 땅을 뭐하러 사겠는가?
“이곳이 대모산 자락인데. 방금 오신 언덕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매물로 나와 있는 땅이 있습니다.”
“…….”
“이곳은 강남구 수서동이죠. 내곡동과는 바로 지척이고.”
도대체 김 의원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지.
그래서 오늘 이곳에서 보자고 한 건가?
나와 변 이사는 김 의원의 말에 집중했다.
“그 땅은 분묘기지권이 설립되어 있으며, 덕분에 수년째 땅이 안 팔리고 있습니다.”
“평당 가격이 어떻게 되는데요?”
변 이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1,400만 원. 토지 규모는 180평입니다.”
“네에?!”
강남구 땅 평단가가 1,400만 원이라고?!
규모도 우리가 원하는 200평에도 근접하다.
“그러니까. 저희보고 그 땅을 사라는 정보를 주시는 겁니까? 싼값이니까, 남의 묘 하나 이고 살라고요?”
잠시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난 약간 빈정대듯 말했다.
한 1,000평 샀는데, 그 안에 분묘 하나 있다고 하면 고민할 만하다.
180평 땅 샀는데, 그 안에 분묘가 있다?
보육원도 들어와야 하고, 애들이 생활 할 건데?
영 내키지 않는다.
차라리 입지가 좀 안 좋더라도, 쾌적한 외곽의 땅을 사는 게 낫지.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죠.”
김 의원은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분묘기지권이 성립된다고 해도, 소유자와 합의 없이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
“합의할 수 있는 분묘의 관리인이 없는 경우.”
“…….”
“다시 말해서, 무연고의 분묘가 된다면요.”
김정식 의원의 눈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