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25화 (125/156)

사는 길과 죽는 길 (1)

* * *

“뭐라고요?”

최경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뭘 그만한다고요?”

직원들이 놀라워할 거라고는 당연히 예상했다.

하지만…… 최경리는 화가 난 듯 보였다.

“누구 맘대로요? 강 사장님 회사니까 마음대로 정하면 되는 건가요?”

“잠깐. 최경리. 내가 얘기할게.”

다른 직원들도 적잖이 충격 먹은 표정이었지만.

최경리는 심했다.

난 이 일과 관련하여 예전부터 변 이사와 상의를 해왔다.

변 이사는 내막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결국, 변 이사가 나섰다.

“최경리. 진정 좀 하고, 사장님 얘기를 먼저 들어봐.”

“…….”

“그리고 강 사장님. 앞뒤 다 자르고, 불쑥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사람들 놀라게. 아는 나도 놀랐잖아.”

“임팩트 있게 서프라이즈 하려고 그랬죠. 설명이야 뭐 바로 하면 되는 거니까. 난 다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최경리는 누가 봐도 화난 표정.

오 대리와 김지안은 씁쓸한 얼굴이었다.

혹시 고용불안을 느끼는 건가?

“레스토랑 그만할 거라는 게, 여러분들 자를 거라는 의미는 아니야.”

“뭐야…….”

직원 중 누군가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아닌가.

어쨌든.

직원들 표정이 좀 차분해지고 나서야, 난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레스토랑을 그만한다는 건 우리가 직접 운영을 안 하겠다는 뜻이지. 사업을 접겠다는 건 아니거든.”

이제야 직원들이 날 바라봤다.

“이번 달에 성과급 많이 받았잖아. 아, 이건 내가 생색내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만큼 우리가 성과를 많이 내고 있어. 더 할 수 있어. 노동보다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왔단 말이야.”

“…….”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는 이상. 한계가 있잖아. 시간이라는 건 한정되어 있으니까.”

오 대리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그래.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는 레스토랑 때문에 꼼짝을 못 하니까. 사실 너무 힘들었거든.”

매일 오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고.

간혹 외부 미팅이 있을 때면, 항상 오후 늦은 시간에 시작하여 저녁 늦게까지 이어서 했다.

우리도 힘들었지만, 협력사들에게도 민폐였다.

게다가 미팅을 하고 나면, 정리도 하고 피드백도 해야 한다.

미술품 경매와 너튜브 광고 준비로 바빴던 근 석 달간.

야근은 기본이었다.

보육원 자리 알아보러 다니는 지금도 그렇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려는 의도 때문이긴 하지만, 이젠 워라벨도 고려해야지. 계속 이렇게 일하다가는 퍼져.”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포부도 살짝 말하였다.

“여러분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거든. 모두 유명인이 될 테니까.”

이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들고 날 바라봤다.

* * *

최경리는 어느새 표정이 풀려 있었다.

“저에게 레스토랑은 정말 중요해요.”

“…….”

“전 항상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레스토랑의 주인이라는 생각이요.”

최경리는 변 이사에게 안 배웠나? 꽤 오래 같이 일했다고 들었는데.

‘변 이사의 직장생활 백서 1항. 이 회사 네 거 아니다. 주인행세 하지 마라.’

주인 정신 갖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 주는 분인데…….

“제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

“최경리.”

변 이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토랑 네 거 아니야. 강 사장님 소유야.”

잘 볼 수 없는 최경리의 감정 섞인 발언을 한순간에 깨는 말이었다.

“내 말이 맞지?”

“…….”

“자기 시집갈 때 레스토랑 가져갈 수 있는 거 아니잖아.”

비유가 너무 찰져서, 쉽게 이해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

“그만 하세요.”

최경리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대꾸했다.

변 이사가 너무 쉽게 설명했다. 덕분에 최경리 기분은 다시 안 좋아지려 했고.

난 재빨리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지금 디너는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잖아.”

“어머! 설마. 그럼 설수민 사장님도…….”

김지안은 설수민이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못하게 될까 봐 우려했다.

“아니야. 다들 왜 이렇게 급해. 말을 좀 끝까지 들어.”

“…….”

“런치도 약간 비슷한데. 직영점이라고 해야 할까? 음, 사람을 써서 런치를 운영해 갈 생각이야.”

“아~”

오 대리는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직원 채용해서 레스토랑을 맡길 거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레스토랑 전문인력으로.”

김지안은 이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인건비만 더 들어가는 거고, 그 외에는 동일해. 다시 말하면 레스토랑은 운영하되, 지금 여기 계신 네 분은 레스토랑 직원에서 빠지는 거야.”

최경리 과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뭐야, 그냥 부서 이동 같은 거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변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레스토랑을 그만하는 거지. 적어도 우리 네 사람은.”

변 이사는 날 제외한 4명이라 말했고.

김지안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강 사장님은 레시피 보여줘야 하니까요? 지금 디너 주방장님에게 하시는 것처럼요.”

이제 디너 주방장은 익숙해져서, 런치 시간에 직접 주방까지 찾아와서 보지 않는다.

내가 요리 만드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면, 알아서 한다.

“그렇지. 적어도 나는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계속 요리를 해야겠지. 영상을 보여줘야 하니까.”

최경리가 말했다.

“주방장 채용이 가장 중요하겠네요.”

“맞아. 그게 핵심이지. 단순히 요리를 잘한다기보다는, 비법을 잘 훔치는 스킬이 중요한데…… 요리를 잘 따라 하는 사람. 뭐 그건 테스트해서 선발해야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제야 다들 이해를 하는 듯했다.

왜 가까운 거리의 성남시에 사무소를 만들려는 지, 그리고 레스토랑을 업무 과업에서 빼려는지도.

“아, 그럼 제 개인 과업은 어떻게 해요?”

최경리가 손을 살짝 들고 물었다.

“외식업이 제 개인 과업인데, 직원 채용해서 다 맡겨버리면.”

난 바로 대답해 주었다.

“최 과장 개인 과업은 여전히 외식업이고. 다만 역할이 더 커지는 거지. 직원 채용부터 관리, 운영까지.”

“…….”

“외식업은 최경리 과장이 모두 챙겨야 할 거야. 런치, 디너 모두. 난 레시피 보여주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관여 안 할 거니까.”

최경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맡아줄 게 있는데. 그건 나중에 사업 포트폴리오 설명할 때 얘기해줄게.”

“네. 전 한가한 건 싫습니다. 야근도 싫어하지만.”

난 오 대리와 김지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기들도 앞으로 더 깊이 과업에 집중하도록 해. 야근은 하지 말고.”

“네.”

“조금만 더 고생해줘. 건물 올리는 건 금방 하는 거 같더라고. 땅도 거의 정해졌으니까.”

변 이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어? 강 사장님 땅 정한 거야?”

“어제 그 오리고깃집이요. 거기 괜찮은 거 같아서요. 이사님도 좋다면서요.”

변 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뭐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편도 속이는 거야?”

풉.

변 이사의 말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요. 우리 서로 마음에 들어 했잖아요. 오늘 직원들하고 대화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기가 맞을 것 같아요.”

“…….”

“다른 곳에 더 좋은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도 중요하니까요. 100점짜리 구하느라 시간 쏟느니, 80점 이상이면 그냥 가는 거죠.”

그래도 변 이사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돈은? 예산이 돼? 20억?”

우리의 토지구매 예산은 15억이다.

“5억이나 부족하잖아? 설마 거기서 더 깎을 생각은 아닌 거지? 그러다가 양아치 소리 들어.”

난 그 말에 살짝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뭐…….”

“…….”

“종이 한번 더 접으려고요. 하하.”

“아…….”

변 이사는 황당한 듯, 한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씨바, 졸라 쉽네?”

* * *

다음날. 점심 영업을 마치고.

최종 토지구매를 의사를 전달하기 전에, 직원 모두 데리고 물건지에 왔다.

영웅 옥션의 이정수 팀장에게는 오늘 아침에 연락해놨다.

작품 준비 할거니까, 일정 좀 봐달라고.

대략적인 일정은 구상했다.

오늘 직원들과 물건지 확인 후에.

이번 주, 주말에 김성애 수녀님 모시고 와서 보여드리고.

다음주 초에 종이공예 하나 만들고.

그리고 바로 토지 매매계약서 체결하여, 잔금일자를 30일 정도로 협의.

그 안에 경매 참여해서, 대금 마련까지 하고 나면…….

빠르면 6개월 안에 건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뜨니, 빨리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어때?”

물건지에 도착하여, 변 이사는 오리고깃집을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

근데, 표정들이 탐탁치 않다. 별다른 말도 없고.

“공기는 좋네요…….”

최경리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오 대리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 뭐 놀데는 있나요? 혈기 왕성한 삼십대 남자가…… 여기서 지내다간 초식동물 될 거 같은데.”

김지안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학교까지 거리가…….”

김지안은 현재 Y대학교 학생이며, 수업을 야간에 몰아서 듣고 있다.

“내곡동에서 신촌까지도 만만찮았는데. 휴학 고려 해야겠네요.”

최경리와 오 대리의 핀잔은 그러려니 했는데, 김지안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직원들 괜히 데리고 왔나.

그냥 결정해서 보여줄 걸 그랬나.

난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해서 말했다.

“여기에 건물 진짜 멋지게 올릴 거야. 사무실도 널찍하게 하고. 거 뭐라더라? 외국계 회사 고글에는 휴게실에 캔맥주도 넣어 놓는다며? 우리 회사 휴게실에는 맥주는 기본이고, 소주랑 빼갈도 넣어 놓을 거니까.”

“…….”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난 귓속말로 변 이사에게 물었다.

“이사님, 이거 안 좋아하는 거 맞죠?”

“그런 거 같은데?”

“왜 그러지? 공기 좋은 곳에 새 건물 올린다는데?”

“그러게 말이야.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마음속에 계획은 다 세워놨는데.

영 껄쩍지근했다.

“자자. 오랜만에 회식이나 할까?”

직원들 기쁘게 하고, 기분 좋게 회식하려 했는데.

직원들 먼저 차에 태우고, 나도 차에 타려는데.

위이잉―

진동음이 들렸다.

‘김정식 의원.’

흡!

핸드폰에 뜬 이름 보고 귀신 본 것마냥 깜짝 놀랐다.

아니, 이 분이 웬일이지?

위이잉―

진동음이 계속 울렸고.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잠깐만요. 전화 좀 받고 탈게요.”

“어, 그래.”

변 이사에게 말한 뒤, 난 차 밖에서 전화 받았다.

왠지 김정식과의 통화는 공개된 장소에서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여보세요?]

[태평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의원님 안녕하세요. 잘 지냈습니다. 의원님도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를 건 목적이 있을 텐데.

김정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전화가 끊겼나 싶어서…….

[의원님?]

[음…… 제가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아, 안 끊겼구나.

무슨 소리 하려고 그러지?

[혹시 지금 성남에 계신가요?]

[……!]

[요즘 땅 보고 계신 거 같은데.]

꿀꺽.

뭐야? 그걸 어떻게 알어?

[나중에 저한테 뭐라 하셔도 되니까, 이 말은 꼭 들어주십시오.]

[…….]

[지금 보고 계신 땅. 세 번째 가신 걸 보니까 매수 의향이 있으신 거 같은데.]

난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사지 마십시오.]

[…….]

[죽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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