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24화 (124/156)

마음을 여유롭게 (2)

* * *

“강 사장. 왜 이래?”

변 이사는 눈치를 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날 다시 앉히려고 팔을 잡아당겼지만, 난 선 채로 있었다.

“사장?”

변 이사가 부르는 말에 오리고깃집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혹시 사장님이세요?”

난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와의 거래를 기대하지 않았고.

어차피 스쳐 지나갈 분에게 굳이 내 소개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난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난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나섰고.

변 이사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 일어났다.

카페 입구를 향해 걸으며, 변 이사가 귓속말로 물었다.

“강 사장. 왜 이래? 일부러 이러는 거야?”

“배운 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뭐?”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가격이 안 맞으면 소용없다고……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예전 팀장님께 배웠거든요.”

“…….”

“저분 표정 보십시오. 대화할 생각이 없는 분입니다. 본인 주관을 설득하려 만나자고 한 거 같은데…… 예산의 두 배 차이가 나는데, 뭐하러 앉아있습니까.”

카페 문밖을 나와 차를 향해 걸어갔다.

변 이사가 말했다.

“흠…… 그래도 오리고깃집 사장님이 말씀하신 게 전혀 틀리진 않거든. 우리 예산으로는 하늘이 돕지 않는 한 ‘임야’를 구매해야 할 거야. 거기에 건물을 세우려면 토지용도변경, 형질변경, 수도 및 배관 공사…….”

“…….”

“건물 올리기 전부터 돈 들어갈 일이 많아. 거기다가 시간 소요도 꽤 될 거고.”

변 이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건축 전 준비단계에서만 억 이상 들 수도 있어.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장담 못 하고. 건축 인허가 자체가 안 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못해.”

“…….”

어? 좀 전에 오리고깃집 사장과 대화할 때 변 이사의 태도와 너무 다른데?

“근데 안에서는 왜 그렇게 뻗대셨어요?”

“흥정하려고 처음엔 일부러 세게 나간 거잖아~.”

“아…….”

손발이 안 맞은 거구나. 내가 좀 급했나.

변 이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부우웅―

시동키를 돌렸다.

“에라이~ 모르겠다. 다른 기회가 있겠지. 뭐.”

“…….”

“아쉽긴 하지만 가격 차이가 너무 나긴 했어.”

어차피 나온 거 내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말 같다.

화장실 들어갔다가 밑 안 닦고 나온 기분.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상황은 벌어졌으니 출발하려는데.

똑. 똑.

조수석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리고깃집 사장의 하얀 얼굴이 창밖에 두둥실 떠 있었다.

위이잉―

열린 창문 위로 오리고깃집 사장이 말했다.

“아직 안 가셨네요?”

“다음 물건지 네비 좀 찍느라요.”

변 이사가 자동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고민하느라 늦게 출발했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는 게 좋다.

“사장님?”

오리고깃집 사장은 내게 말을 걸었다.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우리는 조수석 열린 창 사이로 대화를 나눴다.

“15억에 매도 할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셨는데.”

“네.”

“30억 매물을 15억에 달라고 하시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너무 하긴 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 15억에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저희 입장과 상황을 말씀드린 거뿐이에요.”

그리고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물건 포기할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아…….”

‘포기할 생각’이었다는 솔직한 말에 오리고깃집 사장은 당황해했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30억에 사겠다는 분 나타나면 파세요. 저희 입장에서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오리고깃집 사장의 눈이 급하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15억이 아니면 전혀 사실 의향이 없으시다는…….”

“…….”

여기서 어떻게 대답할까 순간 고민했지만 오래 걸리진 않았다.

“네.”

난 기존 생각을 밀고 나갔다.

단, 한 가지 단서를 주었다.

“하지만 네고 가능한 가격을 말씀해주시면 저희도 돌아가서 다시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

“근데 뭐, 워낙 차이가 커서. 하하.”

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리고깃집 사장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20억입니다.”

“…….”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가격입니다.”

여전히 우리 예산에 비해 많이 높지만, 어쨌든 10억이 낮춰졌다.

근데 어떻게 순식간에 이렇게 가격을 많이 낮추지?

뭔가 찝찝했지만, 일단 수긍하여 말했다.

“알겠습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창문을 닫으려 하는데.

“물건을 좀 잡아둘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매수자 나타나면 파셔도 됩니다.”

“…….”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난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 가격 변경 마음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오리고깃집 사장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만 오물거렸고.

우리 차는 출발했다.

* * *

다음날. 사랑산성.

점심 영업이 끝난 후 4번 룸.

난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룸 한쪽에 팬들이 보내온 선물이 보인다.

창고는 이미 선물로 꽉 찼고,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영업 룸까지 침범했다.

식사하는 손님들이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검은색 천으로 덮어놓긴 했는데.

“하아~ 이걸 어쩌면 좋나.”

계속 쌓여가는 선물.

누구 주기도 뭐하고,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심지어 선물 중에 소모품은 잘 없다.

대부분 정성 들여 만든 것이 많아서.

정말…… 간직할 수밖에 없게끔.

퍼즐로 내 얼굴 만든 걸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여어~ 협상의 대가~”

변 이사가 웃으며 룸 안으로 먼저 들어왔고.

뒤이어 최경리, 오 대리, 김지안이 들어왔다.

“에이~ 그만 좀 놀리세요.”

내가 대꾸하자, 변 이사는 더 큰 소리로 웃으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사장님이 만난 지 10분 만에 10억을 깎더라니깐?”

어제도 차에서 오는 내내 들었던 얘기다.

“어머, 정말요?”

최경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완전 도둑놈이시네요?”

“야야. 최 과장.”

내가 살짝 째려보며 말하자, 최 과장은 혀를 뾰족 내밀며 말했다.

“도둑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

오 대리도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협상하신 거예요?”

난 손사래를 치고 말했다.

“아~ 변 이사님이 놀리시는 거야. 나 진짜 한 거 없어.”

“오~ 진짜요?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난 변 이사 눈치를 보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유라고 해봐야. 뭐 변 이사님 가르침대로 한 거? 그냥 가격 차이가 많이 나길래, 거래 못 하는 거로 생각하고 일어났는데. 오리고깃집 사장님이 알아서 가격 낮추시더라고.”

“아…… 할인가가 찐 가격인가 보네요.”

지난주 야유회부터 보육원 부지 답사까지.

다른 일은 거의 신경 못 썼었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김지안 대리. 웰시페니 건 어떻게 됐어?”

어제 잠들기 전에 영상 조회 수 300만 돌파하는 건 확인했었다.

“내일 오전까지 입금해주기로 했습니다. 광고 효과가 좋다고 저스틴이 난리예요.”

“하하. 그래?”

“네, 특히 강 사장님이 쓰신 매니큐어는 품귀현상이라고…….”

그래…… 내가 매니큐어를 발랐었지.

“사장님! 댓글 반응도 보셨어요?”

“…….”

아니. 일부러 보지 않았다.

너무 오글거려서 댓글과 영상은 보지 않으려 했다.

오 대리는 댓글을 일부러 읽기 시작했다.

― 네모의신님 손 너무 이뻐~

― 저 매니큐어 부러워ㅎㅎ

― 내가 매니큐어였으면 좋겠당.

― 손톱에 매니큐어 대신 날 발라줘~

“그만!”

난 듣다 못 해 소리쳤다.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래서 댓글을 안 보려고 했던 것이다.

“팬들 좀 무섭다. 이 정도면 팬이 아니라, 추종자들 아니에요?”

김지안은 몸서리를 치며 말했고.

다른 직원들도 새삼 신기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있어서, 난 큰 소리로 말했다.

“웰시페니 건은 확인했고.”

부동산 얘기를 하려고 모인 자리다.

빔 프로젝터로 노래방 기기를 가린 천 위로 화면을 띄웠다.

성남시 전체 지도.

“사랑산성 사무실 만들 거라고 얘기했었지?”

“오~”

운을 띄우자, 오 대리가 흥분하여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우리 사무실 생기는 거예요?”

“그래. 셋방살이 끝내고 사서 들어 갈거야.”

이 말에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근 1년간.

단란주점 룸을 개조한 공간에서 일해온 직원들.

사실 개조라고 할 것도 없었다.

노래방 기기를 천으로 가린 것뿐이니.

“여기가 후보지거든?”

붉은 포인트로 가리킨 지점을 직원들은 유심히 보았다.

― 오…… 친환경이네요?

― 내곡동 못지않은데?

― 저기가 어디야? 성남시?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곳이야. 저곳에 보육원과 사랑산성 사무실이 들어설 예정이야.”

“보육원이요?”

최경리의 반문에 변 이사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 보육원 시세차익 덕분에 우리 사무실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거든. 강 사장님이…….”

변 이사는 말하다 말고, 내 눈치를 보았다.

어차피 사무실 이전하면 알게 될 거, 난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흠! 강 사장님이 살았던 보육원을 이전하는 거고. 그 보육원 부지가 강 사장님 소유거든? 매각한 금액으로 보육원 신설하는 거고, 그 안에 우리 사무 공간을 만들 거야.”

“…….”

직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보육원 수녀님들은 너무 좋고, 아이들도 착하거든? 함께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거 없을 거야. 야근이 늦어질 때는 보육원에서 자도 되고. 알바 인력도 넘쳐나고.”

“…….”

난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더 가라앉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번쩍.

최경리가 손을 들었다.

“어, 말해.”

“사무실을 꼭 이전해야 하나요? 설수민 사장님이 비워달라고 한 거예요?”

“아니.”

최경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곳이 내곡동과 가깝다고 해도 차로 2~30분은 걸리잖아요.”

“…….”

“업무 시간 대부분을 레스토랑 영업하는데 쓰고, 사무업무 보는 건 잠깐인데. 그 잠깐 업무 보는 거 때문에 레스토랑 영업 끝난 뒤 성남으로 이동해요?”

이 말에 오 대리와 김지안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요?”

최경리의 말이 일리가 있다.

“레스토랑 근처에 사무소를 만들 게 아니라면, 전 의미 없다고 보는데요. 차라리 지금처럼 룸에서 잠깐 사무 보고 퇴근하는 게 낫지.”

“…….”

변 이사는 미소 짓고 있었고.

오 대리와 김지안은 최경리의 말에 완전히 동감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이 얘기는 나중에 하려 했는데.”

난 가만히 최경리를 바라봤고.

최경리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스토랑…….”

“…….”

“이제 그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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