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설렘, 불안 (1)
* * *
성 팀장이 네모의 신을 알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은 해봤지만…….
“네모의 신이요?”
반응을 보아하니, 아는 것 같다.
번쩍 뜬 눈으로 이정수 팀장과 나를 번갈아 보고는.
“이 팀장.”
“네.”
“네모튜브의 네모의 신이라고? 이분이?”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정수 팀장은 날 향해 눈을 찡긋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웬만해선 알 거라는 말이…… 진짠가 보네.
성 팀장의 태도는 대번에 달라졌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요. 실례는요.”
“저…… 우선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딸이 너무 좋아해서.”
“네? 아……. 네.”
이 사람이 초면에 보인 태도를 봐서는 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딸이 원해서 요청한다고 하니…….
“딸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성민지입니다.”
대신 수여자를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To. 성민지 양.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네모의 신.’
난 사인한 종이를 건네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이 참 좋아하겠네요.”
성 팀장은 사인 된 종이를 품에 넣은 후 ‘할아버지의 일생’을 바라봤다.
“어쩐지…… 작품이 범상치 않다 했어요.”
좀 전에 ‘듣보잡’이 만든 ‘장난감’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지었고.
오 대리와 김지안도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이 팀장.”
“네, 성 팀장님.”
아무래도 두 사람이 호칭하는 거로 봐서는 성 팀장이 선배로 보인다.
외모적으로 봤을 때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하고.
“이번에 행사하는 거 있잖아.”
“영웅옥션×디자인 컴퍼니 living with art요?”
난 기억하고 있다. 그 행사에 내 작품이 출품될 거라고 했었다.
“그래. 이번에 2팀에서 출품하는 작품이 많은데.”
“…….”
“이 작품은 1팀에서 맡는 게 어떨까?”
“네에?!”
뭐야? 이 뻔뻔함은.
“아무래도 우리가 인력도 그렇고, 경험이 많으니까. VIP는 우리 쪽에서 맡는 게 낫지 않나?”
이정수는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2팀은 그림 전문이잖아. 이 작품은 공예 쪽에 더 가까우니까 우리에게 더 맞기도 하고.”
그렇다면 내 작품을 애초에 왜 2팀에서 맡았던 걸까?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더 불쾌감이 들었다.
이정수 팀장은 아랫입술만 떨고 있을 뿐.
성 팀장의 제안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내가 본부장님께 보고 드릴게. 분명히 컨펌하실 거야.”
“…….”
이정수 팀장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고.
성 팀장은 ‘할아버지의 일생’을 혀로 입술에 침을 적시며 바라보는데.
완전 뱀 눈깔이었다.
이정수 팀장이 평범하지 않다면.
성 팀장은 그냥 미친놈 같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이런 눈깔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진일상사의 민경원 사장.
“아니요. 보고하지 마세요.”
내가 앞으로 나섰다.
“담당자 바꾸면 저 영웅옥션이랑 안 합니다.”
“…….”
성 팀장의 뱀 눈깔이 번뜩였다.
“작가님, 저…… 이건 회사 내부의 일인데요.”
“아니요. 이정수 팀장님과 계약서까지 썼습니다. 작품과 계획에 대해서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요. 전 이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
“더욱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담당자를 바꾸는 회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성 팀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잘 생각하십시오. 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요. 분야나 경력으로 봐도 저희 쪽이 전문인데……. 이런 제안을 하면 좋아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그리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정수 팀장이 돈 줬어요?”
“…….”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오 대리와 김지안도 어이없어했고.
결국, 오 대리의 이마에 핏대가 올라갔다.
“저기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무슨 말을…….”
체격 좋은 브라운 피부의 오 대리가 다가서자, 성 팀장은 움찔했고.
난 오 대리를 만류했다.
“아니야. 오 대리, 하지 마.”
난 가만히 성 팀장을 바라보았다.
또라이라고 하더니……. 진짜 개 또라이구나.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라던데.
가까이에 파리채라도 있으면 좀 써먹을 텐데.
사랑산성에서 진상 손님 잡을 때 효과 좋던 그 파리채.
“방금 한 말 취소하세요.”
“네? 무슨 말이요.”
“돈 먹었느니 어쩌니 했던 말이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결국 나도 살짝 빡이 돌고 말았다.
“합리적 의심인데요.”
“합리적은 얼어 죽을. 빨리 취소하고, 사과 안 하시면 명예훼손 들어갑니다.”
“네에?”
명예훼손이라는 말에 성 팀장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오 대리, 김지안, 이정수 팀장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첫 등장부터 맘에 안 들었다.
“그딴 식으로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그것도 초면에.”
“…….”
“저 돈 잘 벌거든요. 고소 비용 따위 안 아까우니까. 어떻게 하실지 빨리 결정하세요. 1분만 기다릴게요.”
꿀꺽.
성 팀장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똥 밟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난 사소한 오해에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 말에.
김지안이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사장님…….”
“가만히 있어.”
“…….”
난 선 채로 성 팀장을 노려보았고.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살피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
그를 잠시 더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담당자는 바뀌지 않는 거로 알겠습니다.”
“…….”
“이정수 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함께 어떠십니까?”
“네?”
저녁 6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정수 팀장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좋습니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 * *
영웅옥션 근처의 삼겹살집.
“이 집 삼겹살 보통이 아닙니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아주 맛집이에요~.”
지글. 지글.
이정수 팀장은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우리는 집게에 손도 못 대게 했다.
“팀장님도 좀 드셔야죠. 이제 그만 구우시고 좀 드세요.”
“알아서 잘 먹고 있습니다~. 어서 드세요.”
좀 전에 성 팀장과의 일 때문일까?
원래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지만. 정도가 더 심해졌다.
난 억지로 그의 손에서 집게를 뺐었다.
“아이~, 이리 주시고. 어서 드세요.”
“엇……. 아, 네. 고맙습니다.”
그제야 이정수 팀장은 고기를 먹었다. 내가 봤을 때는 첫입이다.
난 고기를 구우며 물었다.
“두 분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성 팀장을 굳이 지칭하지 않았지만, 이정수 팀장은 곧바로 이해했다.
“아……. 뭐, 안 좋다기보다는요.”
“…….”
“그냥 서로 치열하게 일하고 경쟁하다 보니까요. 그리고 1년 전까지만 해도 제 팀장님이셨고요.”
아……. 그래서 좀 어려워한 거였구나.
“저도 일 욕심이 있는 편이고, 주장이 강하거든요.”
“그렇게 보이세요.”
“하하. 네. 그러다 보니 성 팀장님과 종종 부딪히는 일이 생겨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긴 하지만…… 처음에 작가님 작품 위탁 신청 들어왔을 때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거든요.”
“…….”
“근데 전 제가 확신한 일에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밀어붙였고, 덕분에 작가님 작품을 제가 진행하게 되었죠. 다만, 성 팀장님과는 더 안 좋아졌죠. 본부장님에게도 살짝 찍혔고요.”
그래서 꼭 잘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거였군.
“하지만 전 개의치 않았어요. 확신이 있으니까요. 결과로서 과정을 입증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할아버지의 일생’을 출품하는 날, 모든 시선은 바뀔 거라고 확신해요.”
이정수 팀장은 날 보며 씩 웃었다.
“작가님이 네모의 신이라고 밝혀져서,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기도 하고요.”
얘기를 들을수록. 왜 강남옥션은 불합격 통보를 했으며, 이정수 팀장은 마치 다짐을 하듯 잘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직장 생활 하는 사람. 난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정수 팀장이라서, 한 가지만 더 말해주고 싶었다.
“제가 팀원일 때, 존경하는 팀장님이 계셨는데요. 팀원들에게 살갑게, 그냥 같은 회사원 입장에서 대해 주셨던 분이거든요. 주인 정신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하시면서요. 이 회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면서. 하하.”
이정수 팀장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 들어왔다가 이 팀장님이 직원과 대화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습니다.”
“…….”
“저보다 형님이시고, 직장 생활 선배님이시잖아요. 이런 말씀 상당히 주제 넘는다는 거 알지만.”
난 변성준 팀장을 떠올렸다.
“팀장님께서 조금만 마음에 여유를 두고 팀원들 대해 주시면, 금방 성장할 겁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고,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팀장님 덕분에 제가 사장까지 되었고, 그 팀장님은 퇴사한 후에 제가 일자리도 알아봐 드렸거든요.”
“아, 그래요?”
“네. 그냥 함께 일하는 사이잖아요. 직원들에게 굳이 불편하게 말할 필요 없어요. 상처 되는 말은 뱉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이정수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굳었던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요즘 마음이 좀 급했어요. 팀장 된 지 얼마 안 돼서. 작가님이 하신 말씀 잘 생각해봐야겠네요.”
술이 좀 들어가서일까?
난 그냥 이정수 팀장이 좋은 사람 같아서 해준 말이었는데.
막상 말을 뱉고 나니 좀 민망했다.
“자자, 한잔하시죠.”
민망함을 없애려 난 건배 제의를 했고.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쭉 들이켠 후.
이정수 팀장이 말했다.
“작가님.”
“네.”
“출품자 명을 ‘네모의 신’으로 하시는 거 어떠십니까?”
“엇…….”
이정수 팀장은 망설여하는 날 보며, 재차 말했다.
“어차피 출품하기로 하신 거고, 좋은 결과 낼 수 있는 조치는 다 하는 게 좋잖아요.”
오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제 생각에도 이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요.”
김지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난 잠시 고민하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시죠! 출품자명을 네모의 신으로 하죠.”
“하하! 감사합니다!”
이정수 팀장은 아주 좋아했다.
아무래도 좀 더 흥행할 수 있는 요소가 생겼다는 것에 좋아하는 듯했다.
김지안은 웃으며 말했다.
“호호. 이번 경매가 네모의 신님 오프라인 데뷔가 되겠네요?”
“오프라인 데뷔?”
“네에~, 공식 석상에서 네모의 신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처음인 셈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의미를 부여하자면, 김지안의 말이 맞다.
이정수 팀장은 큰 소리로 말했다.
“영광입니다!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
이정수 팀장이라면 적당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과할 것 같아서.
“너무 힘주진 마시고요.”
“염려 마세요. 아주 그냥 제대로……. 하하!”
난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시죠. 모두 잔 높이 드시고!”
큰소리로 외쳤다.
“위하여!”
“위하여~. 하하.”
마지막 잔을 쭉 들이켜고.
가방을 챙기는데.
이정수 팀장이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내게 내밀었다.
“저도…… 사인 좀.”
“네?”
“아까, 성 팀장 부러웠습니다. 해주실 거죠?”
문득, 이정수 팀장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난 소매를 걷어붙이고, 호탕하게 말했다.
“몇 장 해드릴까요?”
* * *
순식간에 2주가 지났다.
중간에 영상 촬영은 2번 정도 더 진행하였고.
영상은 경매까지 끝나야 완성되기 때문에 아직 웰시페니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나와 동료들이 할 일은 다 했고.
결과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경매 프리뷰를 하루 남겨둔 오늘.
사랑산성은 평소처럼 묵묵히 점심 영업을 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긴장, 설렘, 불안.
묘한 분위기가 직원들 사이를 흘러갔다.
나도 오늘은 요리가 손에 잘 안 잡혀서.
샥스핀 손질하다가 몇 번을 미끄러졌는지 모르겠다.
내 작품. 내가 만든 아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최고지만.
세상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할까?
그들이 외면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혹은 사람들이 모두 박수 쳐주고 기뻐해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내게 속한 일이 아님에도.
온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후 3시.
점심 영업이 끝나자마자 말했다.
“나 오늘 먼저 퇴근 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