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같은 사람 (1)
* * *
“에헤이~, 받으셔야 한다니까요.”
“됐어요~. 협찬 수익은 사랑산성. 너튜브 광고 수익은 네모튜브. 이렇게 나누기로 협의 본 거잖아요.”
“…….”
네모 씨가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영상 만드는 데 전혀 관여한 거 없고, 플랫폼 영향력 빌려준 것에 대한 대가로 광고 수익 받는 건데.”
“구독자 수가 그 영향력 이상이라니까요.”
강태평과 네모 씨는 실랑이를 이어갔고.
두 사람을 지켜보며 네모삼촌은 정카에게 말했다.
“네모 씨가 원래 이런 의도 아니지 않았어? 광고 미팅하러 가는 거 언질도 없었다고, 가만 안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러게요. 오늘 녹화 전부터 태평 씨 오기를 벼르고 있더니만…….”
하지만 지금 모습은 서로 양보하겠다고 난리였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네모삼촌은 정카에게 말했다.
“혹시 네모 씨가 까칠하게 나올 줄 알고, 태평 씨가 전략적으로 이러는 건 아니겠지?”
“흠…….”
정카는 강태평의 진심 어린 표정을 봤다.
잔머리 굴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제가 보기엔 그래 보이진 않아요.”
“…….”
“사람이 참 괜찮아요. 욕심도 없고.”
“왜? 사장되고선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긴 한데……. 돈 욕심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32세. 사랑산성의 젊은 사장 강태평을 보면서 정카는 말했다.
“그냥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고, 삶을 즐기는 것 같지 않아요?”
“흠…….”
“저렇게 손재주 좋은 사람이 하루 투잡 뛰면서 일할 필요 없잖아요.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사업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돈 욕심이 많았다면 진작에 회사를 뛰쳐나왔겠죠.”
정카의 말을 들으며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훗……. 그렇네. 하여튼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렇게 재주가 뛰어난 걸까? 볼수록 신기해.”
재주는 많지만, 밉지 않은.
옆에서 응원하면서 구경하고 싶어지는 강태평을 보며.
네모삼촌과 정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실랑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내가 안 받겠다는데 진짜 왜 그래요?”
강태평이 하도 우겨대니, 네모 씨는 얼굴이 좀 붉어져서 소리쳤다.
“하, 참나. 네모 씨 진짜 이해 안 되네요. 이러다가 제가 협찬 광고를 여러 개 찍게 되면 어쩌려고요?”
“어쩌긴요. 네모튜브 더 커지고, 너튜브 광고 수익 올라가겠죠. 협찬 광고 수익은 알아서 하세요! 난 모르니까.”
“하아…….”
강태평은 네모 씨를 보면서 생각했다.
‘불로소득 얻는 거 같아서, 영 찝찝한데. 이런 식으로 마음의 빚 지게 하려는 거 아니야?’
네모 씨는 그런 강태평을 보면서 생각했다.
‘네모튜브를 떠날 여지를 주면 안 돼. 협찬 수익 몇 프로 떼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계속 가족 같은 콘셉트를 유지해야…….’
네모삼촌과 정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아름다운 의도로만 대화하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비즈니스 관계이기 때문에.
강태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뜻이 정 그러시다면……. 하지만 선물은 제대로 할 거니까. 그때 가서 김영란법 운운하면서 안 받거나 하면 안 돼요.”
“안되죠. 법은 법인데…….”
강태평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 촬영 때 뵐게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 * *
다음 날 사랑산성.
점심 영업이 끝난 뒤, 우리는 각자의 사무공간으로 들어갔다.
점심 영업 후 청소까지 마무리하면 늦어도 오후 3시.
사랑산성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오후 3시에 외근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외근이 없으면 사랑산성 내의 각자 사무 공간에서 퇴근 시간까지 일한다.
나는 3번 룸을 독방으로 쓰고, 직원들은 가장 큰 4번 룸을 함께 쓴다.
디너 오브 사랑산성의 영업 시간은 오후 5시부터이며.
즉, 디너 영업 시작 시간이 우리의 퇴근 시간인 것이다.
오늘은 외근이 없어서, 3번 룸에서 그동안 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똑똑.
[사장님, 김지안입니다.]
“들어와~.”
김지안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왔고, 뒤이어 오 대리도 함께 들어왔다.
“응? 왜 둘이 같이 들어와?”
내 물음에 김지안이 대답했다.
“PPL 광고 영상이요. 아이디어 짠 거 보고 드리려고요. 오 대리님과 상의해서 했거든요.”
난 룸 안의 U자형 테이블 정중앙에 앉아 있었고, 양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일단 앉아.”
“네.”
난 웃으며 말했다.
“빠르네?”
김지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네, 뭐, 사실 고민할 게 없더라고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이면서 빨리할 수 있는 걸 고민하다 보니…….”
오 대리가 이어서 말했다.
“아이디어도 괜찮고요. 김지안 대리가 짠 거 전 들어보기만 했습니다.”
“그래? 몇 개나 짜왔는데?”
“하나요.”
대답하면서 김지안의 눈빛이 빛났다.
“그래? 자신 있나 보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좋아. 그럼 나 혼자 들을 수 없지.”
난 오 대리에게 말했다.
“오 대리, 4번 룸 가서 변 이사님이랑 최 과장도 이리로 오라고 해.”
“네? 아, 알겠습니다.”
오 대리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룸을 나갔고, 김지안도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잠시 후.
U자형 테이블에 4명이 모두 앉은 뒤.
김지안은 노래방 기계 앞에 섰다.
“필요하면 마이크 들고 해도 돼.”
난 노래방 기기 옆에 있는 마이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레스토랑 영업 중에는 노래방 기기를 천으로 가려놓지만, 영업이 끝난 뒤에는 천을 거둬 놓는다.
“아니에요. 반주 소리 때문에 목소리 묻히는 것도 아닌데요.”
김지안은 내 농담을 기가 막히게 받았다.
“흠! 휴우―.”
긴장되는지 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김지안은 말을 시작했다.
“이번에 PPL 협찬 광고 포함 영상의 핵심은 300만 뷰 이상을 달성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 네모의 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
“목표와 굵직한 아이디어는 정해진 셈인데, 그걸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미동도 없이 김지안의 말에 집중했다.
“이번 경매 전 과정을 영상으로 담는 것입니다. 약간 드라마처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요.”
“오…….”
변 이사의 탄식 소리가 들렸지만, 김지안은 계속 말을 이어서 했다.
“영상 만든다고 따로 시간을 안 빼어도 되고요. 이미 종이접기로 경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하다고 봅니다. 낙찰 결과가 좋다면 네모의 신의 이름도 더 올라가고요.”
“괜찮네……. 무엇보다도 효율적이긴 하겠어.”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흠…….”
최경리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괜찮은 걸 보고는 오 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김지안 대리가 이 아이디어를 저에게 물어오더라고요. 저 또한 괜찮다고 생각해서, 단번에 이걸로 하자고 했습니다.”
난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이디어는 괜찮네. 편집이 중요하겠는데? 영상 시간 설정하는 것도 그렇고……. 영상의 목적지는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정해야 하고.”
내 말에 변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중요하겠네. 영상의 시작점을 어디로 할 것인가. 강 사장님, 혹시 할아버지 만나는 과정이나, 모텔에서 종이 접는 모습 영상으로 찍진…… 않았겠지?”
“당연하죠. 그럴 정신은 없었죠. 근데…… 사진은 좀 있네요.”
할아버지 댁에서 헤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촬영했었고, 모텔에서도 ‘할아버지의 일생’ 완성하자마자 한 장 찍었다.
“아, 그래? 그럼 자료 화면이 전혀 없진 않은 거네.”
김지안은 웃으며 말했다.
“작품 모티브를 얻은 순간부터 영웅옥션에 출품가를 받은 시점까지는 짧게 치고 나가고요.”
“…….”
“경매를 기다리는 과정부터 낙찰까지. 현실감 있게 영상으로 편집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요?”
오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모의 신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성공의 환희까지……. 전 충분히 이슈 될 것 같습니다. 종이접기 작품이 높은 금액으로 낙찰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끝날 것 같아요.”
가만히 듣다 보니, 약간 어이가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지? 만약 성공 못 하면? 출품가는 3억인데, 1억도 안 되게 되어버리면?”
내 말에 오 대리는 피식 웃었고. 대답 대신 다른 직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저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 있으세요?”
변 이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김지안은 혀를 쏙 내밀고 웃었으며.
최경리는 미동도 없었다.
오 대리는 날 보고 말했다.
“보셨죠? 말해 뭐 합니까. ‘할아버지의 일생’은 잘될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요.”
“…….”
“만약 저희가 기대한 만큼 낙찰이 안 되더라도, 어쨌든 영상은 300만 뷰 넘을 거예요. 네모의 신님을 드러내어 그 과정을 담는 것만으로도요.”
난 내심 불안함이 있었지만, 직원들 사기가 충전해 있는데 사장인 내가 굳이 찬물 끼얹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김지안 대리, 그럼 다음 액션은 뭐야?”
“내일 영웅옥션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일생’이 영웅옥션에 보관되어 있으니까.
“좋아. 영상 촬영은 누가 하지? 내가 하면 좋은데……. 난 영상 안에 나와야 하니까, 할 수가 없는데.”
오 대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원나잇포차 너튜버였던 앤더슨 오가 여깄습니다! 하하!”
* * *
다음 날, 영웅옥션 1층.
우리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연락은 하고 왔지만, 일부러 시간 약속은 하지 않았다.
부담스러우니 이정수 팀장에게는 이번엔 로비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미술경매 팀이 2층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2층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매다가.
우연히 탕비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 이정수 팀장님 말이야…… 아무래도 무리수 아니야?”
― 그러니까.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꽂혔어도 어떻게 듣보잡 작가의 작품을 firts zone에 놓는다고.
― 그 목적만이겠냐. 1팀장 의견에 반하려는거지.
이정수 팀장?
탕비실 안의 직원들에게 길을 물어보려다가 그들 대화에 걸음을 멈추었다.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김지안과 오 대리도 귀를 쫑긋했다.
― 근데 내가 봤는데, 그 작품이 대단하긴 하더라고.
― 글쎄다~. 강남옥션에는 까였다던데. 서면 심의도 통과 못 했다고.
― 그걸 어떻게 알아?
― 거기 다니는 직원한테 들었지. 대학 동기.
― 하긴 이 시장이 좁기는 해.
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대화 내용이 흥미롭기도 했고, 길을 물어볼 만한 다른 사람은 복도에 보이지 않았다.
― 몰라. 난 그래도 이정수 팀장 응원하고 싶어. 이 사람도 까칠하지만, 1팀장은 또라이잖아.
― 누가 사업 부장이 되든 어차피 힘든 건 마찬가지고~. 이기는 편 우리 편이다아~! 하하.
그때 한 직원이 말했다.
― 근데 그 작가 이름이 뭐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작품이 진짜 범상치 않던데.
― 강 뭐였는데…….
그때 난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듣보잡 강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