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03화 (103/156)

이미 특별한 사람 (2)

* * *

“사장님…….”

옆에 있던 김지안도 놀랐는지, 날 살며시 불렀다.

당황한 저스틴은 눈만 멀뚱히 뜨고 날 보다가…….

“하하. 재밌네요. 200만 뷰라고요? 하하.”

“…….”

지금까지 내가 촬영한 것 중에 200만 뷰를 넘었던 것은 꽤 있다.

난 그 숫자가 주는 의미를 대단하게 느끼지 않았다.

“헤이~, 네모의 신! 나 또한 당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라고요.”

“…….”

“순수한 크리에이티브와 PPL이 들어간 것은 달라요. 아무래도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뷰 수에 영향이 간다고요.”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하긴, 지금 그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책임으로 내가 보장하는 것이니까.

“사장님, 저스틴 말이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난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촬영했던 동영상들보다 강력한 한 방이 있는…… 아이디어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때요? 200만 뷰 이상 보장하면 광고료 올릴 생각이 있어요?”

저스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100만 뷰나 200만 뷰나 업계가 생각하는 파급력은 그렇게 큰 차이가 안 나요. 만약 300만 뷰라면 모르겠지만…….”

“300만 뷰 이상 보장한다면요?”

“7,000만 원으로 할게요.”

흡!

김지안의 동공이 커졌고.

나 또한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 조건이 있어요.”

저스틴은 신중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300만 뷰를 달성 못 하면 위약금이 있고요.”

“…….”

“영상에 대한 별도 비용은 없어야 합니다.”

“별도 비용?”

그가 뭘 말하는지 몰라서 반문했고, 그때 김지안이 나섰다.

“뭉뚱그리지 말고, 명확하게 말씀하시죠. 어떤 항목에 대한 별도 비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스틴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2차 사용, 중간 삽입 광고, 추천 댓글 상위 올리기, 더 보기 기능에 관련 광고 영상 올리기입니다.”

아…….

이런 것도 별도 비용을 받고 협의하는 거야?

이 정도는 서비스로 그냥 해주거나, 당연히 광고료에 포함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모르면 당하는 거구나.

시간이 없었는데, 김지안이 준비를 잘해온 거 같아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오 대리와 업무 인수인계를 바로 어제 했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어제 야근 식대 70만 원 쓴 것도 아깝게 안 느껴지네.

“익스큐즈 미.”

김지안은 저스틴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내게 한국말로 물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글쎄. 광고료 7,000만 원이면 업계에서 꽤 괜찮은 거 아니야? 아까 구독자 수 100만 이상은 3,000만 원이 통상적이라고 했잖아. 거짓말처럼 안 느껴지던데.”

“맞아요. 거짓말 아니에요. 광고료 7,000만 원은 정말 유명 연예인 아니면 불가능해요. 솔직히 이런 제안을 한 웰시페니 생각이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그래? 그 정도야?”

“네, 제가 네모의 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좀 비상식적이라 이해가 안 돼서요.”

“흠…….”

김지안의 말을 잠시 생각했다.

“회사의 사정이 있겠지. 지금 계약서 작성까지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얘기 나누면서 두고 보자고. 정 아니다 싶으면 발 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별도 비용은…….”

“그건 김 대리가 알아서 해. 나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냥 방침만 주자면, 묶이는 것만 하지 마.”

“묶이는 거요?”

제이엠인터내셔날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순간 달콤하다고 물었다가, 겨우 1천만 원에 1년 내내 불려 다니면서 사진 찍었던 기억이…….

“음……. 알았어요.”

김지안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저스틴을 불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저스틴.”

“노 프라블럼. 얘기해요.”

“별도 비용에 관련해서는요. 2차 사용에 관한 것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락하겠습니다.”

“오……. 그렇다면.”

“네, 비용 추가 없이 광고료에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2차 사용만 제외라…….”

저스틴은 잠시 머리를 굴리고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보장 뷰 수는 반드시 채워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난 조금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저스틴은 환하게 웃었다.

“하하. 그뤠잇! 바로 계약서 작성할까요?”

지금?!

그러더니, 진짜로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는 게 아닌가?

오 대리 말대로네. 대기업은 사업을 시작하는 데 신중하지만, 막상 결정하면 밀어붙인다더니…….

7,000만 원짜리 광고 계약을 이렇게 바로 체결하려 한다고?

“플리즈, 저스틴. 캄 다운. 캄 다운.”

난 너무 급하다고 생각했다.

웰시페니 회사도 가봤고, 이 회사에 대한 사전 조사도 마친 상태이긴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 식사도 다 안 했어요. 우리 식사는 마치고 계약서를 쓰든지 하죠. 뭐가 그리 급합니까?”

난 최대한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웃으며 말했고.

저스틴은 꺼내려던 종이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아, 좀 급했나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일은 끝내놓고 놀자는 주의라서. 하하. 그래요. 얘기 좀 나누시다가 계약하시죠.”

사실 오늘 대화나 하려고 온 거였지. 계약까지는 생각도 안 했었다.

* * *

“하하. 그래요?”

“네~, 그 영상이 학 2,500마리를 접은 영상이었어요. 보시는 분들은 힐링이지만, 저는 그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어머. 호호.”

1,000만 뷰를 달성했던 ‘단양 수도원’ 영상 얘기를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웰시페니는 돈이 많은 회사인가 봐요?”

“네?”

“어떻게 저처럼 신인 너튜버에게 그런 큰 광고료를 쓰실 생각을 하세요?”

난 분위기에 편승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의구심을 풀어보려 했다.

“아~, 하하. 네모의 신님이 신인인가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네?”

“네모튜브에서 1년 좀 넘게 종이 접으셨잖아요. 신의 학으로부터 시작해서, 회오리 장미, 울부짖는 공룡 등 히트작들이 있고요.”

뭐, 뭐지…….

“네모의 신님이 사랑산성의 사장이라는 건 오늘 뵙고 나서 알았는데. 하하. 그것만으로도 영향력이 입증되었죠.”

“…….”

“사랑산성이라는 레스토랑이 네모의 신의 영상 홍보 한 방으로 뜬 거로 알고 있는데요? 당시에 회사명은 제로백 컴퍼니였죠?”

“아니…… 제가 사랑산성 사장인 걸 오늘 알았다면서 어떻게…….”

“아까 로비에서 기다리실 때 공부하고 내려왔죠.”

나와 김지안은 황당해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 중요한 화상 회의 있었다는 말은 사실이에요. 근데, 그 회의 마치고, 공부하고 내려오느라 좀 걸렸어요. 하하.”

다……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구나.

“큰 회사라고 돈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부자들은 돈을 똑똑하게 쓰죠. 그러니까 부자가 되는 거고요. 아시죠?”

꿀꺽.

저스틴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 고민하러 온 것도 결정하러 온 것도 아니에요.”

“…….”

“결정한 걸 실행하러 온 거죠.”

쭉―.

나도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털어버렸다.

“저희 회사는 얼마 전까지 한국 사업은 에이전시 통해서만 하다가, 6개월 전에 한국 사무소가 들어왔습니다. 직접 하려고요. 한국 네일 시장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

“우리는 단기간에 한국 고객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특색 있는 모델을 원합니다.”

“…….”

“신인이지만 신인 같지 않고, 유명하지만 신선한 그런 인물이요.”

시퍼런 눈깔이 내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네모의 신님께 접근할 만하죠? 의구심 해결됐나요?”

그리고 날 향해 빙그레 웃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난 내 손에 든 계약서를 보았다.

“사장님 좀 급한 거 아닐까요?”

옆에 김지안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난 웃으며 대답했다.

“왜? 김 대리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아직도 의심스러워?”

“의심스러운 건 아닌데요. 그냥 좀…….”

“괜찮아. 계약서 내용도 잘 살펴봤잖아.”

“그래서 그래요.”

“…….”

“기한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어서요.”

기한은 1개월.

1개월이 짧은가? 난 길게 느껴지는데.

“얼마 전에 네버랜드 영상도 반나절 만에 만든 거야.”

“그거야 구상이 되어 있으니까 그랬던 거죠.”

“…….”

“지금은 완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김지안 대리.”

“네.”

“자기는 날 뭐로 보는 거야~. 설마 아무 생각 없이 계약 체결했다고 생각한 거야?”

“…….”

“구상은 이제 해야 하지만, 아이디어는 있지.”

“아이디어요?”

“그래. 구상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아이디어.”

“그게 뭔데요?”

“…….”

난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

“아이~, 그게 뭔데요오~.”

김지안은 내 팔짱을 끼고는 흔들었다.

“내일 회의 때 얘기해줄게.”

“아이~, 뭐에요오~.”

아양을 떨면서 내 팔을 안고 흔드는데…… 순간 뭉클함이 느껴졌다.

깜짝 놀랐다.

애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 난 순간 몸을 떼었다.

“어허! 거리 유지. 거리 유지.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요?”

“팔 붙잡지 말고, 말로 해. 말로.”

“치…….”

다음 날 사랑산성.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을 소집했다.

간단하게 알리기만 하면 되고, 좋은 일이니까 굳이 오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사장님! 어제 어떻게 됐습니까?”

“강 사장~, 어서 말 좀 해봐~.”

그리고 뜸 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랑산성에 도착하자마자, 난리였으니까.

“흠. 다 모였나요?”

“풉. 겨우 4명인데, 그 말은 매번 왜 하는 거야?”

그냥, 말버릇이다.

변 이사의 말에 난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어제 웰시페니와 미팅 잘했고요. 계약서 체결하고 왔습니다.”

“뭐?”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변 이사와 오 대리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최경리도 중얼거렸다.

“좀 빠른감이 없잖아 있지만. 웰시페니에서 준비를 많이 해왔더라고요. 어젯밤 11시까지 미팅했거든요.”

“설마…… 술 마시고 사인한 건 아니지?”

흠!

변 이사의 말에 난 대꾸하지 않고, 하고 말을 이어갔다.

“광고료는 7,000만 원이고요. 300만 뷰 보장 조건이에요. 기한은 1개월이고, 그 외 세부 사항은…….”

― 우왓!

― 뭐어?! 7,000만 원!

― 강 사장님이 원반이야? 미쳤네, 진짜.

― 거기 혹시 유령회사 아니에요?

― 아니,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 요즘 뭐만 하면 금액 단위가 왜 이래? 하하!

다들 흥분해서 난리였다.

잠시 기다려야 했다.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흥분이 좀 가라앉은 후, 말을 이어갔다.

“나도 금액이 과해서 걱정했는데, 웰시페니에서 계획이 있더라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모델은 강태평 사장이 아니라, 네모의 신이니까. 네모의 신이라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있으니까.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지.”

이어서 계약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1개월 기한이라는 말에 오 대리가 물었다.

“광고주와 수정, 편집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빠듯할 텐데, 영상 아이디어 있으신 거죠?”

역시, 오 대리는 눈치가 있다.

“응. 있어.”

난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네모의 신을 대중에게 완벽하게 드러내 볼 생각이야.”

어떤 사업가?

* * *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내?”

변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네.”

“…….”

1년 전 네모튜브에서 종이접기 영상을 하면서부터 난 익명으로 활동했었다.

처음에 익명으로 활동했던 가장 큰 이유는 회사 생활 병행 때문이었다.

이제 사랑산성 클립 영상으로 익명을 벗어던지긴 했지만.

내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도록 촬영했었다.

“모습을 드러내서 유명해질수록 사업에 유리한 거잖아요.”

“…….”

“아마 얼마 전 호프집 여성분이 절 알아본 건 우연일 거예요. 아직까지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영상이 없었으니까요.”

“…….”

“하지만 두 여성분의 반응도 그렇고요. 어제 웰시페니에서 만난 리셉션 여 직원까지…….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굳이 제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죠. 네모의 신이라는 이미지를 제가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그건 행운이고 혜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게 바보가 아닐까 하는……. 특히나 지금처럼 사업하는 상황에서는요.”

오 대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확실히 흥행은 되겠네요. 네모의 신이 카메라 정면 보고, 구독자들에게 말까지 한다면.”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별다른 콘텐츠를 하지 않아도 파급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거야. 적어도 얼굴을 오픈한 첫 영상은.”

“아이디어 말씀하신 게 그 뜻이었군요.”

“맞아. 하지만 대충해서는 안 되지. 김지안 대리가 아이디어를 잘 확장시켜 봐.”

내 부름이 갑작스러웠는지, 김지안은 살짝 놀랬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얘기가 약간 길어졌다.

이제 영업 준비해야 한다.

“자, 그럼…….”

미팅을 종료하려는데, 잠자코 듣기만 하던 변 이사가 말했다.

“강 사장님, 근데…… 이거 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네?”

“취지는 좋아. 효과도 확실할 거 같고……. 하지만, 우리 종이접기 사업만 할 거 아니잖아.”

“…….”

“강 사장님 이미지가 그쪽으로 너무 굳어버리면…… 나중에 사업확장 할 때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예를 들어, 어떻게요? 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변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몰라. 모르겠어. 그냥 막연한 생각이야. 좀…… 쎄한 느낌이랄까?”

“…….”

“강 사장님 나 엄청 긍정적인 사람인 거 알지?”

“하하. 잘 알죠.”

변 이사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종훤처럼 유명세를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들도 있고.

물론 그 사업가들이 나처럼 사업 영역이 완전히 다른 것들을 동시에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거쳐 가야 할 단계라고 판단했다.

“변 이사님이 뭘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저 또한 결심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으니까요. 두 달 전 사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민했으니까요.”

“…….”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 같은 거 있잖아요.”

변 이사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런 거라고 봐주시면 될 거 같아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우리 강 사장님, 진짜 사업가 다 됐네.”

* * *

그날 점심 영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오 대리, 김지안과 함께 종이접기 사업 구상을 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야근 안 할 거지?”

“아무래도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왜 야근을 해?! 급한 일도 없는데. 그거 안 좋은 습관이야. 어서들 들어가.”

오 대리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일 열정이 있어서요. MS에 있을 때부터 야근 맨으로 유명했는데.”

“우리는 진일상사 영업 3팀 시절부터 칼퇴가 모토야. 최경리 봐봐. 퇴근 시간 10분 전부터 짐 싸고 기다리잖아.”

지금 시각 5시 1분.

최경리는 5시 정각에 사라지고 없었다.

최경리는 항상 당당했다. 출근 시간 15분 전에 오는데, 10분 전부터 퇴근 준비해도 회사에 개이득 아니냐며.

“이상하다. 2주 전만 해도 야근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었는데~. 회사 모토 때문만이 아닌 거 같은데~.”

오 대리는 약간 놀리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70만 원 야근 식대 때문에 이런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풉.”

김지안 또한 옆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어쨌든 둘 다 퇴근해! 어서! 일 많으면 내일 하면 되는 것이지.”

난 두 사람을 등 떠밀어 퇴근시킨 후.

네모튜브로 향했다.

오랜만에 네모튜브에 혼자 왔다.

오늘은 매주 2회 촬영하는 녹화 날이다.

“안녕하세요~.”

내가 들어오자, 녹화 준비를 하고 있던 세 사람은 반갑게 날 맞아주었다.

“어서 와~, 강 사장님~.”

“태평 씨~, 어서 와요~.”

“네모의 신님! 오셨습니까아!”

세 사람이 날 호칭하는 게 다 다르다.

난 웃으며 말했다.

“지금 세 명 들어왔나요? 하하. 그냥 호칭 통일시켜주면 안 돼요?”

네모삼촌이 웃으며 화답했다.

“강 사장님 혼자 오는 건 오랜만이네? 최근에 항상 직원 달고 오더니?”

“그러게요~. 오늘은 네모의 신 촬영 때문에 왔으니까요~.”

이 말에 네모 씨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녹화만 하러 왔을까요?”

네모 씨는 어제 웰시페니와 미팅한 것을 알고 있다. 분명 내가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다른 일 얘기도 조~금 있고요~.”

이 말에 정카가 웃으며 말했다.

“아~, 네모의 신님이 변했어. 요즘 만나기만 하면 일 얘기야~.”

“하하. 딸린 식구들이 생겨서 어쩔 수 없어요.”

네모 씨는 큐시트를 살피고는 말했다.

“그럼~, 어서 촬영 먼저 시작해 볼까요?”

“네모삼촌! 오늘은 뭐예요?”

내 물음에 네모삼촌은 웃으며 대답했다.

“‘잠자리 in love’야.”

잠자리 in love……. 네모삼촌이 꺼낸 종이 모형은 두 마리의 잠자리가 머리를 꼬리 쪽으로 향하여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형이었다.

“이게…….”

“교미하는 거지.”

“이런 거 해도 돼요? 애들도 볼 텐데?”

“뭐, 어때? 자연의 이치인걸. 그리고 잠자리는 교미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하트 모양이잖아.”

그러고 보니 둘이 붙어 있는 모습이 하트 형태였다.

실제로도 이런가?

잠시 후.

녹화는 무사히 끝이 났다.

영상 반응은 봐야 알겠지만……. 뭐, 괜찮겠지.

“휴~. 태평 씨, 수고했어.”

“네모삼촌도요. 날개 부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네요.”

소파에 앉아 있는데, 네모 씨가 다가왔다.

“두 분 수고하셨어요. 네모삼촌, 요즘 외로우신가 본데……. 다음부터는 짝짓기나 교미 포즈는 지양해 주세요. 괜한 논란거리 만들 필요 없습니다.”

“흠. 알았어.”

난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요즘 유우나 상 바빠요? 외로우세요?”

“유우나 상은 잘 지내. 다만, 그녀가 채워 주지 못하는 게 있을 뿐이야.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유우나 상은 피가 뜨거운 여자가 아니니까.”

왠지 소름이 끼쳐서, 질문한 걸 후회했다.

화제를 돌리려는데, 다행이 네모 씨가 먼저 날 불렀다.

“흠! 강 사장님.”

“네.”

“광고 얘기는 잘되었나요?”

* * *

“아~,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네……. 그러실 것 같아서.”

“잘 얘기했고, 계약까지 했어요.”

“네? 그렇게 빨리요?”

그는 놀라서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분들이 제안한 조건도 괜찮고 해서.”

네모 씨의 표정이 새초롬했다. 얘기를 들은 정카와 네모삼촌은 좀 불안해 보였다.

― 너무 급한 거 아니야?

― PPL이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닌데…….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모 씨의 물음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전 광고료 책정에 구독자 수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지는 몰랐습니다. 네모튜브 덕분인데, 제가 당연히 보고 드려야죠. 하하.”

그리고 난 웰시페니와의 미팅 내용을 들려주었다.

웰시페니라는 회사의 한국 사업 전략과 그들이 왜 네모의 신에게 접근했는지.

네모 씨는 내 말을 듣고 말했다.

“역시, 글로벌 회사라 그런지 영리하네요.”

“…….”

“그리고 인물 볼 줄도 알고요. 제가 사업가라도 네모의 신에게 광고 의뢰했을 거예요.”

네모 씨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조건은…… 아닙니다.”

네모 씨는 뭔가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훗. 난 그가 뭘 물어보려 했는지 안다. 그리고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얘기해주려 했다.

사랑산성은 네모튜브 안에 있고, 네모튜브 소유자인 네모 씨에게 상세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서로 신뢰하는 관계이긴 하지만, 뒤탈이 없으려면.

“광고료 7,000만 원에 하기로 했어요.”

.

.

.

.

“뭐어?!”

“0 하나 더 붙이신 거 아니에요? 설마…… 700이죠?”

네모삼촌과 정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네모 씨 또한 충격받은 눈치인데, 동공은 쉴새 없이 움직이나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더 붙인 거 아니에요. 보장 뷰 수 300만 조건으로 광고료 7,000만 원으로 계약했습니다.”

정카와 네모삼촌은 흥분하여 말했다.

“네모 씨, 우리 PPL 최고 금액은 1,000만 원 아니었나?”

“심지어 잘 들어오지도 않았어.”

네모 씨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그 이상의 금액도 들어온 적 있어요. 다만 네모의 신 신분을 노출시키는 조건이어서 제가 거절한 것뿐이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전혀 몰랐었다. 네모삼촌과 정카도 처음 듣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금액은 아니었죠. S급 연예인 수준 금액인데……. 솔직히 금액이 너무 높아서 의심스럽네요. 그 회사가 정상적인 회사인지.”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또한 저희 직원들과 그 부분을 염려했어요. 근데 그분들 마케팅 전략과 그동안의 행보를 봤을 때는 사기꾼 같아 보이진 않더라고요. 뭐……. 저한테 사기 칠 이유도 없고요. 제가 뭐, 돈 투자하는 것도 아니니까.”

“계약서는 잘 보신 거죠? 별도 비용이나, 촬영 기한, 수정 요청 등…….”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써줘서 고마웠다.

“네, 그럼요. 별도 비용은 광고료에 포함이고, 2차 사용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어요. 자막만 수정 요청 2회까지만. 재촬영은 불가.”

네모삼촌은 네모 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은데? 광고료 7,000만 원이면 별도 비용 포함할 만하잖아.”

“조회 수 300만이 관건이네. PPL 들어가는 영상으로는 쉽지 않을 텐데.”

정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네모 씨의 눈치를 살피다가, 내심 생각하고 있던 걸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모 씨.”

“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7,000만 원에서 일부 금액을 네모튜브에 나누려고 합니다.”

네모 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에? 왜요?”

“구독자 수가 광고료 책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하지만 PPL 광고 수익은 사랑산성이 가져가는 거로 클립 만들 때 협의했던 건데?”

“그렇죠. 근데, 양심상 도저히 내키지가 않네요.”

“대신 너튜브 광고비는 네모튜브가 다 가져가잖아요.”

수익을 창출하는 너튜버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너튜브 광고. 이 광고 수익은 너튜브 45% 크리에이티브 55%로 나눈다.

사랑산성 클립일지라도 이 너튜브 광고 수익은 네모튜브 몫으로 하기로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요. 네모의 신도 그렇고, 사랑산성 클립도 그렇고. 네모튜브 아니었으면 다 없었을 일이잖아요.”

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광고 수익 7,000만 원은 사랑산성이 다 가져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네모삼촌과 정카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고.

네모 씨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 말했다.

“와……. 이거 사람 할 말 없게 만드시네.”

그리고 네모 씨는 내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

“그렇게 사업하시면 안 돼요. 마음만 받은 거로 할게요.”

내 손을 토닥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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