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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으로 살아가기-102화 (102/156)

이미 특별한 사람 (1)

* * *

번역기의 효과는 엄청났다.

일단 리스닝은 가능하니까, 번역기를 사용하면 대화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하. 좋아요. 이유 설명드리죠. 그전에 우리 소개부터 하는 게 어때요?”

외국인은 웃으며 말했고,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외국인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웰시페니의 한국지사 SNS 광고 마스터입니다. 이름은 저스틴 윌슨.”

“네, 윌슨 마스터. 반갑습니다.”

“노노. 그냥 저스틴이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편합니다.”

난 외국 문화는 잘 모르기에, 김지안을 살짝 보았고.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소개를 간단히 했다.

“전 사랑산성이라는 회사의 사장이고요. 이름은 강태평입니다. 너튜브에서는 네모의 신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하하.”

“오 마이 갓~. 영광입니다. 제가 네모의 신님의 본명을 알게 되는군요? 하하.”

저스틴은 쾌활하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하얄 정도로 새파란 눈이 어째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귀신 눈깔 같아서 약간 무섭게 느껴졌지만.

친절하고 젠틀해 보여서…… 대화 나누면서 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 근데.”

저스틴은 웃으며 말했다.

“쓰고 계신 번역기 어플이 뭔가요? 서울에 와서 미팅을 하다 보니, 번역기 쓰시는 분들을 꽤 만났거든요.”

“…….”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번역기는 처음 봤습니다. 그냥 네모의 신님의 목소리가 기계음 같아요. AI와 대화하는 느낌? 하하.”

김지안도 궁금했는지 물었다.

“맞아요. 저도 신기해요. 무슨 어플이에요? 아니면 핸드폰이 좋은 건가?”

이건 어플이 훌륭해서가 아니며, 내 핸드폰은 출시된 지 3년 지난 은하수 폰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느꼈었다.

손대고 있으면 한 칸짜리 와이파이가 꼭대기까지 차오르고.

4램이 16램이 된 것처럼, 속도가 날아다닌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내 손이 핸드폰에 닿고 있으면, 배터리 소모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되는데.

난 배터리가 부족할 때면 충전기를 찾는 대신, 계속 손에 쥐고 다닌다.

내 손과 핸드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꼭 잡고 번역기 돌려본 것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내 손이 금손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답할 수도 없고.

“Anyway, 우리 식사라도 하면서 대화하는 거 어떤가요?”

저스틴은 두 팔을 펼치며 말했다.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점심을 대충 때웠더니, 배고프네요. 어떠세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밥 먹다가 체하지 않을까?

아직 울렁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는데.

김지안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상대방이 호의를 베푸는데…… 나눌 얘기도 있고, 거절하는 게 이상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가시죠.”

* * *

나와 김지안은 로비에서 저스틴 윌슨을 기다렸다.

“사장님, 아까 번역기 정말 뭐에요?”

“뭘 자꾸 궁금해해~. 그냥 그런 거라니깐.”

“혹시…….”

김지안은 묘한 눈빛으로 날 보며 물었다.

“같은 코스 요리를 매번 다른 맛으로 만들고, 아홉 난쟁이랑 신의 학 만드는…… 그런 것과 같은 원리인 거죠?”

“…….”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김지안은 갑자기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진짜, 사장님 손 쩔어요.”

부드러운 감촉에 난 약간 당황하여 재빨리 뿌리쳤다.

“어허.”

김지안은 뻘줌한 듯 팔짱을 끼고는 중얼거렸다.

“Iron wall man.”

“왓?”

왜 한국 사람끼리 있는데, 영어를 쓰고 난리야.

“사장님 별명인데, 모르죠? 설수민 사장님이랑 내가 지은 별명인데.”

“그게 뭔데?”

“단어 뜻 그대로예요.”

Iron wall man?

그 뜻을 유추해보려 하는데.

김지안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누군 좋겠네. 굳이 언어 안 배워도 전 세계 말 다 할 수 있고.”

Iron wall man.

철 벽 남?

“뭐야? 내가 철벽남이라고?”

“어머, 오셨네요.”

철벽남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돼서, 따져 물으려는데.

저스틴이 게이트를 나오고 있었다.

“Hey~, sorry. 많이 기다렸죠? 갑자기 화상 회의가 들어와서요.”

“아닙니다. 얼마 안 기다렸어요.”

“가시죠. 소고기 등심구이 어떠세요?”

오……. 외국인이 이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스테이크 썰자고 할 줄 알았는데.

“완전 좋죠.”

소고기 구이집.

지글. 지글.

“아이, 사장님 제가 굽는다니까요.”

김지안은 내가 들고 있던 집게를 뺏으려 했다.

“둬. 둬. 어디 쪼그만 게. 고기는 남자가 굽는 거야.”

“자꾸 애 취급하지 말아 주실래요?”

“고기 굽다가 손에 불 데서, 상처 생기면 어쩌려고?”

“치……. 하여간 헷갈리게.”

저스틴은 이런 우리를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난 적당히 익은 소고기를 저스틴 앞에 놓으며 물었다.

“살짝 덜 익혔는데, 괜찮으세요?”

여전히 왼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로 말했다. 실내가 시끄러워서 볼륨은 최대치로 했다.

저스틴은 내가 건넨 고기를 먹은 후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Great! 고기 잘 구우시네요.”

“쌩유.”

“소주 한잔하시죠?”

“네? 아, 네. 그러시죠.”

우리는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스틴이 마시는 속도가 좀 빨랐는데, 내 옆에 주당이 있어서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김지안 대리가 대작 좀 해줘. 난 속도 조절 좀 할 테니까.”

“네, 걱정 마세요…….”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앉은 지 30분쯤 지났을 무렵.

서서히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물으셨죠. 왜 회신하기로 결심했는지.”

“네.”

망설였던 이유는 쉽게 납득이 되었는데, 결심하게 된 이유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 컨택 담당자 말로는 영상 조회 수가 오르고 있고, 마스터가 네모의 신을 좋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는데.

“그 영상의 파급력 때문입니다.”

“…….”

“제가 말씀드린 건 이번에 사랑산성에 올리신 영상 말고, 원본 영상 있죠. 수도원에서 찍으신 영상.”

단양 수도원에서 찍은 영상 말하는 거군.

“그 영상 뷰가 1,000만이 넘은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사랑산성 클립 영상에 올리신 건 그 영상에 대한 증언인 거죠. 맞죠?”

“…….”

“내가 그 단양 수도원 영상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증언의 영상.”

정확하다.

종이접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마음먹은 후.

사랑산성의 미래 홍보를 위해, 사전포석의 의미로 촬영한 것이다.

“사업을 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으니, 왜 그런 영상을 찍으셨는지 이제야 납득이 되었는데요.”

“…….”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 회사는 콘텐츠의 저력에 포커스를 맞춘 겁니다.”

저스틴의 안광이 번쩍였다.

“만약 단양 수도원 영상의 주인공, 네모의 신이 앞으로도 영상을 올린 계획이 있다면.”

“…….”

“충분히 PPL 투자를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난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좀 두고 보면서 망설였던 거에요. 활동을 하시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그래서 지금 묻고 싶어요.”

“…….”

“명확하게 답변 주시면 좋겠어요.”

“네.”

“앞으로도 영상물을 올리실 계획인 거죠?”

“물론입니다.”

저스틴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얘기 좀 해볼까요?”

* * *

“보통은 중간에 광고 에이전트를 끼는데, 저희 회사는 직접 합니다. 우리는 SNS 광고만 하고 있거든요.”

저스틴은 술잔을 기울이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유가 있습니까?”

“회사 내부사항이라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가성비가 가장 좋다고 판단한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아……. 네.”

“그래서 광고 에이전트를 끼지 않기 때문에 광고료를 타사 비해 좀 더 드리는 편이고요. 그 대신 상대방에게도 좀 더 협조를 구하기는 합니다.”

“협조라고 하면…….”

아무래도 네모 씨를 데려올 걸 그랬나. 전혀 내용을 모르니.

그때 김지안이 말했다.

“PPL은 광고주가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수정 요청 또한 사전 협의로 정해지죠.”

“오~, 잘 아시네요. PPL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처음이라고 해서 모를 이유 없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 천지인데요.”

김지안은 딱 부러지게 대답했고, 저스틴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PPL의 기본 형식은 따라야죠. 너튜브 정책 사항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상 업로드 전에 저희와 사전 체크를 하고요. 몇 가지 수정 사항은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

난 잘 모르기에 김지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물론입니다. 업로드 전에 사전 체크 당연히 하죠. 다만 수정 요청사항은 계약 시에 세부적으로 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수정할 수도 있고요. 영상의 본의를 해칠 수 있으니까요. PPL 때문에 구독자들 잃으면 저희가 타격을 받지만, 광고주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습니다.”

저스틴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오케이~, 알았어요. 그런 세부 사항은 나중에 정리하고요. 일단 굵직한 거부터 정합시다. 하하.”

저스틴이 뭔가 은근슬쩍 협의를 해보려다가, 김지안의 방어에 물러난 느낌이었다.

김지안에게서 아주 든든함이 느껴졌다.

저스틴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걷어내고, 진지하게 말했다.

“잘 알고 계신 거 같으니, 말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구독자 수에 따라서 광고료가 책정된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김지안이 대신 대답했다.

“네모튜브 구독자 수가 122만. 그 정도 구독자 수면 업계에서는 3,000만 원 정도 하거든요.”

영상 하나에, 3,000만 원?!

흡!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으려는데, 김지안의 내 손을 꼭 눌렀다.

“여기까지 이견 없으시죠.”

“네, 이견은 없습니다만…….”

김지안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나 많이 준다고?

“크리에이터의 영향력과 영상 조회 수 또한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죠. 네모의 신급을…… 그런 업계 통상 기준으로 보실 건 아니시겠죠.”

김지안의 말에 저스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못 당하겠네요. 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럼 계속 말씀하시죠. 생각하시는 수준을 들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광고 제의가 여러 곳에서 온 것이 아니다. 골라갈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렇게 고자세를 유지했다가 나가리 되면 어쩌려고…….

난 내심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김지안을 믿어보기로 했다.

저스틴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5,000만 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

.

.

.

“콜록! 콜록!”

순간 사레가 걸려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저스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필수조건이 있습니다.”

“…….”

“그걸 받아들이시면 방금 제안 드린 금액으로 진행합니다.”

이제 김지안은 더 나서지 않았고.

대신 날 바라보았다.

꿀꺽.

난 최대한 표정을 차분히 하고, 물었다.

“네, 필수조건이 뭐죠?”

“100만 뷰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

100만 뷰?!

흠……. 이거였어?

네모의 신이 나온 영상 중에 100만 뷰 안 넘는 게 있었던가?

별로 안 높아 보이는데…….

이럴 때는 묻고 더블로 가는 거지.

“만약 200만 뷰 보장하면, 광고료 더 올려주실래요?”

“왓?”

저스틴은 눈을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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