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으로서의 첫걸음 (1)
* * *
“강 사장님, 어디 갈 거야?”
변 이사가 날 쫓아오며 물었다.
자유시간을 부여하자마자, 최경리와 오 대리가 가장 빨리 사라졌고.
변 이사와 김지안만 머뭇거리고 있었다.
“글쎄요……. 이제 생각해 봐야죠.”
“그럼 호텔가서 쉴 건가?”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부산까지 와서 그러고 싶진 않네요.”
“그럼 돌아다닐 거라는 거지?”
난 대답 대신 변 이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따라오시려고요?”
“하하. 티 많이 났나?”
변 이사는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같이 다니자~. 내 나이 되어봐~. 혼자 있는 거 싫어~.”
“사장님…… 저도요.”
김지안이 내 소매 끝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지안 씨는 왜?”
“혼자 다니기 무서워요.”
“…….”
간만에 혼자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럼 변 이사님이랑 김지안 씨 둘이 다니면 되겠네.”
변 이사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지안이랑?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왜요?”
“이상해 보여. 그리고 어색해. 난 김지안 씨랑 얘기도 별로 안 해봤고. 김지안 씨도 그렇지 않아?”
“네……. 전 아직 변 이사님이 좀 어려워요. 사장 느낌이 강해서요.”
휴……. 어쩔 수 없구나.
“알겠어. 가자. 변 이사님, 가시죠.”
“땡큐~.”
난 두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했고, 두 사람은 그게 더 좋다며 따라왔다.
두 사람 다 결정장애가 있다며.
난 해운대 백사장에서 출발하여 동백섬을 지나 해변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파란 바다 풍경 보기가 참 좋았다.
이렇게 오래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생각 정리도 되는 것 같고.
묵묵히 따라 걷는 두 사람.
40분 정도 지났을 때쯤, 변 이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 헉. 강 사장~, 도대체 언제까지 걸을 거야?”
“…….”
“목적지는 있는 거야?”
“네, 있어요. 30분 정도만 더 걸으면 돼요.”
“뭐어? 30분을 더?!”
난 틈틈이 지도 어플을 보면서 갔다. 광안리가 목적지다.
“아오~, 힘들어. 무슨 1시간을 넘게 걸어…….”
“힘드시면 안 따라오시면 돼요. 저~기 버스 정류장 있네요. 저거 타고 돌아가시면…….”
“이 씨……. 입 다물고 따라오라는 거지?”
변 이사는 정말 혼자 있는 게 싫었는지, 꾹 참고 광안대교까지 함께 걸었다.
김지안도 힘든 기색이었지만, 군말 없이 따라왔다.
광안리해변과 바다 멀리 광안대교가 보였다.
“다 왔네요. 전 아아 한잔할 생각인데.”
“뭐든 좋아. 제발 어디든 들어가자.”
변 이사는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 * *
“…….”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변 이사를 보며 말했다.
“평소에 운동 좀 하시지……. 아니면 그냥 숙소에서 쉬시던가.”
“어이구……. 누가 이렇게까지 걸을 줄 알았나.”
변 이사는 엎드린 체, 앓는 소리를 했다.
“지안이는 어때? 지금은 자유시간이니까 호칭 편하게 할게?”
“저도 그게 좋아요, 오빠.”
그때 변 이사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뭐? 오빠?!”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이렇게 부를 줄은.
난 재빨리 말을 바꿨다.
“김지안 대리, 역시 직급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네.”
“힝……. 난 편한 게 좋은데.”
“어허.”
“알겠어요……. 사장님.”
변 이사의 눈빛이 묘하게 빛난다.
“두 사람…… 뭐야?”
“…….”
“설마…… 아니지?”
그는 가만히 나를 흘겨보다가,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웃는데.
젠장!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무슨 생각이세요! 큰일 나시려고!”
“어이쿠. 왜 이렇게 흥분이야?”
“저랑 10살 차이나는 어린애한테…… 무슨……. 생각조차 하지 마세요!”
변 이사는 혀를 삐죽 내밀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강 사장님 좀 이상하네? 어라? 김지안 씨는 얼굴 왜 빨개진 거야?”
정말이다. 김지안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홍지아 생각이 났다.
그 친구와도 간혹 이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떻게 했었더라…….
“김지안 씨.”
“네?”
“나 연상 좋아해. 연하 관심 없어.”
“…….”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 마. 알겠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홍지아는 기겁을 하면서 난리 쳤었고, 결국 웃으면서 마무리되었다.
근데, 좀…… 이상한데?
변 이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경악을 하고 있었고.
김지안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었다.
어? 어? 이게 아닌데?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혼자 다닐게요.”
그리곤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응? 갑자기?!
“쟤…… 왜 저래요?”
“너야말로 왜 그러냐?”
“…….”
“손재주만 좋지 완전 바보 아니야. 으이그.”
“이상하네……. 홍지아는 안 그랬었는데.”
찰싹.
급기야 변 이사는 내 어깨를 살짝 때리며 호통쳤다.
“쟤가 홍지아냐? 사람 봐가면서 대응을 해야지……. 인간관계가 무슨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줄 알아?”
“…….”
“이 인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였네. 이렇게 감정 캐치를 못 해서야……. 이거 뭐,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 이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 사장님은 사람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아.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관계는 매뉴얼이 아니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말이 통하는 게 아니라고.”
“…….”
“앞으로 직원들 잘 관리하려면 눈치 귀신이 되어야 해.”
똥손 덕분에 난 욕 먹을 타이밍에 대해서는 눈치 귀신이다. 그 외에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변 이사.
듣기에 좀 불편하긴 했지만, 내게 필요한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안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카페 2층에 앉아 있었고, 밖에 걸어가고 있는 김지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변 이사는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음……. 그냥 놔두면 될 것 같은데요? 진짜로 혼자 있고 싶었을지도 모르잖아요.”
“…….”
이게 아닌가?
“아니면 뭐…… 카똑페이 5만 원만 더 넣어줄까요?”
“…….”
다음 날. 부산역 오전 11시.
김지안은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
최경리는 얼굴에서 광이 났고.
오 대리는 얼굴이 푸석한 게 퉁퉁 부어 있었다.
대충 봐도 짐작이 된다.
김지안은 아직 삐쳐 있는 것 같고.
최경리는…….
“어제 잠 많이 잤어?”
내 물음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헤어지고 바로 숙소로 가서 드러누웠는데.”
“얼굴이 말해주네. 광빨 장난 아니야.”
“호호. 역시 잠이 보약이야.”
“근데 부산까지 와서 아쉽지 않아?”
최경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안 아쉬워요. 잠 많이 잤으니까.”
그다음 오 대리를 보았다.
그가 어제 뭐 했을지, 얼굴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술 많이 마셨어?”
“엇, 어떻게 아셨어요?”
“술 냄새 좀 어떻게 해봐. 옆에만 있어도 취할 것 같아.”
“하핫.”
오 대리 몸 전체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어쨌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쉰 것 같다.
나도 잘 쉬었고. 한 사람한테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김지안 대리.”
무궁화를 타고 가던 중에, 난 옆에 앉은 김지안의 어깨를 콕콕 찌르면서 불렀다.
“네, 강태평 사장님.”
“어제 농담한 거야. 기분 나빠 하지 말라고.”
“…….”
그래도 김지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나 연하 좋아해. 특히나 김지안 씨처럼 귀염상 좋아한다고. 내 스타일이야.”
“어머…….”
김지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고.
주변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날 바라봤다.
“뜬금없이 웬 고백?”
최경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고.
“와~, 사장님~ 남자다잉~.”
오 대리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변 이사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변 이사 표정을 보니, 뭔지 알겠다.
이게 아니었구나.
아……. 졸라 어렵네.
그냥 말을 말아야지.
안 되는 건 굳이 하지 말자.
* * *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안녕하세요~.”
오전 9시. 난 사랑산성에 출근했다.
“와~, 강 사장님 아침에 뵈니까 이상하네요.”
“하하. 나도 어색해.”
아침에 촬영하고, 난 사랑산성에는 항상 11시에 왔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오픈 첫날.
역시 아침부터 분주하긴 했지만, 정신 못 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운 사명과 인테리어는 지난주에 세팅을 해놨었고.
아무리 분주해 봐야, 기존에 움직였던 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만 있을 뿐.
우리는 헤매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고 전문적이며 능숙하게 영언 준비를 마치고.
원래 하던 것처럼 손님을 맞이했다.
― 업체명 바뀌었다더니 똑같은데?
― 이름만 바뀐다더니, 진짠가 보네.
― 저기 안경 쓴 딱딱한 언니 봐. 저 언니 나온 거면 맞는 거야. 사람도 안 바뀌었어.
역시 손님들은 최경리를 잘 기억했다.
일주일을 쉬었던 만큼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며칠 전 단체 예약은 마감되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북적거리는 손님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휴우―.”
오후 1시가 지났을 무렵.
무사히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변 이사가 옆에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강 사장님, 이미 게임 끝난 거 같은데?”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식업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디너 오브 사랑산성도 단체 예약은 마감되었다고 하더라고.”
“…….”
“디너는 런치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잖아.”
변 이사는 내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성공적인 사업 개시. 축하하네, 강 사장님.”
난 활짝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변 이사님.”
“외식업은 직원들에게 맡겨 두고, 다음일 생각하시게. 부산에서 보니까 사업 욕심이 많더만.”
“하하.”
변 이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난 활짝 웃었다.
“오늘 저녁에 네모튜브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
우리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난 음식 조리를, 변 이사는 설거지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외식업에 대해서는 숙련되어 있었다.
“액션이 진짜 빠른데?”
“하하. 할 일이 많으니까요.”
“좋아. 좋아.”
[강 사장님~, 수비드 안심구이 빨리 나와야 해요~.]
멀리서 김지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난 굽고 있던 안심구이를 플레이팅 했고.
“지금 나갑니다!”
오 대리가 소리치며 들고 나갔다.
난 주방에 기대어 서서 변 이사에게 말했다.
“오늘 오 대리랑 갈 거거든요. 우리 좀 빨리 출발할 거니까, 뒷정리 좀 부탁할게요.”
변 이사는 거수경례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강 사장님~, 으하하.”
* * *
종각. 오후 5시.
네모튜브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일단 네모 씨에게는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좀 일찍 보자는 연락만 했었다.
원래 촬영 시간은 7시인데, 2시간 앞당겨서 보자고 한 것이다.
내가 촬영하는 날에 평소와 다른 말을 한 적은 과거에 딱 한 번 있었다.
3억 원이 급하게 필요하여 빌려달라고 했을 때, 그때 딱 한 번.
그래서일까.
조금 빨리 보자고 연락했을 때, 네모 씨는 침을 삼키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었다.
“오 대리, 공부 좀 했어?”
사무실 문을 열기 전, 난 오 대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좀 한다고 했는데…… 영 자료가 없던데요.”
“음……. 그렇지? 이게 정보가 딱히 잘 없더라고.”
“시중에 책도 잘 없어요. 일단 5권 정도만 읽고 왔습니다.”
“응……. 그래. 뭐어?!”
겨우 이틀 새에 다섯 권 읽었다고?
우리 부산에서 엊그제 왔는데.
“한 분야 들어가려면 책 10권 이상은 읽어야 하는데……. 그래서 좀 불안해요.”
“…….”
컬럼비아 대학 출신이고, MS사에 있었다고 했지.
역시…… 좀 다르긴 하구나.
“흠, 어쨌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네.”
이제, 사무실 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벌컥.
문이 활짝 열렸고.
펑~!
갑자기 폭죽이 터졌고, 네모튜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열린 문 안으로, 플래카드가 보였다.
‘강태평 사장님, 회사 설립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