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으로서의 첫걸음 (2)
* * *
“헛…….”
당황한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이라 반겨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폭죽이 터질 줄은…….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창업을 축하합니다~.”
심지어 노래까지 부른다.
네모 씨, 정카, 네모삼촌.
이 세 사람의 텐션이면, 이러고도 남기는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네모 씨는 내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개업한다고 미리 얘기를 해주시지. 그랬으면 저희가 더 제대로 축하 해줬을 텐데.”
“아……. 네 고맙습니다.”
네모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태평 씨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고. 그 능력에 묶여 있는 게 말이야. 이제부터 마음껏 하면 되는 거잖아?”
웃으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하하.”
“근데 딸린 식구들이 꽤 많은 거 같던데. 그건 좀 아쉽다. 태평 씨는 독고다이로 뛰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정카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에이~, 아니죠. 손만 쓴다고 일이 다 되나요? 신경 쓸 게 많을 텐데. 서포트해주는 직원들이 있어야 일에 더 집중이 잘되죠. 직원 수가 4명이죠?”
직원 수까지 알고 있어?
좀 이상한데…….
아무래도 궁금했다.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저…… 어떻게 아셨어요?”
“…….”
내 물음에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다가, 정카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런치 오브 제로백’ 단골이거든요.”
“그래요? 못 봤는데?”
“하하. 저도 태평 씨 못 봤어요. 셰프시잖아요. 얼굴 보기 어렵죠~.”
하지만 오 대리는 정카를 알아보는 듯했다.
“아~, 맞네. 자주 오시던 손님이시네.”
오 대리는 주방보조가 주 업무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서빙이나 정문 밖 손님 응대에도 종종 투입된다.
우리 전 직원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오직 나만이 주방에 특화되어 있을 뿐.
“하하. 저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럼요. 화려한 옷 입으시고, 항상 혼자 오시잖아요.”
“…….”
오 대리의 디테일한 기억에 정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혼자 오는 손님은 잘 없으니까요. 기억이 나네요.”
“…….”
“항상 짙은 색 선글라스 끼시고.”
오 대리는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줄 앞에 선 여성분에게 말 거셨다가, 퇴짜 받으신 적도…….”
“그만.”
정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막았다.
“다른 손님은 안 보고 저만 보신 거예요? 아니면 기억력이 좋으신 건가?”
오 대리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기억력이 좋습니다.”
정카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말을 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지난주에 갔다가 휴업 중인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소식을 접한 거예요.”
그건 이해가 된다.
휴업 중인 것과 새로운 이름으로 개업한다는 안내문이 있었으니.
“그래도 사장 바뀌는 것까지 알기는 어려우셨을 텐데.”
“하하.”
이 말에는 네모 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태평 씨~, 오타쿠를 얕보면 안 돼요~.”
“네?”
“정카가 단골이라고 했잖아요. 정카에게 단골이라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니거든요. 변화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었겠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뭔 일인지 알아내죠.”
아……. 하긴, 정카가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긴 하지.
정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 사명이 사랑산성으로 바뀐다고 했을 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딱 내 취향이라서.”
“…….”
“무엇보다도 오늘 오픈 날이라 갔었는데, 음식 맛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런치 오브 제로백’ 그대로였죠. 매번 다르지만, 소름 끼치게 맛있고 깊은 맛.”
가만히 듣고 있던 네모삼촌은 눈썹을 찡긋하고 말했다.
“정카 덕분에 레스토랑 상황은 항상 듣고 있었다고. 하하. 사랑산성 사장님, 축하하네.”
가볍게 물어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네.
* * *
“그래서 오늘 일찍 보자고 했는데도, 세분이 다 모여 계신 거예요?”
“그럼~, 우리 가족이 영전했다는데, 간단하게라도 축하파티 해야지~. 태평 씨는 녹화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곧바로 집에 가잖아~.”
네모삼촌의 말에 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난 네모튜브와 거리를 유지하려 했었고, 이들은 나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고맙습니다. 네모튜브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에이~, 그렇게 얘기하지 마.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지, 뒷말은 왜 붙여~.”
“하하.”
오 대리는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사장님, 네모튜브와 많이 가까우시네요? 그냥 알바 뛰시는 건 줄 알았더니……. 한 팀이었어요?”
“알바 뛰는 거야. 이분들 스타일이 원래 이래.”
“……. 아닌 거 같은데.”
네모 씨는 케이크와 다과가 준비된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아……. 뭘 이렇게까지.”
“별거 아니에요~. 축하할 일은 축하해야죠.”
개업하고 케이크 받는 건 네모튜브에서 처음이다.
우리끼리도 이런 건 안 했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고……. 감동이네요.”
“감동은요~. 이 정도 가지고. 하하. 승승장구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짠~.
사이다가 든 잔을 높이 들어 부딪혔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오 대리는 네모튜브 사람들과 다행히 잘 어울렸다.
“와~, 멋지네요. 어떻게 군대를 지원해서 갈 생각을 했어요?”
오 대리의 이력을 들으며, 특히 군대 얘기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이중국적자에 외국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라는 것보다도…… 안 가도 되는 군대에 갔다 왔다는 것이 가장 임팩트가 컸나 보다.
“첫인상도 멋지셨는데, 얘기 듣다 보니 더 멋져 보이시네.”
네모삼촌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고, 오 대리는 웃으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여기 좋네요. 분위기가 정말 가족 같아요.”
“하하. 오 대리님도 우리 채널 보시나요?”
오 대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기 전에 좀 봤습니다만…… 예전엔 몰랐어요.”
“아~, 그럴 수 있죠. 종이접기라는 게 워낙 마니악해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요?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하던데…….”
이 말에 네모삼촌은 살며시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30분쯤 지났을까.
네모 씨가 먼저 운을 띄었다.
“근데 오늘 무슨 일로 미팅하자고 하신 거예요?”
이 말과 동시에 왁자지껄했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잠잠해졌다.
아무리 가족 같고, 분위기가 좋아도.
어쨌든, 일로 만난 사이.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산성 개업한 걸 먼저 말씀드리려 했는데……. 정카씨 덕분에 이 설명은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
“저희가 신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신사업이요?”
“네, 기존에는 외식업과 촬영 일만 했었잖아요.”
“그렇죠.”
네모튜브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간단하게 얘기해도 잘 알아들었다.
“사진 촬영일은 이제 관두고요.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해요.”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촬영일 관둔 건 좋은 선택이네. 태평 씨 능력에…… 그게 낫지.”
하지만 네모 씨는 눈빛을 차갑게 빛내며 내 말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계속 말씀해 보시죠.”
“…….”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예전에 네모삼촌이 저한테 제안한 거 있죠?”
“응? 무슨 제안?”
“공예로서의 종이접기. 즉, 오리가미요.”
“아~, 그렇지. 그때 아마, 태평 씨가 사무장에게 종이학 납품한 이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두겠다고 했었지?”
“관둔 건 아니고, 나중에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했었죠.”
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당시에 난 2,500마리 학 덕분에, 종이접기 자체를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네모튜브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짭짤한 수익도 아쉬워서 녹화방송은 관두지 못했다.
네모삼촌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근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
“설마…….”
난 고개를 끄덕이고, 힘주어 말했다.
“네, 종이접기…… 제대로 한번 해보려 합니다.”
“우왓!”
네모삼촌과 정카는 탄성을 질렀고.
네모 씨는 표정이 좀 복잡해 보였다.
* * *
“그, 그러니까. 제대로라는 게.”
“네, 회사 대 회사로서요. 사업으로.”
“오~.”
네모삼촌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잘 생각했네! 잘 생각했어. 한국 종이접기 역사에 한 획을 긋겠구만.”
네모 씨가 너무 조용해서 좀 불안하다.
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출연도 좀 적극적으로 하고요. 무엇보다도 공예로서의 종이접기에 대해서 접근해 볼 생각입니다.”
“아오~, 좋지! 그거 잘만 되면 큰돈 벌 수 있다고. 태평 씨, 아니지. 하하. 강 사장님.”
“네, 그래서 실례가 안 된다면 그때 저와 하다가 멈췄던 훈련…… 다시 지속해주셨으면 하는데.”
“응? 아~, 말해 뭐 해! 당장 하자! 언제부터 할까? 내일부터 해?”
역시 예술적 감성이 높은 네모삼촌은 앞뒤 재지 않았다.
그저 재능있는 아티스트가 본인이 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다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정카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볼 뿐이었지만.
네모 씨만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네모 씨! 잘됐지?! 응?”
“글쎄요…….”
네모삼촌이 상기된 어투로 물었지만, 네모 씨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왜 그래?”
이상한 기색에 네모삼촌이 물었지만, 네모 씨는 대답 대신 내게 되물었다.
“회사 대 회사라고 하셨죠?”
“네.”
“전…… 못 믿겠는데.”
“네?!”
갑자기 무슨 소리지.
네모 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고 하시니까, 거부감이 먼저 드는데요?”
“…….”
사무실 안은 갑자기 얼어 붙어버렸다.
난 일단 대꾸하지 않고, 네모 씨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는데, 다들 나와 비슷했다.
다만, 정카만 뭔지 알겠다는 듯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네모의 신의 신분도 밝히고, 대중들과 만날 건가요?”
“거기까진 아직 생각 못 했는데, 굳이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허어……. 이거 참. 당혹스럽네.”
뭔가 오해를 하거나, 과한 걱정을 하는 거 같은데.
나 또한 대놓고 물어봤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얘기를 해보시죠.”
“흠…….”
네모 씨는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업으로 접근하실 거라면…… 결론은 뻔한 거잖아요. 우리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건데.”
“경쟁자요?”
“뭐……. 예를 들어, 채널을 새로 만든다던가요.”
“…….”
아……. 뭔지 알겠다.
뭘 걱정하는지.
근데……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거기까진 고려 안 했었는데, 네모 씨가 아이디어를 주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하.”
난 웃으며 말했고, 네모삼촌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네모의 신님이 종이접기 채널 만든다고 하면…… 난리 나겠지.”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견제하는 부분을 들은 순간.
더 이상 이곳은 화합의 공간이 아니었다.
싸늘한 공기만 맴돌았다.
‘이 심리를 잘 이용한다면.’
네모튜브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흠……. 저희가 채널 개설할까 봐 염려된다고요…….”
“…….”
“글쎄요……. 그건 네모튜브에 달린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