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81화 (81/156)

청사포의 밤 (2)

* * *

타코와사비, 꽁치구이, 오뎅탕…….

선술집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을 다양하게 시켰다.

1차에서 많이 먹고 와서인지, 안주는 금방 비워지지 않았다.

일부러 손님이 없을 만한 곳으로 잡았는데.

정말 손님이 우리 말고는 단 한팀도 없었다.

1차는 방갈로였고, 2차는 텅 빈 선술집.

정말 회의하기 딱 좋았다.

“노리고 장소 잡은 건가? 강 사장님 용의주도한데?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어?”

변 이사 또한 신기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원래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긴 합니다.”

이것 또한 똥손 때문에 생긴 성격 중의 하나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삶 자체를 용의주도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사고 터지니까.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네~.”

2차에서는 편하게 마시랬더니, 정말 달리고 있었다.

김지안은 술 센 거 아니까 괜찮은데.

최경리와 앤더슨은 많이 취하면 안 좋다.

아무래도 남은 워크숍을 빨리 진행해야겠다.

띵띵~.

난 젓가락으로 술잔을 때렸다.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용.”

술자리에서 자꾸 일 얘기하는 게 멋쩍어서, 난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재밌는~ 과업 정하기 좀 합시다~.”

술 마시고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냥 일상 얘기 생각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부담 갖지 말고.”

“사장 마인드랑 직원 마인드가 같나.”

최경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아닌가?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매우 싫어한다는 게 확 느껴졌다.

그냥 나중에 할까?

약간 망설였는데, 그때 변 이사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그냥 해~. 밀고 나가.’

그는 눈짓을 보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래. 내일부터 완전히 쉬게 해주려고 이러는 거니까.

“제가 사장이긴 하지만, 실무의 중심은 제가 될 거예요.”

“…….”

“그러니까 여러분 각자가 강태평이라는 직원을 둔,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강태평이라는 직원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손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면 난이도는 상관없습니다. 그저 혼자 할 수 있고, 가치 집약적인 일이면 됩니다. 그리고 잘 관리도 해줘야겠죠.”

난 네 사람의 눈을 하나씩 마주치며 똑똑히 말해주었다.

“그래서 과업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겠습니다.”

# 집중과업/전문과업

* * *

“현재 사랑산성이 집중해야 할 사업이 뭐라고 했었지? 김지안 대리?”

김지안에게 직급을 붙이는 게 어색하지만,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외식업입니다.”

“그거 말고 하나 더 있는데.”

김지안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답했다.

“종이…… 접기요?”

본인이 말하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피식 웃었다.

“맞아. 앞으로 우리 사랑산성은 그 두 가지 사업에 집중할 거야.”

“…….”

“혹시 다른 의견 가진 사람 있어요?”

내 물음에 다들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최경리가 문득 말했다.

“촬영 일은…… 진짜 접으시는 거예요? 이렇게 바로?”

“응. 접을 거야. 제이엠인터내셔날 계약 기간도 끝났어.”

2주 전에 1년 계약 기간이 끝났다.

제이엠도 재계약을 어렵다는 걸 짐작해서인지, 계약 종료 직전 2주간은 정말…… 촬영으로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다.

“좀 급하지 않나…….”

최경리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맞아. 급하긴 해.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끌려다닐 것 같아서.”

“…….”

“아쉽지만, 촬영은 이제 관두는 게 맞는 거 같아.”

“……네.”

최경리의 대답을 끝으로 더 다른 말은 없었다.

“좋아. 그럼 다른 의견은 없는 거로 알고, 외식업과 종이접기를 ‘집중과업’으로 하겠어.”

“…….”

“집중과업이란 누가 대표랄 것 없이 말 그대로 전 직원이 다 함께 집중하는 과업이야. 일의 최우선순위이며, 집중과업의 세부 업무지시는 내가 하게 될 거야.”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어려운 설명이 아니었으므로,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외식업은 궤도에 곧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 어차피 지금까지 해오던 거니까. 그럼 아무래도 ‘종이접기’가 메인 집중과업이 되겠지.”

“…….”

“종이접기 실력은 입증되어 있으니까, 어떠한 종이접기 공예품을 만들 것인지, 유통은 어떻게 해야 현금화가 될 것인지의 등에 대해 다 함께 고민해 주면 돼.”

“알겠습니다.”

“특히…… 앤더슨 대리?”

“네……. 네?!”

지목당한 게 갑작스러웠는지, 앤더슨은 화들짝 놀랬다.

“종이접기는 앤 대리가 전문과업으로 해주었으면 좋겠어.”

난 그에게 말을 편하게 했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여서, 그동안 존대로 대했었는데.

1차 술자리에서 앤더슨에게 앞으로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했었다.

그는 쿨하게 승낙해 주었다.

난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 내가 집중과업과 전문과업이라는 말을 꺼냈었지.”

“…….”

“전문과업은 본인이 전문으로 하는 과업이야. 그러니까, 담당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그러니까, 개개인은 두 가지 과업을 갖게 되는 거지. 집중과업과 전문과업. 그리고 집중과업은 공통적인 성격인 것이며, 전문과업은 개인적인 성격이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근데.”

앤더슨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제가 왜 종이접기입니까?”

* * *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서.”

“네?”

“아직 회사가 탄탄하다고 볼 수는 없어서, 첫 사업이 중요하거든. 반드시 성공해야만 해.”

“…….”

“앤 대리가 경험도 많고, 우리 직원 중에 전투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종이접기를 맡기는 거야.”

“아……. 그래요.”

그래도 약간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종이접기’라는 주제가 좀 걸리겠지.

“근데, 저 전혀 모르는데…… 종이를 접어본 적이 없는데.”

“그건 여기 있는 사람 다 마찬가지일 거야. 나만 접어 봤을걸.”

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근데 사장님?”

“응?”

“근데 왜 아까부터 절 앤 대리라고 부르는 거죠? 제 성은 오씨인데. 앤더슨 오.”

“아~.”

항상 앤더슨이라고 불렀더니.

앤 대리가 편하긴 하지만, 그건 이 친구에게 실례겠지.

“알았어. 앞으로 오 대리라고 부를게.”

“네.”

오 대리…… 앤더슨…….

느낌이 확 달라지네.

“그다음 개인별로 전문과업 알려줄게.”

이 과업 정리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한 것이지만, 공표하기 전에 변 이사와 상의를 했었다.

아무래도 회사 운영 경험이 없으니, 그의 조언을 구해보고 싶었다.

‘이런 건 사장이 판단해서 정해주는 게 좋아. 민주적으로 갈 성향의 것이 아니야.’

처음에 난 전문과업에 대해 지원으로 받으려고 했었는데, 변 이사의 조언을 듣고 지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최경리 과장?”

“네.”

“최 과장이 외식업을 맡아줘.”

“좋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최경리는 새로운 시도하는 걸 아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극보수주의다.

최경리에게는 하던 일 잘하라고 하면서, 전문성을 극대화시키는 게 최선이다.

“그다음 김지안 대리?”

“네.”

“자기가 귀금속 세공 사업을 맡고.”

“제…… 제가요?!”

김지안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고,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귀금속 세공 사업은 완전 처음부터 해나가야 한다. 내 실력에 대한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사업이다.

능숙한 업무 능력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일이며, 앞으로 사랑산성의 메인이 될 가능성이 큰 신성장 사업이다.

이렇듯 어렵기도 하고 중요성이 큰 사업이기에, 다들 변 이사가 이 일을 맡게 될 거라고 생각한 듯싶다.

“응. 겁먹지 마. 할 수 있어.”

내 마음속 미래의 에이스는 김지안이다.

그녀는 잘해 낼 것 같았다.

당황하던 표정은 잠시였다.

김지안은 표정을 단정히 하고는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변 이사를 바라봤다.

“이사님?”

“네.”

그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아닙니다. 공식적인 업무 지시받을 때는 각 잡아야죠. 하하.”

난 웃으며 말했다.

“이사님께서는 부동산 사업을 맡아주십시오. 그 외에 전반적으로 제 옆에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하. 부동산 담당 겸 비서실장인가요? 알겠습니다. 근데, 부동산이라면…… 당장 바쁜 일은 아니겠네요?”

“하하. 글쎄요.”

쌓은 자본으로 부동산을 투자한다는 개념이지만.

지금 당장 급한 일이 있다.

“사무실 마련하는 걸 준비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변 이사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애 수녀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과 함께 협의해서 하셔야 할 겁니다. 나중에 연락처 등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녀님이요? 아, 네, 일단 알겠습니다.”

변 이사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 묻지 않고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이템 발굴은 전 직원의 과업입니다.”

“…….”

“언제든, 아무거나 좋으니까, 좋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보는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말로 해주시든, 메시지든, 메일이든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정리하겠습니다.”

# 과업정리

1) 집중과업

외식업과 종이접기 사업

2) 전문과업

변성준 이사: 부동산 투자 사업

최경리 과장: 외식업

앤더슨 오 대리: 종이접기 사업

김지안 대리: 귀금속 세공 사업

난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이제 열심히 한번 달려보시죠! 하하.”

― 이 와중에 술을 먹자고?

― 술맛 다 떨어졌는데.

― 우리 사장님은 사회성 먼저 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위하여!”

난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직원들 목소리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위하여…….”

* * *

다음 날 오전.

느지막한 시간에 모텔에서 나왔다.

직원들과 오늘 점심에 만나기로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김지안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 그래?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오랜만에 푹 잤네요. 호호.”

어제 자정이 넘어서 헤어졌지만, 집합 시간을 점심으로 했더니 다들 피곤해 보이진 않았다.

“다 왔죠? 식사하러 가시죠~.”

돼지 국밥집.

다들 허겁지겁 먹었다.

“우와~, 말만 들어봤지. 엄청 맛있네요.”

돼지국밥은 처음인 김지안과 최경리도 참 잘 먹었다.

변 이사는 날 향해 물었다.

“강 사장님, 오늘은 뭐야? 워크숍은 어제까지라고 했었는데.”

강태평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주말에 쉬게 해드린다고 했잖아요.”

“몇 시 기차로 올라가는데? 뭐, 계획 공유를 안 해주니…….”

“하하. 서프라이즈죠.”

강태평은 웃으며 말했다.

“서울엔 내일 올라갑니다.”

“뭐?”

“네?”

그는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일 서울 올라갈 때까지, 자유시간입니다.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세요.”

“오…….”

직원들은 놀라는 눈치였지만,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았다.

강태평은 핸드폰을 클릭하면서 말했다.

“지금 까똑페이로 10만 원씩 넣어드렸으니까, 경비는 그거 쓰시면 됩니다.”

“나이스!”

이제야 환호성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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