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45화 (45/156)

답을 찾아가다 (1)

* * *

‘이게…… 사업이 될까?’

아무도 대꾸가 없다.

다들 맛있게는 먹었지만, 확신이 안 드는 눈치였다.

과연 대중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음식 맛 자체는 훌륭하지만, 이게 평범하지가 않아서…… 대중적으로 먹힐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결국 변 사장이 입을 열었다.

“강점은 확인했으니까, 이제 부정적인 얘기를 해봐.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고.”

최경리가 살짝 손을 들었다.

“자장면을 먹을 때는 자장면 맛을 기대합니다.”

“…….”

“고객마다 기억하는 맛이 있죠. 자장면 기본의 맛에서 약간의 특별함이 있다면 아주 좋아하겠지만.”

최경리답지 않게 말을 길게 했다.

“자장면을 먹었고, 겉모습도 자장면이 분명한데. 아주 맛있는 짬뽕 맛이 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뱉겠지.”

변 사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저도 싫을 것 같아요.”

최경리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앙칼지게 말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뭐야? 왜 삿대질이야?”

내가 황당해서 말했지만, 최경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모든 일은 매뉴얼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레시피를 무시하고 음식을 만드니, 정체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누가 뭐래? 나 음식 못 한다고 했잖아?!”

다분히 감정적인데?

최경리는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황당하네.

변 사장이 다가와 이해하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들겼다.

“강 대리, 저 친구가 좀 그래. 정도에 어긋난 걸 싫어해. 어린 친구라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거니까…….”

“아니, 그러면서 아까 팔보채는 왜 그렇게 잘 처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더 짜증 난거지. 정도에 어긋난 것에 혹했다는 것에.”

최경리는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고……. 난 변 사장 얼굴을 보고 참았다.

“최경리 씨 말에 일리가 있어. 음식 맛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맛이 있지. 강 대리, 레시피 따라서는 못 한다고 했지?”

“네, 제 음식만의 특징을 잃을 겁니다.”

“흠……. 놀라운 맛을 내기는 어렵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고민하던 중 홍지아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거 너무 간단한 거 아니에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건데.”

“뭐?”

“대중이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을 하면 되는 거잖아요. 팔보채처럼요.”

“…….”

“아니면 창작 요리를 하던가요. 예를 들어, ‘자장면’이 아니라, ‘짬뽕 맞은 자장면’, 뭐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 거죠.”

대중적인 메뉴를 피하면 된다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대중의 기억 속에 잘 없는 음식을 하면 되는 것이다.

변 사장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지아 씨가 좀 컸네. 이제 주임 해도 되겠어.”

“감사합니다. 전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변 사장은 홍지아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맛있게 먹은 고객이 다시 찾아왔을 때, ‘짬뽕 맞은 자장면’ 아니라 ‘우동 맞은 자장면’이 될 수도 있잖아.”

‘맛에 일관성이 없다.’

내 요리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말하고 있었다.

“뭐…… 뭐…….”

홍지아는 눈알을 굴리며 아무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더듬거렸다.

“맛본 다음에 메뉴명을 바꾸면…….”

이게 말이야, 방구야.

* * *

“홍지아 씨, 수고했어.”

“…….”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정신 좋아.”

변 사장은 항상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저쪽 가서 쉬고 올래? 쉬고 싶으면 그래도 돼.”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난 변 사장에게 말했다.

“맛에 일관성이 없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쩌다 보니 맛을 내고는 있지만, 제가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고 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변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강 대리가 하는 일은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아, 네.”

그리고 또 침묵이 흘렀다.

심각해져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굳이 요리해야 할까?

그리고 꼭 나를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할까?

뭐……. 가장 좋은 무기를 활용하는 게 상식적이긴 하지만.

내 능력이 중심이 된다는 가정 때문에,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이 사람들도 각기 능력이 있는데, 내 들러리로만 활용되는 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요리. 요리…….”

“일관성…….”

하지만 이들은 이미 빠져 있다.

모르면 모르지만, 알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내가 만든 음식 맛을 이미 봐버렸다.

쉽게 포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팔보채……. 내가 먹어봐도 참 맛있긴 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 심플하게 가자.”

오랜 침묵을 깨고, 변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냥 까고 시작하는 거야.”

“…….”

“우리 음식 맛은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졸라맛있다.”

“…….”

팀원들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변 사장은 눈치를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이렇게 홍보하자는 건 아니고. 이 취지를 보기 좋게~, 듣기 좋게~ ,포장해야겠지.”

짝! 짝!

변 사장은 크게 박수를 몇 번 치고는 소리치듯 말했다.

“여기 정리하고, 바로 시장 조사 간다!”

“…….”

“음식점 주변에서 시민들 만나서 물어봐.”

최경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어떻게 물어보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얘기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 돼. 프리하게. 기대하는 것과 다른 맛. 찾아올 때마다 맛이 달라도 아주 맛있으면 먹겠는지. 안 먹겠다면 어떻게 하면 먹겠는지 등…….”

“…….”

“답변 범위가 좁히지 않게, 열린 상태로 여쭤봐. 고객에게서 생각지 못한 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변 사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답은 고객에게 있어.”

어쩌다 한번 해보는 느낌이 아니다.

나는 회사 다니면서 시장 조사라는 걸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고, 변 사장과 다녀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변 사장…… 설마 아침마다 시장 조사 갔던 게 농땡이가 아니었나?

홍지아와 최경리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하지만 난 일정이 있었다.

“사장님, 저 오후에 촬영 일정이 있습니다.”

“그래? 이거 미안하네. 강 대리는 쉬게 해주려 했는데.”

“…….”

“내가 얘기했지.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거라고. 주연배우는 스태프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

“자꾸 바쁘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회사 일이고,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어디 촬영이야?”

“제이엠인터내셔날이요.”

“아오~, 또야?!”

변 사장은 투덜거렸다.

“하여간 뽕을 빼네. 뽕을 빼.”

“하하.”

“조그만 참아. 얼마 안 남았어. 다신 거기랑 거래하지 말자고.”

“네, 어쨌든 성장의 시작이 제이엠과의 계약이었잖아요. 마지막까진 열심히 해줘야죠.”

“흠, 그래.”

홍지아와 최경리는 요리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변 사장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럼 가봐. 나도 일하게.”

“네,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일하러 가는 건데. 촬영 끝나면 바로 퇴근해. 내일 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 *

제이엠인터내셔날.

신발 디자인실.

“어머~, 강 대리님! 오셨어요?”

전미연 차장이 환하게 웃으며 날 맞았다.

“…….”

처음 만났을 때 건조하고 까칠한…… 마치 마른 장작 같은 사람이었다.

“자주 뵈니까 좋네요~. 오늘도 잘 부탁해요.”

“……네.”

자주 부르는 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사진 퀄리티에 만족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전미연은 내게만 상냥하다.

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찰칵! 찰칵!

촬영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촬영 콘셉트 같은 건 이제 묻지도 않는다.

이미 수차례 합을 맞춰온 사이기 때문에, 척하면 딱이다.

찰칵! 찰칵!

이제 많이 찍지도 않고, 상대방도 더 요청하지 않는다.

“강 대리님한테는 완전 믿고 맡기지. 이제 다른 사람과는 일같이 할 엄두도 안 나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저보다 훌륭하신 분 많은데요.”

전미연 차장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강 대리님의 사진 덕분에 우리 제품 매출 엄청 올라간 거 알아요?”

“에이~, 그게 사진 때문만이겠습니까. 제품을 잘 만드셔서 그런 거죠~.”

경력 4년 차 영업 사원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이지만, 이 정도 립서비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니에요. 정말 강 대리님 영향이 커요. 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자가 전속으로 촬영해준다고 업계에서도 유명해요.”

“하하……. 네.”

“그 덕분에 이정권 대리가 이번에 과장 승진하는데……. 모르시죠?”

“아, 그래요?”

우리는 계약 때문에 발목 잡혀 있는데, 이 계약을 성사시킨 사람은 승진을 하는구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제이엠인터내셔날은 촬영할 제품이 조금만 있어도 그냥 부른다.

처음 연간 계약을 맺을 때 그 이점을 들어서 한 거였으니까.

고작 10개도 안 되는 제품을 찍으러 오는 경우도 있다.

역시 계약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촬영은 끝이 났고.

“이제 다 된 거 같은데, 가봐도 되겠죠?”

“어……. 네.”

전미연 차장 대답하는 게 왠지 시원치가 않다.

“왜요? 뭐 할 말 있으세요?”

“김성수 부장님 오신다고 했는데.”

김성수 부장은 제임엔인터내셔날 상품기획실 팀장이다. 이정권 대리의 직속 상사이며, 이 회사의 실력자.

“김 부장님이요? 왜요?”

내 물음에 전미연 차장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그분이 오셔서 말해야 하는데.”

“…….”

“오늘따라 촬영이 일찍 끝나서는.”

뜸 들이면서 말하는 게, 왠지 느낌이 안 좋다.

김 부장을 만나게 되면,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이 술수를 벌이고 있다면, 일단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천지 차이.

난 재빨리 짐을 챙겼다.

“나중에 보자고 해주세요. 저 급한 일이 있어서.”

후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뵙겠습니다!”

난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음 날. 제로백 컴퍼니.

출근했는데…… 아무도 없다.

뭐야? 내 시계가 잘못됐나?

‘8시 45분.’

이 시간쯤이면 변 사장을 제외하곤 모두 와 있는데.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 스케줄을 확인하고, 어제 촬영한 사진들을 드라이브에 정리하고.

시간은 훅훅 지나갔다.

‘10시.’

아직까지 아무도 안 왔다.

이상한데? 무슨 일 있나?

난 결국 핸드폰을 들어 홍지아에게 전화해 보려는데.

덜컹!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고.

변 사장, 홍지아, 최경리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왜 셋이 한꺼번에.”

“하하하.”

변 사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제 시장 조사 하다가 늦어져서, 오늘 아침에 최종 정리 좀 하느라.”

그의 얼굴이 밝았고.

홍지아와 최경리도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좋은 일 있어요?!”

내 물음에 변 사장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강 대리.”

“네.”

“답을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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