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아가다 (2)
* * *
“답을 찾으셨다고요?”
세 사람의 표정이 모두 만족스럽다.
이건 특정인만이 아니라, 동시에 납득할 만한 답에 이른 것이다.
“그래. 역시 답은 고객에게 있었어.”
난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과정을 통해 답에 이르렀는지 궁금했다.
‘맛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
이 치명적인 단점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고객은 다 필요 없대.”
“…….”
“그냥 맛있으면 된대.”
“아…….”
“우리가 괜히 복잡하게 생각했던 거야.”
“혹시 그거 한 사람한테 물어본 건 아니죠?”
“이 사람이, 우릴 뭐로 보고.”
“흠!”
옆에 있던 홍지아가 말했다.
“강 대리님, 정말이에요. 여러 가지 답변이 있었지만, 궁극적인 답변은 이게 맞아요. 맛있으면 된다는 것.”
변 사장이 덧붙여 말했다.
“물론 우리가 우려한 것처럼 자장면에서 짬뽕 맛이 난다거나 하면 당황스러울 것 같긴 하대. 하지만 그것도 맛있으면 된다는 거야. 사천 자장면도 대중화된 것처럼,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으면 된다는 거야.”
“자장면에서 짬뽕 맛이 나서 찾아왔는데, 다시 자장 맛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해보셨어요?”
“물론이지.”
“뭐래요?”
“그럼 헷갈릴 것 같대.”
“…….”
“그래도 맛있으면 먹겠데.”
그건 마음이 넓은 소비자일 경우일 것 같은데.
내가 마뜩잖은 표정을 짓자, 변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여기서도 더 질문을 이어나갔지. 어떻게 하면 덜 헷갈릴 것 같냐고.”
“…….”
“맛이 랜덤이라는 걸 사전에 알려주면 어떻겠냐고 하던데? 어쨌든 맛있으면 된다고.”
최경리도 듣다가 한마디 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라면, 덜 헷갈릴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건 우리끼리 회의할 때도 나왔던 말이죠.”
변 사장이 말을 덧붙였다.
“근데, 그런 음식이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도 있었지. 말 그대로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아……. 어렵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어쨌건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고.
특징적인 정보는 사전에 공유된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는 건데.
“그래서요? 결론이 뭐예요?”
“…….”
“자꾸 자장면 예시로 드시던데, 설마 자장면 하실 건 아니죠?”
내 질문에 변 사장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결론은…….”
변 사장이 말하기 전에 홍지아와 최경리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고민하지 않겠다야.”
“네?”
“강 대리가 하면 맛있으니까! 고객이 답을 주셨잖아~.”
“…….”
겨우 이 결론을 얻으려고…….
* * *
“뭐야? 실망한 표정인데?”
“아니, 뭐…….”
“의구심에 확신을 얻었으면 그게 큰 성과야.”
난 더 대꾸하지 않았다.
일단은 좀 더 두고 보련다.
“그래서 메뉴는 정했어요?”
변 사장은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정하려고. 자장면이나 떡볶이 같은 건 어떨까? 박리다매 전략으로.”
“업종을 바꾸시려고요? 사진 촬영 못지않게 벌려면, 온종일 음식 판매만 집중해야 할 텐데.”
박리다매라는 건 일단 많이 팔아야 한다. 그만큼 노동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장님, 업종 바꾸면 전 이직합니다. 전 종합상사에 뜻이 있어서 입사한 거예요.”
홍지아가 또…….
아무리 편해도 사장님 앞에서 이직한다는 소리를.
“업종 꼭 바꿔야겠네. 사표 오늘 중으로 가져와.”
“죄송합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최경리가 말했다.
“저는 강 대리의 손재주를…… 다른 팀원분들처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의 팔보채 만드시는 것과 과거 얘기를 들어봤을 때. 박리다매 전략은 어울리지 않다고 봐요.”
“…….”
“박리다매라는 건 나쁘지 않은 맛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팔아서 이익을 가져온다는 거잖아요? 말 그대로 ‘맛’이 메인이 아닌 전략이라는 거죠.”
나 또한 최경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신사업 방향을 정리할 때도 나왔던 말이잖아요. 고가치 산업이어야 한다.”
변 사장은 묵묵히 들었다.
“저 또한 지금 촬영 업무가 궤도에 올랐는데, 박리다매와 같은 전략으로 올인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소소하게 벌 거면 안 하니만 못하다고 보고요.”
“음……. 알아. 나도 아는데. 내가 왜 박리다매를 얘기했냐면.”
변 사장은 뭔가 속뜻이 있는 듯했다.
“고급화 전략이 좋지. 내 생각에도 강 대리에게는 그게 딱 맞는다고 생각해. 하지만…… 고급 음식을 맛있게 만든다고만 해서 고급화는 아니잖아.”
“…….”
“맛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장소, 인테리어, 식기, 분위기 등등…….”
변 사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다. 결국 예산 문제구나.
“아무리 맛있는 샥스핀 코스라도 김밥집에서 팔면 10만 원 주고 먹겠어?”
“하하하.”
이 말에 홍지아가 큰 소리로 웃었다.
“상상만 해도 웃기네요.”
사람 좋은 변 사장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이런 씨……. 웃음이…….”
“죄송합니다.”
홍지아는 눈치가 빨랐다.
죄송하다는 말은 참 잘한다.
“흠!”
변 사장은 헛기침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음식점이라는 게 요리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초기 비용이 드는데, 고급 식당을 차릴 정도로 우리가 여유 있지 않아.”
그때, 최경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 말로 쐐기를 박았다.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정적이 흘렀다.
잠시 각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급 음식……. 고급 식당이라.
고급 식당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식당을 꼭 차려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침묵을 깨고 홍지아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러면 답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에요?”
변 사장은 홍지아를 바라보았다.
“요식업 진출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싸구려 음식을 하던지요.”
“싸구려가 뭐냐……. 저렴한 음식이라고 하지.”
“어쨌든요. 아무리 맛이 뛰어나도 떡볶이를 만 원 받고 팔 수는 없는 거잖아요.”
“흐음…….”
변 사장은 깊은 신음 소리를 내며 듣기만 했다.
“지난 며칠간 들인 시간과 비용이 좀 아깝긴 하지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다 관두고, 촬영에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봐. 한계가 너무 분명해.”
홍지아의 말에 변 사장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홍지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한계요? 지금 너무 잘되고 있고, 계속 의뢰가 빗발치는데.”
변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제로백 컴퍼니가 1인 회사야? 아니잖아. 촬영은 강 대리 혼자서 하는 일이야. 그것만 할 거면, 회사가 뭐하러 존재하나?”
“왜요? 제가 전화 받고 오더 접수받고…….”
“홍지아 씨, 그거는……. 하아~, 이해를 돕기 위해 하는 말이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절대 비하하는 뜻으로 하는 말 아니야.”
“…….”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알바도 할 수 있는 일이야.”
“아…….”
홍지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난 불편한 얼굴로 눈치를 보았다.
뭐라도 말을 해서…… 끊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변 사장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내 말이 틀려?”
“…….”
“혹시 친척 동생 있나? 홍지아 씨 자리에 앉혀 놓는다고 생각해 봐. 못 할까?”
변 사장 말이 좀 잔인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리는 본인이 지켜야 하는 거야. 물론 딱히 하는 거 없이 눈칫밥으로 수십 년 직장 생활 할 수도 있어. 나처럼 말이야.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우리는 표정을 굳히고 묵묵히 들었다.
“조직에 있을 거면 누구나 원하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
“촬영 말고 다른 사업을 찾아야 하는 건 생존을 위한 일이야. 자기뿐만 아니라 나와 최경리 씨에게도.”
“…….”
변 사장은 매출을 더 올리고자 하는 단편적인 생각으로만 신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직원들의 발전과 생존도 고려한 선택이었다.
내 능력에 기대어 가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며 올라타고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필요한 동료들이 되고자 한다는 것.
그의 말을 들으며, 난 좀 더 진지하게 이 일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고.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음식점을 꼭 새로 개업해야 할까요?”
“뭐?”
“공유 식당이라는 게 있던데…….”
“…….”
“네모튜브에서 한번 가본 적 있거든요.”
변 사장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공유 식당…….”
몇 번 중얼거리더니, 날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 * *
날 보는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고 있다.
촉이 왔다는 것이다.
“강 대리!”
“네.”
“느낌 온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
홍지아와 최경리도 고개를 들어 내 말에 집중했다.
“아, 네. 요즘엔 공유 식당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주말에 네모튜브 갔다가 점심 먹으러 가본 적이 있거든요.”
“어~, 좋아! 계속해.”
흠! 약간 부담스러운데.
“네모튜브가 사무실이 종각에 있는데. 거기는 회사 수에 비해, 음식점이 적은 편이거든요. 낮 시간에 놀고 있는 주점을 빌려서…….”
찰싹!
“됐어! 이거야!”
변 사장은 손뼉을 치며 소리쳤고.
홍지아와 최경리의 얼굴도 환해졌다.
“어머. 어머. 맞아요. 저도 이거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생각을 왜 못 했을까요.”
변 사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말했다.
“고급 주점을 빌려서, 고급 요리를 하면 되는 거잖아!”
“맞아요! 재료 준비는 오전에 저희가 다 끝내놓고, 강 대리님은 촬영하시다가 점심때 오셔서 요리만 하시면 되는 거예요.”
홍지아는 흥분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고.
최경리도 웃으며 말했다.
“요리 끝나고 강 대리님은 바로 촬영 가시고, 뒷정리는 우리가 하면 되고요.”
변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 팀이네. 이게 원 팀이지! 그리고 우리는 오후에 사무실로 복귀해서 촬영 관련 사무 업무를 보면 되는 것이지! 하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니 순식간이었다.
주점을 낮 시간에 빌려서, 점심 장사만 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 업무인 촬영과 충분히 협업이 가능했다.
“어이쿠~, 이거 미안하네. 강 대리는 머리 안 쓰게 하려 했는데. 결국 또 힘을 빌리네. 역시 진일상사의 브레인답네.”
“아닙니다. 머리 쓴 거 없어요. 전 그냥 경험담 하나 던졌을 뿐입니다.”
“캬……. 겸손하기까지.”
변 사장은 탄복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홍지아와 최경리도…… 날 약간 다른 인간인 것처럼 바라봤다.
“달라……. 격이 달라. 격차가 더 벌어졌어.”
홍지아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
난 민망함에 헛기침하고 말했다.
“제 입으로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음식 맛은 인증되었고요. 어떤 메뉴를 해도 상관없어요.”
진지하게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난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고급 음식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주점을 찾고, 그 주점과 임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세 사람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고급 주점이 많고, 회사가 많은 지역에서 알아보는 게 효과적이겠죠?”
“그렇지.”
변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면 여의도, 강남, 종로인데.”
시계를 보았다.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시작했고.
벌써 시침이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네요.”
난 외투를 들고 말했다.
“바로 현장으로 움직이시죠.”
쉬운 일은 없다
* * *
강남으로 왔다.
회사가 있는 가산동에서 여의도가 더 가깝긴 하지만, 전철로 가기엔 강남이 더 편하다.
“홍지아 씨~, 앞장서. 자기가 강남 잘 안다며?”
변 사장의 말에 홍지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전 술집밖에 모르는데.”
“우리 술집 찾으러 가는 거잖아.”
“아, 맞다. 그래도 우리 강남까지 왔는데, 먹고 시작하는 게 어때요?”
“…….”
“점심시간이잖아요.”
오자마자 먹을 생각부터 하다니.
강남에 놀러 온 게 아닌데.
변 사장은 부드럽게 할 말을 했다.
“그냥 입 다물고 술집 많은 거리로 안내해 줄래.”
“호호. 따라오세요.”
홍지아는 우리를 강남역 먹자골목으로 안내했다.
“10번 출구 쪽에 술집이 많거든요. 여기서 친구들이랑 자주 놀아요.”
홍지아의 말대로 술집이 참 많았다.
“요즘 상권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남역은 강남역이죠.”
확실히 밥집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점심시간인데도 사람도 적고 한적했다.
근데…… 거리를 보면 볼수록.
여기는 좀 아닌 거 같은데.
변 사장도 맘에 안 드는 눈치였다.
우리 취지와 맞지 않는다.
“지아 씨, 우리가 고급 주점을 찾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여긴 호프집이나 포차 위주의 술집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고급 음식을 먹진 않겠지.”
“그렇죠.”
홍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정신이 나간 건가. 아니면 장난치는 건가.
“따라오세요~. 다 뜻이 있답니다. 호호.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급 술집이 있어요.”
“아~, 그런 거였어?”
이제야 변 사장의 표정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제 단골집이거든요. 비싸서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홍지아를 따라갔고.
그녀는 자신감이 생기는 듯, 걸으면서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이곳이 코스 요리로 나오는 곳이거든요? 술도 위스키나 사케 위주로 팔고요~. 인테리어도 워낙 고급스럽고~, 메뉴 단가 자체가 높은 곳이에요~.”
“오~, 그래?”
“네~, 이 매장을 공유 주방으로 설정하면, 고급 요리로 영업하기에 딱이죠.”
홍지아의 설명만 들어봤을 때, 우리 목적에 부합되는 곳 같았다.
“얘기만 들어봐도 딱이네. 여기 메뉴 가격대가 어느 정도 돼?”
“코스가 여러 가지 있거든요. 10~20만 원 사이일 거예요. 가장 고급 코스가 30만 원 넘었던 거 같기도 하고.”
초고급 주점이네.
“근데 홍지아 씨가 이 비싼 곳을 언제 와봤어? 설마 자기 부자야?”
“설마 부자? 설마는 왜 붙여요? 제가 없어 보여요?”
홍지아는 변 사장의 말에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아~, 아니. 없어 보인다기보다는~ 그냥~ 부자가 진일상사에 취업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하하.”
“치.”
변 사장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홍지아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간혹 친구들이랑 돈 모아서 와요. 상류사회 문화를 알아야. 부자가 되죠.”
그녀의 이상한 논리를 들으며, 우린 잠자코 따라갔다.
홍지아의 말만 들어봤을 때, 고급 요리를 팔기에 아주 적절한 곳 같았다.
가게 주인과 얘기만 잘되면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점심은 가게를 놀릴 테니, 조건만 잘 제시하면 쉽게 협의되지 않을까?
“여기 모퉁이만 돌면 돼요.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호호.”
모퉁이를 돌자, 강남역 근처에 있는 건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검은색 기와집이 나타났다.
“오~~.”
나와 변 사장은 건물 외관을 보자마자, 곧바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딱 그런 곳이었다.
기와로 된 고풍스러운 분위기.
깔끔한 담벼락이 정겨우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근처 회사의 임원들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는 직원들이 방문하기에 좋아 보였다.
“홍지아 씨! 한 건 했네!”
살짝 의심하고 있었던 나는 홍지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호호. 유어 웰컴.”
방문했던 곳이라 그런지.
홍지아의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기와집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어머…….”
따라서 들어갔는데.
홍지아는 기와집 입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
‘점심 특선 A코스 80,000만 원’.
“…….”
점심을…… 파는 곳이었네?
“젠장…… 우리 밥 먹으러 온 거야?”
변 사장은 무심결에 말을 뱉었다가, 빠르게 수습했다.
“이, 이거 혼잣말한 거야. 오해하지 마~. 누군가를 향해서 한 말은 아니니까.”
홍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발걸음을 돌렸다.
* * *
“홍지아 씨~, 괜찮아. 고개 들어.”
“…….”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잖아.”
오후 2시. 어느 한 카페.
앉아서 쉬고 있다.
점심시간 내내 강남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우리가 원하는 곳은 없었다.
점심 장사를 안 하는 주점은 호프 혹은 포차 같은 곳이었고.
그나마 좀 있어 보이는 장소가 이자까야였는데, 거기서 10만 원 이상 되는 고급 점심 요리를 팔기에는…….
우리가 그리는 고급 주점들은 점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스마트 폰을 뒤지던 최경리가 말했다.
“대부분 공유 주방을 하는 곳들은 가벼운 음식을 팔지, 우리처럼 고급 음식을 판매하는 곳은 없네요.”
“…….”
“굳이 고급 음식을 먹으러 공유 주방에 오겠어요. 아까 홍지아 씨가 안내했던 기와집 같은 곳을 가겠죠.”
변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곳은 점심 장사를 한다는 거지. 즉, 공간을 빌릴 수가 없어.”
현장으로 와서…….
갈 길을 잃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금손을 가지고 있어도, 모든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냥 주야장천 종이학만 접거나, 여기저기 사진만 찍으며 살아도 되겠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돈 벌기 위해 이 세상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게 금손을 준 산신령도 그런 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주점…… 주점이라…….”
변 사장이 ‘주점’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렸고.
“민속주점.”
홍지아가 말을 받았다.
“감성주점.”
뒤이어 최경리가.
“헌팅주점.”
나도 따라 말했다.
“목로주점.”
“전통주점.
.
.
.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넋 놓고 이렇게 말을 이어가다가.
“단란…… 주점.”
변 사장의 입에서 결국 이 단어까지 나오고 말았고.
홍지아와 최경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음?!”
변 사장은 눈을 크게 떴다.
“자, 잠깐.”
그는 날 보며 물었다.
“단란주점이 점심 장사는 안 하지?”
“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가봤어야 알지.”
“안 가봤어?”
“네, 한 번도요.”
물론 가보고는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근데 안 할 것 같은데요? 단란주점이 대낮에 장사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룸으로 구분되어 있고, 내부 시설도 깔끔한 곳이며…… 주방 설비되어 있고.”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변 사장은 심각했다.
단란주점에서…… 점심 공유 주방을 하겠다는 건가?
내가 가보진 않았으나, 어떤 곳인지 대략 그림은 그려지는데.
“사장님, 농담이시죠?”
홍지아와 최경리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자. 선입견 갖지 마. 거기도 엄연히 영업장이야. 세금 제대로 내고 정상적인 곳에서 하면 돼.”
“아무리 그래도요!”
홍지아는 격정적으로 말했다.
“노래방 같은 곳이잖아요. 좌석은 ㄷ 형태로 되어 있고, 어두 컴컴하고. 도우미 들어오고. 누가 그런 곳에서 점심을 먹어요?”
“왜 이렇게 잘 알아?”
변 사장은 항변하려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되물었다.
“영, 영화에서 봤어요!”
홍지아는 더듬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여간…… 수수께끼 인물이다. 이 친구도 은근 양파 같다.
까도 까도…….
변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노래방 책 외우고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세요?”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앞으론 이런 얘기 할 때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 그게 좋은 거야.”
“…….”
홍지아는 입을 다물었고.
변 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단란주점에 노래방 기계는 필수로 있지만, ㄷ 형태의 좌석에 어두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건 선입견이야.”
“많이 다녀보셨어요?”
내 물음에 변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많이 들어봤다. 가까운 분한테.”
변 사장은 그러더니, 전화기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폰이었다.
[어~, 변 사장. 웬일이야.]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민경원 사장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중요한 사업 미팅이 있어서 바이어 좀 모시려 하는데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단란주점이요.]
[저번에?]
[아, 네. 정원도 있고, 1층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한옥식 단란주점.]
[아~, 사랑산성?!]
[아, 네네. 맞습니다. 거기 위치 좀 알려주실래요?]
[거기 꽤 비싼데~. 어떤 손님을 모시려고 그러는 거야?]
[하하. 나중에 정식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직 확정된 게 아니어서요.]
[쳇. 궁금하게 하기는. 알겠네. 전화 끊고 문자로 주소 보내줄게.]
[넵,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으려다가, 변 사장은 생각났다는 듯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 사장님. 혹시 거기 점심 장사는 안 하죠?]
[점심에 영업하는 단란주점이 어딨어? 왜?! 대낮에 가고 싶데? 바이어가 뭐 하는 사람인데?]
[하하.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응~, 담에 같이 한번 가~. 저번에 잘 놀더만. 도우미랑 아직도 연락…….]
뚝.
변 사장은 당황하여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게 왜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해서는…….
띠링!
알림음이 울렸고.
핸드폰에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초구 내곡동…….”
민 사장이 보내준 단란주점 주소인 모양이다.
“사랑산성으로 가자.”
“네…….”
여 직원들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뭔가 실망한 눈치였다.
“쩝. 시간이 필요해…….”
변 사장은 민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 왔습니다~.”
“네, 기사님 감사합니다~.”
쾅~, 부우웅~.
택시가 떠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남인데, 강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청계산이 눈앞에 보이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
“와……. 느낌 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외진 곳에 얼핏 보면 단독주택으로 보이는 2층 건물이 있었다.
‘사랑산성’.
건물 정문 앞에 이름이 새겨진 돌이 보였다.
사랑을 쌓아간다는…… 뭐 그런 뜻이겠지.
요즘엔 직관적인 이름이 대세라던데. 주인장이 젊은 사람이 아닐까? 약간 짐작을 해봤다.
“사장님. 경치 좋고 조용하네요. 점심 장사 하기 좋겠는데요.”
“그러게. 듣던 대로 괜찮네.”
“정말 듣기만 하셨던 거 맞아요?”
흡!
농담 한마디 했는데, 변 사장은 날 무섭게 째려봤고.
난 입 다물고, 변 사장을 따라서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은 열려 있었다.
“오…….”
낮게 깔린 잔디.
관리를 자주 하는 듯, 잔디는 짧게 정돈되어 있고.
잡초는 보이지 않았다.
정돈된 잔디 위에 소나무 두 그루만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깔끔했다.
“이런 곳이 단란주점이라고?”
혹시나 해서 눈을 씻고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점심 특선’ 팻말은 보이지 않았다.
변 사장도 두리번거리는데,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살펴보는 것 같았다.
하얀색 대리석 외관으로 된 깔끔한 양옥집.
“맘에 딱 든다. 제발 잘됐으면 좋겠다.”
외관만 봐도 느낌이 확 온다.
홍지아와 최경리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맘에 들어 하는 것 같다.
딩동!
업소 안에 벨 소리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딩동!
“…….”
그래도 반응이 없어서, 내가 문을 두들기고 크게 사람을 불렀다.
쿵! 쿵!
“계십니까!”
“…….”
쿵! 쿵!
“실례하겠습니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짜증 섞인 혼잣말이 들렸다.
“아함~, 한밤중에 누구야?”
분홍색 헤드 캡을 쓰고.
얼굴에는 잠이 한가득.
한참 자다가 나온 것 같았다.
근데…….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눈도 부스스하고.
머리에는 우스꽝스러운 동그란 헤드 캡을 쓰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시죠?”
눈을 살짝 흘기며 날 올려다보는데.
정말…… 연예인 뺨치는 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