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44화 (44/156)

신사업 (3)

* * *

오득. 오득.

해삼이 알차게 씹힌다.

전복의 쫀득함이 느껴지고.

청경채의 풍부한 향미가 콧등을 아린다.

오징어, 죽순 등…….

8개의 재료는 각자의 특징을 간직한 채, 입안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각자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융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신선한 맛.

중식 특유의 불맛이 느껴지면서도, 한국적인 매콤함도 살짝 얹어져 있다.

그 매콤함이 풍미를 더 했다.

전체적인 맛의 느낌은 고소하고 풍부한 맛인데, 입맛을 감치는 약간의 매콤함.

‘하아……. 젠장. 너무 객관적이야.’

김민석은 정신 놓고 마구 입에 욱여넣었고.

앞접시에 담긴 팔보채는 야속할 정도로 빨리 사라지고 있었다.

‘아쉬워. 너무 아쉬워.’

김민석은 더 먹을 생각에, 음식을 퍼주고 있는 홍지아를 바라보았다.

전직원이 그녀 앞에 줄 서 있다.

대부분 아까 먹었던 사람들 같은데.

― 홍지아 씨~, 좀 더주라.

― 맛 미쳤어~.

― 도대체 강 대리는 못 하는 게 뭐야?

홍지아는 살짝 웃기만 하고 대꾸는 하지 않았다.

‘잘하는 것만 하니까요. 그게 많기도 하지만.’

“어머.”

홍지아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김민석이었다.

“팀장님…….”

김민석이 더 먹겠다고 줄 서 있는 게 의외다.

내내 제로백 컴퍼니를 못마땅해했는데.

좀 전에 음식 가져갈 때도, 맛보기 싫은데 억지로 가져가는 모양새였다.

“양이 너무 적어서 맛을 모르겠어.”

“네?”

‘분명히 한 그릇 가득 줬었는데?’

얼마나 깨끗하게 먹었는지 김민석이 내민 그릇에는 팔보채 국물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 팀장~, 맛있게 먹었어? 하하.”

변 사장이 나타나 김민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네? 아, 뭐…….”

김민석은 떨떠름해 했고.

변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유회잖아~. 원래 하던 것처럼 해도 돼~. 형이라 불러~.”

“아, 그래도 돼요? 형님?”

“항상 그랬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입에서 차마 ‘사장’이라는 단어가 잘 안 나왔던 김민석은 말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팔보채…… 강 대리가 만든 거라고요?”

“응~ 어때? 맛 괜찮지?”

김민석은 생각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내가 중식 마니아인데…… 이건 진짜.’

“뭐……. 먹을 만하네요. 근데 강 대리가 음식을 배웠나요?”

“응?”

이 질문에 변 사장은 살짝 당황했다.

“팔보채가 간단한 요리는 아닌데. 게다가 이 정도 수준의 맛을 낸다는 게. 흡!”

김민석은 자신도 모르게 맛에 대한 찬양이 나오려 해서, 황급히 입을 막았다.

“글쎄…….”

변 사장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빠르게 굴리다가 대충 대꾸했다.

“어릴 때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 했었대.”

“알바 하면서 팔보채를 배웠다고요?”

“오래 했대. 시티백도 잘 몰더라고.”

“…….”

강태평의 실력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사진 촬영도 그랬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홍지아가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김 팀장님~, 팔보채 더 안 받아가실 거예요? 이게 마지막인데.”

‘마지막’이라는 말에 김민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줘! 빨리 줘!”

홍지아는 남은 것들을 싹싹 긁어서 김민석의 앞접시에 담아 주었다.

“여기요.”

김민석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잘 먹을게.”

김민석이 자리로 돌아간 뒤.

변 사장은 강 대리를 불렀다.

“강 대리!”

* * *

요리한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땀이 나는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앉아서 땀을 식히며 쉬고 있었다.

“강 대리!”

변 사장이 날 부른다.

쉬고 싶어서 일부러 못 들은 척했는데, 재차 부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그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어요?”

아까 음식을 만든 후 맛에 대한 피드백은 이미 받았다.

팀원들은 감탄해 마지 앉았고, 다른 팀 직원들의 반응도 꽤 좋아 보였다.

“어~, 강 대리.”

변 사장은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힘들어?”

“아뇨. 뭐…… 힘들다기보다는 약간 피곤한 정도?”

“아, 그래?”

변 사장은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넌지시 말했다.

“홍지아 씨~, 재료 좀 남았지?”

“네, 충분합니다.”

“좀 더 만들어도 되겠지?”

“네~, 될걸요.”

난 멀뚱히 변 사장을 바라보았다.

“만들 사람 앞에 세워두고 뭐 하시는 거예요.”

“하하. 미안해서 그러지~.”

“미안하면 안 시키시면 돼죠.”

변 사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직원들이 너무 좋아하잖아.”

남은 팔보채에 좀비처럼 덤벼들고 있는 직원들을 가리켰다.

“본인들이 준비해온 건 거들떠도 안 봐.”

딱딱하게 말라버린 영업 1팀의 굴보쌈.

반도 안 먹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영업 2팀의 아메리칸 포크립이 보였다.

“강 대리가 만든 것만 찾으니까.”

“…….”

“직원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수고하자~. 오늘 야유회잖아.”

난 입맛도 없고, 피곤했지만.

변 사장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난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했다.

“홍지아 씨, 최경리 씨.”

“네!”

“재료 손질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다시 나설 차례가 되었다.

“대리님, 피곤해 보이시는데.”

홍지아가 옆에서 말했다.

“옆에서 지시만 해주세요. 저희가 만들게요.”

최경리도 말했다.

“만들어 보신 거니까, 아까 했던 그대로 하면 되잖아요.”

“…….”

아까 어떻게 만들었더라.

내 손의 감에 따라서 만들었던 거라, 기억이 안 난다.

즉흥 연주를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몰라……. 기억 안 나.”

“네?!”

두 사람은 내 말에 황당해했다.

“어차피 오래 안 걸리니까, 내가 할게.”

난 바로 재료들을 끓는 물에 넣고, 데치기 시작했다.

“……. 강 대리님.”

“응?”

홍지아가 주방에서 안 나가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레시피 감추려 하시는 건가요?”

“뭐?”

“같은 팀끼리 그럴 필요 없잖아요. 제가 따로 장사라도 할까 봐?”

안 그래도 피곤한데.

홍지아 다웠다. 앞서가도 너무 앞서 간다.

“홍지아 씨.”

“네.”

“걸리적거리니까, 주방에서 좀 나가줄래.”

“…….”

그래도 멀뚱히 지키고 서 있길래.

홍지아를 떨어뜨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말을 뱉었다.

“그렇게 내 옆에 있고 싶어?”

“아이! 짜증 나.”

홍지아는 곧바로 나가버렸다.

이번에도 만드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흠…….”

완성은 되었는데, 아까 만들었던 것과 때깔이 좀 다르다.

처음 것은 붉은색이 돌았는데, 두 번째 것은 투명한 색에 가깝다.

향도 약간 다른 것 같다.

역시 레시피를 안 보고 만드니까, 음식이 다르게 나오는 건가.

그래도 재료는 똑같으니까, 큰 차이는 안 나겠지.

“변 사장님!”

“어~, 강 대리.”

“다 만들었습니다.”

변 사장은 이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다가왔고.

다른 팀원들도 각자 하던 걸 멈추고 일제히 내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어머…….”

홍지아는 음식의 색깔을 살피고는 놀랐다.

“아까랑 다른 음식 같은데요?”

“내 생각도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고.

“뭐야? 강 대리님이 만든 거 아니에요?”

남이 만든 것처럼 말하는 내 태도가 이상해 보였나?

근데 사실이 그렇다. 내가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흠! 어서 맛보세요.”

내 말에 최경리가 앞접시에 조금씩 담아서 변 사장과 홍지아에게 건네주었다.

“운발은 아니었겠지.”

변 사장은 중얼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후르릅.

각자 팔보채를 먹기 시작했고.

첫 젓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서로를 바라봤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이게 뭐야?”

변 사장의 말에 곧바로 홍지아가 대꾸했다.

“완전 다른 맛인데요?”

그러더니, 다시 얼굴을 접시에 처박고 막 퍼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의 앞접시는 깨끗해졌고.

최경리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신기합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변 사장이 날 바라보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이건 뭐지?’ 하는 표정.

변이체를 보는 듯한 묘한 얼굴이었다.

“완전 다른 맛인데…… 졸라 맛있잖아!”

* * *

그날 야유회에서는 당연히 제로백 컴퍼니가 1등을 하였고.

팀 상품으로 백화점 상품권 5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상품권을 가지고 마트로 갔다.

다시 팔보채를 만들어 보기 위해 재료를 사려는 거였다.

변 사장은 음식의 맛은 확실히 있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아무래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 똑같은 재료로 두 번만 더 만들어 보자.”

간이 캠핑장에서 우리 곧바로 테스트를 시작했고.

두 번 더 만들어 본 팔보채를 맛본 후…….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다.

나 또한 너무 충격적이었다.

“헉. 맛이 다 달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똑같은 재료로 같은 사람이 만든 건데. 맛이 다 다르다.

내가 먹어보고도 놀라웠다.

그런데 변 사장은 내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강 대리, 지금 연기하는 거 아니지?”

“…….”

“일 벌이기 싫어서 연기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네 번 만든 음식의 공통점이 있었다.

“맛이 없습니까?”

“아니. 다 너무 맛있어.”

“일 벌이기 싫었다면, 맛있게 만들었을까요?”

“그렇긴 하네.”

홍지아는 옆에서 가자미눈을 뜨고 팔짱을 낀 채 날 지켜보고 있었다.

“강 대리님, 질문이 있습니다.”

“어, 얘기해.”

“왜 요리하실 때 레시피를 안 보시는 거예요?”

“안 보긴? 시작하기 전에 봤잖아.”

홍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보통 요리 처음 하는 사람들은 레시피를 그런 식으로 보진 않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읽어가면서 따라 하죠.”

“…….”

“왜냐면 그렇게 해도 똑같이 만들기 어렵고. 맛있게 하기는 더 어렵거든요.”

홍지아는 내 주변을 돌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멘트인데.

“요리를 처음 해보신다는 분이 레시피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똑같은 재료로 각기 다른 맛을 내며, 게다가 모두 맛있었다는 거죠.”

“…….”

“이건 요리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변 사장이 홍지아의 말을 막았다.

“요리를 잘 아는 사람이 맛에 일관성이 없게 하진 않지.”

“아…….”

“홍지아 씨. 부탁인데, 회의할 때는 조금만 더 진지하게 하자.”

“죄송합니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 보여서…….”

변 사장은 날 바라봤다.

“강 대리.”

“네, 사장님.”

“맛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겠어? 요리했던 것을 자세하게 기록해두고, 그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음……. 뭐랄까.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논리적으로는 변 사장 말이 충분히 가능하다.

했던 걸 기록하고 그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분명 맛이 없을 것 같았다.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건 확실하다.

“사장님 말씀대로 레시피화 한다면…… 이제껏 제가 만들었던 팔보채의 매력을 느끼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일관성 유지하는 것도 장담 못 드리겠습니다.”

“그럼 뭐…… 손맛이라는 건가?”

“딱히 설명드릴 만한 표현이 그것뿐이 없네요.”

“흠! 정리하자.”

변 사장은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 강 대리 요리의 특징

1) 레시피를 보지 않는다.

2) 맛에 일관성이 없다.

3) 놀라울 정도로 맛있다.

변 사장은 다 적은 후 직원들을 돌아봤다.

“이게…… 사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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