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43화 (43/156)

신사업 (2)

* * *

― 와……. 저 솥 뭐야?

― 야유회장에 중국집 차리는 거야?

― 야외에서 중식 만드는 건 처음 보는 듯.

나도 넋 놓고 지켜보았다.

제로백 컴퍼니 직원들은 정말 열심이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요리만 하라고 했는데.

그래서 정말 신경 안 썼는데, 이 정도일 줄은…….

“홍지아 씨, 최경리 씨, 아이스박스 양쪽 들어. 이쪽은 내가 들 테니까.”

“알겠어요!”

성인 남성 크기 만한 아이스 박스가 들어오고 있었고.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 낑낑대며 들었다.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비켜봐. 내가 할게.”

홍지아와 최경리를 밀치고 내가 들려고 했다. 남자가 들기에도 무거워 보이는데.

“됐어요. 이건 우리 몫이니까. 강 대리님은 손 풀고 계세요.”

홍지아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비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거라도 제대로 해야죠. 강 대리님이 큰일 하실 건데. 무거운 짐 혼자 두게 할 순 없죠.”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묵묵히 듣고 있던 최경리도 한마디 했다.

중국집에서나 볼만한 크기의 솥.

대형 아이스박스.

각종 크기의 도마와 칼.

다양한 종류의 양념장.

마른 수건, 대형 국자 등의 각종 요리 기구.

제로백 컴퍼니는 하나의 음식을 위해 주방 같은 공간을 꾸며가고 있었다.

― 오늘 신장개업하나?

― 진짜 제대로인데?

― 변 팀장님이 사장님 되더니 좀 변하신 거 같아.

예전의 변 사장이 팀장일 때는 이런 회사 행사가 있으면, 욕먹지 않을 만큼만 준비하고.

시작할 때만 얼굴 살짝 비췄다가, 바로 잠적했었다.

야유회가 있던 날이면, 변 사장과 함께 중간에 도망쳐서 당구장 갔던 기억이 많다.

“자자, 힘내자고!”

하지만 지금의 변 사장은 그때와는 완전 다르다.

이미 준비단계부터 제로백 컴퍼니는 압도적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영업 1, 2팀과 비교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경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 다들 모여봐.”

세팅이 끝난 후, 변 사장은 팀원들을 한자리로 모았다.

“지금부터 ‘광동식 팔보채’ 시작할 건데, 각자 역할 알고 있지?”

홍지아가 손을 들고 말했다.

“네, 저는 해산물 보조.”

“전 야채 보조입니다.”

최경리도 곧바로 대답했다.

“좋아. 두 사람 다 강 대리 지시받고 움직이면 되고, 강 대리는…….”

변 사장은 지그시 날 보았다.

뭔 말을 하려고 이러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하라고. 그래야 잘되잖아.”

“아……. 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삐익―!

휘슬이 울렸다.

다른 팀들은 휘슬이 울리건 말건, 술을 곁들이며 수육 삶고, 포크립 뜯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후다닥―!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며, 아주 진지했다.

* * *

“홍지아 씨?”

“네.”

“레시피 출력한 거 있지?”

“네, 여기 있습니다.”

홍지아가 준 레시피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흠…… 일단은 재료 손질이 중요해 보이네. 팔보채는 재료가 포인트니까.

“둘 다 레시피 봤지?”

“네.”

“담당 별로 재료 손질 바로 해줘. 하다가 모르거나, 잘 안 되는 거 있으면.”

두 사람은 내 말에 집중했다.

“초록창에 검색해 봐.”

“…….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실망한 표정으로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뭘 기대한 거야? 나도 요리 처음이라니까.

둘이 재료 손질을 하는 동안, 레시피를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채소는 손질이 간단해 보이는데.

해산물은 좀 복잡해 보였다.

해산물 담당이…… 홍지아?

“…….”

가만히 옆에서 하는 걸 지켜보았다.

“아오, 씨. 오징어가 왜 이렇게 미끌거리는 거야.”

껍질 벗겨내다가, 30분은 갈 것 같다.

“홍지아 씨, 전복 잘라. 오징어는 내가 할게.”

“어머. 그러실래요?”

“전복은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약 2cm 정도면 될 것 같아.”

“왜 2cm예요.”

“몰라……. 그냥 감이야.”

식칼을 오른손으로 잡고, 획획 돌려보았다.

똥손일 때는 절대로 금기시했던 물건.

내가 칼을 다 잡다니.

“이렇게 하면 되나.”

식칼로 한번 휘둘렀더니…….

오징어 껍질이 다 벗겨졌다.

# 식칼

Before: 절대로 손대면 안 되는 물건.

After: 칼질은…… 한 번이면 된다.

“헉!”

내가 해 놓고서, 스스로 놀랐다.

전복을 썰던 홍지아가 놀라서 물었다.

“왜요?”

“아, 아니야!”

난 당황하여, 일부러 칼로 벗기는 시늉을 계속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걸 보여주면 혼란이 생긴다.

“새우도 줘볼래? 오징어는 끝났어.”

“벌써요?”

“응.”

“헐~, 난 아직도 전복 썰고 있는데.”

‘새우는 머리, 꼬리, 껍질을 제거한 후 등 쪽 내장을 뺀다.’

도마 위에 놓인 새우를 보았다.

널…… 3등분 해야 하는구나.

사사삭.

내 칼이 한번 움직이자, 새우의 형체는 사라지고 하얀 속살만 남았다.

‘참 쉽네.’

사삭. 사삭. 사사삭.

순식간에 새우 20마리 정도를 손질했다.

“홍지아 씨, 새우까지 끝났으니까. 해삼 다 썰면 얘기해줘. 난 다음을 준비할 테니.”

“네…….”

“최경리 씨?”

“네.”

“잘되어 가고 있어? 뭐 도울 거 없어?”

“청경채 5cm로 썰라고 했는데. 일부 3mm 정도 크게 썰린 게 있거든요? 이런 건 어떻게 할까요? 자 대고 자르고 있긴 한데, 이게 정확히 맞추기가 어려워서……. 오차 범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도 집에서 밥 안 해 먹고 살지?”

“네, 시켜 먹습니다.”

“……. 내가 알아서 골라 쓸 테니까, 그냥 썬 건 다 갖고 오면 돼.”

갑자기 피곤해져서, 그냥 이렇게 정리하였다.

“알겠습니다.”

20여 분 정도 지났을 때쯤.

재료 손질은 끝났다.

홍지아는 손질된 재료들을 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레시피에 재료는 끓는 물에 데치라고 하던데, 제가 할까요?”

턱.

난 홍지아의 손을 막았다.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 강 대리님…….”

“지금부턴 내가 한다.”

* * *

‘은근 박력 있다니깐.’

홍지아는 곁눈질로 강태평을 유심히 보았다.

하얀 피부. 보통보다 조금은 더 날씬한 체격.

나이는 31세지만, 얼핏 보면 홍지아 나이 25세와 비슷해 보일 정도의 동안 얼굴.

외모도 어디서 빠지는 얼굴도 아니었다.

일단 피부가 백옥같고 너무 좋았다.

하지만 너무 소년 같아서 홍지아의 취향은 아니었는데…….

요즘 자꾸 달리 보인다.

“왜 자꾸 쳐다봐? 진짜 나 좋아해?”

“아니거든요!”

조금만 낌새가 느껴져도 원천 차단하려는 강태평이 약간은 얄미웠다.

“치!”

“홍지아 씨랑 최경리 씨는 이제 주방에서 빠져줄래? 나 혼자 있고 싶은데.”

강태평의 눈은 손질된 재료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두 여자가 주방에서 나간 뒤.

강태평은 레시피를 잠깐 보고는, 덮어 버렸다.

“뭐, 대충 어떻게 하는지는 알겠네. 어쨌든 맛있으면 되는 거잖아?”

변 사장은 주방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강 대리 레시피를 숙지한 건가?”

“아닐걸요. 레시피 오늘 처음 보셨을 텐데.”

“그렇다면…….”

최경리는 강태평의 눈빛과 표정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무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레시피를…… 무시한다?”

“네.”

변 사장은 황당해하다가, 피식 웃었다.

“뭐야, 요리 모른다며?”

강태평은 끓는 물에 재료들을 넣고 있었다.

홍지아는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서 좀 볼까요?”

“아니야. 내버려 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잖아. 일단 지켜보자고.”

변 사장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강태평은 재료를 데친 후, 채 위에 올려놓았다.

“흠…….”

그리고 재료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오케이.”

그리고 맛을 모르는 소스인 굴소스, 닭 육수 등을 티스푼에 조금씩 담아서 맛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홍지아 씨!”

“네?”

“우리 청양고추 있나?”

“네? 그거 팔보채에 안 들어가는데요?”

“그거 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잠시만요~.”

홍지아는 영업 1팀에 가서 청양고추 2개를 얻어왔다.

“이거밖에 못 준다는데, 괜찮을까요?”

“충분해. 땡큐.”

흡~, 휴우―!

강태평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손가락 스트레칭을 했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시작.”

그리고 강태평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파, 마늘, 생강을 덥썩 짚어서는 팬 위에 넣고 볶아댔다.

이후에 청주, 간장을 넣어서 살짝만 볶고, 데쳐놨던 재료를 일제히 투하하였다.

푸아악~!

불에 볶는 소리가 크게 났고.

강태평은 그 위에 알코올을 부었다.

푸아악. 푸아아악!

불쇼였다.

오래 볶지는 않았다.

굴소스 넣어 천천히 저은 후, 후춧가루 살짝 넣었다.

이후 녹말가루를 대충 뿌린 뒤, 참기름으로 마무리.

마지막으로 위에 조그맣게 자른 청양고추를 살짝 얹었다.

.

.

.

.

팔보채가 되었다.

“끝!”

* * *

[끝? 어디서 끝났다는 말이 나온 거 같은데? 맞습니까?]

김민석은 시계를 본 후 중얼거렸다.

“집에서 만들어왔나? 이렇게 빨리 완성했다고?”

시작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어딥니까?]

“제로백 컴퍼니입니다~!”

일제히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광동식 팔보채?’

김민석은 마뜩잖은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흠! 다 하셨으면 맛봐도 될까요? 그리고 각 팀에 나눠주시면 됩니다.”

“네~.”

제로백 컴퍼니.

맛을 본 이들은 벌써 행복한 얼굴이었다.

강태평만 무덤덤했다.

최경리까지도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는데, 황홀해 보일 정도였다.

“맛있습니까?”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최경리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늘부로…… 팔보채 마니아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먹어 봤거든요. 이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일 줄이야.”

“아……. 그 정도예요?”

김민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차이나타운 3대 중국집에서 먹어 봤거든요? 팔보채가 제대로 맛이 나기 어려운 음식인데.”

변 사장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아, 일단 드셔보시라니까~!”

“제 입맛 수준이 좀 높아서요.”

김민석이 까다로운 듯 말했지만, 제로백 컴퍼니의 직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 자신감 뭐지?’

김민석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조건 맛없다고 해야지. 입맛이라는 게 주관적인 건데. 알 게 뭐야.’

“자~, 팀장님~, 받으시오~.”

홍지아가 활짝 미소지으며 팔보채를 앞접시에 담아서 건네었다.

“말이 짧다?”

“헤헤.”

‘왜 이렇게 해맑지?’

두근. 두근.

김민석은 접시를 들고 묵직하게 말했다.

“그럼…… 먹어 보겠습니다. 맛은 주관적인 거니까요. 혹여 실망은 하지 않으셨으면…….”

― 강 대리! 한번 더하자!

― 사람들 더 달라고 난리야!

― 미쳤어! 진짜아~!

김민석은 한 젓가락 입에 넣으려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제로백 컴퍼니는 사람들과 팔보채를 나누며 정신이 없었다.

‘심사위원이 먹겠다는데……. 딴짓은.’

어차피 심사평은 먹어 보나 마나였지만.

일단은 입에 대충 털어 넣었다.

“팔보채가 맛있어 봐야 얼마나…….”

팔보채가 혓바닥에 닿는 순간.

김민석은…… 말을 잃었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고, 흥분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뭐야……. 이거 팔보채 맛이 아닌데?’

손을 떨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맛이 너무…….’

그의 시선에 잡힌 강태평 대리.

놀라움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동공 속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객관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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