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용사가 삼키는 것 (2)
“점심시간이다. 한 명당 하나씩만 가져가라.”
야불타가 채석장의 죄수들에게 나눠준 것은 내 팔목만 한 빵이었다. 쉬지 않고 광물을 캐던 죄수들이 빵을 하나씩 가져가 우적우적 씹어대기 시작했다.
반면에 지금 내 손에는 화룡도의 지면에서 퍼 올린 흙 한 줌이 올려져 있다.
“할 수 있어. 까짓 거 별것 아니야.”
마그마의 바다에 우두커니 솟아올라 있는 섬의 흙답게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매캐한 탄내가 코를 찌른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준비동작을 하는 이유는 내가 새로 사귄 친구의 존재 때문이다.
[HP: 4,200]
그것이 뚠 아티르의 체력 스탯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형편없는 근력과 민첩을 갖고 있으면서 체력만큼은 그 다이몬 키리스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라니.
‘그냥 대왕 슬라임 같은 유형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들 중엔 간혹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공격력을 갖고 있으면서 플레이어가 때리다가 포기할 만큼 HP만 높은 몬스터들이 있었다.
대왕 슬라임이나 앤트 같은.
그래서 두더지 토인 뚠 아티르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떠오른 스킬을 본 후 나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친구 뚠 아티르의 패시브 스킬 ‘엄마 쟤 흙 먹어 Lv. 1’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줌의 흙을 퍼먹을 때마다 HP의 최대치가 1 상승합니다.]
뚠이 어째서 이런 스킬을 갖고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땅속을 뚫고 흙을 파헤치며 이동했을 두더지 토인. 자연히 입안에 흙더미가 들어가는 걸 피할 수 없다. 흙 먹는 걸 싫어하거나 견디지 못해서야 진화의 압력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얼핏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괴이한 스킬.
그러나 스탯이 뭉텅이로 잘려 나간 나에게 있어서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스킬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흙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우우우웁.”
역하게 올라오는 식감을 참아낸 다음 꿀꺽 삼켰다. 모래 알갱이에서는 시큼한 쇠 맛과 비릿함이 동시에 났다. 치아 곳곳에 알갱이가 끼는 기분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기다렸다.
띠링!
[친구 뚠 아티르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 최대치가 1 올랐습니다.]
[HP 100/101]
먹힌다.
게다가 시스템의 설명이 맞다면 일시적인 상승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체력이 증진되는 것이다. 나는 입가에 묻은 흙 알갱이를 털어내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강제 HP 스탯업이 시작됐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 최대치가 1 올랐습니다.]
[HP 106/127]
“방장! 일 안하고 어딜 자꾸 가?”
둘째 날부터 나는 건네받은 곡괭이를 아무데나 던져놓고 정작 광석이 모여 있지 않은 외진 곳을 찾아다녔다. 되도록 토질(土質)이 풍성하고 곱게 빻아진 터를 찾아내기 위해서.
물론 하루가 지날 때마다 광석 채굴 일일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은 대가로 잔여 형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잔여 형량 100년 1일.]
99년이었던 앞자리가 바뀌었다.
물론 불안감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나 역시 7번 방의 불량 노역자로서 형량을 깎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는 늪에 빠진 셈이니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그 늪에 다이빙했다는 점이다.
어차피 탈옥에 성공만 한다면 잔여 형량이 억만년이 되어도 상관없다.
이것은 교도관들과 벌이는 거대한 도박.
나는 모두 갖거나 모두 잃는 방식을 택한 것뿐이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 최대치가 1 올랐습니다.]
[HP 175/198]
7번 방의 죄수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검 노출 사건 때문에 나를 고깝게 생각하는 디멜마저도 매일 쭈그리고 앉아 흙을 퍼먹는 광경을 보며 질겁할 정도였으니까.
“현실을 받아들여, 슈바인! 왜 미치광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냐. 여기엔 너의 정신을 치료해 줄 의사 따윈 없단 말이다!”
“괜찮아. 나 안 미쳤어. 우걱우걱. 너야말로 눈두덩이 내려앉고 있잖아. 얼굴이 반쪽이 되기 전에 곡괭이질이나 한 번 더 해라. 꿀꺽.”
7번 방의 방장이 하라는 노역은 안 하고 흙을 퍼먹는다는 소문이 채석장에 쫘악 퍼졌다. 잽싸게 할당량을 채운 뒤 자유시간을 보내는 죄수들이 나를 구경하며 수군댔다.
“7번 방장은 희한한 방법으로 현실도피를 하는군.”
“저놈의 세계에서는 원래 흙을 먹고 살아온 걸지도 모르잖아.”
“아닐걸. 저 오만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봐.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으면서 꾸역꾸역 삼키고 있잖아. 자살을 할 거면 차라리 마그마에 뛰어드는 게 나을 텐데. 전통적인 방법은 제끼는 타입인가.”
화룡도에 모인 놈들 중 정신이 제대로 박힌 녀석은 없었다.
즉,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안타깝게 바라보는 죄수는 없었다. 그저 안락한 위치에서 흥미로운 구경거리 보듯 흘겨볼 뿐이었다. 몇몇 녀석들은 내가 헛구역질을 하기 전까지 몇 모금의 흙을 삼키는지 서로 내기를 하는 것도 보았다.
물론 나는 그런 녀석들에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결국 소문은 코뿔소 보안관 다이몬의 귀에까지 들어가고야 말았다. 다이몬은 입가에 흙가루를 잔뜩 묻힌 채 트림을 하고 있던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슈바인, 너는 지금 화룡도의 기강을 흐트러트리고 있다. 노역을 거부할 거라면 차라리 저기 있는 올쿠레 켄타처럼 드러누워 있지 그러나.”
“내가 규율을 어기는 건가? 흙을 먹으면 안 되는 룰이라도 있는 거야? 쩝쩝.”
“음…… 그건 아니다. 내가 하는 건 권유일 뿐이야. 강제력은 없지.”
“그럼 그 권유 거절하겠다. 꺼어억. 콜라가 먹고 싶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차례는 코제트였다.
이 서큐버스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날개로 쪼르르 내게 날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퍼먹은 흔적으로 움푹움푹 파여 있는 채석장 공터를 보고 질겁했다.
“오빠. 왜 그러는 거야, 대체? 마음의 위로가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 5번 방을 찾아오라니까.”
“다 들었어, 코제트. 남자 죄수가 너희 방에 끌려가면 정기(精氣)를 다 빼앗기고 시름시름 앓다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며? 쩝쩝. 그러지 말고 이거나 한번 먹어 봐.”
코제트는 앙증맞은 혀를 내밀더니 내가 건네준 흙에 가져가 보았다.
“으악! 퉷! 맛없어. 대체 이런 걸 왜 먹고 있는 거야?”
“말해줄 수 없어. 나 바쁘니까 이제 말 걸지 말아줄래.”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 최대치가 1 올랐습니다.]
[HP 330/401]
아, 다행인 점도 있었다.
일단 푸르가토리움의 죄수들은 입에 뭘 아무리 집어넣어도 위장이 차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지독하게 맛이 없는 음식을 식도에 밀어 넣는 일과 싸우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올쿠레에게 물었다.
“어르신,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는 것도 이 감옥의 저주입니까? 우걱우걱.”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겠지. 자네는 여기 들어와서 배고픔을 느낀 적이 있나?”
나는 0층 대기실에서부터의 일을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되짚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던가?
없었다.
“음. 그렇다면 죄수들의 식욕을 없애버렸다는 게 맞겠군요. 우걱우걱. 아마도 서로 잡아먹는 일을 방지하려는 걸까요?”
그래서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는 빵을 점심시간에 나눠주는 건가. 다른 죄수를 잡아먹고 싶으면 이걸로 달래라고.
물론 종종 먼발치서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차카 도기노브의 혓바닥을 보면 이 추리는 일단 보류해야 할 것 같지만.
“죄수들의 신체 대사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겠지. 교도관들의 권능은 헤아릴 수 없다네. 내 몸을 보게나. 우로스와 강제로 찢어진 켄타인데도 합체 전의 몸으로 돌려주었지. 아무리 의술의 경지가 하늘에 닿은 명의(名醫)래도 이건 불가능해.”
그러고 보니 턱을 쓸어보아도 수염이 만져지질 않았다. 어쩌면 이 감옥 안에서는 키가 크거나 탈모가 진행되거나 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성장도 멈추고 노화도 멈춘다면?
대신에 형량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견뎌내야만 한다는 건가. 실로 끔찍한 감옥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나흘째가 넘어가면서부터 헛구역질이 멈췄다. 비릿하고 시큼한 맛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가 1 올랐습니다.]
[HP 1,483/1,850]
*
그러고 보니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인간 박상식은 실제로 흙을 먹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즈음이었나.
나는 배가 고파 칭얼대는 여동생을 업고 재우느라 놀이터에 서 있었다.
그때 가난한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창민이란 녀석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면서 으스대고 있었다.
햄버거를 교환해주는 쿠폰이었다.
녀석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구경만 하고 있던 내게,
“왜? 너도 먹고 싶어? 어떡하냐. 딱 한 장 남았는데 너 주긴 아깝고.”
녀석은 놀이터 미끄럼틀의 흙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한 줌 퍼먹으면 너도 쿠폰 줄게.”
주먹으로 녀석의 콧잔등을 쥐어박고 싶을 만큼 울컥 화가 났다.
하지만 동시에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었다.
나는 눈을 딱 감고 흙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텁텁한 쇠 맛과 역한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져 식도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울렁거렸지만 참아냈다.
“야, 이 새끼 먹으랬다고 진짜 먹어. 저 화단 흙도 한 번 퍼먹으면 콜라도 줄게. 어때?”
나는 양상추가 심어진 화단의 흙을 한 줌 퍼먹었고, 결국 콜라 쿠폰도 얻어냈다.
그와 함께 새로운 별명도 얻어냈고.
“앞으로 이 새끼 토식이다. 흙 퍼먹는 박토식.”
그래서 햄버거와 콜라는 맛있었냐고?
아니. 먹지 못했다. 그날의 ‘토식(土食)’으로 심각한 배탈이 나서 위세척을 한 다음 3일을 앓아누워야 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되찾은 다음 햄버거 가게에 가서 쿠폰을 내밀었을 때는,
“죄송합니다, 손님. 쿠폰의 유효기간이 하루 지나버렸네요. 현금으로 구매하셔야겠어요.”
이미 아무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가 돼 있는 뒤였다.
나는 그때 배웠다.
가난이라는 것은 단순히 남들보다 조금 더 배고플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업신여김을 당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 또한 아니었다.
가난은 ‘고립’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친구들이 나를 외면하게 만들고, 나 역시 친구들을 기피하게 만드는 저주였다.
배부른 자가 유람선에 올라타 랍스터를 뜯을 때, 가난한 자는 평생 흙밖에 없는 섬에 고립돼 말라가는 운명이라는 것임을,
나는 불과 열 살 때 깨우쳤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얻은 쿠폰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흙을 움켜쥐는 걸 멈출 수 없다.
[스킬 ‘엄마 쟤 흙 먹어’의 효과로 HP 최대치가 1 올랐습니다.]
[HP 2,739/3,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