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4 귀환 =========================================================================
이렇게 쉽게 그에게 그것을 넘겨받을 수 있을 줄 몰랐다.
“네놈 말이 맞아. 난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뿐이다. 다른 게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자, 가져가라고.”
태상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기에 정보상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흐흡...감사합니다. 흐흐흑...”
타치다는 믿을 수 없게도 이 하찮은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을 넘겨주려는 듯 보이는 태상 때문에 감격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단 한 번도 그를 위해 남이 희생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행동이 타치다의 가슴을 울렸다.
하긴, 악마인 그들이 어디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근데, 혹시 알고서도 쓰겠다고 가져가는 건가?”
그때, 태상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정보상인은 혹여 그가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는 건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뭐라는 거냐? 이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건가? 허튼 수작을 부리면 재미없을 거다.”
“아니아니, 수작이 아니라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런 거야. 난 마계의 심장에 미련 없어. 너한테 깔끔하게 넘기고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근데 네가 사사로이 쓰는 순간, 마계가 천계처럼 무너진다는 거 알고 있나 해서. 그게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뿐이야.”
“.....뭐? 마계가 무너진다고?”
정보 상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더불어 그의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악마들의 얼굴도 함께 일그러졌다.
태상은 역시나 그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탐하려 했음을 깨달았다. 그저 어딘가에서 대악마가 내는 힘의 원천이 마계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어차피 나야 여기 뜰 거니까 상관이 없지만, 남아 있는 얘네 들은 어떻게 살려나 모르겠어서. 너도 그렇고 다른 악마들도 그렇고 마계가 무너지면 천사들처럼 때죽음을 당할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해내려고? 그냥 전시해놓으려고 이런 짓을 한 건 아닐 거 아냐?”
태상이 말을 덧붙이자 악마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마계의 심장을 모르는 이와,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동요가 생긴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인간! 저게 뭐기에 마계가 무너진다는 거지?”
“천계가 왜 무너졌는지 알아? 저것처럼 생긴 천계의 심장을 내가 훔쳤었거든. 그래서 무너진거 였어. 근데 저 악마가 나한테 마계의 심장을 가져다달라고 했지. 그럼 날 인간계로 보내주겠다고 말이야. 저 자가 그걸 사사로이 힘으로 사용한다면, 마계도 곧 천계처럼 무너지게 될 거야. 뭐,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지만.”
태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덕분에 악마들이 정보상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졌다.
“거래하는 게 마계의 심장이라고? 말도 안 된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가져온단 말이야!”
마계의 심장은 철저하게 지킴 받고 있었다. 아니, 지킴 받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빼왔어.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정 못 믿겠으면 이걸 보라고.”
태상이 마계의 심장을 악마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악마들이 마계의 심장에서 나오는 힘이 자신들이 느낀 대악마의 기운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태상이 손을 내리고 장난스럽게 마계의 심장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말했다.
“의도가 불손한 것 같아서 넘겨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실 내가 고민할 일은 아니잖아? 마계가 내 고향도 아닌데.”
태상이 콕 집어 정보 상인을 가리키자 이젠 안색이 허옇게 뜬 모습이 보였다. 악마들의 살기가 정보상인에게 쏠렸다. 그리고 이건 그가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거, 거짓말이야! 지금 인간 말을 믿는 건가?”
“믿건 말건 난 상관없지. 자, 받아가. 마계가 무너지건 말건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난 인간계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어서 교환하자고. 타치다, 이리와.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곳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려고 하는 그를 위해서라면 타치다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악마들 사이에선 절대 느끼지 못할 감동을 받은 터라 간이고 쓸개고 빼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진짜 하라고 하면 타치다는 도망칠 거다.
타치다는 정보 상인이 당황해서 방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동 능력 덕분이었다. 타치다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몸을 태상의 뒤편으로 이동시켰다.
“헉!”
정보상인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타치다를 보며 숨을 틀이 켰다. 그는 마계의 심장을 얻을 생각에 자신의 진짜 몸으로 이곳에 온 터라 분위기가 심장치 않자 생각보다 훨씬 당황하고 만 거였다.
이곳에서 죽으면 진짜 죽는다.
그 사실이 정보상인을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나, 나, 나는...!! 그게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땅을 없애 버리려한 정보상인을 그냥 둘 악마는 없었다. 더욱이 같잖은 인질극이 끝난 이상 말이다.
태상은 굳이 자신이 손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악마들이 그 대신 놈을 충분히 두드려줄 테니 말이다. 베치가 어느새 그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타치다는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기 때문인지 잔뜩 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그의 등을 토닥여줬다.
“그러니까 날 믿으라고 했잖아. 이분은 장차 마계를 지배하게 되실 분이라니까?”
“그래! 믿길 잘 했어. 이런 따듯한 온기를 받아 본 건 생애 처음이야.”
타치다가 흑흑거리며 계속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정보상인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법 발이 빠른지 도망치는 게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태상의 뒤를 졸졸 쫓아오던 악마들의 수가 어디 한 둘인가? 다들 어마어마한 스피드로 정보상인을 죽이기 위해 쫓았다.
‘자,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한다?’
타치다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인간계로 이동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마계가 무너져도 태상은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태상은 단검을 꺼내 자신의 왼손에 피를 내고, 마계의 심장에 떨어트렸다.
악마들이 모두 정보상인에게 신경이 쏠려있던 터라 막는 이는 없었다.
피가 닿은 마계의 심장에서 당연하게도 빛이 튀어나왔다.
“이걸로 오른팔이 재생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가 마계의 심장을 탐한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심장이 피에 반응한다는 것은 일직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태상이 그것을 움직여 자신의 잘린 오른쪽 팔 단면에 가져다댔다.
“지금 뭐하시는......헉!”
“빙고.”
태상이 씨익 웃었다.
마계의 심장이 그의 오른팔 단면에 녹아들면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희미하지만 그의 오른팔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했다.
환하게 주변을 수놓는 오색 깔의 빛에 베치와 타치다가 넋을 잃고 바라봤다.
화아아아악-!
차마 눈으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눈을 시리게 하는 빛이 내뿜어졌을 때, 베치와 타치다는 당연하게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멀쩡한 팔을 갖고 있는 태상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 오, 오른팔이 자라났어!?”
“흐익!”
수선을 떠는 악마 두 명을 깔끔하게 무시한 태상은 오랜만에 느끼는 오른팔의 감촉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움직여보려니까 되게 어색하네.”
그가 팔을 휘휘 저어보고 만져보고 하다가 이내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봤을 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게 왜 여기에 아직도 박혀 있어?!”
태상의 황당한 목소리가 베치와 타치다 또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잘린 오른팔이 생겨난 일에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되질 않았다.
손바닥을 바라보던 태상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렸다. 그의 손바닥에 붙어있는 황당한 것. 천계의 심장인지, 마계의 심장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그의 오른쪽 손바닥에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몸 전체에서 다시 한 번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베치와 타치다의 몸이 알 수 없는 기운에 부딪쳐 멀리 나가떨어졌다. 꽥! 하는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태상은 온 몸을 순식간에 잠식하는 기운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방금 전에 오른팔을 새로 만들어냈던 기운들과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것들이 그의 몸을 때리면서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태상은 그 기운들이 손바닥에 남아 있는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에 바람이 휘몰아치듯 기운들이 휘몰아쳤다.
막고 싶었으나 막을 방법을 찾질 못했다. 스스로에게 무력화를 쓸 수 없다는 게 통탄할 일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
태상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무렵, 타치다가 재빨리 베치를 데리고 공간을 이동해 멀찍이 떨어졌다. 베치와 타치다는 감히 감당해낼 수 없는 기운이었다.
“어떡하지?! 저러다가 잘못 되시기라도 하면!! 우리의 찬란한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코앞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주군을 모실 수 있게 됐는데 말이다.
베치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이건 생각 못해 본 건데!!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야?! 우악!”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검정색을 띄는 기운들이 점점 더 그 여파를 키우고 있었다. 마치 마계를 집어 삼킬 듯 마계의 하늘 끝까지 솟아오르면서 말이다.
그 기운들 사이에 있는 태상이 무사할 리가 없다. 베치와 타치다는 저런 기운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꿀꺽-
수천의 악마가 몰려와도 살아남을 것만 같았던 태상의 생사를, 이번에는 장담할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치다는 또 다시 능력을 써서 그곳에서 좀 더 물러나야 했다.
마계를 삼켜버릴 듯, 기운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여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지고 있었다.
누구도 막는 것을 엄두내지 못할, 어마어마한 기운으로 말이다.
**
“정말 생각 없으십니까? 점점 더 마르기만 하시니, 쓰러질까 걱정 됩니다.”
송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주방장의 걱정은 당연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하지만....”
송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하라는 뜻이었기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진 상태였기에 몸무게가 한 3~4 키로는 빠진 듯 보였다. 짐작일 테니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고 말이다.
태우 도련님을 생각해서라도 몸 챙기셔야죠 하는 말에 초반에는 좀 먹더니, 요즘에는 그 말도 통하지가 않았다.
집 안의 구심점이던 강회장님까지 죽자 송이는 더욱 더 힘들어 보였다. 그녀가 일 하는 것을 강회장에게 조언 받곤 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강회장을 든든하게 의지했고, 그의 빈자리가 송이에게 더욱 컸을 것이다.
남편도 잃고, 의지하던 강회장도 잃었으니 송이가 저렇게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를 위로해줄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좋겠는데, 태우 도련님은 아직 너무 어렸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인 그들은 각자 일이 너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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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기 되게 애매하네요 ㅠㅠ
오타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