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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42화 (242/251)

00242  고립과 기다림  =========================================================================

마계의 심장이 있는 곳.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심층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가야 했다.

정보 상인이 준 붉은 보석을 이용해서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은 모두 태상이 감당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보 상인이 그에게 그런 임무를 준 것은,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가 태상이 유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태상도 동의했다.

“이, 인간이다!!”

“그놈이야!”

“악마 학살자..!!”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겁에 질려 도망쳤다. 태상은 귀찮게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제법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악마들은 태상의 앞을 가로막았는데,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의 손에 무참히 살갗이 뜯겨나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태상이 손으로 악마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뜯어버렸다. 강한 편에 드는 악마가 그렇게 그의 손에 한 방에 목숨을 잃자 그들은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 학살자.

죽음의 사신.

인간 따위라고 비웃던 악마들이 요즘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도 모두 저 인간 때문이었다.

“크흐윽....대악마님까지 모두 죽인 놈을 우리더러 무슨 수로 이기라는 거야?”

태상이 지나가는 길은 악마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놈은 지치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력화를 사용하면 아무리 강한 악마라 해도 일격에 죽일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더욱이 악마들은 그가 지난 시간동안 쌓아 온 악명에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중이 아닌가.

“공격을 하면 죽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해?!”

덩치가 그의 수십 배가 넘는 악마라도 그의 손에 닿았다 싶으면 일격에 쓰러졌다. 그러니 누구도 먼저 나서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거다.

“그럼 저놈이 계속 밀고 들어오는데, 두고 볼 거야?”

“네가 먼저 공격 해보고 애기 해! 이 새끼야! 지도 도망치는 주제에!”

악마들이 서로 합심해서 공격을 해보자는 소리를 해도 말만 그렇게 하지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태상은 마치 바다를 가르고 걸어가는 모세의 기적을 보여주듯, 악마들 사이를 유유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이 과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수 십, 수백의 악마들이 단 한 명의 인간을 죽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저 놈은 미친놈이 분명해.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 짓은 절대 못 하지.”

“악마보다 더 미친놈이지.”

악마들이 태상의 손에 잘 닿지 않는 하늘 위로 올라가 그 위가 시커메질 정도였다. 누가 저 놈 안 잡아 가나? 하고 생각만 하면서 악마들이 자기네들끼리 열심히 태상의 행동의 의미를 추측했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지? 우리들을 죽이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들어가기만 하네.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건가?”

악마들의 짐작으로는 그가 누군가를 목적해서 죽이러 가는 건 아닌 듯 했다. 그는 악마를 죽이는 거에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의 목적이 그것이었다면 지금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악마들이 멀쩡하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악마들이 점점 더 많은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들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악마가 마계의 심장의 힘을 흡수했기에 강해진 것이라는 걸 모르는 악마들은 태상이 그것을 노릴 것이라 짐작하지 못했다. 천계의 심장이니, 마계의 심장이니 하는 것들은 강한 악마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던 것이다.

태상은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방향을 체크했다.

이제 곧 베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태상이 노리는 마계의 심장이 있었고 말이다.

베치와 헤어진지도 제법 시간이 된 상태였다.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네.”

베치가 과연 일을 잘 해주고 있을까? 태상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슬슬 목적지에 다 도착했으니 그를 멀찍이서 감시하고 있는 악마놈들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

태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주변에서 그를 감시하던 악마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가 저렇게 멈출 때는 뭔가 사단이 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려대로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기운들에 악마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태상은 부러 그들이 자신의 진짜 목적지를 찾지 못하도록 수시로 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덕분에 그들은 태상이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공격을 한 게 아니라 수시로 하던 공격을 다시 시작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상의 공격이 제법 매서웠다. 마음먹고 그를 따르는 놈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곧 멈추겠지 생각하며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던 악마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쳐야 했다.

주변에 악마들의 기척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태상은 베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대충 이쯤이면 되려나.”

태상은 지도를 살펴 고민을 시작했다.

만약 베치가 오지 않았을 경우, 그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했던 것이다.

일단, 몇 시간 정도 이곳에서 기다리면서 몸을 회복하고 그때까지 오지 않으면 태상 홀로 마계의 심장을 가지러 갈 것이다. 만약 그가 떠난 후에 베치가 온다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으니 결국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마계의 심장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겠다고, 태상은 생각했다.

**

“야!!!!!!!”

“흐억!”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던 타치다는 격한 목소리와 함께 들이 닥치는 누군가 때문에 경기가 일어날 정도로 몸을 일으켰다.

타치다는 자신을 잡으러 온 놈인가 싶어 서둘러 도망치려는데,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나야 나! 베치!”

“뭐, 뭐? 베치? 베치야 누구야?”

또 다른 빚쟁인가?

타치다가 어찌됐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움직이려는 데 베치가 그를 말렸다.

“우리 예전에 같이 일하기도 했었잖아! 나 기억 안 나?”

“같이 일을 했다고?”

그럼 더욱 더 도망쳐야 된다. 왜냐면 그가 사기를 치고 도망쳤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베치가 타치다의 멱살을 잡는 게 먼저였다.

“이 새끼야! 나 진짜 기억 안나?”

멱살을 잡아채서 얼굴을 들이대자 타치다는 발버둥 치다가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 안 나는데....”

“......”

사실 베치도 타치다라는 이름을 듣고 금방 그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만큼 둘의 인연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인연이었던 것이다.

“아아 됐고! 네놈 아직도 살아 있는 걸 보니 능력이 제법인가 보다?”

“음.....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한테 유감 같은 거 있어?”

“아니 없는데? 오히려 만나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알아?”

“그 말 진짜지?”

“그럼!”

베치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타치다는 몸에 힘을 뺐다.

“어이 친구, 그럼 우리 이 멱살부터 좀 놓고 얘기 시작할까?”

타치다가 말하자 베치가 알겠다며 순순히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왜 찾아 왔는데?”

“네 능력이 필요한 일이 생겼어. 그래서 날 좀 따라와 줬으면 해.”

“내 능력? 천계가 무너진 후로는 쓸모없어진 능력인데 그건 왜?”

타치다는 베치의 말에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의문을 표했다. 천계로 가서 시체털이 생활도 이젠 다 끝났다. 마계에선 그런 대규모 전투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기에 타치다의 수입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버렸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빚쟁이가 되어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근데 난 어떻게 찾은 거야?”

“정보 상인한테 샀어.”

“맙소사. 그 개새끼가 아직도 살아 있어? 그놈 완전 날강도야.”

“그건 상관할 바 아니고, 지금도 늦었단 말이야. 한 몫 잡고 싶으면 어서 빨리 나랑 움직이자고.”

베치가 타치다를 계속해서 재촉했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어허~!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따라갈 순 없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필요 한 건데? 그걸 얘기해줘야 갈까말까를 결정을 하지?”

베치가 타치다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지금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태상의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하고 비굴했던 베치가 자신보다 나약한 타치다 앞에서는 상남자의 포스를 듬뿍 풍기고 있었다. 타치다는 조금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했다.

“나도 내 목숨 아까운 줄 안다고!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말 안 해주기 전까진 한 발작도 안 움직일 거야!”

사실 진짜 죽일 듯 달려오면 금세 알겠다고 따라가겠다고 말했을 타치다였다. 베치는 생각 외로 강하게 나오는 타치다를 보며 끄응 신음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그냥 막 끌고 갈 순 없겠지? 베치가 결국 한 발작 물러난다는 듯 말했다.

“네 능력으로 인간계로 가본 적 있어?”

“지금 나보고 인간계로 가라는 거야? 미쳤어? 거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살벌한지 알아?”

타치다가 학을 떼자 베치가 표정을 환하게 피며 박수를 쳤다.

“가본 적 있구나!!”

“.......”

사실 있었다.

인간계에서 전쟁을 했다는 말에 시체털이 일을 하는 타치다가 가만히 있을 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겨우 도망쳐 나왔다. 악마들이 인간들에게 졌기 때문에 말이다.

그 후로는 두 번 다신 안 간다고 철저하게 다짐을 했다.

“인간계는 절대 안가. 거기 가면 그냥 죽음 목숨이라고. 여기서 죽나 거기서 죽나 똑같아.”

타치다가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서 살아 돌아 온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또 가라고?

베치가 단호한 타치다를 달래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생각 잘 해. 지금 네가 모시고 인간계로 가야 할 분이 누군지 아직 듣지 않았잖아!”

“....누굴 모시고 가야 하는데?”

베치라는 놈은 딱 봐도 삼류였다. 그런 놈이 모시는 악마라고 해봤자 그놈이 그거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베치가 타치다에게 어마어마한 자를 말해왔다.

현실성 없는 이름을 말이다.

“악마 학살자.”

“.....이 새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가 했더니 그냥 미친놈이었구나.”

타치다가 생각과 입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베치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금 거짓말 하는 걸로 보여?! 아니야! 진짜라고! 만약 네가 그분을 인간계로 데리고 가준다면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거야. 그분은 지금 마계를 지배하기 위해 손을 쓰고 계셔. 네가 지금 얼마나 큰 기회를 얻었는지 알아? 이건 인생역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아니, 그게 진짜라고 해도 난 싫어. 나보고 인간 놈의 부하가 되라는 거냐? 미친! 아무리 더러운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도 그딴 짓은 안 해!”

“이놈이 속고만 살았나!”

베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놈은 그가 약속한 부귀영화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베치는 놈이 인간의 부하가 되기 싫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눈앞에 이익이 있다면, 놈은 인간의 발을 핥는 것도 할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놈과 베치는 제법 그런 부분에서 잘 맞았다.

“내가 이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만약에 네놈이 그분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네놈 모가지가 뎅강 잘려나가게 될 거라는 건 생각 안 해봤냐?”

“..........”

“그분은 악마 학살자라는 이름을 얻은 분이야. 네놈 하나 죽이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네놈 목에 현상금이라도 걸려봐. 온 악마가 네놈을 그분께 데려가려고 혈안이 되겠지. 내가 지금 그분이 뭐하러 가셨는지 말을 했던가?”

베치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타치다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더 이상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베치의 말은 타치다를 겁먹게 하기 충분했다.

악마 학살자.

그 악명은 타치다도 너무 잘 들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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