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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13화 (213/251)

00213  바로세  =========================================================================

새끼악마가 살고 싶은 본능 때문인지 발버둥 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녀석이 태상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상은 손등으로 대충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새끼 악마를 정확히 내려 친 단검 덕분인지, 어느새 꿈틀대던 녀석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상처가 아물고 있어요!”

새끼악마가 죽어버리자, 그것을 느낀 것인지 여왕의 배가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새끼악마는 다리 하나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을 뿐, 대부분 뱃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배 안에서 녀석을 꺼내기엔 찢어진 레베카의 배 부분이 너무 작았다. 녀석을 완전히 꺼내려면 레베카의 배를 좀 더 갈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녀석을 뱃속에 넣은 채로 그녀의 살을 아물게 할 수도 없었다. 태상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배를 다시 한 번 단검으로 찔러 넣고 아래로 죽 그었다.

고통은 느끼겠지만, 목숨은 잃지 않을 것이다. 방금 전 봤던 여왕의 뛰어난 재생력이 그녀를 살릴 거다.

“아아악!!!!!!!!! 아악!!!!!!!!”

간신히 그녀의 배를 갈라 뱃속에 있는 새끼 악마를 꺼내는 데 성공한 태상은 축 늘어진 새끼악마의 시체를 바라보며 증오서린 눈빛을 했다.

“이제 놔.”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는 것들은 없었다. 일행이 저마다 한숨을 쉬며 레베카의 팔 다리를 놓았다.

새끼 악마를 꺼냈으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잡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몸을 너무 강하게 잡은 터라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이내 그것도 그녀의 재생력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배의 상처 또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의 생각대로 여왕의 몸은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힐러의 힘이 필요 없게 말이다.

일행이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정말 그녀를 혼자 내버려둬선 안 될 듯싶었다. 레베카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용케 정신을 잃지 않고, 희미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태..ㅅ...오.......”

바로 태상이었다.

그는 일단 레베카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안아 올렸다.

피로 얼룩진 이 방에 그녀를 둘 수 없었기에 그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눕혔다. 상처는 다 없어졌지만 아직도 고통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레베카는 이내 겨우겨우 정신을 잃었는지 몸이 축 늘어졌다.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행 모두가 넋을 잃었다. 과거 여왕을 만났을 땐, 불쌍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왕이라는 존재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레베카가 되니 그들의 정신을 엄청나게 갉아먹었다. 태상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온 몸이 피 이에요. 씻고 오셔야 할 것 같은데....”

“하아.”

태상이 지끈 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레베카를 저대로 둘 순 없었다. 태상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말했다.

“그놈을 찾아야겠어.”

“레베카를 저렇게 만든 악마를 말씀하시는 거죠? 하지만 방법이 있을까요?”

유일하게 아이라가 악마를 감지해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대상을 찍고, 그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능력을 갖진 못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능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아이라가 면목 없다는 듯 괜스레 얼굴을 숙였다. 이런 때에 유용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그렇다고 그녀에게 사과를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태상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놈이 아직까지 인간계에 있다면 부를 방법이 있어.”

사샤가 인간계에 왔기에 레베카를 저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 거다. 그러니 부디 아직까지 인간계에 있어줬으면 바랐다.

그리고 사샤를 찾는 것이 생각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천계의 심장 말이다.

마계에서 카카로치라는 대악마가 천계의 심장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태상이었다. 그는 이것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샤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유인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방법이 있다는 소리에 궁금해 하는 일행에게 태상이 자신의 오른쪽 팔에 착용했던 장갑을 벗은 후 말했다.

“이걸 이용하면 놈을 유인할 수 있을 거야. 놈이 인간계에 있는 이유가 이걸 찾기 위해서 일 테니까. 뭔가 반응을 보이겠지.”

“아~!”

확실히 가능성 있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저것이 반응하는 것은 대악마가 가까이에 있을 때뿐이었다.

그때가 아니라면 천계의 심장은 얌전하게 계속 태상의 손바닥에 잠들어 있으니 난감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천계의 심장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면 사샤라는 악마놈이 알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악마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난 이놈을 어떻게 조종해서 놈을 유인할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혜연이는 악마랑 싸울 적당한 장소를 최대한 빨리 물색해주고, 아이라랑 반은 레베카를 부탁해. 될 수 있으면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언제 또 이상한 짓을 당할지 모르니까. 카살라 너는 나랑 같이 가자.”

태상의 말에 일행이 흩어졌다.

카살라에게 자신과 같이 가자고 한 것은 그가 천사이기 때문이었다.

천계의 심장이 천사의 것이니 아무래도 그와 함께 고민을 해본다면 뭔가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카살라는 태상의 오른손 손바닥에 있는 천계의 심장을 손가락으로 만져봤다. 카살라는 천사라는 이유 때문인지 천계의 심장을 다소 천사들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심하지 않아 내버려두고 있긴 했지만 불쾌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걸 바라보면 도대체 무슨 기분이 드는 거야?”

“뭐라고 해야 할까요...자애롭다? 따듯하다? 그 따듯함이 온도를 말하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을 다 감싸 줄 것 같은 따듯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천계의 심장을 바라보면 제가 쌓은 모든 죄업이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제 몸이 덩달아 깨끗해지는 기분이요. 이 기분을 태상님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아쉽네요.”

아니 전혀.

태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네 눈을 보면 이놈한테 홀린 것 같아. 그래서 내 입장에선 별로 좋아 보이진 않고.”

“홀렸다고요? 확실히 천계의 심장을 보면 지켜야 할 것 같다는 강한 의지가 생기곤 합니다. 완전한 천사가 아니기에 자제를 할 수 있을 정도지만요.”

“지켜야 할 것 같다는 의지....그래서 천사들이 그랬던 거군.”

태상이 저것을 파괴하자고 했을 때, 태도가 영 도우려 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그들의 눈은 카살라보다 훨씬 더 했으니 아마도 그에게 살의를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라마스는 그걸 참고서 태상의 손을 잡아 준 것이고 말이다.

그가 자신 때문에 허무하게 죽게 되어 안타까웠다. 그가 있었다면 좀 더 악마들과 싸울 때 훌륭한 아군이 되어 주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태상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천계의 심장을 마찬가지로 들고 도망칠 것이다.

별다른 성과 없이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혜연에게 싸울 장소가 마련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움직였다. 태상은 그 장소에 레베카를 데려 가기로 결정했다.

사샤에게 그녀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확인하고, 방법이 있다면 레베카가 분명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레베카의 몸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더 중요해.”

태상은 사샤를 상대하기 위해 전투조들을 소환까지 했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를 상대하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천계의 심장으로 유인시키는 게 실패 한다 해도 말이다.

전투조는 모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지라 태상 일행이 먼저 전투를 할 장소에 도착했다.

태상은 주변에 건물이 없고, 사람이 없는 장소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야 피해가 적었다. 그냥 악마도 아닌 대악마를 잡아야 하는 것이니 여러모로 쾅쾅거리며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 게 분명했다.

“방법은 찾으셨어요?”

“아니, 근데 대충 어떻게 하면 될지는 알아.”

“정말요? 어떻게요?”

방법은 간단했다.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린대?”

태상이 전투조들이 언제 도착하는지 물었다.

“방금 전에 전부 다 만나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으니까 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릴 거에요.”

10분~15분이라. 그 정도라면 지금 시작해도 충분 할 것이다. 태상이 손바닥을 하늘 위를 보도록 펼치고 말했다.

“불러.”

“예?”

“아니 너한테 말 한 거 아니야.”

“.....??”

일행들이 다들 태상을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상은 자신의 손바닥에 붙어 있는 천계의 심장을 협박했다.

“또 예전처럼 파이고 싶지 않으면 불러. 너 저번에 대악마 흡수했었지? 이번에 부르면 또 흡수시켜 준다.”

태상은 예전부터 천계의 심장이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이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손바닥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화아악!!

“으읏!”

“헉!”

일행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태상은 천계의 심장이 자신의 말을 듣자 만족스러워했다.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놈인 것 같으니 앞으로 잘 써먹으면 될 듯싶었다.

천계의 심장이 계속해서 웅웅 소리를 내며 빛났다.

자, 너희들이 원하는 천계의 심장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어서 미끼를 물어!

태상의 눈동자가 살기로 스산했다. 기절해 있는 레베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행들이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준비 해.”

일행들이 각자 무기를 꺼냈다. 그들은 악마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방을 꼼꼼하게 경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존재와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

“...!!”

바로세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온 몸의 감각이 소름이 돋기라도 한 것 마냥 돋아났다.

천계의 심장!

드디어 천계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낸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감이었지만 바로세는 그것을 생각하기엔 몸이 너무 달아 있었다.

“그래그래!! 역시 인간계에 있었구나. 잘 됐어! 큭큭 진작 이랬어야지.”

바로세의 몸이 빠르게 하늘 위를 가로질렀다.

거리가 제법 되긴 했지만 사샤가 눈치 채기 전에 자신이 먼저 가야 했다. 바로세는 자신을 무시했던 사샤를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천계의 심장을 가질 기회가 왔으니 자신이 먼저 흡수를 해서 놈에게 누가 위인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마음이 급하면 머리가 굳는 법이었다.

그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천계의 심장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천사도 멸망한 지금, 대악마인 바로세를 막을 수 있는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앙키파가 당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그의 실수였다.

“크흐흐, 여기인가.”

바로세가 하늘 위에서 바닥을 내려다봤다. 천계의 심장이 빛을 내뿜으며 어서 그에게 자신을 데려가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앙큼한 것.

자신을 주인으로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먼 곳에 있는 자신을 향해 정확히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을 리가 없었다.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바로세는 분명하게 느꼈다.

쿵!

바로세가 바닥으로 내려가자, 그의 앞에 인간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천계의 심장은 그 인간들 중 한 명에게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감히 인간주제에 천계의 심장을 갖고 있다니,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이 네놈의 명줄을 줄였구나.”

바로세가 분노했다. 인간에게 더렵혀지기 싫어 그에게 아양을 떤 게 분명했다. 어차피 인간을 죽이는 거야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놈이 계약자라고 해도 말이다.

인간들은 그의 등장에 경악하고 두려워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그들은 그가 나타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그를 반기는 눈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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