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2 바로세 =========================================================================
주변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가 깨어나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레베카의 눈동자가 드디어 뜨여지고,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으음.....오빠....”
레베카의 눈동자가 태상을 향하더니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상이 자신의 옆에 있는 건 그녀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태상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래, 레베카.”
“몇..시에요..?”
“글쎄 잘 모르겠네. 3시 정도 됐나?”
“세 시요?”
레베카는 시간을 듣더니 정신이 번쩍 드는지 놀라 눈을 떴다.
“우리 오늘 병원 가기로 했잖아요.”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왜 3시까지 자신을 깨워주지 않은 걸까? 아니, 그보다 내가 왜 3시까지 잠을 자고 있는 거지?
“어라? 반 아저씨? 사로나 언니....혜연...왜 다 여기에 있는 거에요?”
레베카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도 마찬가지로 의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왜 레베카가 저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오빠...”
레베카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태상을 향해 손을 뻗자 그가 그녀의 손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그의 그런 행동에 레베카는 안심이 됐는지 미소를 지었다.
“뭐에요? 깜짝 파티라도 하는 거에요? 나 축하해주려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천천히 설명해줄 수 있겠어? 네가 가야 한다는 병원은 뭐고, 축하는 왜 해줘야 하는 거야?”
태상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레베카는 왜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야 당연히 산부인과 가기로 했잖아요. 오빠랑 우리 아기요.”
“.....나랑 네 아기?”
태상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레베카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응. 우리 아기. 여기 배에...아?”
레베카가 자신의 배 부분을 만지다가 놀라 눈을 아래로 내렸다.
“꺄악! 이, 이거 뭐에요? 내 배가 왜이래!?”
레베카가 비명을 질렀다.
배가...배가 엄청나게 불러 있었다. 마치 임산부처럼 말이다! 왜? 그럴 리가 없었다. 아직 아기가 생긴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배가 부른단 말인가. 물론 어서 아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생각을 그렇게 한다고 진짜 배가 만삭이 되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레베카가 엉엉 울며 태상에게 매달렸다.
“흑흑..흑...내 배가 흑...배가 왜 이래요? 오빠..흑흑...아기가...이게 우리 아기인 거에요? 흑흑!!”
레베카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혜연은 태상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요.”
태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레베카의 등을 토닥였다.
“진정해, 레베카.”
“흑흑..하지만..흑...배가...흑흑...배가 왜 이래요 나? 흑흑..!”
레베카는 필사적으로 태상에게 매달렸다. 태상은 그녀가 여왕에 관한 것을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괜찮다. 괜찮을 거야.”
그 후로도 계속해서 레베카는 오직 태상에게만 매달려 울음을 보였다. 그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아마도 레베카는 큰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반은 차마 우는 레베카를 보지 못하겠는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혜연과 아이라 사로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레베카가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리자 겨우 태상이 그녀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레베카가 울면서 하는 말을 들으며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레베카가 꿈을 꾼 모양이다.”
“꿈이요?”
“응. 근데 거기에서 내가 레베카의 남편이었나 봐.”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런 말도 안 돼는 꿈을...그리고 꿈이랑 현실이랑 구분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이라가 너무 이상하다며 물었다.
“그곳에서 레베카가 내 아이를 가졌고, 산부인과를 가기로 했다더군. 그런데 내가 능력을 써버려서 깨어나버린거고, 그녀를 현실로 오게 만들어 버린 거지. 여왕이 된 후부터 계속해서 그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고. 레베카가 아는 건 많지 않은 듯 해.”
“하.....”
이거야 말로 희망고문이 아닌가.
그녀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모든 게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꿈속에서 그런 것들을 겪은 것을 현실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레베카에게 사샤가 무슨 짓을 해서가 틀림없었다.
“일단 섣불리 말하지 않고, 진정만 시켰어.”
태상 또한 일이 이렇게 되어 여러모로 심정이 복잡했다.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다들 태상이 현명하게 행동한 것이라 생각했다. 레베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태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침묵하다가 말했다.
“레베카를 저렇게 만든 악마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어.”
태상의 말에 다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어떻게 그 악마를 안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베카가 말해준 거냐?”
반이 물었다. 그가 알고 있다면 그것밖엔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태상은 고개를 저었다.
“내 손으로 죽였었던 여왕에게 들었어.”
그의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던 모양이었다. 사로나가 아! 하며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놈이 누구인지 내게 말해줘.”
반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놈을 찾아 죽일 기세였다. 태상은 그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말했다.
“그놈은 대악마야. 일반 악마가 아니라서 혼자 힘으로는 죽일 수 없어. 내가 상대해봐서 알아. 그놈은 강해.”
[아니!!! 강하건 약하건 상관 없어! 죽일 거다. 그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일 거야!! 레베카를 저렇게 만든 놈을 용서할 수 없어!]
반이 살기를 내뿜으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한국어가 어색했던 지라 흥분한 그는 영어로 흥분을 터트렸다.
“반!!”
반이 격한 마음에 주먹을 벽에 쳤다.
쾅!!
벽을 친다 해도 계약자인 그의 주먹이 다칠 일은 없었다. 그의 힘은 일반인을 훨씬 뛰어 넘었기에 벽에 그의 주먹이 박혀 들어갔다.
[진정해! 이런다고 지금 상황에서 레베카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건 아니야!]
태상이 강하게 경고했다. 반은 씩씩거리면서도 그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어 벽에 박힌 주먹을 빼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이마를 짚더니 과하게 흥분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아....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흥분했어.]
다른 일행들은 그의 흥분이 충분히 이해가 됐기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태상이 흥분을 가라앉힌 반을 바라보다가 일행 전체를 향해 말했다.
“지금 우리들이 이런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아. 지금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레베카 본인일 거야. 그러니까 다들 자기 힘들고 괴로운 거에 반처럼 난리치지 말고, 감정 잘 다스려. 레베카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상황을 이성적으로 직시하는 게 필요했다. 그가 상황을 정리를 해주자 다들 자신의 감정을 겨우겨우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레베카의 일로 아무리 괴로워하고. 분노 한다 해도 당사자만큼 힘들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악마들을 낳는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처럼 끔찍한 일을 당하면서 멀쩡하게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그들은 지금 스스로의 감정보단 레베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지금부터 레베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 이렇게 멀뚱히 서 있을 게 아니라 지금 혼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레베카한테 한 마디 얘기라도 더 하라고.”
혜연과 사로나 아이라는 서로 시선을 마주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여자이니 아무래도 남자들과 얘기를 하는 것보단 좀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그녀에게 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혜연은 고민스러워하며 물었다.
“대화를 나누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뭘 얘기해야 하고, 뭘 얘기하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다들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디까지일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태상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한 꺼번에 알리는 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냥 레베카가 하는 말들을 들어주기만 해.”
레베카는 어렴풋이 지금 자신의 주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기분을 풀리게 만들 거라 생각했다.
“그럴게요.”
혜연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
“뭐야!?”
“레베카!!!”
반이 레베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갑자기 들린 비명소리의 주인은 분명 레베카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쾅!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들어간 반은 눈앞에 보이는 끔찍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그의 뒤로 태상 일행이 우르르 들어왔는데, 모두 다 레베카를 보고 나서 할 말을 잃어야 했다.
“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레베카가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기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배를 뚫고 나온 손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베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뱃속을 뚫고 나오는 새끼악마는 그녀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젠장!!! 레베카를 잡아!”
태상이 달려갔다.
다른 일행이 레베카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고, 몸부림치는 그녀의 몸을 똑바로 눕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 그녀의 뱃속에서 살을 뚫고 나오려고 하고 있는 새끼 악마를 죽일 수 있었다. 저 녀석을 죽여야 레베카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아아악!!”
레베카의 비명소리가 여전히 끊어지질 않았다. 어떤 마취도 없이 생살이 갈라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 당연했다.
태상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고, 레베카의 배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뱃속에 있는 새끼악마를 향해 내려찍었다.
사방에 그녀의 피가 튀었고, 태상의 얼굴에도 고스란히 묻었다. 반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태상에게로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뭐하는 거냐!!]
그는 또 다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반에게 소리쳤다.
[뱃속에 있는 놈을 죽여야 레베카를 구해!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태상이 반의 몸을 힘껏 쳐버리자 그의 몸이 쭉 밀려나며 벽에 퍽! 소리를 내고 부딪쳤다. 태상의 신체능력은 이미 반을 뛰어넘어도 한참 전에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공격할 의사는 없었기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은 반이 몸을 일으켰다.
"크윽...."
반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분했기 때문이었다. 태상이 지금 하는 일을 자신이 했어야 했다.
감정적으로 괴롭다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레베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방금 크게 깨달은 것이다.
태상에게 또 다시 빚을 진 듯 했다.
반이 정신을 차리자는 의미로 깊게 심호흡한 뒤 자신의 뺨을 쌔게 쳤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굳건하게 빛났다.
일행이 레베카의 몸을 겨우겨우 막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몸이 여왕이 되면서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힐러였던 레베카가 이렇게 강하게 발버둥 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하지."
아이라가 힘겨워하는 것이 보여 그녀의 몸을 살짝 밀치고 레베카의 다리를 꽉 잡았다.
아이라는 괜찮겠냐며 그를 걱정했지만 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다. 정신 차렸어."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이라는 다른 계약자들에 비해 힘이 약했다. 그녀의 능력이 공격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이다. 역시나 반까지 합세하자 레베카가 발버둥으로 몸부림치는 것이 줄어들었다.
그녀가 그들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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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내가 나쁜 X입니다!!!
하하하...하..하....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