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94화 (194/251)

00194  민성희  =========================================================================

악마?

태상은 그녀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저 여자가 악마에 대해 아주 작은 정보를 가졌다 해도, 태상은 반드시 들어야 했다. 지금 상황은 조금이라도 악마에 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태상은 경고조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럴 이유 없고, 그럴 마음도 없어요. 제가 당신이랑 만나려고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알면 아마 미안해하실 걸요? 왜 이렇게 한 번 만나기가 어려운 거에요?”

성희는 당한 게 많았는지 무척이나 툴툴댔다. 그야 워낙 하루가 멀다하게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고, 이곳저곳을 움직이니 당연히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회사에 연락을 넣어보려 해도 이미 스케줄이 꽉꽉 차있는데다 아무런 명예도 갖고 있지 않은, 그저 계약자라는 것이 특이사항인 성희의 말을 귀담아 들을 이는 없었다.

그의 스케줄에 관한 것은 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감히 알 수도 없었고, 회사에 죽치고 있어도 그를 보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다.

예선전에 가끔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횡재를 한 것은 아마도 그녀의 생애 운을 모두 끌어 모아 생긴 이벤트일지도 몰랐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를 듣기 위해, 태상과 성희는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그녀와 태상은 둘 다 커피를 시키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내가 CMC 사장이랑 마주앉아 있다니, 눈물이 날 것 같네요.”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무작정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짓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태상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은 좀 무서운 얘기일 수 있어요.”

“무서운 얘기? 뭐 악마들이 침략이라도 한대?”

태상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러자 성희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이건 또 무슨 뒷북이야.

태상은 쯧쯧 혀를 찼다.

“난 또 뭐라고.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지, 진짜 알고 있었어요? 악마들이 인간계를 침략할 걸? 제가 말하는 건 지금처럼 찔끔찔끔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엄청난 대군을 끌고 악마들이 인간계를 침략할 거에요!”

태상이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다. 그는 왜 저 여자가 자신에게 그걸 알려주려고 애를 썼는지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 알아. 알고 있었어.”

“알고 있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죠!! 그, 그럼 혹시 천계가 무너졌다는 것도 알아요?”

성희가 펄쩍 뛰면서 말했다. 태상은 그녀가 천계의 일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일단 놀랐다는 티를 내지 않으며 물었다.

“그럼 내가 지금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데? 그리고 천계가 무너진 게 뭐?”

성희는 말문이 막히는지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버럭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천계가 무너졌다는 건, 이제 곧 악마가 인간계에 쳐 들어온다는 뜻이라고요! 그리고 당신은 이제부터 저랑 함께 그들을 어떻게 막아낼 지 생각해봐야 하고요. 일단 설명해야 할 시간이 단축됐으니 그건 좀 괜찮네요.”

성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그 문제에 관해 생각을 가장 많이 해본 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태상일 것이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저 여자는 도대체 뭐하는 생물체인지 모르겠다.

태상이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너 아직도 내 질문에 답 안 해줬다는 거 기억은 하냐? 악마들이 침략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왜 나한테 말하려고 한 거지?”

성희가 태상의 질문에 잠시 머뭇댔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했는지 말했다.

“...그건, 제 능력이 특이해서에요.”

어차피 태상과 성희는 같은 인간, 그러니 즉 악마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같은 편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그러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특이하다?”

“한 번 가봤거나 본 곳은 그게 어디이든 이동할 수 있거든요.”

“어디든?”

태상은 그녀의 능력에 동요를 보였다. 그곳이 어디이든 가능하다고? 차원을 넘는 것까지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녀가 알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태상처럼 이동을 해서 직접 악마들에게 상황을 들으면 됐을 일이니 말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것까지 가능한 건가?”

“맞아요.”

성희가 어떠냐며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짓곤 고개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키가 작고 오밀조밀 귀엽게 생긴 터라 하나도 도도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귀여움을 배가시키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린애 취급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것을 봤을 때, 귀여움 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할 듯싶었다.

“혼자만?”

태상이 대수롭지 않은 능력을 들었다는 것처럼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성희는 자신의 생각처럼 놀라지 않는 태상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다가 말했다.

“당연히 아니죠! 제가 원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함께 이동시킬 수 있어요. 이제 제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어요?”

태상이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가 딱 원하고 탐내하는 것이 제 발로 눈앞에 굴러들어왔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병신이다. 태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우고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 정도 관심은 보여줘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 능력을 이용해서 마계로 갔다가 소식을 들은 거고, 넌 이걸 막기 위해서 날 찾아왔다?”

태상이 예상을 해서 그녀의 행동을 얘기하자 성희가 맞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당신한테 말하면 뭔가 수가 생길 것 같았어요. 적어도 계약자들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잖아요. 지금은 한가하게 대회같은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사람들한테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요!”

태상이 그걸 몰라서 순전히 즐기기 위해 대회를 연 게 아니었다. 그가 대회를 연 것은 사람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성희는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싶었다.

“악마들이 침략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런 짓을 하는거죠? 지금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라고요. 내가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저한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어요. 당신이 나서줘야 해요."

성희의 얼굴이 꽤나 필사적이었다.

그녀는 태상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악마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녀보다 훨씬 더 필사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성희는 마치 태상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를 자신이 설득해야 한다고, 그래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일 거다.

일단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생긴다는 건 태상에겐 기꺼운 일이었다.

"악마가 침략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물론이죠.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잖아요. 우린 서로 힘을 합쳐야 해요. 그러니까 그런 당연한 말 하지 말고, 날 도와줄지 말지 그 대답을 해줘요.”

성희의 말에 태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녀를 돕는 게 아니라 그녀가 그를 돕는 게 될 것이다. 그녀가 생각 못한 것들을 태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계획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꽤나 필사적이네. 근데 당신은 잘못 된 제안을 했어.”

“잘못 된 제안이요?”

성희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봤자 젖살이 빠지지 않은 말랑거리는 볼이 더 귀여워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그쪽한테 가는 게 아니라 그쪽이 나한테 오는 거야."

"???"

성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화들짝 놀라 팔을 엑스자로 만들어 가슴을 가렸다. 있는 것도 모르겠는 빈약한 존재감을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지, 지금 도와주는 대가로 내 몸을 원한다는 거에요? 이런 파렴치한! 그렇게 안 봤는데!!”

그녀의 얼굴에 한껏 배신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를 언제 봤다고 배신감을 느끼고 말고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결과를 도출 시킨 것인지 모르겠다.

태상이 그때, 악당같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대답은?”

성희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고양이들이 경계할 때나 보이는 하악질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태상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악마들의 침략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사실을 떠들어봤자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남자는 달랐다.

그가 한 마디만 해준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것이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악마가 침략했을 때, 좀 더 계획적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CMC 사장은 그녀가 생각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잘못 생각 한 거다!!

성희가 얼굴을 붉히며 분하다는 듯 커피잔을 쥐고 태상의 얼굴에 뿌리려고 했다. 하지만 태상이 먼저 그녀의 행동을 말로 막았다.

“장난이었어.”

그의 표정은 아까 전의 비열했던 미소도, 가벼움이 담긴 미소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놀라울 만큼 진지함이 깃든 굳건한 눈동자가 버티고 있었다.

그냥 여동생 같아서 장난 친 거였다. 저런 몸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악마들이 인간계를 침략하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마계로 쳐들어가서 그들의 군대를 묵살시키는 계획을 준비 중이야. 전쟁터를 인간계로 하면 피해가 너무 커. 그들과 싸우는 장소는 반드시 마계여야 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갖고 있는 이동능력이 필요하겠지. 난 탑을 이용해서 마계로 이동할 수 있는지 조사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이 날 도와준다면 그 조사는 계속 할 필요가 없어지겠군.”

태상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성희는 입만 벙긋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하에 없는 불한당 같았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진지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성희가 더듬거리며 그의 진심을 물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인가요?”

“물론. 네 능력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한다면, 나도 마계에 가서 싸울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걸 두 눈으로 보여주지.”

성희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럼 지금까지 악마들이 침략할 걸 대비하고 있었단 말이네요..?"

"그러기 위해서 세운 회사야."

성희는 자신이 남자를 크게 잘 못 본 것을 인정했다. 자신이 굳이 그를 찾아 올 필요가 없었지도 모르겠다는 것도 말이다. 성희는 어쩐지 시무룩해져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럼 쓸데없이 뒷북을 친 거네요."

태상은 피식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가 이렇게 나타나 준 것은 태상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태상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계를 지키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은 태상에겐 무척 기특하게 생각됐다.

"아니, 쓸데없는 짓은 아니지. 당신이 나한테 왔으니까."

"....!"

성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건 반칙이었다. 알다시피 그의 얼굴은 잘생긴 편이었다. 거기에 능력도 좋고, 방금 전에 그녀는 자신이 우려하던 것을 그가 이미 모두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회사를 만든 거란다. 성희는 어쩐지 심장이 찌르르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단 말인가! 이미 저 남자는 혼자서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대회를 연 건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고, 악마들을 죽이러 마계로 갈 인재들을 구하고 있었던 거야."

"아!!"

성희가 태상의 말에 크게 깨달았는지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알다시피 지금 상황에선 강한 계약자들이 필요하지. 그리고 대회를 열면 전 세계의 실력자들이 모이게 될 거고."

태상의 말을 듣던 성희가 그의 뒷말을 이었다.

"그 실력자들을 스카웃해서 마계로 가는 거군요!"

"맞아."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민성희는 로리!

끼 부리는 태상이.jpg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가시기 전에 추천(찡긋)

그리고 코멘에 CMC '회사' 부분을 CMC로만 해달라고 해주셨는데요, 지적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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