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93화 (193/251)

00193  민성희  =========================================================================

“뭐?! 말도 안 돼!!”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심판의 멱살을 잡았다. 심판은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딱 잘라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대 자신의 말을 번복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왜 실격패야! 난 분명 이겼다고!”

가뜩이나 얼굴이 험악하게 생긴데다가 머리도 빡빡 밀었고, 팔뚝에는 문신이 그려져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남자를 슬금슬금 피했을 우악스러운 사내였다. 하지만 심판은 단호하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당신은 실격패입니다. 사람을 죽일 뻔 했지 않습니까. 경기장에서 나가주시죠.”

심판은 그런 사내보다 훨씬 체격이 작았지만, 남자에게 겁을 먹지 않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또한 계약자였기 때문이다. 절대 민머리 남자보다 낮은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살기를 받고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렇게 못 해! 저 새끼가 뭔데 경기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야!? 그리고 사람이 어디가 죽었어? 저놈 숨 쉬고 있잖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웃는 얼굴로 말 할 때 멱살 놓고 꺼지시죠?”

심판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멱살을 잡았을 땐 비교도 되지 않을 싸늘하고 딱딱한 목소리였다. 민머리 사내가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기세가 절대 그에게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판 녀석이 이렇게나 강한 계약자였다고?

강한 계약자면서 왜 심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민머리 사내는 크흐흠! 하고 헛기침을 하다가 자신의 도끼에 총을 쏜 사내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지금 이 문제 반드시 따질 거다! 후회하지 말라고! 어찌됐든 사람이 안 죽은 거잖아! 그럼 내가 이긴 거지!”

방금 전에 사람을 죽일 뻔 했으면서도 자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꼴에 주변에 있던 계약자들이 혀를 찼다.

그때, 민머리 사내가 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우드득하는 뼈 부셔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심판이 민머리 사내의 삿대질하는 손가락을 꺾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감히 누구한테 삿대질입니까?”

심판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아아악!!!”

심판이 민머리 사내를 경기장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심판이 남자를 향해 시선을 줬다. 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것이 마치 저 잘했죠? 하고 칭찬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태상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저 계약자 모가지가 날아갔을 테니 실격패인 거다. 적어도 살인죄는 면했으니 난 거 아닌가?”

계약자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을 막무가내로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계약자 특별법으로 그들은 죄를 지었을 때, 사형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히 무기징역이 아니라 말이다.

이런 식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녀석이라면 등수가 높아도 등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팀워크에 방해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민머리 사내는 그냥 얌전히 이곳에서 떠나는 게 신상이 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심판에게 내동댕이쳐진 민머리 사내는 불행이도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심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

그것이 얼마나 무식하고 어리석은 짓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알 수 있었다. 태상이 심판의 앞에 순식간에 움직여 그의 주먹을 아주 가벼운 깃털을 막는 것 마냥 막아버렸던 것이다.

민머리 사내가 뭔가 일이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주먹이 와그작 소름 돋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혀를 빼물었다.

“엄연히 룰이라는 게 있고, 이 대회에 참가했으면 그 룰에 따라야 하는 거야. 그쪽 위해서 살인을 막은 거 아니거든? 저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해서 나선 거였고, 살인을 미수로 만들어 준 걸 감사해야지 어디서 덤비긴 덤벼? 고맙다고 엎드려 절 받을 생각은 없으니 얌전히 닥치고 꺼져. 이 남자 CMC 소속계약잡니까?”

“예. 그렇습니다.”

심판은 선수의 신상정보가 든 종이를 갖고 있었기에 확인하고 곧장 대답했다. 태상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 계약, 위약금 물어주고 파기하세요. 그리고 이 남자한테는 저희 CMC 회사 물건은 일절 판매하지 않겠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추가시켜요.”

“예! 알겠습니다.”

주변에서 도대체 태상이 누구이기에 저런 말들을 당연하다는 듯 하는 건지 알 수 없어했다.  태상은 기절한 민머리 사내를 쳐다보지도 않고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구경을 하던 계약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정답을 말했다.

“저 남자 CMC 사장이잖아!”

“뭐?”

“사장?!”

심판은 머리를 긁적였다. CMC 사장이었다고?!

확실히 그가 CMC 사장이라면 저렇게 말하는 건 당연한 권리였다.

다들 벙찐 표정을 지었다. CMC 사장이 예선전에 나타났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그런데 스카우터가 아니라 사장이 직접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그들은 앞으로 있을 경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MC 사장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였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편, 태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 짓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돌아다닌다는 것이 소문이 돌아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라는 것은 다른 이에게 시켜야 할 듯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무런 이득도 챙기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는 제법 훌륭한 인재들을 대거 등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한 팀으로 묶어 훈련을 시키고 있었고 말이다. 그들은 전투조로 만들어 태상과 함께 악마를 죽이러 마계에 가게 될 것이다.

솔직히 계약자들은 그의 눈에 드는 걸 별로 좋아해선 안 됐다. 위험한 곳에 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계약자들과 계약을 할 때, 마계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두 말을 해줬다. 그곳이 위험한 만큼 그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때론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곤 한다.

천사가 인간의 탐욕을 이용해 계약을 해서 힘을 이용했던 것처럼, 태상도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거였다.

이 짓이 꽤나 역겨운 짓일지도 모른다는 건 잘 알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계를 지킬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두려워하고,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그들에게 태상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 하나 빠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국 멸망한 인간계를 보게 될 겁니다. 한 가지는 달라지겠군요. 발버둥이라도 쳐보고 죽거나 혹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멍청하게 죽거나.’

멍청하게 죽는 것보단 발버둥이라도 쳐보고 죽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니겠는가.

“저기요...!”

태상은 시계를 보며 걸어갔다. 생각보다 일찍 예선장을 떠나게 되어 시간이 조금 남았다.

“저기요!!!”

태상은 누군가가 자신의 등 뒤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느꼈다. 태상의 몸이 순식간에 뒤로 움직이더니 다가오는 상대방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의 어깨에 겨우 올만한 작은 키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갑자기 접근한 것은 불쾌한 일이었기에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뭐야?”

눈동자가 또랑또랑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여자아이였다. 이런 여자애가 자신에게 볼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태상의 생각뿐이었는지, 정확히 그를 바라보며 용건을 꺼냈다.

“당신이 사장님 맞죠?”

“......”

아까 예선장에서 본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가 맞다고 동의를 하자 여자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내가 당신을 만나려고 그동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요?”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지금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자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고 있어야 하겠는가.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주자 여자아이는 자신의 잡힌 손목에 시선을 주었다. 이걸 풀어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태상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아이와 거리를 벌리면서 팔을 놓아주었다.

"어린애가 이런 데 돌아다니는 거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태상이 훠이훠이 하며 손으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자 여자아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린애 아니에요!!“

어린애 취급을 받은 게 무척이나 서러운 모양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태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아이의 몸을 뒤로 밀었다.

“집에 가는 법은 알지? 차비 없으면 빌려줘?”

“이익!! 차비 있어요! 그리고 집으로 안 갈 거에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만났는데 이대로 그냥 돌아가요?!”

여자애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인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지만, 이런 고등학생 여자애한테까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여기다가 싸인 좀 해주세요. 등등등....그런 거 하는 거 딱 질색이었다.

그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걸 해줄 의무도 없었다.

“싸인이니 사진이니 그런 거 안 찍으니까 헛고생하지 말고 어여 들어가.”

송이가 남자 아이를 낳아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 딸이 저러고 다니는 건 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만약 그의 딸이 연예인이 좋다고 위험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차마 거기까지 생각하고 태상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 후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무슨 짓이든 다 할 것 같아서 생각을 멈춘 거였다.

그때, 여자에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지갑을 꺼내 그의 얼굴 앞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이럴 줄 알고 가져 왔어요!! 민증 확인해보세요. 저 23살 민성희! 성인 맞아요!”

여자애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태상은 솔직히 중학교 3학년이나 혹은 고등학교 1학년 일 거라 생각했기에 의외라는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다. 더 이상 태상은 여자애 아니, 저 여자에게 신경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내가 네 말에 대꾸를 해주고 있었던 건, 네가 미성년자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른 된 도리로 그런 거였어. 근데 성인이네? 그럼 난 더 이상 그쪽이랑 볼 일 없다는 거야.”

태상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성희가 다급하게 달려와 태상의 앞에 두 팔을 벌려 막았다.

“어디 가는 거에요! 사람이 말하고 있잖아요!”

“나랑 대화하고 싶으면 내 비서한테 스케줄 잡고 와라.”

태상이 땅을 박차고 뛰어 성희의 몸을 뛰어넘어버렸다. 이 정도면 따라오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뒤를 힐끔 보는데, 웬걸! 성희가 그의 뒤를 곧잘 따라와 있었다.

“뭐야? 계약자였어?”

“맞아요! 그리고 난 1세대 계약자에요. 그러니까 어린애 취급하면 가만 있지 않을 거에요.”

성희가 으르렁댔다.

악마 계약자니 천사 계약자니 구분하는 말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기존 계약자와 새롭게 만들어진 계약자를 구분하는 말은 있었다.

그게 바로 1세대 계약자, 2세대 계약자다.

2세대 계약자는 악마의 심장을 섭취하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계약자였고, 1세대는 악마나 천사들과 계약으로 만들어진 계약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세대보단 1세대 계약자가 훨씬 더 강한 편이기에 1세대가 대우를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원을 봤을 땐 1세대는 현저히 수가 적었고, 2세대는 셀 수없이 많았다.

초반에 있었던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들간의 다툼이 그들을 희소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날 찾아 온 이유가 뭐지??”

그녀가 2세대가 아닌, 1세대라는 사실 덕분인지 태상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할 수 있었다.

성희는 태상이 얘기를 뭔가 들을 것 같은 관심을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말했다. 태상이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랐기에 서둘러 본론을 꺼내야 했다.

“시간 좀 내주세요. 당신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제가 할 말은, 악마에 관한 일이에요.”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중간에 내용 끊겼던 것 죄송합니다.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서 그냥 삭제했어요!

가볍게 쓴 건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고 있는 제가 징지에 눌려서 숨이 막힐 것 같아 쓴 건데..

추우우우처어어어언<<목청 터저라 외치니 추천이 많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