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95화 (195/251)

00195  민성희  =========================================================================

“대단해요!”

성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하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그를 찾다가 그녀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오랜 시간 준비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안도감이 들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좋았을 테고 말이다.

“너에 대해 좀 더 알려주겠어?”

그녀의 능력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 뉘앙스가 묘해서 성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가 뭔가 다른 사심이 있는 건가 싶지만, 태상에겐 가정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크흐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접었다.

“제 능력이 제일 궁금하시겠죠?”

물론이었다. 그녀가 정말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선 확실하게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성희가 그럼 여기에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할 수 없어요. 아니,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좋아요. 눈에 엄청나게 띄거든요. 그리고 마계에 가면 악마들이 있으니까 준비가 필요해요.”

“한 번 이동한 후에 다시 이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건가?”

“물론 당연히 필요하죠.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공짜 여행을 하기엔 좋지만, 전투 쪽으로는 영 도움이 안 돼요.”

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용시간이 길어진다고 했다. 차원과 차원을 이동할 때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말이다.

“그동안 악마를 아예 안 만날 순 없으니까 준비를 해야 갈 수 있어요.”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태상은 너무 바빴고, 그녀와 당장 사라질 여건이 되질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굳이 능력을 거짓말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단거리만 확인하는 것으로 일단 그녀를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말한 모든 것이 진실이었기에, 그녀의 진실을 믿어주겠노라 생각하고 있었다.

태상은 한 번 결정한 일을 두 번 고민하지 않았다.

“네가 한 번 가봤던 곳이어야 갈 수 있다고 했나?”

“네.”

“혹시 CMC에 가본 적 있어?”

당연한 소릴 한다. 그곳 로비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보고 다녔다.

성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상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그곳으로 가봐.”

성희가 태상의 손을 보더니 잠시 머뭇대다가 말했다.

“...여기에선 안 된다니까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해요.”

“아아.”

태상이 깜빡 했다며 손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과 성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이 어디일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인파가 많은지라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저 건물 안이면 될 것 같은데.”

그때, 태상의 시야에 건물 하나가 보였다.

딱히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었기에 성희 또한 적당할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안은 위 아래로 계단이 보였다. 상가 건물이긴 했지만, 사람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성희가 능력을 쓰겠다고 말하려는데, 태상이 카페에서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 잡고 뭐해?”

“음...,”

성희는 태상이 조금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동하려면 접촉을 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가끔 책에서 함께 이동을 할 땐 시전자와 몸이 닿아 있어야 한다고 설정을 해놓는 곳이 있어서 이런 오해를 가진 이들이 있곤 했다.

성희는 태상에게 사실대로 말을 할까...머뭇대다가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이, 이동 할게요.”

“그래.”

태상이 몸을 그녀에게 더 밀착시켰다. 그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것뿐인데도 훅 들어와 성희의 눈동자를 갈 곳 잃게 만들었다.

태상의 가슴이 성희의 얼굴에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어쩐지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뜨거운 것 같았다. 성희의 얼굴이 사과처럼 달아올라 있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

태상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그녀가 이동하기를 기다렸다.

그와 맞잡은 손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성희는 정신 차리자 생각하며 후우 심호흡하고 말했다.

“눈이 따가우실 거에요. 빛이 엄청 환하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눈 보호를 위해서라도 감고 계시는 게 좋아요.”

그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가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곤 태상이 대답하기 전에 능력을 사용했다. 환한 빛을 뿜고 있는 기운들이 태상과 성희의 발에서 시작되어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성희는 태상의 품에 와락 안겨 있었다. 태상은 눈을 뜨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고, 자신이 화장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조는 다르지만 익숙하게 보아왔던 화장실 구조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여자이다 보니 여자 화장실을 고른 듯싶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CMC 건물 화장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태상은 소매에 넣어 두었던 단검을 다시 소매 깊숙이 넣어놓고, 성희의 몸을 풀어주었다.

“흐..흐으아.”

성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미안한 말이지만, 태상은 그녀가 자신을 데리고 그를 위협하는 어딘가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고, 신뢰를 가질 만 했지만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그가 그녀에게 몸을 밀착시킨 것이었다. 부러 접촉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말이다. 그녀가 자신을 피해 도망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을 한 것이다. 그의 손에 성희의 손이 잡혀 있는 이상 절대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이동되어 진 곳은 CMC 건물 화장실이었다. 그녀의 모든 말들이 거짓말이 아님이 증명 된 순간인 거다. 하지만 그런 태상의 속내를 몰랐던 성희는 처음 느껴보는 낯선 남자의 강한 향기와, 그의 넓은 가슴에 안겼던 강렬한 기억 때문에 거의 해롱거리는 상태였다.

“그, 그...그....”

성희가 울상을 지으며 태상을 올려다봤다.

“나가지.”

벌겋게 달아올라 눈물을 담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성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헛기침이 나올 것 같아 태상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화장실을 나서는 도중 여자를 마주치진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성희와 함께 이동되어진 곳은 CMC 1층 로비 화장실이었다.

성희가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 붙었다.

“앞으로 이곳으로 출근해.”

“네?”

성희가 잠시 생각의 늪으로 들어가 별의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라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태상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내일부터 CMC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성희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를 도우려면 CMC에 다녀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얼떨결에 취직이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것보단 태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물론 화장실에서 얼결에 그의 품에 안긴 것 때문에, 그를 볼 때마다 자꾸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곤혹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로비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그 목소리는 어설픈 한국어였기에 태상이 금방 대상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사로나.”

“태상.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요즘 한참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그녀였다. 아이라가 어찌나 성화를 부리는지, 어쩔 수 없이 빡세게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 존댓말과 반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태상은 그녀를 위해 불어로 말했다.

[그냥 편하게 해.]

“안 됩니다. 아이라한테 혼나.”

태상은 피식 웃었다.

성희는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사로나를 바라보며 헤에...하고 넋을 잃었다. 모든 것이 작기만 한 성희와는 달리 사로나는 쭉쭉 뻗은 몸매에 큰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 등등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서양인이었기 때문이다.

완전 기에서 밀린 성희가 주춤주춤 태상의 뒤로 자신을 숨기기 시작했다.

사로나는 그런 성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넣고 있었기에 그녀를 향해 한국어로 뭐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불어로 말했다.

[뒤에 귀여운 아가씨는 누구?]

그녀는 아이라를 떠올리게 만드는 귀여운 아가씨를 왜 태상이 만나고 있는 건지 의아했다. 딱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자아이와 태상이라니. 뭔가 굉장히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안 그래도 소개 시켜주려고 했어. 그녀의 능력이 우리한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도움?]

사로나의 시선에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서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계약자 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사로나가 매끄럽게 가장 많이 하는 한국어를 내뱉었다. 성희는 그녀에게 짙은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소심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사로나는 아이라가 생각난 모양인지,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공간이동을 능력으로 갖고 있어. 그리고 마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의 말을 들은 사로나가 놀라워했다. 그녀가 계약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런 엄청난 능력까지 갖고 있을 줄 몰랐다.

[그게 정말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회장에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지. 일단 공간능력자인 건 확실해. 마계에도 다녀왔는지, 악마들이 이곳을 침략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어.]

사로나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정말 그녀의 능력은 그들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생긴 것은 어린 아이 같아도, 그녀의 마음가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어른보다도 성숙하고 어른스러웠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킴 받는 자와 지켜주는 자.

하지만 태상이 원하는 것은 후자였고, 그럴 만큼의 용기를 가진 이들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능력도 얻고,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이 깃들어 있는 동료 또한 얻었으니 일석이조였다.

마계로 갈 이동수단이 확실해진 것은 태상에게 아주 기쁜 성과였다.

더욱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것 아닌가.

태상은 자꾸만 사로나의 가슴이라든가 가슴이라든가 가슴이라든가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성희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뜻밖의 행운으로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회는 어느새 무르익어 드디어 예선전을 끝내고 올라와 본격적으로 경기중계가 시작되는 본선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잡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태상은 스카웃을 할 때, 실력이 좋은 이들에겐 손을 뻗지 않았다. 그들은 충분히 실력을 뽐낸 후에 스카웃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어중간한데, 전투에 감각이 제법 되는 이들을 뽑아갔다.

그들이 경기를 포기하고 그와 계약을 한 것도 모두 자신의 실력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등을 할 자신이 없으나, 혹시나 하고 등록을 했던 이들은 자신의 앞에 우연히 떨어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건진 인재가 총 40명이었다. 그들은 지금 대회를 구경하지 않고 실력을 쌓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이제 본선에 진출한 다양한 실력자들이 태상의 손으로 들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회 경기장 주변에는 이미 장사치와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태상은 그들을 딱히 막지 않고 허락을 했다. 굳이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회를 통해 돈을 벌려고 했다면 저런 이들을 막고, 회사에서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판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넘치도록 돈이 많았다.

태상은 대회를 시작할 때 축하 인사를 해야 했기에 VIP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송이가, 왼쪽에는 혜연이 있었고 뒤에는 그의 길드원들이 자리 잡았다. 한 마디로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CMC의 주요 인사들이 앉은 VIP실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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