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안 =========================================================================
"좋아. 그럼 나도 조건을 걸지. 네놈이 인간계 일을 정리하지 못하고 돌아오면 네 목을 내놔."
"사샤!"
토다베스가 과하다는 생각에 그를 불렀지만, 이미 둘의 눈에 불이 붙은 터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럼 나도 대등한 조건을 걸지. 나도 네 목숨을 갖겠다.
"좋아."
너무 간단하게 이뤄진 내기였다. 토다베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앙키파는 사샤의 거만한 태도를 한 시라도 빨리 뭉개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회의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보여주지!"
앙키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간계로 가기 위해 회의 도중에 뛰쳐 나간 것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걸 보니 꽤나 자신만만해 보였다. 사샤가 어이없어져서 좌중을 향해 말했다.
"쟤 왜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흥이 식은 듯 사샤도 앙키파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미없어. 어차피 회의 결론은 천계의 심장을 찾는 거 아닌가? 내 관할은 알아서 알아 볼 테니 회의는 이만 끝내자고."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나머지 대악마와 토다베스는 순식간에 서로 목숨을 건 내기를 성사시키고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끄응...하고 골치 아픈 신음을 내뱉었다.
"저 둘의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는 걸로 하고, 모두 천계의 심장을 찾는데 주력해주게."
토다베스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저 둘이 지금은 으르렁거리며 목숨을 내어 놓느니 마느니 해도 다른 이들이 막는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대악마들이 그의 말에 알겠다며 말했다.
사샤가 사라지기 전에 했던 말은 정확하게 회의의 결론이었기에 토다베스가 말했다.
"해산하기 전에, 천계의 갑작스러운 파괴로 인해 그곳에 있던 많은 악마들이 휩쓸렸다. 그러니 각자 군대인원을 잘 파악해두는 게 좋을 거다."
천계에 있다가 도망쳐 온 악마들이 있긴 했지만, 그곳이 무덤이 된 악마들도 적잖이 많았다. 덕분에 천계에 파견을 나간 토다베스의 군대에도 구멍이 뻥 하고 뚫려버린 상황이었다.
"어쩐지, 그래서 우리들한테 소식이 안 들어왔던 건가."
너무 많은 악마들이 죽어서 소식을 전해 줄 놈들이 없던 것이다. 그래서 토다베스가 말을 하기 전까지도 그들이 천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고 말이다.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물론 어차피 천사가 멸종 되기 일보 직전인 지금, 그런 큰 피해를 입었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긴 했다. 싸울 이가 없는데 뭐하러 많은 군대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작 해봐야 인간밖에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계약자라고 하면서 약하디 약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데, 그런 행동은 악마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라졌다. 다들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사샤와 앙키파의 일 때문에 회의의 주제가 바뀌어버렸지만,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천계의 심장을 찾는 거였다.
어차피 천사들이 가봤자 마계에 있을 테니, 악마들을 풀면 결국 붙잡게 될 일이었다. 하지만 토다베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천사가 천계를 붕괴시키면서까지 그것을 들고 마계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토다베스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수를 예상해서 대처를 해야 했다.
그가 대악마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사령관 칭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계획을 짜고, 실행시키게 하는 것이 사령관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그는 한 가지 문제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서 생각을 해야 했다.
천사들이 마계에 숨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이상한 점이 많은 일이었다. 자신이 천사였다면 차라리 마계보단 인간계에 몸을 숨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곳으로 도피하지 못하도록 천사들의 이동을 막아 둔 건 바로 악마 자신들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구멍이 생겨 도망쳤다면?’
그 가능성을 아예 배재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계도 따로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인간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앙키파에게 알려야 했는데 그가 흥분한 나머지 먼저 움직여 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토다베스는 앙키파 말고 다른 악마를 파견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때에 일이 어긋나다니...."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천사들이 왜 굳이 천계를 무너지게 했느냐였다. 토다베스는 천사들이 당연히 천계의 심장을 봉인하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천사들에겐 그 것 이상의 선택지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변수가 생겨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토다베스는 정확히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에 한참을 끙끙댔다.
안타깝게도 그는 마계에 계약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해서 그의 머릿속엔 계약자라는 존재가 중간에 끼어들었을 것이란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좀 더 확장 된 사고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다베스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리고 그 정보 부족은 그의 생각을 철장에 가두듯 답답하게 만들었다.
천계의 심장이 사라졌다는 것이 토다베스의 완벽한 계획을 처음으로 어긋 냈다. 그리고 한 번 어긋난 것이 맞물리지 못한 시계부품마냥 모든 일들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의 그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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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상의 손목을 덥석 잡아채더니 손바닥을 뒤집어 태상에게 물었다.
“이거 뭐야?”
“응?”
태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송이에게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얼결에 그게 거기 박혀버렸어.”
“그거라면, 설마 네가 말했던 천계의 심장 말하는 거야?”
“응.”
송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의 손바닥에 박힌 것은 돌처럼 생겼던 것이 박혔다고 하기엔 말이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손을 움직이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게 박혔긴 했지만 계속 방치하기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보였다.
송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빼야 되는 거 아니야? 이걸 왜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어! 위험한 거면 어떡해.”
몸에 이상이라도 주는 거라면 큰일 아닌가! 이렇게 멀뚱히 보고만 있어선 안 됐다.
“손바닥을 칼로 째서 빠져나올 놈은 아니야.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된 거겠지. 평생 이렇게 하고 다닐 생각은 없는데, 당분간은 이러고 다녀야 할 것 같아.”
송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의 눈썹이 일그러져 있었다. 태상이 그녀의 미간을 엄지로 쓸며 말했다.
“주름 생긴다 너.”
“지금 주름이 문제야? 그리고 비싼 화장품으로 관리 받아서 안 생겨.”
결혼 후, 송이의 얼굴이 나날이 반짝거려졌다. 세연이 그녀를 끌고 마사지와 병원을 다니기 때문이었다. 성형수술은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시술을 받으라고 자꾸만 권유를 한다는데, 그냥 레이저를 받는 걸로 대신하고 다닌다고 했다.
태상은 성형수술로 예뻐진 여자애들은 이미 너무 많이 만나봐서 그게 그 거였다. 송이 그대로의 특유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그걸 수술로 헤치는 건 절대 싫었다.
"병원에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아서, 이 손을 누구한테 보여줘. 무슨 핑계를 대고."
더욱이 그런 것들로 천계의 심장을 섣불리 꺼내드는 건 싫었다. 조심, 또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것이 바로 천계의 심장이다.
"일단 장갑 같은 걸 끼고 다녀야 할 것 같아. 붕대로 감으면 마나건을 못 쓰니까."
하필이면 오른쪽 손바닥에 박혀서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송이는 연신 그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걱정을 했다.
태상은 송이가 보기 전, 이 손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천계의 심장이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해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환하게 빛을 내뿜던 것이 거짓말인 것마냥 그의 손바닥에 박힌 심장은 조용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피를 뿌려보았는데, 다른 반응이 생기진 않았다.
"?"
그때, 돌연 태상은 자신의 손바닥을 두 손 다 펼쳐서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른쪽 손바닥에는 여전히 천계의 심장이 박혀 있었고, 왼손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그런데 왼손이 멀쩡하다는 게 태상을 의아하게 만든 것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천계의 심장이 또 다시 피에 반응을 하는지 보기 위해 그의 왼쪽 손바닥을 칼로 그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왼쪽 손바닥에 나 있어야 할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손바닥에 CMC 회사에서 개발한 체력포션을 바른 것도 아니기에 이렇게 흉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는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올라간 덕분에 재생력이 강해져 다른 이들보다 상처가 빨리 낫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괴물같이 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마디로 몸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태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그래?"
송이가 놀라자 태상이 일단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부렸다. 그는 처리할 게 남은 걸 깜빡 했다며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이동했다.
그가 단검을 쥐고 다시 왼쪽 손을 그었다.
화끈거리며 상처가 벌어지고, 그 속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갈라졌던 살이 순식간에 아물고 다시 멀쩡한 모습을 되찾았다. 흐르던 피도 어느새 멈췄고 말이다.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아니었다면,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천계의 심장 때문에 몸에 변화가 생겼다.
태상은 그것을 직감하고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상처를 빠르게 재생시키는 현상 자체는 그에게 해로울 것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설명 할 수 없는 현상이 몸에 일어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건 뭐하는 물건인 거야?"
파괴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용이 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손바닥에 딱 달라붙어 버렸으니 흡수도 안 될 것 같다.
아니 이젠 파괴하려는 시도도 못할 듯 싶었다. 저걸 파괴하려면 그의 오른팔이 함께 희생 될 테니 말이다.
"이거 설마 일부로 파괴 안 되려고 내 손바닥에 붙은 거 아니야?"
살아 있는 생물체도 아닌데, 그럴 리가 없지만 어쩐지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이런 엄청난 재생력을 준 걸 보면, 마치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니 파괴할 생각 말고, 서로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 같기도 했다.
태상은 대답 없는 천계의 심장을 빤히 내려다 보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지금 당장은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오냐, 어디 그럼 네가 얼마나 쓸모 있는 녀석인지 잘 어필해봐. 안 그러면 널 반드시 파괴해버릴 테니까."
태상이 천계의 심장이 살아 있는 것마냥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의 재생력을 올려준 것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분명 더 쓸모 있게 이 녀석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차원을 유지시키던 어마어마한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안이 자신을 죽이러 왔으니, 다른 천사들이 살아 있다면 그를 노리려 할 것이다. 앞으로 악마들도 천계의 심장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찾아 다닐 것이고 말이다.
태상이 그들에게 천계의 심장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그들의 공격에 대비를 해놓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이 필요하다면 천계의 심장을 이용하기도 할 것이다.
파괴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용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무너져버렸다. 계약자들이 과연 악마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A등급 악마들을 죽이던 계약자들로 하여금 그에게 희망을 주긴 했지만 말이다.
태상은 자신의 어깨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그에겐 인재가 필요했다. 악마와 싸울 군대가 말이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다음편은 짧은 에피소드입니다.
쉬어가자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