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8 안 =========================================================================
그걸 쥐고 있다가 갑자기 다친 터라 천계의 심장에도 그의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태상은 오른손의 상처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 천계의 심장을 왼손으로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쪽 손을 천계의 심장에 가져다 댄 순간,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화아아악!
“윽!”
천계의 심장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과한 빛에 태상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의 방 안이 천계의 심장에서 내뿜는 빛 때문에 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태상은 자신의 손바닥을 다시 펼쳐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개같은 상황이야?”
천계의 심장이 손에 났던 상처 안으로 박혀 들어가 있었다.
그가 한 일이 아니니, 천계의 심장이 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상처를 낸 것도 천계의 심장이 맞는 듯 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그의 피가 반응을 시킨 거라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기운들이 넘실거리며 퍼지고 있었다. 이 현상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눈을 어지럽히던 빛이 곧 사그라졌다.
하지만 천계의 심장은 여전히 그의 손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태상이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봐도 말이다.
생활하는 데에는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아보였다. 다만 외향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게 뻔했기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칼로 째서라도 빼야 하나?
태상은 복잡한 머릿속 때문에 골치가 아파와 이마를 짚었다.
**
마계 심층부.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러 악마들이 있었다. 그들은 악마의 영역에서 넘어가 신의 영역을 넘볼 만큼의 강력한 대군주의 자리에 올려 선 이들이었다.
악마들은 그들을 향해 ‘대악마’ 라고 칭송했다.
오랜 세월동안 그들을 지겹게 했던 천사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천사들에겐 없는, 일정 수준 이상의 존재들. 존경받아 마땅한 강력한 전사들 말이다.
그 때문에 그들을 따르는 악마들의 수는 감히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악마들의 자랑이었으며, 존경받는 군주였고, 강력한 힘을 가진 전사였으니 말이다.
그때, 널찍한 어깨에 달려 있는 망토를 휘날리며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들의 시선이 방금 들어 온 이에게로 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명, 한 명 저마다 각자의 존재감이 강했고, 망토를 휘날리며 들어오는 그의 존재감 또한 다른 이들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토다베스, 오랜만이군.”
“아아.”
토다베스는 대악마 앙키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답하고, 좌중을 향해 말했다.
“천계에는 천계의 심장이 없었다.”
“그럴 리가...그놈들이 그걸 갖고 다른 짓을 할 리가 없는데?”
“뭐 이렇게 소란을 떠나? 천사들이 다른 곳으로 빼돌린 거겠지. 찾으면 될 일이다! 제깟놈들이 도망쳐봤자지.”
대악마 사이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토다베스가 긴 대검을 땅에 박아 넣고 말했다.
검신이 매끄럽게 땅에 박히자, 그 소리를 들은 대악마들이 토다베스에게 다시 시선을 두었다.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 천계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보니 말이야."
쾅!
"뭐라? 천계가 무너져?!"
대악마 앙키파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가 내려친 테이블은 산산조각나버리고 말았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대악마 사샤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순식간에 테이블이 다시 모습을 되찾았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았던 마냥 말이다.
그 일련의 과정이 신기할 만도 하것만, 부셔졌다가 다시 새 것처럼 깨끗해진 테이블을 신경쓰는 악마는 없었다. 모두들 천계의 심장이 사라지고, 심지어 천계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경악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치밀했고, 완벽했다.
그런데 모든 계획 중 가장 중요했던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다니! 대악마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른 계획이 틀어졌다면 이렇게까지 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돌발상황을 예측해왔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수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천계의 심장이 사라지고, 천계가 무너지는 것은 그들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은 경악적인 일이었다.
"천계가 무너지건 말건 그건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우리들의 목적은 건방진 천사 놈들을 멸종시키고 천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목표는 천계의 심장을 갖는 거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군.”
"도대체 뭐가 잘못 된 거지? 어느 부분에서 착오가 생긴 거야?"
악마들이 분노하며 물었다. 토다베스는 표정변화 없이 그들에게 말했다.
"착오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우리들의 계획대로 진행됐어.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군."
착오가 없다.
그게 더 악마들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변수가 이런 일을 만들어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변수가 있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그걸 모르겠으니 더욱 문제겠군."
앙키파가 말했다. 토다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계는 이미 무너져서 그곳에 있던 많은 악마들과 함께 사라졌다. 증거를 찾으려면 현장으로 가야하는데, 현장이 아예 사라져버렸으니 방법이 없었다.
"일단 유일한 단서는 천사들이 천계의 심장을 들고 어딘가로 이동했을 거라는 거다. 천계의 심장이 천계에 없어 재기능을 하지 못하니 그곳이 무너진 걸 거다. 인간계로 이동시키는 걸 막아뒀으니 지금으로서는 마계에 있다는 게 맞겠지."
대악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도망친 곳이 자신들의 마당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대악마가 으드득 이를 갈며 분노를 표했다.
"어리석은 멍청한 놈들. 감히 마계에서 쥐새끼처럼 숨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글쎄, 일반적인 천사들이었다면 천계의 심장을 봉인시키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다. 천사가 천계의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마계로 온 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 중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그것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럼 모든 계획을 뒤로 미루는 건가?"
그들은 천계의 심장을 되찾은 후 해야 할 계획들이 있었다. 그동안 완벽하게 계획대로 흘러가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뒤에 있는 계획들은 미뤄야 했다.
“본래 계획은 천계의 심장을 취한 후, 인간계를 복종시키는 거였지만 일이 틀어져 천계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으니, 인간계를 복종시키는 일이 늦어지게 됐다. 여러모로 그대들의 협조가 필요할 거다.”
“굳이 천계의 심장이 있어야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앙키파가 토다베스의 말에 반박을 하고 나섰다. 그는 좌중을 훑다가 토다베스를 향해 다시 시선을 주고 말했다.
“아무도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 내가 나서야겠군. 내가 직접 인간계 일을 처리하고 오지.”
“앙키파 네가?”
앙키파가 인간계를 복종시키고 올 수 있을 거라는 건 모두들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기껍게 나설 줄은 몰랐기에 의외라는 시선을 주었다.
“다들 몰랐나 본데, 난 인간들을 제법 좋아하거든.”
앙키파가 킬킬거리며 웃음을 보였다. 토다베스는 그게 정말 인간들을 좋아해서 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됐건 하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있겠나?”
“날 뭐로 보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거지?”
앙키파가 기분 나쁘다는 듯 크르렁거렸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인간들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들처럼 능력을 쓴다고. 너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하여간 네놈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 그런 충고 따위 필요 없어.”
앙키파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그 모습을 보고 토다베스는 그것보라며 혀를 찼다. 이렇게 성질이 사나워서야 어디 제대로 인간들을 다룰 수 있겠냔 말이다. 둘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자, 그들을 말리는 목소리가 나타났다.
“그만.”
대체적으로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악마들의 외형과는 달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목소리도 여자처럼 얇았고 덩치도 작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토다베스와 앙키파는 기운을 수습하고 그 목소리의 말을 따랐다.
“사샤, 하지만 이 녀석이 날 무시했다구!”
“무시한 게 아니라 걱정한 거잖아. 넌 걱정이랑 무시도 구분 못하는 머저리니?”
악마나 천사나 인간처럼 성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샤라고 불린 악마는 여성이라고 생각 될 만큼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머릿결이 허리쯤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방금은 토다베스가 한 말이 옳았어. 너 혼자 인간계를 상대하는 건 무리야. 분명 잘난 척 하려고 혼자서 움직이려고 했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내 말 듣고, 네 군대를 데리고 가도록 해. 인간들이 반항을 하면, 그들로 그곳을 망가트려버려. 아예 그냥 천계처럼 멸종시켜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딴 것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뭐할 거야?”
천사보다 나약한 존재이다.
천사들은 살려두면 후환이 될 존재들이라 모두 죽여 버린 케이스였지만, 반대로 인간들은 살려둘 만큼의 가치가 없는 놈들이었다.
“쓸모 있게 쓰면 되지. 난 그들의 나약함을 좋아하지. 그 나약함을 감추려고 발악하는 것도 귀엽고.”
앙키파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사샤가 토다베스의 편을 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만약 인간들이 정말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러 몇몇의 악마들을 인간계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악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미리 공포를 안다면 굳이 귀찮게 상대하지 않아도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앙키파는 사샤의 말처럼 혼자 가도 충분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인간들이 감히 우리들의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흐응~? 그럼 순순히 우리들한테 납작 엎드릴 거라고 생각했어?”
사샤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 게 우스운 듯 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들은 약하다. 약자는 강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게 당연하지.”
앙키파가 인간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성향 때문이었다. 악마들은 압도적으로 강함을 보여주는 대악마가 아니라면, 수시로 덤벼든다. 그들에게 강하지 않은 것은 수치였기에 그랬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나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강자에게 들러붙어 그의 강함을 자신도 가지려고 한다. 그들의 탐욕이, 나약함이 앙키파는 제법 기꺼웠다.
“인간을 좋아한다곤 했지만, 그들에 대해선 잘 모르는 구나.”
사샤가 쯧쯧하며 혀를 찼다. 그러곤 예언이라도 하는 것 마냥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굉장히 단호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난 알아.”
뭘 그렇게 잘 안다고 하는 건가!
하지만 여유로운 사샤의 얼굴은 무척이나 단호해서 앙키파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자, 그럼 어서 가보도록 해.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하지 않겠어?”
“......”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한 앙키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사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인간들에게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면, 그들은 항복을 할 것이다.
사샤가 인간들이 그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자신한다면 그는 인간들이 자신의 힘에 굴복할 거라는 걸 자신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철썩같이 믿었다.
"만약 인간들이 내게 굴복하면, 그들에 대한 너의 권한을 내게 넘겨라."
그가 사샤에게 내기를 걸었다.
사샤는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앙키파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랑 해보자는 건가? 네가?"
이곳에 있는 자 중에 사샤보다 나이가 많은 이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대악마들이 그의 강함을 존중해주는 것이고 말이다.
앙키파의 말이 사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 작품 후기 ============================
코멘 중에 천사들은 대악마 같은 존재가 없나요? 라는 질문이 나왔었는데,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천사들은 그런 존재가 없기에 질 수밖에 없었죠. 대악마들을 주축으로 악마들이 뭉쳤고, 천계의 몰락은 오랜 시간동안 악마들이 계획을 해온 일이었습니다.
결론은 천사들이 멍청하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