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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86화 (186/251)

00186  안  =========================================================================

여자는 주먹을 꽉 쥐고, 각오를 다지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그녀의 가족과 천사 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분위기는 살벌했고, 아슬아슬했다. 그가 언제 그녀의 가족에게 수를 쓸 지 모르는 상황으니 말이다. 그녀가 들어오자 가족들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고작 정보라고 해봤자 강태상이라는 남자가 계약자라는 것밖에 없는데,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미션 임파서블도 아니고, 평범한 그녀가 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차라리 그녀가 홀로 도망이라도 쳐서 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부 다 죽을 바에야 한 명이라도 사는 게 좋지 않겠는가.

“강태상은?”

안은 그녀를 보자마자 강태상에 대해 물어왔다. 그녀는 준비해두었던 말을 했다.

“찾았어요.”

가족들이 그녀의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찾았다고 하니 놀라웠다. 진짜 그가 만나길 바라는 강태상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번에 사람을 찾을 정도의 행운이 있었다면 그들은 애초부터 이런 일을 당하지 말았어야 했다.

“찾았다면서 왜 데려오지 않았지?”

집으로 돌아 온 건 그녀 혼자였다. 안이 그것을 꼬집자 여자가 황급히 변명했다.

“집에 데려 올 핑계거리가 없었어요. 전 일반인이고, 그 사람은 계약자에요. 싫다고 하고 도망을 치면 전 어쩔 도리가 없다고요. 데려오진 못했어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니까 그걸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당장 제가 말한 곳으로 가시면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안이 그녀의 말에 주먹을 꽈악 쥐었다.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살기가 넘실거렸다. 이 손에 놈의 피를 드디어 묻힐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절로 몸이 근질거렸다. 그 정도 사정이라면 충분히 봐줄만도 했다.

안이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가 강태상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라. ”

“네. 그럴게요.”

여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정말 찾은 거냐고 눈짓으로 묻고 있었다. 여자는 애써 가족들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제 저놈을 밖으로 끌어내면 계약자들이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여자는 충분히 행복했다.

"강태상을 찾았으니까 제 가족의 안전은 지켜주실 거죠?"

그를 두려워하기만 하던 여자가 제법 강단있게 물었다. 안은 강태상을 만나기만 하면 저들이 죽건 말건 상관할 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굳이 약속을 받지 않아도 그들이 안전할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을 할 건더기를 주지 않기 위해 부러 말한 것이다.

그녀는 태상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녀가 위험한 곳에 또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걱정이 되는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곧 계약자들이 나타나서 그녀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걸 알려줄 것이다.

그녀는 CMC 회사 사장을 믿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서서 자신의 뒤에 거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안을 경계했다. 엘리베이터가 느린 편이 아닌데도, 안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상한 것에 의존해서 사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하게 날아서 가면 빠른데 말이다. 안이 결국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여자의 허리를 손으로 휘어 감고, 날개를 펄럭였다.

“꺄아아악!!”

여자의 높은 비명소리가 울렸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로 나가려 했던 여자의 시도가 무산이 된 탓이었다. 안은 그녀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어디인지 말해라.”

여자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악!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불행이도 놀이기구를 못 타는 고소공포증 있었다. 안이 짜증스럽게 여자에게 말했다.

“빨리 대답해! 안 그러면 팔다리를 하나씩 떼어버리겠다.”

여자는 귀에 쏙 들리는 살벌한 협박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 제발 땅에 내려주세요. 저,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단 말이에요!!”

“쯧.”

그녀의 말에 안이 혀를 차다가 적당한 건물 옥상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라.”

안이 계속해서 여자를 재촉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주변을 살피다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안은 최대한 빨리 이동하려고 한 짓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경솔한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어디 인지 알지 못하는 여자를 데리고 다시 그녀의 아파트로 가야 했다. 더불어 그 이동이 다시 공중에서 이뤄진 덕분에 여자가 제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

“여기에요.”

길 안내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태상은 안이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일부러 먼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침이었던지라 안을 보는 몇몇의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금방 도착은 할 수 있었다.

안이 수상하다는 듯 여자를 바라봤다.

“정말 이곳에 그가 있는 건가?”

“물론이죠. 정말이에요.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목숨이 달려 있는데.”

여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워낙 인적이 드믄 곳에 강태상이 있다고 하니, 의심을 했을 뿐이었다.

그때, 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그에게 자신은 여기 있노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기세를 내뿜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얼굴에 씨익 미소를 피워냈다.

“그래, 네놈이구나. 네놈이 여기에 있는 거야.”

안은 일을 제대로 했으니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안은 계약자,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일을 끝냈으니,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강태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저 여자가 살아나가는 건 좋지 않았다.

“잘했다.”

“이제 그럼 전 가도 되는 건가요?”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괴물이 자길 살려 보낼까?

주먹 쥔 손에 땀이 맺혀 미끌 거렸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안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여자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가도 좋다.”

여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안이 그녀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죽음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그가 여자를 죽이기 위해 손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쿵!

하늘 위에서 누군가가 여자와 안의 사이에 떨어져 내려왔다.

“꺅!”

여자는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건물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 게 분명했다. 안은 나타난 이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

“도망치세요.”

태상이 뒤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살기 위해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태상이 여자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안은 여자를 죽일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태상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런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더 이상 그녀가 죽건 말건 상관이 없어진 것이다.

그의 모든 신경이 태상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 낯짝을 당당히 드러낼 생각을 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태상은 안의 말에 웃음을 보였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다 했더니 당신이었구나."

"우리가 이대로 그냥 널 내버려둘 줄 알았나?"

태상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지. 분명 날 쫓아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지. 여기엔 혼자 온 거야? 적어도 라마스한테 물어보고 오지 그랬어."

태상이 라마스의 얘기를 꺼내자 안이 말했다.

“네놈은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다. 너 때문에 라마스는 죽었으니까.”

라마스가 죽었다고?

악마에게? 아니,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안의 표정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손을 태상을 향해 보여주며 말했다.

“라마스의 숨통을 이 손으로 끊어줬다. 그는 다시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네가 도망치는 바람에 분노를 받을 이는 라마스밖에 없었지.”

안은 태상이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상은 라마스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솔직히 마음이 놓였다.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태상이 득의양양해 하는 안에게 말했다.

“그래, 참 잘했네.”

“...뭐?”

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잘했다고? 라마스를 죽인 거에 분노하지 않는 건가?!”

“내가 왜? 오히려 난 내가 가장 껄끄러워 했을 적을 없애준 거에 감사하고 있는데. 내가 왜 당신을 두려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신이 뭐기에?”

“.......”

안은 라마스를 죽여선 안 됐다. 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를 죽인 꼴이다. 만약 천사들이 뒤에서 다른 수작을 부렸다면, 태상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노에 못 이겨 앞 뒤 생각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난 천계의 심장을 사사로이 쓸 생각이 없어. 아니,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고. 반드시 파괴할 거야. 악마들한테 넘기지도 않을 거고.”

“그걸 어떻게 믿...!”

안의 말을 태상이 끊었다.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난 지금 당신을 설득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내 말을 믿는다 해도 넌 날 죽이려고 할 거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그걸 믿는다고 해도 널 인간계에 둘 생각이 없거든.”

어차피 서로 죽여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태상은 마나건을 꺼내들었다. 덩달아 안도 날개를 활짝 펼치고 그에게 모든 살기를 집중했다.

"천계의 심장은 어디에 있는 거냐!"

안이 으르릉거리며 물었다.

"내가 그걸 착하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

"네놈이 죽음을 앞두고도 그런 뻔뻔한 얼굴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태상이 피식 웃었다.

"해보시든가."

태상의 붉은색 마나건이 안을 향해 쏘아졌다.

탕! 탕탕! 탕!

안은 하늘 위로 순식간에 올라가 태상을 향해 번쩍이는 기운을 쏘아냈다.

쾅! 쾅!

태상을 맞추지 못한 기운들이 그가 있었던 곳 바닥에 괜스레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공격이 닿지 못하는 건 태상의 마나건도 마찬가지였다. 안이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마나건의 탄환이 그에게 닿지 못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명중이 되지 않자 태상은 그의 날개가 무척 거슬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무력화를 사용한다 해도 저 날개가 있으면 제대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태상은 안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접전은 안도 제법 자신이 있는 부분이었다.

그가 도망치지 않고 손에 힘을 주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칼이 나타났다. 안의 날개를 닮은 새하얀 검이었다. 안이 씨익 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본래 근접전에 더 강했다. 그러나 태상은 그것을 몰랐고, 그것이 이 싸움에서 안이 이길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것은 태상이 아니었다.

그의 왼쪽 날개가 뜯겨져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깃털이 허공에서 흩날렸다. 그러나 그 광경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웠다. 왜냐면 그 깃털에 붉은 핏자국이 군데군데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태상은 마나건을 검은색으로 바꿔 안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태상을 바라봤다.

왜지? 왜 내가 진 거지?

쓰러졌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저 건방진 계약자 놈이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섣불리 라마스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그에게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도 태상이 어떤 계약자라는 것을 알려주질 못했다. 스스로 그럴 기회를 놓쳤다.

태상은 꽁꽁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안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

"컥!"

그를 내려다보는 태상의 시선이 싸늘했다.

이것이 태상과 안의 수준 차이였다.

하늘과 바닥.

안은 어리석게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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