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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85화 (18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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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상은 그녀의 손길을 매정히 피해냈다. 누구인줄 알고 손길을 무척대고 허락한단 말인가. 당연히 피해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태상의 매정한 행동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굉장히 절박해지더니 작은 목소리로 무척이나 덜덜 떨며 태상에게 말했다.

"제발.....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태상은 대낮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말하는 그녀의 행동을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의 몸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으나 뭘 도와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무슨 일이죠? 119를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냥 단순히 미친 여자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제...집에...."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녀는 말을 하면 할 수록 불안감이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뭐라고 중얼중얼 얘기를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태상은 그녀의 팔을 잡아채 말했다.

"안 들립니다. 제대로 말하세요."

왜 저렇게 불안해 떨지? 저 모습은 마치 주변에 자신을 죽일 살인범이라도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불안에 떨던 그녀가 태상의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그가 유일한 동아줄인 것 마냥 파르르 떤 여자는 힘겹게 다시 입을 떼었다.

"....제 집에 괴물이 있어요."

"괴물?"

역시 미친여자 였나?

악마가 나타났다면 저 여자만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모르고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태상은 잘못 걸렸다 싶어 잡은 그녀의 팔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진 여자의 말을 들은 태상은 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전...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아야 해요. 여긴 계약자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있을지도 몰라요. 제발 절 도와주세요. 제 가족들이 위협을 받고 있단 말이에요! 강태상이라는 계약자를 찾아주세요. 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저희 가족은 전부 죽어요...!!“

여자는 무척이나 필사적이었다. 확실히 가족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럴 만도 했다.

저 여자가 단순히 미친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미쳤다면 강태상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그에게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태상이라는 이름을 아는 건 몇몇밖에 되질 않았다. 혹여 기막힌 우연으로 자신과 동명이인을 찾는 걸 수도 있겠지만, 태상은 아닐 거란 직감이 들었다.

여자의 파리한 안색을 본 태상은 일단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일단 당신한테는 그 남자를 찾는 것보다 진정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뇨, 아뇨. 아니에요. 저는 그 남자 강태상이라는 그 남자만 찾아주면 돼요!! 정말이에요. 그것만 알면 된다구요!”

여자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태상은 고민을 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남자를 왜 찾아야 하는건지, 그리고 괴물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줄 수 있겠습니까?”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여자는 태상이 바라는 이성을 찾기 힘들어보였다. 중얼거리며 헛소리를 늘어 놓고 있었다. 아마도 미치기 일보 직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은 여자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짝! 하는 소리가 울리자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태상을 멍하게 바라봤다.

“똑바로 정신 차려. 당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고. 살고 싶으면 똑바로 얘기해.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아주지 않을 거고, 당신을 위해 어떤 것도 해주지 않을 거야.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여자가 얼얼한 통증이 느껴지는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하지만 아픔 덕분에 정신이 돌아오긴 한 모양이었다. 여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여자의 목소리가 제법 차분했다. 태상은 다시 존댓말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

“자, 이제 말해보세요. 당신을 위협하는 괴물은 누굽니까? 사람? 아니면 악마?”

여자가 창백한 얼굴을 좌우로 저었다. 자신의 집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괴물은 좀 더 특이한 존재였다.

“아뇨, 그는 그런 놈들과는 달라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사람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태상은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이름을 대고 찾아오라고 시킬 만한 존재가 누구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그리 오래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그를 찾으려는 이가 있다면 그건 악마일 수도 있겠지만, 천사일 확률이 더 높았다.

악마들은 아직 사실을 모르지만, 천사들은 그가 천계의 심장을 훔치고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저 여자에게 자신이 강태상이라는 것을 알릴 순 없었다. 괴물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한 태상이 물었다.

“그럼 괴물의 정체는 뭐죠?”

“....천사.”

여자의 입에서 예상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의 눈동자에 분노와 증오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천사에요. 그 놈이 그런 끔직한 놈이! 천사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고요!”

여자는 또 다시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잠시 잊었던 천사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도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녀가 정신을 놓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천사가 당신 가족을 인질로 잡고,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아오라고 시켰겠군요.”

“네. 맞아요. 강태상이라는 사람이 계약자라고 해서 여기로 찾아 온 거에요. 이 회사에는 계약자가 많으니까 찾아 주실 수 있는 거죠?”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여자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죠. 그런데 그 전에 천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 건가요?”

“강태상이라는 계약자를 찾는 게 가족을 구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천사나 악마나 같은 놈들입니다. 절 믿고 일을 맡긴다면, 가족 분들을 무사히 구하고, 천사를 죽여 드리겠습니다.”

“.....”

두려움으로 인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저 남자가 그 괴물을 죽여줄 수 있을까? 가족을 무사히 구해내고?

“죄송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가족들을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대가없이 도움을 주겠다는 태상이 무척이나 고마웠지만, 맡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인질로 가족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강태상이라는 남자만 찾아서 데리고 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 천사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얌전히 시키는 데로 해서 가족들을 돌려받고 싶을 뿐이었다.

태상의 제안은 그녀에게 천사가 준 공포심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흐음.....’

딱 봐도 천사가 자신을 뒤따라 와서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자에게는 일단 자신을 강명진이라고 소개하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대외적으로는 그 이름을 쓰고 있으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녀는 태상이 CMC 사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다. 그냥 평범한 계약자가 도와준다고 했어도 감격에 겨웠을 텐데 무려 CMC 사장이 도와준다고 하니, 그 끔찍한 괴물에게서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좀 더 가질 수 있었다.

“감사해요. 전 그런 분인 줄도 모르고....”

왜 자신에게 일을 맡긴다면 가족들을 구해주겠다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태상은 분명 자신을 노리는 것이 분명한 천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천계의 심장을 훔쳐 온 것은 자신의 잘못이 맞으나, 천사에게 다시 그것을 순순히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그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사를 죽이는 일밖에 없었다.

그를 죽이러 온 천사를 설득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그게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분명 그에게 크게 화가 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를 잡으러 누가 왔느냐다.

웬만하면 라마스가 아니길 바라는 것이, 그가 와서 감정에 호소하면 아무리 태상이라도 찝찝함이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마스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기에 왔다면 굳이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을 데리고 협박을 해서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라마스가 아닌 다른 천사일 확률이 높았다.

상관없는 천사가 왔다면 조금 미안하긴 해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일단 천사가 시간이 지날 수록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 서둘러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를 사무실로 안내해서 사람을 찾는 척 한 태상은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와 여자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런 이름을 한 계약자는 없습니다. 동명이인조차도 없으니, 곤란하게 됐네요.”

여자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그녀는 손바닥에 얼굴을 또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사장이라는 말에 희망에 차 있던 그녀가 또 다시 바닥으로 무너졌으니 당연했다. 이제 모든 게 끝이다. 이곳이 아니면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서럽게 우는 여자에게 태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놈이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흑흑흑....흑....방..법이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태상이 방법이라고 하니 놀랐다가 이내 생각이 났는지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거절한 방법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태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어찌 보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피해를 수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자신이 강태상이라고 진실을 털어놓았다면, 절대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강태상이라는 것을 밝혔다면, 여자는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그를 천사에게 데려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천사와 태상의 싸움에 그녀의 가족들이 말려 들게 될 테니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적절한 장소로 천사를 데리고 오는 것이 중요했다.

태상은 여자를 다독여주며, 좀 더 자세하게 앞으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해주었다.

“작전은 이렇습니다. 일단 당신은 천사한테 강태상을 찾았다고 하세요. 강태상이 있는 곳을 알려줄 테니, 가족을 풀어달라고 말입니다.”

“믿지 않으면 어쩌죠?”

“아뇨, 믿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셔야 하고요.”

태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굳이 여자가 연기를 열심히 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천계의 심장을 도둑맞은 처지인지라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닐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인간을 죽이느라 시간을 쓰진 않을 것이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어도, 사실 태상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천사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길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섣부르게 그에게 덤비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만약 라마스가 그를 잡으러 왔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그를 잡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태상은 모르고 있으나 라마스는 안이 이미 죽였다. 해서 라마스는 천사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안이 라마스를 섣불리 죽인 것은 큰 실수였다. 물론 안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이 당연한 거고, 잘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천계의 심장은 태상의 집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물건인지라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어서 내버려두고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물론 태상도 인간계로 돌아 온 후, 그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빨리 그를 죽이려고 올 거란 생각은 못했다.

지금 천사의 행동은 무척이나 어리석다.

적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불나방처럼 달려든 것을 그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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