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4 안 =========================================================================
겁을 주기 위해 쳤다가 또 아까 그놈처럼 죽어버릴까 싶어 마음대로 건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안은 시끄러운 인간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시끄럽다 인간. 입 다물지 않으면 목을 꺾어버리겠어."
"...흐으읍..!"
그의 말이 훌륭히 먹혀 들어갔는지 여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좋아, 착하군. 이제부터 내 질문에 대답해라. 강태상이라는 놈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어떻게 대답을 해야 자신이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여자가 어떻게 달랑 이름 하나만 듣고 그 남자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강태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선택을 해야 했다.
모른다고 하면 분명 저 괴물은 자신을 죽일 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안다는 쪽에 배팅을 하는 게 맞았다.
여자의 머릿속에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자신도 그런 꼴이 될 것 같았다. 절대 그렇게 될 순 없었다. 그녀는 살고 싶었다.
“아, 아, 알아요.”
“알아?”
안의 눈동자를 여자는 감히 바라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살 길이 그것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네 하고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윽...흑흑...흐으윽..”
강태상에 대해 안다는 확답을 받은 안은 순진하게도 여자가 거짓말을 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여자에게 강태상에 대한 정보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녀를 끌고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에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기척이 모이기 시작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안은 조용한 곳에서 강태상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게 중요했다.
여자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꺼이꺼이 눈물 콧물을 흘렸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말 때문인지 자신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고 그에게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이 정도 한적한 곳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안이 멈췄다. 안이 여자를 잡은 손을 놓은 순간, 그녀는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이 그런 여자를 차가운 눈동자로 바라보며 물었다.
“강태상에 대해 무얼 알고 있지?”
“그, 그 사람은.....”
여자는 도대체 뭘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죄, 죄송한데 그 사람에 대해 뭐, 뭐가 궁금하신 거에요?”
안은 여자가 대답을 하기는 커녕 도리어 질문을 하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기를 뿌렸다. 그러자 여자의 몸이 딱딱하게 굳고, 몸이 저도 모르게 덜덜덜 떨렸다.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하지만 정작 여자는 그에게 대답할 여건이 되질 못했다. 여자가 살기에 질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이 막히는지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그대로 까무러칠 듯싶었다. 안은 그녀에게 자신의 살기가 무척 치명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풀었지만, 여자는 이미 오줌까지 지린 후였다.
살기가 풀려서 정신이 좀 돌아 온 여자는 두 손으로 남자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다.
“흐윽...흑...흐으윽....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와. 그럼 널 살려주겠다.”
“흑흑흑...”
“강태상, 그 놈을 내 앞에 데려오란 말이야.”
당장.
그리고 최대한 빨리 말이다. 지금 당장 그놈의 사지를 뜯어버리고 싶은 걸 꾸역꾸역 억누르고 있었다. 안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 손에 어서 그놈의 피를 묻히고 싶었다.
**
태상이 오랜만에 출근을 하자마자 혜연에게 하루종일 처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밀렸던 일들이 해결이 되자 태상은 오랜만에 새롭게 만들어진 계약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계약자 학교에 들렸다.
학교라고 치기엔 과정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학원에 가깝긴 하지만 어찌됐든 학교라고 칭하고 있었다.
계약자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는 바로 지은과 용우였다.
용우는 처음으로 악마의 심장을 통해 계약자가 된 이였고, 지은은 태상과 체육관에서 인연을 맺은 여자였다. 그녀는 지금 악마의 심장을 흡수해서 계약자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체육관 관장 딸이라는 이력 덕분에 다른 계약자들의 교육을 훌륭히 책임지고 있었고 말이다.
용우는 그런 지은을 도우면서 대외적으로 홍보를 위해 가끔은 악마를 사냥하고 다녔다. 계약자가 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용우를 예로 들어서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용우가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지만, 이젠 그가 굳이 홍보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
더 이상 계약자가 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지은이 밝은 미소를 보이며 태상에게 왔다.
강해지는 것에 욕심이 많았던 지은은 누구보다도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었다.
태상이 실종이 되었다는 것은 극비였기에 지은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 들려 그녀에게 문제가 없는지 묻곤 했었기에 그를 맞이하는 것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요즘 어때?”
“점점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요즘은 입학 인원에 제한을 두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반을 늘리고 있긴 한데, 가르칠 사람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졸업생들 중에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긴 하지만 제 마음에 차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쉽진 않네요.”
괜찮은 사람이 있어도 문제는 많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아무래도 힘든 일이기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해서 여러모로 선생을 구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은이었다.
예전에 혜연과 태상이 어렴풋이 대화를 나눈 것이 있었다.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대회를 주최하자는 것이었다.
그 대회에서 승리를 하면 CMC 회사에 스카웃을 해서 요긴하게 인재를 쓸 예정이었다. 더불어 상금도 주고 말이다. 그 대회를 하게 되면 굳이 등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다양한 계약자들이 올 테니, 그 기회를 통해 인재를 고르는 것도 좋았다.
지은에게 그 얘기를 하니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라며 눈을 밝혔다.
CMC 회사에서 하는 첫 대회인데 고작 상금을 1~2억으로 시시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10억 이상은 걸 생각이었다. 계약자들은 악마의 심장을 통해 돈을 벌기 때문에 단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었다. 상금에 눈이 멀던, 기회를 잡기 위해서든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 있는 계약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말이다.
"아! 그리고 이번에 눈에 띄는 실력을 가진 계약자가 있는데, 소개시켜 드릴게요."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 강한 실력을 가진 계약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지은이었다. 그녀에게 눈에 띄는 계약자가 있으면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했었기에 이렇게 가끔 그가 찾아 오면 소개를 시켜주곤 했었다.
"그래."
"잠시만요, 불러올게요."
지은이 종종걸음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녀는 곧 한 남자를 태상에게로 데려왔다. 그는 지은에게 태상에 대해 들었는지 바짝 긴장을 한 채로 오고 있었다.
"이쪽은 제가 말했던 사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바짝 긴장을 한 종구가 군대에 온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태상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종구는 꿀꺽 침을 삼켰다. 계약자가 되고, 처음으로 만나는 기회였다. 계약자가 되기 위해 CMC회사에 왔을 때 봤었던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한 종구는 그녀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리며 열심히 실력을 쌓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기 위해선 이대로 찌질한 인생을 살면 안 됐다. 적어도 동일한 자리에 서는 것이 무리라면, 그 바로 아래까지는 와야 하지 않겠는가.
힘들어도 포기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 여신님 아이라 덕분이었다.
잠깐 스치듯 만났던 그녀, 아이라를 종구는 아직도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가 종구의 힘이 되어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인지, 오늘 교육 총책임자인 지은에게 뜻밖의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친절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해서 정말 자신이 성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종구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으로 그에게 기회가 왔다.
종구는 지은에게 오늘 잘 보이면 졸업 후에 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그러니 종구는 태상에게 엄청나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종구의 눈앞에 아이라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실제로 아이라가 나타난 건 아니었지만, 종구는 그것만으로도 불끈불끈 힘이 솟아났다.
"군기가 바짝 들었네. 그렇게 긴장 할 필요 없어요."
태상이 종구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종구는 긴장을 풀기는커녕 바짝 긴장을 한 자세로 말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까지 바란 적 없었던 태상이 헛웃음을 짓자 지은이 말했다.
"전투센스가 굉장히 좋으세요."
태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전투에 감각이 있는 실력자였다. 태상이 그녀의 말에 종구를 의외라며 다시 보게 됐다. 지은이 저렇게 말할 정도이면 정말 제법 실력이 된다는 거였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종구가 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지간히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CMC 회사에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세상이 뒤집어졌어도, 실업률은 여전했으니 당연하다.
웬만한 대기업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곳이 바로 CMC 회사였다. 직원 복지도 좋았고, 요즘 CMC 회사 모르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없었기에, 그곳에서 일한다고 하면 선망의 눈빛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히 저렇게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친구네."
더욱이 전투에 센스가 있다고 하니, 태상은 그를 유심히 보기로 했다. 눈빛이 무척 선하게 생긴 종구였다. 덕분에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후에 어떻게 쓸지는 좀 더 생각을 해보긴 야겠지만,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저런 계약자들이 많이 필요했으니 굳이 데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네가 신경 써서 봐줘."
지은에게 태상이 말했다. 그의 말은 종구가 그에게 잘 보였다는 뜻이 되기에 지은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종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고 말이다.
종구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만날 수 있기만 하다면 고개 숙이는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오로지 종구 혼자의 감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태상은 그렇게 학교 상황을 살핀 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가 간 곳은 회사 안이 아니었다. 회사 로비 밖으로 나가자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다들 계약자가 되기 위해 저렇게 줄을 서고 있는 거였다.
저 많은 사람들이 계약자가 된다 해도, 솔직히 모두가 악마들과 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계약자 학교에서도 전투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서 종구처럼 전투에 두각을 나타내는 계약자들을 찾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 저기...저기요.."
그때, 태상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다. 아니, 평범은 아닌가?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했다. 태상은 그녀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궁금해져 물었다.
"누구십니까?"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저 회사...직원이신가요?"
그녀가 가리키는 회사는 CMC였다.
어떻게 대답을 할까 하다가 태상은 일단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아무리 봐도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접근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태상에게 집중을 한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극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가 긍정을 하자 여자가 다급하게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팔을 덥석 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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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랑 지은이 기억 나시는 분?
지은이는 체육관 관장 딸이고, 종구는 엑스트라처럼 스치듯이 나왔던 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