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3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함락되면 인간계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태상이 되물었으나 천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시켜주었다.
“그럼 그걸 지켜야 하는 거잖아.”
“맞습니다.”
그러나 악마를 상대할 힘을 잃은 천사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들에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고작 악마들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이 일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건가? 정말 그것만으로 그곳을 지킬 수 있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태상은 천사들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그냥 계획대로 시간을 벌어서 힘을 비축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건 태상이 끼어들어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너희들이 모두 죽으면 그곳을 영원히 그곳으로 갈 수 없는 거야?”
태상은 만약 그렇게 해서 된다면 천사들을 모두 죽일 의향도 있었다. 태상의 그런 기세를 느껴서 일까? 천사는 잠시 눈동자가 떨리다가 말했다.
“그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되겠군요.”
“.......”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그곳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면 태상이 천사들을 모두 죽이고 다닐 지도 몰랐다.
“그곳이 목숨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뜻이군.”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둘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돌았다. 태상은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지는 많았다. 그냥 얌전하게 인간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혹은 악마들을 때려눕혀 정보를 모으는 것 그리고 천사들을 돕는 것 등등 말이다.
“내가 너희들을 도와준다면 어떡할래?”
“...죄송하지만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치 않습니다.”
천사가 의외로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어째서? 당신들은 지금 고사리 손이라도 잡아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 아닌가?”
“저희들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그저 이 삶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곳을 악마에게 침범당하면 안 된다는,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악마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 게 저희들의 유일한 목표죠.”
태상은 천사들이 전의를 모두 상실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전쟁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예비 시체들에 불과했다.
태상은 으드득 이를 갈며 천사의 멱살을 잡았다.
“네놈들이 싼 똥을 우리더러 치우라고 하고 네놈들은 편하게 뒤지겠다 이거야?”
“....죄송합니다.”
천사는 반항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에겐 더 이상 빛이, 희망이 없는 것이다. 태상은 천사의 멱살을 잡아 당겨 마차 밖으로 꺼냈다.
그는 질질 끌려오면서도 몸을 축 늘어트렸다. 몸 이곳저곳에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닿아 아픔을 호소했으나,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태상은 놈을 바닥에 쓰러트려놓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천사들이 모두 이놈과 같은 상태라면 정말 문제가 커진다. 태상은 절대 악마들한테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놈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의 세계를 지킬 거다.
“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생각 눈곱만큼도 없어. 넌 지금부터 날 도와. 그게 적어도 너희들이 우리들한테 준 피해에 대한 보상이 될 테니까!”
“하지만.......”
천사의 표정이 지금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태상은 눈곱만큼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 쓰레기 같은 표정에 화가 나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퍽!
“윽!”
천사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그가 내지른 주먹에 맞아 바닥을 굴렀다.
“앞으로 또 그런 쓰레기 같은 표정 지으면 이것보다 더 많이 얻어터질 줄 알아라.”
“...크으읏...!”
겉보기에는 단순한 주먹질일 뿐이었지만, 몸에 생긴 상처들로 인해 효과가 컸다. 천사는 신음을 흘리며 잠시 바닥을 뒹굴었다.
태상이 천사에게 다가가 녀석의 멱살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천사는 통증으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아직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어.”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저 마차 안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던, 악마들에게 또 다시 고문을 당하고 죽던 둘 중 하나였다. 죽어야 했을 목숨이니 그의 곁에서 잠시 일을 돕는 다고 크게 바뀔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그는 악마를 적대시하는 계약자이니 그를 돕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 될 진 모르겠으나 악마에게 조금의 타격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유는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태상이 똑바로 서라고 말했다. 천사는 몸을 휘청거리다가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섰다.
“저기에 악마심장이 있을 테니 알아서 주워 먹어. 네 몸이 완벽하게 회복 될 때까지.”
“악마의 심장이요?”
천사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둥근 모양의 깊게 패인 구덩이가 있었다.
천사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분명 악마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법 많은 수의 기척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났고 말이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흩뿌려진 핏자국과 거대한 구덩이, 그리고 스산하고 황량한 모래와 덩그러니 남아 있는 마차만이 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저흴 데려가고 있던 악마들은 다 어디로 간 겁니까?”
태상은 천사의 물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저게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다 죽였으니까 널 저 마차에서 끌고 내려 온 거지.”
“아...!”
마차 안에는 자신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천사가 허겁지겁 마차 안으로 가려는데, 태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놈들은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된다.”
천사 놈들을 많이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딱 저놈 한 명만 고른 거였다. 고로 그가 천사 동료를 살려내서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더욱이 마차 안에 있는 놈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엉망진창인 몸이었다. 그들을 다 살리려면 방금 전 얻었던 악마의 심장으로도 모자를 것이다.
대부분 태상의 마나건으로 악마의 심장이 대부분 파괴 된 덕분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심장이 몇 개 없었다.
천사는 잠시 애가 타는 듯 태상을 바라봤다가 그의 눈빛에 싸늘함과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들을 살리는 게 과연 정말 그들을 위한 일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저들을 위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그들은 삶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천사의 표정이 무너졌다.
저들을 살린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갈까.
그냥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죽는 게 그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정말로 혼자서 그 악마들을 모두 죽이고, 절 구해내신 겁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천사는 마차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료들의 포기하고 물었다. 아직도 여전히 그들을 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갈등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해서 일부러 화재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한 거였다.
그가 알고 있는 계약자들은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계약자가 분명하다는 거였다.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천사들이나 악마들은 그들에게 이 정도의 강함을 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하게 쓰이고 없앨 도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아니, 그들이 강한 게 아니라 이 계약자가 강한 건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순 없잖아.”
“......!”
“강해지고 있어.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강해질 거야. 악마들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천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그의 말은 계약자들이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천사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천사들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생각지 못한 계약자들이 그러고 있었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계약자들이 악마와 싸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까?”
“정 궁금하면 인간계로 가보든지.”
태상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하지만...하지만....저희들은 그들에게 패배했습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잖아요.”
“승산이 없다고 그놈들한테 굴복해?”
물론 천사들도 승산이 없다고 악마에게 굴복하진 않았다. 하지만 승리하고자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마지막 발악.
그거였다.
“지금의 악마는 강합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너희들을 상대하느라 완전하지는 않지.”
“...그렇다고 여기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글쎄, 그걸 네가 왜 장담하지? 나도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는데.”
태상의 표정은 어디에도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천사는 그런 태상의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들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결과는 뻔한데."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기분 드러우니까. 난 한 번도 그놈들한테 질 거란 생각 해본 적 없어. 언제, 어떻게 죽일지만 생각했지."
"...."
천사는 그가 천계의 상황을 보지 못해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만약 그곳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인지, 그가 하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말이다.
태상이 천사에게 말했다.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게 네가 지금부터 살아서 숨쉬는 이유다. 알겠어?"
천사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태상과 헤어진다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악마를 죽이는 일에 일조하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비록 그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태상은 자신이 무엇을 하든 그게 절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천사의 말을 듣고 그는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맹탕같은 눈빛은 언제고 반드시 치워야 할 거다. 여러 번 보고 싶지 않으니까."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실렌이라고 소개했다.
악마의 심장을 다수 흡수하여 몸을 회복한 덕분에 그는 악마와 싸울 충분한 몸 상태를 얻을 수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악마와 싸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태상이 실렌에게 원하는 것은 전투 능력이 아니었다.
"그곳이라는 곳에 대해 좀 더 설명해봐."
"그곳...이라면 제가 말씀드렸던 그곳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거기 말고 또 있겠어?"
실렌은 고민했다. 그에게 그곳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잘하는 일일지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 대한 정보를 아무에게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가 고민하다가 태상에게 거절의 뜻으로 말했다. 그러자 태상이 실렌의 머리통에 마나건을 겨눴다. 그의 눈빛이 무척이나 쓸모없는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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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당분간 이렇게 해놓을게요!
혹여 다른작품으로 오해하실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