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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74화 (174/251)

00174  천계로 가는 길  =========================================================================

"협조하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말을 바꾸나?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올거면 그냥 동료들 따라 가라. 쓸모 없으니까. 네가 나한테 필요한 이유는 정보밖에 없어. 그런데 그 정보를 제한시키면 넌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이유가 없지."

실렌은 울상을 지었다. 이대로 그에게 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면, 버려질 판이다.

"왜 그곳에 대한 정보를 원하시는 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곳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없애버리려고."

"....?!"

없앤다고?

실렌이 생각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태상은 오히려 그가 너무 당황하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악마한테 넘어가기 전에 그냥 없애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천사들한테 필요하니까 그런 곳이 있었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곧 모두 죽을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파괴해버리자고."

태상은 실렌에게 천사들이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실렌도 그것이 사실 그대로였기에 착잡하지만 그를 탓할 순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곳을 없애는 것을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곳을 파괴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악마한테 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태상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악마한테 넘겨지기 전에, 차라리 그곳을 파괴하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부터 잘 생각해보면 되겠네."

태상이 말했다.

실렌은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물었다.

"정말 그곳을 파괴하실 거라고 약속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가 왜 너랑 약속을 해야 되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하는 거야. 도움주기 싫으면 그냥 죽어."

태상이 까칠하게 말했다. 실렌은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아니, 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약속하는 게 아니라 부디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곳을 파괴해주세요. 그거라면 적어도 악마들의 힘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악마의 힘을 약화 시킨다라....

태상이 실렌의 말에 솔깃했다.

"악마들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계약자들이 악마를 이길 수도 있겠죠. 분명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질 겁니다."

실렌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찾은 듯 밝아졌다. 태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원하던 바야."

"당신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파괴시킬 수 있도록 제 목숨을 다해 돕겠습니다."

실렌의 표정이 꽤나 결연했다.

"....그래서, 그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데?"

태상은 이제 본론 좀 듣자!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물었다.

**

“태상이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구!!”

와장창!

쨍그랑!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세연이 옆에 있던 꽃병을 바닥으로 내려쳤고,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산산조각났다.

어디를 찾아봐도, 아무리 많은 사람을 풀어서 찾아봐도 소식 하나가 없었다.

이에 피가 마른 것은 세연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과 친지들 모두가 이 사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뜻밖의 부재는 그들 모두에게 힘든 시련이었다.

“제가 따라갔었어야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혜연이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송이는 창백해진 안색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태우가 어미의 불안을 느꼈는지, 눈가가 빨갛게 올라왔다. 울음이 터질 듯했다.

“괜찮아...괜찮아...”

송이가 울먹이는 태우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곧 으아아앙 하는 울음이 터졌고, 송이의 눈가에도 덩달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그냥 그렇게 그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송이는 분명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경고 받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는데도 그를 그냥 보냈다. 그리고 그것은 무섭게도 들어맞아 지금 그녀를 이토록 후회하게 만들었다.

송이도, 혜연도 태상이 없는 현재를 생각해본 적 없었다.

“최선을 다해 찾고 있지만 아무래도 탑과 관련되어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혹여 태상님께 문제라도 될 것 같아서 탑은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손을 써놓고 있고요.”

혜연은 국가에서 위험하니 제거하라는 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있었다. CMC 회사의 중심인 태상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것은 절대적인 비밀.

때문에 혜연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졌다.

그녀의 안색이 너무 창백했고, 태상이 없어진 것이 혜연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송이가 그녀에게 말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

혜연은 고개를 다시 한 번 푹 숙였다. 잠시 보고를 위해 들린 것이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세연은 펑펑 울다가 지쳐 기절할 듯 축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번 잃을 뻔했던 아들을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혜연씨.”

혜연이 보고를 마치고, 또 다시 일을 하러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움직이려 했다. 그런 그녀를 송이가 다가와 불렀다.

“예, 말씀하세요. 사모님.”

“부탁 할 게 있어요.”

송이를 태상과 같은 위치에 두고, 태상의 명령을 뭐든 듣는 것처럼 그녀의 부탁도 뭐든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혜연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탑에 가보고 싶어요.”

“......!”

하지만 이런 부탁을 하면 곤란해진다. 혜연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탑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고, 태상이 사라졌다.

그런 위험한 곳을 송이가 가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하지만 송이는 간곡한 표정으로 혜연에게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것이라 짐작했기에 더욱 간절하게 말이다.

“전 탑이 태상이한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걸 미리 짐작했어요. 그랬으면서도 그걸 막지 못했죠. 태상이가 없어진 건 제 잘못이 커요. 이대로 여기에 앉아서 태상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사모님, 안전을 생각하셔야죠. 태상님은 누구보다도 강하신 분이세요. 하지만 사모님은 아니시잖아요.”

만약 송이가 잘못 되면 그건 태상이 사라진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이었다.

그는 어디에서든 살아 돌아 올 확률이 있을 만큼 강하지만, 송이는 계약자도 아닐 뿐더러 어린 아들인 태우까지 두고 있었다.

“절대 사모님을 탑 가까이로 접근시킬 수 없어요. 태우 도련님을 생각하셔야죠.”

송이가 잘못되면 태우는 엄마를 잃는다.

혜연의 말에 송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좀 더 노력할게요. 절 믿어주세요.”

혜연이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최선을 다하겠노라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진심어린 말과 눈빛에 송이는 결국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송이는 결국 또 다시 무너지는 가슴을 다잡으며 1분 1초를 버텨내야 했다.

**

"그곳은 천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씨앗이 되어 천계가 만들어졌으니까요. 그 시작에 맞닿을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천사 뿐입니다. 다른 존재들은 천사의 허락이 없는 이상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려 한다면 목숨을 잃고 말죠."

"그 공간이 단순히 천계의 시작이라서 특별하다는 건가?"

실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 천계를 구성하는 모든 에너지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천계의 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악마들이 그곳을 침략하게 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악마들이 천계의 심장을 갖는다면 그곳에서부터 나오는 에너지가 악마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가장 최악의 결과는 악마들이 천계의 심장을 가져다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마계의 심장에 흡수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마계를 이루는 힘이 더욱 강해지게 될 겁니다. 그럼 더 이상 차원이 무의미해지고, 모든 곳이 마계로 변하게 되는 겁니다. 모든 곳이 악마들의 것으로 변하게 되는 거죠."

태상은 그제야 실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천계의 심장이라.....

그런 게 있을 줄은 몰랐지만, 어찌됐든 그것을 파괴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그럼 우리들의 목표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천계의 심장이라는 걸 악마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파괴시키는 거겠네."

실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계속해서 그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만으로 그의 생각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의 탐욕이라도 보인다면 그는 절대 태상에게 협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차원의 힘이 담긴 심장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누구나 탐욕을 가질 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태상은 그것에 대한 눈곱만큼의 탐욕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걸 굳이 탐낼 만큼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가진 힘으로도 그는 웬만한 악마들은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악마의 심장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실력은 몇 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계를 침략한 악마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곤란스러운 상황을 당한 적이 없었다. 모두들 그에겐 한없이 나약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굳이 거짓말을 하며 실렌을 속여 무리하게 힘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아니, 천계의 심장이 악마의 심장처럼 흡수하면 강한 힘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단계가 아니었다.

덕분에 실렌은 태상의 얼굴에서 조금의 탐욕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본 실렌은 속으로 작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걸 파괴시키는 방법은 알아?"

"아뇨, 모릅니다. 다만 천계에서 악마와 싸우고 계시는 그분께선 알려주실지도 모릅니다."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면 천계는 무너지게 된다. 해서 그들이 실렌처럼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분인지 뭔분인지 그놈이 내 계획에 동의를 해줄 것 같아?"

"....."

태상의 질문에 실렌이 고민이 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실렌이야 태상의 말을 듣자마자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실렌이 아니었으니 그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 단언할 순 없었다.

실렌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무겁게 입을 내뱉었다.

"적어도 악마들에게 빼앗기는 것보단 나은 선택입니다. 그분도 그걸 이해하신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럼 당장 움직이자고."

태상이 실렌의 말을 선뜻 믿어주었다. 아니, 믿는다기 보단 빠르게 실천하는 주의인지라 그런 것도 있었다. 여기에서 백날 서 있어 봐야 바뀌는 건 없으니 말이다.

"당장이요? 어딜...?"

실렌이 어리버리한 표정을 지었다. 태상은 그에게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시선으로 말했다.

"당연히 천계로 가야지. 지금 당장."

============================ 작품 후기 ============================

코멘에서 잘 읽고 있습니다 하고 적어주시는 걸 보면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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