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72화 (172/251)

00172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사슬이 끊어지지도 않고 커다란 그의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자 그가 못 마땅한 듯 괴이한 울음소리를 냈다.

“보다시피 난 계약자가 맞아. 토다베스니 뭐니 그런 놈에 관한 정보 알고 싶은 거 아니니까, 진정하라고. 목숨이 여러 개도 아닐 텐데, 솔직히 너도 목숨 아깝잖아?”

카트라는 태상의 말을 쉬이 믿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그가 자결을 할 이유가 없어지긴 했다.

“난 그저 갑자기 천계와 마계에 접속이 되지 않았던 후부터 지금까지의 악마와 천사들의 상황을 알고 싶을 뿐이야.”

저런 가벼운 정보라면 카트라가 굳이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었다.

“...정말 그 것 만으로도 충분한가?”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그가 토다베스라는 악마를 죽일 이유가 없었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태상에게 필요가 없었다.

“좋아. 그거라면 말해주겠다.”

카트라가 들려 준 얘기는 태상이 궁금해 하던 정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악마는 계약자들이 천계와 마계로 올 수 없도록 들어오는 통로를 막았고, 그 후로 천계의 중심부를 쳤다. 천사들은 악마들이 천계의 중심부를 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마계로 총 공격을 했고 때문에 중심부를 그들의 손아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카살라에게 들은 내용과 똑같은 말을 들은 태상은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현재 천사들은 얼마나 남은 거지?”

“천사는 거의 다 전멸했다. 더 이상 천사는 천사가 아니지. 우리들의 노예일 뿐이니까.”

카트라가 자신의 상황을 전부 다 파악하지 못했는지 거드름피우며 말했다. 태상은 그의 태도를 기꺼이 받아주며 말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악마들은 현재 뭘 준비하고 있어? 천사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뭘 할 거지? 인간계를 침략할 건가?”

“침략이 아니다! 너희들에겐 딱 한 번의 영광스러운 기회가 있을 테니까.”

카트라는 자신이 한 말을 들으면 계약자인 태상이 감격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대악마의 결정에 따라 정말로 기회를 얻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회??”

태상이 의문을 표하자 그가 설명했다.

대충 그의 설명을 들은 태상은 악마들이 인간계를 자신들의 식민지화 시킬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트라는 정말 그들이 그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느니 뭐느니 하며 태상의 신경을 건드렸다.

“만약 그 제안을 거절하면 당연히 인간계를 침략해서 모든 걸 파괴하겠지?”

그는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수습을 하기 위해선지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인간들이 대악마님들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니.”

태상은 더 이상 저 놈의 같잖은 소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저 멀리 깊은 구덩이가 난 곳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마차를 가리켰다.

“저기에 들어 있는 건 뭐야? 식량인가?”

식량이라면 태상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에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태상이 마차를 가리키자 카트라의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저기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데 왜 묻는 거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태상이 재차 묻자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태상이 알겠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질문에 모두 답했으니 그만 날 놓아다오.”

카트라가 태상에게 말했다. 마지막 마차만 아니었다면 그에겐 모두 진실을 말한 거였다. 하지만 그는 태상이 자신을 향해 마나건을 겨누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 질문에 모두 대답하지 않았나?! 어서 날 놔줘!!!”

그의 발악에도 태상은 마나건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곧 찾아 올 자신의 마지막에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타앙!

총 소리는 분명히 울렸다. 하지만, 카트라는 자신의 몸에서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태상이 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구속하던 쇠사슬이었음을 깨달았다.

태상은 친절하게도 그가 도망칠 수 있게 쇠사슬을 깨준 것이다.

그의 뜻밖의 친절에 얼떨떨해진 카트라는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눈을 깜빡이며 정말 자신을 살려주는 건가? 하는 의아함을 표했다.

"따라와.”

태상은 그에게 짧게 명령하고 마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태상은 아직 그에게 물을 말이 남아있었기에 살 수 있다는 당근을 주어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트라는 그런 태상의 등을 보며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멍청하고 나약한 계약자 놈....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알려주지!’

그냥 이대로 그를 살려 보낼 수 없었다. 저놈이 적에게 등을 보이는 치명적인 방심을 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순 없었다. 카트라는 자신의 군대가 전멸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저런 강한 놈을 처치해가면 조금이라도 그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최대한 놈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서, 기습을 해야 했다.

방금 전 그놈이 보인 무력은 카트라의 예상을 뛰어 넘고 있었다. 그러니 정면 대결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카트라가 기척을 최대한 줄이며 태상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 순간.

타앙!

스르륵

털썩!

묵직한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쓰러져 허망하게 심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태상은 고개를 뒤로 돌려 죽은 카트라의 시신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저도 모르게 살기에 반응해서 마나건을 쐈고 하필이면 그 한방으로 놈이 죽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태상은 놈에게 더 정보를 듣는 것을 포기하고 마차를 향해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중간중간에 많지는 않지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몇 개의 심장들을 덤으로 주우면서 말이다.

마차 주변은 조용했다.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했기에 거침없이 그가 마차 문을 뜯어냈다. 자물쇠 같은 것으로 잠가두어서 열쇠가 없으면 열 수가 없었기에 힘으로 뜯어내는 것이 가장 편했다.

마차 문을 뜯어내고, 안에 있는 것을 본 태상은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빙고.”

그가 발견한 것이 식량보다 훨씬 그에게 유용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들이었다.

마차 안에 떨어져 있는 흰색 깃털을 하나 주워 든 그가 기절을 한 것으로 보이는 천사들을 삐딱하게 서서 바라봤다.

피가 여러 군데 나 있고, 날개는 성한 곳이 없었다. 꽤나 고된 고문을 받았는지 성한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태상은 일단 그들 중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천사가 있을지 살펴보기로 했다.

“이봐. 일어나봐. 이봐.”

태상이 그들의 몸을 흔들며 깨웠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태상이 흔드는 대로 휘청거리며 힘없이 흔들렸다.

천사들을 발견했다고,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좋아 할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더 이상 계약자들과 천사 그리고 악마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때, 천사들 사이로 희미한 신음소리가 태상의 귓가에 정확히 박혀 들어왔다. 태상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움직여서 방금 소리를 낸 천사를 찾아냈다.

“이봐, 정신 좀 차려봐.”

“으...으으...으.으....”

천사가 드디어 눈을 떴다. 하지만 영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눈동자가 무척이나 흐리멍텅했기 때문이다. 그의 상태가 다른 천사들보다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정신을 차렸으니 그것이 기꺼워 그에게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내 손에는 악마의 심장 몇 개가 있어. 이걸 너한테 넘기면 살 수 있겠어?”

기왕 만난 천사인데, 그들에게 정보를 들어보지 않을 순 없었다. 태상의 말을 들은 천사가 아주 작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은 천사의 입 속에 악마의 심장을 가져다댔다.

“어떤 방법으로 쓸 거지? 먹는 게 편한가?”

천사가 입을 벌렸다. 그의 말을 듣고 행동한 것이다. 태상은 그의 입속으로 심장을 넣어주었다. 그러자 심장이 스르륵 녹아 사라지고, 천사의 몸에선 잠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몸 이곳저곳에 나 있는 상처가 조금씩 사라졌다.

악마의 심장에 들어있는 기운을 이용해 몸을 치료한 것이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흐리멍텅하지 않았다. 그의 동공이 정확히 태상을 향해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돌아왔나 보네.”

태상의 말에 천사가 파르르 몸을 떨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계약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머릿속엔 아마 계약자가 왜 이곳에 있는 건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다. 태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태상에게서 눈을 떼고,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아무래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마차 문이 뚫려져 있는 것을 보고 흠칫 하며 태상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릴 구해준 겁니까?”

태상이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미안하지만 난 너희들을 구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어.”

“.....그랬다 해도 구해주신 것이 되니 감사드립니다.”

“인사 받을 생각 없지만 일단 했으니 들어는 주지. 그래서 넌 왜 악마들한테 끌려가고 있었지?”

태상의 질문에 천사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상황이 모두 파악이 되질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쥐어짜고 있는 듯 머리를 부여 잡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 악마와 싸우다가 붙잡혔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오랜 전투였고, 치열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전투였다.

이미 승기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단순히 붙잡혀서 이렇게 호송되고 있었다고? 악마들이 왜 천사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지?”

천사들도 죽으면 악마와 똑같은 것을 남긴다.

그러니 악마들도 천사들을 살리는 것보다 죽여서 심장을 취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태상의 그런 궁금증을 천사가 풀어주었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천사들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이 저에게 협조하면 살려주겠다며 회유를 하던 게 떠오르는 군요.”

“천사들의 힘?"

도대체 악마들이 왜 천사들의 힘이 필요했을까? 그 궁금증은 천사가 이어서 대답해주었다.

"천계를 완벽히 장악하려면 천사들의 힘이 필요했을 겁니다. 파괴될지 언정 추악한 악마놈들에게는 열리지 않는 천계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놈들은 아마도 그걸 파괴하지 않고 손에 넣고 싶었을 테죠. 그래서 천사들을 회유한 거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회유에 넘어갔나? 해서 이렇게 살아 있는 거고?”

태상의 질문에 천사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놈들에게 넘어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죠! 어차피 회유 당한다 해도 그놈들의 노예가 되어 끔찍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을 겁니다. 그런 삶을 살 바엔 그냥 죽는 게 낮습니다. 천사 누구도 그들의 회유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천사는 확신을 담아 태상에게 말했다.

태상은 악마와 천사들에게 들은 정보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악마들은 남은 천사 잔당들을 처리함과 동시에 파괴될지 언정 다른 이에겐 출입을 금지하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태상은 그곳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곳이라는 게 만약 악마의 손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천사는 태상의 말에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힘겹게 토하듯 말을 뱉어냈다.

"이 차원을 악마들이 모두 장악할 겁니다. 그들의 힘은 더욱 더 강대해질 거고, 더 이상 차원은 무의미해지겠죠. 모두가 악마의 것이 될 테니까요."

천사의 말에 태상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계와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황이었다. 절대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 말이다. 악마들이 천사들을 모두 죽이고, 천계를 접수하는 시간동안 힘을 기를 생각을 하고 있던 태상으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말이었고 말이다.

도대체 그곳이 어디이고, 무엇이 있기에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 작품 후기 ============================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