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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71화 (171/251)

00171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텨서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태상은 그렇게 잠시간 바위에서 휴식을 보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가장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건 어떻게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느냐였다.

들어 온 길이 있으니 나갈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욱이 카살라도 마계에 있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을 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우선 동쪽으로 움직여서 다른 악마를 하나 더 붙잡아 정보를 캐내는 게 현재 그의 목표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태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그가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바위 뒤쪽에 숨어 살피자 그냥 보기에도 많은 숫자의 악마들이 보였다. 그들의 기지가 태상이 있는 곳 아래쪽에 있어 살피기가 더 용이했는데, 커다란 천막을 중심으로 악마들이 집결해 있는 듯 했다.

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방벽들은 특이하게도 검정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겉으로만 봐도 굉장히 단단해보였다.

저들을 모두 죽일 순 없으니 섣불리 공격하는 건 좋지 않은 수였다. 그가 마계에 있다는 것을 들켜서 악마들이 그를 쫓아오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 말이다.

해서 태상은 저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오는 악마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기다림은 그리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언제 열릴지 몰랐던 기지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무리의 악마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한 무리의 군대가 움직이는 듯 숫자가 제법 됐다.

무리의 맨 앞에는 그들을 이끄는 놈으로 보이는 덩치 큰 악마가 말처럼 생긴 날개 달린 마물을 타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또한 말처럼 생긴 그 마물들이 마차를 끌고 있었고 말이다. 마차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주변을 삼엄하게 지키면서 이동을 했다.

태상은 당연하게도 떨어져 나온 무리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기지에 아직 얼마나 악마들이 남아 있는지 모르기에 떨어져 나온 저들에게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악마들의 이동속도는 제법 빨랐다.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날개를 쓰지 않고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늘을 날았다면 태상이 그들을 쫓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기지와 멀어지자, 태상은 놈들의 꼬리부터 자르기로 했다.

앞만 보며 움직이는 그들은 꼬리부터 야금야금 태상이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시간문제이긴 할 테지만 말이다. 그 전에 태상은 찌꺼기들을 없앨 충분한 실력이 있었다.

태상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마나건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단검은 여러 군데 유용하게 사용하기 좋았기에 늘 품에 넣고 다녔는데, 그러길 잘한 듯싶었다.

굳이 소리가 나는 마나건을 사용하지 않아도 단검으로 저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상은 뒤쪽에서 달리고 있는 악마의 목을 우두둑 꺾어 내버리고, 그 옆에 있는 놈의 목을 단검으로 그어버렸다.

뒤쪽에서 시작 된 아비규환을 곧 앞쪽 무리에서도 알게 될 것이다.

태상이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악마들의 피가 바닥을 적셨다. 태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갔다.

악마들이 사방에서 태상을 향해 위협적으로 날아왔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았다. 태상은 마차 같은 것을 타고 있던 악마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았음을 깨달았다. 악마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것을 멈추고 그의 주변으로 둥글게 포위를 했기 때문이다.

품속에 잠시 넣어두었던 마나건을 이제 꺼낼 차례였다.

태상이 마나건을 꺼내 조금씩 자신과 거리를 벌리고 있는 악마들의 머리를 쐈다.

마나건이 붉은색으로 맞춰놓았기에 놈들은 머리에 탄환이 맞자마자 펑! 하고 머리통이 터지며 생명을 잃어야했다.

어느새 무리를 이끌던 놈의 귀에까지 닿았는지 행렬은 멈춰졌다.

소란이 일어나는 곳으로 온 그는 태상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누군데 감히 토다베스 사령관님께 반기를 드는 것이냐!!! 나는 토다베스 사령관님의 명을 받아 움직이고 있는 카트라다!”

안타깝게도 저놈은 토다베스가 아닌 듯 했다. 태상도 그럴 것이라 이미 예상을 했기에 크게 아쉬워하진 않았다. 그는 카트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놈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덩치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덩치로 실력을 따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너 아는 것 좀 많냐?”

“너는 계약자? 그럴 리가 없는데...계약자는 더 이상 이곳에 올 수 없는 것 아니었나?”

놈도 눈이 달린지라 태상이 계약자라는 것을 알아 본 모양이었다. 놈이 타고 있던 말처럼 생긴 마물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태상이 그에게 위협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상은 마나건으로 카트라를 겨눴다.

“계약자,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지 말해라! 천사놈들이 계약자를 부른 거냐?!”

카트라의 말을 들은 태상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천사들이 날 불렀어.”

“괘씸한...!! 계약자들을 다시 불렀다고 희망이 생길 줄 아나본데, 오산이다! 네놈들은 얌전히 인간계에서 위대한 대악마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게 좋을 거다.”

“대악마의 처분? 얌전히 인간계에서 기다리라고?”

“그렇다!! 하지만 네놈은 건방지게 이곳에 온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그의 말을 들은 태상은 인상을 찌푸렸다. 태상과 혜연이 예상을 했던 대로 역시나 악마들이 인간계로 올 계획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인간계로 오는 게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것에 성을 걸 수 있었다.

“그래, 넌 제법 아는 게 많아 보이네. 쓸모 있을 것 같아.”

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저놈을 죽여라!! 어차피 계약자들은 모조리 사살하라는 명이 떨어졌으니 굳이 생포할 필요도 없겠지.”

계약자들을 모조리 사살하라고?

악마들은 더 이상 계약자가 필요치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계약자들도 더 이상 악마나 천사를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별스럽지 않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계약자들의 꼴은 천사와 악마들에게 열심히 부림당하고 쓰레기 버리듯 버림을 받은 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태상의 마나건이 그때부터 분주하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방아쇠를 움직여 마나건을 검정색으로 바꾼 태상은 쇠사슬을 쏘아내 여러 악마들을 묶은 후, 한 번에 붉은색 마나건으로 폭발시켜버렸다.

누구 하나 태상에게 깊은 상처를 내는 데 성공하는 놈이 없었다.

카트라는 자신의 군대가 계약자 한 명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군대가 이렇게 약할 리가 없는데, 왜 저 쥐새끼같은 놈 한 명을 못 잡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카트라는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 비켜라!! 내가 직접 저놈을 상대하겠다!!!!!”

그의 주변에 있던 귀찮은 악마들을 꼬리로 밀쳐버렸다. 그로인해 가슴뼈가 우두둑 함몰되어 죽는 악마가 나타났지만 누구도 그 악마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나서자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환호했다.

태상과 전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학살을 당하고 있었기에 악마들의 기세가 크게 꺾여 있는 상황이었다. 악마들은 그들의 상관이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웠는지 표정이 환해지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도 태상은 마나건을 쉬지 않았다.

탕!

카악!

탕!

컥!

마치 총쏘기 게임처럼 요리조리 악마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그들을 쓰러트리는 탓에 카트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가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태상을 향해 달려갔다.

태상은 카트라가 자신에게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도망치기는커녕 도리어 그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자신도 뛰었다.

조무래기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기 귀찮았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자신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간단하게 목을 움직여 피한 후 카트라의 멱살을 꽉 잡아 땅을 박차고 위로 뛰었다.

녀석의 무게가 제법 되는데도, 태상은 제법 높이 뛰어올랐다.

“우아악!!”

비명을 지르는 카트라를 뒤쪽 바위가 있는 곳에 냅다 던져버렸다. 그리곤 가뿐하게 땅으로 다시 내려 온 태상은 방아쇠를 움직여 은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무자비하게 쏘았다.

커다란 기운이 총구에 모이고, 이내 그들을 향해 거대한 기운이 쏘아졌다.

곧 악마들이 모여 있던 곳에 핵폭발이 일어난 것 마냥 콰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다.

거친 모래바람이 태상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어억!”

카트라는 자신이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 바닥에 쓰러진 채 입을 벙긋거렸다.

내 군대!! 나의 군대가!!!!

태상이 나머지 놈들이 몇몇 남아 있긴 했지만, 그다지 놈들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기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악마의 심장을 하나 주워서 마나건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놀랍게도 악마의 심장이 스르륵 순식간에 녹아 자취를 감췄고, 힘을 다 써서 방전으로 색이 바뀌었던 그의 마나건이 다시 반짝거리는 은색을 되찾았다.

이 마나건은 여왕이 살아 있을 적에 악마의 심장으로 만든 힘을 융합해 업그레이드 된 것이었다.

악마의 심장과 연관이 되어 있는 물건이니 혹여 반응이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을 해보다가 이런 식으로 은색 마나건을 충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등급이 낮은 것을 사용하면 한 두 개는 더 써야 했지만, 마침 그가 잡은 악마의 심장은 아예 낮은 놈의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은색 마나건의 힘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바닥에 쌓여 있던 것들이 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악마의 심장을 수습하는 것보단 그의 뒤쪽에서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놈을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주변이 정리 됐으니 얘기를 좀 해볼까?”

태상이 카트라에게 다가가자 놈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야? 악마 주제에 겁먹은 거냐?”

“크윽.....도대체 정체가 뭐냐! 저런 힘을 가진 놈이 계약자일 리가 없다! 정체를 밝혀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카트라는 본능적으로 태상이 자신을 살려 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굳이 귀찮게 자신의 멱살을 잡아 떨어트려 놓고, 저 엄청난 힘을 사용한 것일 테고 말이다.

“너한테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야. 정보.”

“.......”

카트라는 여전히 싸늘한 태상을 바라보며 자신에겐 더 이상 살길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위대한 토다베스 사령관님의 전사였다. 그분에 대한 정보를 발설하라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자결하는 게 나았다.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 마냥 태상이 그에게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섣불리 죽을 수 없을 거다.”

카트라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길쭉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태상의 목을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몸이 그의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태상은 검은색 마나건을 사용해서 카트라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두 편으로 찾아왔습니다!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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