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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70화 (170/251)

00170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그 악마는 처음 태상이 보았던 날개를 가진 악마였다. 하늘 위를 날아 가다가 잠시 멈추기라도 한 것인지 커다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태상이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그 악마를 향해 다가갔다. 악마는 태상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동을 해서 피곤했는지 그는 헉헉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태상은 놈의 날개를 향해 마나건을 쏘았다.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무력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저 악마에겐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붉은 마나건을 쏘자 날개에 정확히 맞으며 날개에서 2차로 폭발이 일어났다. 악마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태상이 땅을 박차고 뛰어 놈의 목을 손과 무릎을 이용해 꾹 눌렀다. 놈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놈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상이 잡은 목 속에서부터 억눌린 비명이 계속해서 튀어나왔고 말이다.

키에에엑! 케에에에엑!

엄살이 심한 놈인가?

무력화를 쓰지 않았음에도 날개가 조금 다쳤다는 이유로 저렇게 엄살을 떠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듯 했다. 악마가 이렇게 엄살을 피우는 건 처음 봤다. 놈은 심지어 아프다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물론 아니었다.

“지금부터 넌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거다. 알겠나?”

태상이 스산한 목소리로 악마에게 말했다.

캬아악! 캬악!

하지만 놈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며 버둥거릴 뿐이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다친 날개를 퍼덕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태상의 손아귀에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놈은 아무래도 전투 쪽과는 영 무관한 놈인 것 같았다. 그러니 이렇게 엄살을 피우고, 작은 상처에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걸 거다. 더욱이 그의 손아귀에 있으면서 나가려고 발버둥은 쳐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놈은 공격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태상이 마나건을 놈의 몸에 밀착시키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내 말에 답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 내 말에 대답해. 알아들었어?”

“아, 알아들었다. 크으윽...!”

그제야 자신의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드디어 말을 했다.

“좋아. 여긴 어디지?”

“너..너는 누구냐? 어떻게 계약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이곳엔 더 이상 계약자들이 있을 수가 없..!”

철컥!

태상이 마나건을 소리 나게 움직여 좀 더 놈의 몸에 밀착시켰다.

“나는 너한테 질문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의 협박이 통했는지 놈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여기는 마계다.”

‘역시’

예상하던 것을 사실로 확인 받았다. 태상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네가 가려던 곳은 어디지?”

“나는 토다베스 사령관님에게 가고 있었다. 난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다.”

전령사라는 악마는 꽤나 순순히 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놈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는 태상이 스스로 걸러내어 들어야 했다.

“토다베스 사령관이라는 놈은 악마겠지?”

“맞다. 흐윽...조, 조금만 힘을 풀어다오. 너무 아프다. 흐윽...”

“.......무슨 소식을 전해주러 가는 거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악마를 보고 있는 건 썩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태상은 놈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을 잘 알았기에 그의 요청을 무시했다.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거든.”

“마, 말하겠다. 하지만 약속해다오. 말하면 날 살려주겠다고. 켁켁”

“좋아. 약속하지.”

태상은 순순히 그의 제안을 받아 들었다. 악마와 하는 약속 따위 지킬 생각 없었지만 말이다. 놈이 켁켁거리며 숨 막힌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태상이 무릎은 그냥 두고,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놈이 숨을 크게 쉬었다. 몸을 움찔움찔하며 그가 방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태상은 방심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천사들의 마지막 발악이 제법 강해서 좀 더 군대를 보내달라는 소식을 전하러 온 거다.”

천사?

그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태상이 의아해졌다. 카살라의 말을 들었을 때, 천사는 더 이상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남은 천사가 있다는 건가?

“천사가 아직 살아 있나?”

“그렇다. 하지만 곧 우리들은 완전히 승리할 거다. 놈들을 잡는 건 시간문제니까.”

천사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건 태상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게 시간문제라면, 태상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이 되는 거였다.

“토다베스 사령관에 대해 좀 더 말해라.”

“나는 그것까지 말할 수 없다. 그분은 강하다. 동쪽을 다스리는 대악마시다. 하지만 그것밖에는 모른다.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 그분에 대한 어떤 정보를 원하는 지 잘 모르겠다.”

그가 너무 두루뭉술하게 말한 것인지 전령사는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 했다. 태상은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여 말했다.

“동쪽으로 계속 가면 토다베스라는 놈을 만날 수 있는 건가?”

“.....맞다.”

“동쪽에는 뭐가 있지? 토다베스의 군대가 있는 건가?”

“토다베스 사령관님께서 다스리는 땅이 있다. 그곳에서 악마들은 그분을 모신다. 그분은 대악마시다. 대악마를 모시는 악마가 있는 건 당연한 거다.”

“대악마....”

대악마라는 것은 처음 들어봤다. 그동안 계약자들은 악마를 단순히 A~D등급으로 나누어 구분했었다. 하지만 그런 악마를 다스리는 놈이라고 하니 훨씬 더 강한 놈이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태상의 머리속에서 과거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던 놈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일인지라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놈은 분명 A등급 악마를 종부리 듯이 부리고 있었다. 대악마는 그런 놈들이 아닐까 생각 됐다.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말해.”

“그곳으로 가려면 남서쪽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천사들이 있다.”

전령사는 드디어 태상이 자신을 풀어주고 떠날 건가 싶었는지 재빨리 대답했다.

“이곳에서 많이 멀어?”

“멀지 않다. 이 길로 쭉 남서쪽으로만 간다면 일주일이면 도착한다.”

태상이 피식 웃었다.

그이고 그의 몸에 맞닿아 있는 마나건을 들어 올려 놈의 다른 쪽 날개를 쏘았다.

탕!!

캬아악! 캭캭!! 캬야악!

그가 전령사를 쏜 것은 놈이 같잖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병신이냐? 여긴 마계잖아. 천사들이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했으면 당연히 천계에서 했겠지 마계에서 했겠어?”

태상의 말에 전령사가 잘못했다며 그에게 빌었다. 자신이 천사들이 있는 천계에 데려다 주겠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데려다주겠다고 해놓고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데려가면?”

“아, 아니다! 정말 데려다주겠다. 나, 나는 전령사로 천계와 마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다.”

필사적으로 말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태상은 놈을 더 이상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이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악마들은 계속 만날 테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태상의 눈빛에 살기가 서려서 그런 것인지 악마가 자신의 목에 걸린 것을 꺼내보라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건....!”

태상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이건 계약자들이 걸고 다니던 목걸이와 똑같았다.

“그게 있으면 천계로 갈 수 있다! 정말이다! 딱 보기에 넌 천사 계약자 같은데 그 목걸이가 뭔지 알고 있겠지?”

“그래. 잘 알지.”

지금 그의 목에는 목걸이가 없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선 반드시 차고 다녔던 것이었다.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전령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말이다.

“정말 이게 있으면 천계로 갈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방법은 태상도 잘 알았다. 태상은 전령사를 쳐다보고 말했다.

“정보 고맙다.”

탕!

전령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놈은 살려달라고 빌지 못했다. 이미 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꼴에 악마라고, 놈의 시체가 사라지고 악마의 심장이 나타났다. 등급은 낮은 지라 별로 쓸모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일단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심장을 주워들었다.

아무래도 천계로 가서 천사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악마를 좀 더 만나서 그들에게 정보를 더 듣고서 말이다.

천사들은 궁지에 몰렸으니 악마들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토다베스 사령관이라는 대 악마가 자꾸만 맴돌았다.

높은 위치에 있는 놈이니 분명 아는 게 많을 것이다.

태상은 동쪽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가 가야 할 곳이 저곳이라는 것을 알리듯, 붉은 하늘 아래에 동쪽을 향하는 길이 시야에 들어왔다. 태상은 목걸이를 목에 건 후, 옷 안으로 집어넣고 그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태상은 하루 꼬박을 동쪽으로 뛰어야 했다. 하지만 쉽게 전령사를 만난 것에 비해 주변에 다른 악마는 찾기 쉽지 않았다.

이곳은 무척이나 황량했고, 기척도 없었다.

태상은 예전과 똑같이 마계에 온 상황이지만, 몸 상태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영혼을 통해 이곳에 접속했던 예전과는 달리 현재 태상의 몸은 현실 그대로의 몸이었다. 추위도 느끼고, 배고픔도 느끼는 그런 몸.

그는 이곳에 들어와서 꽤 오랜 시간을 이동하는 데에 써야 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그가 먹은 것이라곤 공기뿐이 없었다.

그동안 먹는다는 것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태상은 처음으로 먹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마계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기에 태상이 생존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먹을 것이라는 것을 구하는 게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태상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전령사의 심장을 배고픔을 참기 위해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심장을 먹으면 몸에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에 배고픔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소모하기엔 악마의 심장의 가치가 아까웠다. 태상은 그동안 악마의 심장을 모으면서 많은 수의 심장을 섭취했다.

그가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이런 낮은 등급의 심장을 먹으면 그 효과가 거의 없다 시피해졌다. 해서 이 악마의 심장을 먹는다고 그의 능력이 강해지는 효과는 없었다. 이젠 A등급 악마의 심장을 먹어도 눈에 띄는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니 이 심장을 먹는다고 해서 태상이 큰 능력상승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해서 낮은 등급의 악마의 심장으로 장사를 한 거였다.

인간계로 이 심장을 가져가면 어마어마한 돈으로 바뀔 수 있었다. 밥 대신 먹기엔 그 가치가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물론 돈이 아깝다고 배고파 죽을 것 같은데도 손에 들고 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거지만, 그 전에 다른 방법을 발견하길 원했다.

마계의 매마른 땅은 그에게 좋은 쉼터조차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나은 곳은 바위 틈 사이였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날씨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추워져 태상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그의 몸이 심장으로, 그리고 단련을 하게 되면서 강해졌기에 이 추위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거였다.

일반인이 이런 추위를 오랜시간동안 맞았다면 분명 큰 사단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태상에게는 그저 움직이기 불편한, 그리고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추위일 뿐이었다.

태상은 무리를 해서 움직이는 것보다 시간을 넉넉히 갖고 몸 컨디션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그는 바람을 막아주는, 그리고 혹시나 있을 악마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적절한 바위와 바위 틈을 이용해 몸을 뉘였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동을 할 생각이었다.

마계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악마들이 마계에 별로 없다는 게 그를 계속해서 고생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천계로 이동한다면 적어도 혼자서 이곳을 떠도는 상황에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상은 천계로 이동하는 것을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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