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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69화 (169/251)

00169  붉은 하늘 그리고 붉은 탑  =========================================================================

“데려다 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한 발작도 움직이지 않을 거에요. 아니면 저 혼자서라도 갈 거고요.”

그렇게 말하는 송이를 그들이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탑 근처에 있는 것보다, 데려다 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자들은 크게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송이의 표정이 그제야 환하게 피어졌다.

"태상아! 태상아!!"

그녀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회의를 하던 태상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 멀리서 송이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태상은 그녀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가 그녀의 옆에 붙어 있는 계약자들에게 표정으로 왜 아직까지 송이가 이곳에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송이는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가야겠다고 했어.”

“왜 그런 거야? 지금 여긴 위험해. 너도 알잖아.”

태상은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녀에게 화를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감을 가득 담아 이리저리 떨리고 있었다.

“나도 내가 좀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너한테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어.”

태상이 그녀의 두 어깨를 부드럽게 붙잡았다. 송이가 불안해 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접촉으로 마음이 좀 안정됐는지 송이가 드디어 용건을 말했다.

“탑이 이상해."

"탑이 이상하다고?"

“응! 정확히 어떻게 설명할 순 없는데, 탑이 좀 이상한 것 같아.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 탑은 굉장히 위험해.”

만약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서 탑을 봤을 때,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태상은 송이의 말을 허투로 듣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거야?”

“그건...!"

송이가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포옥 쉬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 그러니까 탑 가까이에 가지 마. 위험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송이는 심지어 눈가에 물기가 서려 있기까지했다. 그는 송이를 달래기 위해 알겠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는 탑을 반드시 조사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다독임 덕분인지 진정이 된 송이는 자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며 태상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상은 송이에게 혜연의 곁에 있으라고 말했다.

태상은 심장과 탑이 이상한 현상을 보이는 것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송이가 탑이 이상하다고까지 했다.

그걸 알고도 그냥 두고 볼 순 없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모든 계약자들을 탑에서 20보 뒤로 물린다."

태상이 계약자들에게 명령했다. 그가 CMC 사장이었기에 당연하게도 모든 계약자들은 그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혜연은 송이에게 모든 사실을 들었는지, 뒤늦게 그를 찾아와 말했다.

"사모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어떡하시려고요? 지금 탑으로 가실 생각이신 거죠?"

혜연은 태상이 말린 다고 일을 그만 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송이도 혜연에게 얘기를 털어 놓으며 태상을 설득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태상이 자신에게 그러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혜연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송이한테는 비밀로 해. 악마의 심장이 이런 식으로 빛나는 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야. 원인이 뭔지 조사해봐야 해."

"하지만...!"

태상은 혜연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내가 시키는 데로 해."

"...."

혜연은 태상의 명령을 감히 불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태상으로 인해 구원 받았고, 지금까지 계속 숨을 쉬는 것도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가 원하는 일을 들어주는 것이, 혜연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송이에게 돌아가 정말 그가 탑 가까이로 다가가지 않기로 한 것이 진실이라고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당연히 그건 거짓말이었고 말이다. 다만 일을 처리할 것이 많아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계약자들이 모두 뒤로 물러나자 태상은 악마의 심장을 들고 혼자서 탑 가까이로 다가갔다.

언제든지 악마가 나타나거나 위협이 될 만한 것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여 태상의 다른 손에는 마나건이 들려 있었다.

태상이 가까이 가봤지만 딱히 탑을 보면서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심장에서 울리는 소리가 탑을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는 건 분명한 변화였다.

확실히 송이 말대로 심장이 이상한 것과, 탑이 이상한 것은 연관이 있는 거다.

태상은 탑의 매끈한 벽면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아주 시리도록 차가운 온도가 태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엄청 차갑네.’

그는 자신의 왼손에 들린 악마의 심장을 탑 가까이로 좀 더 가져다댔다.

심장이 그의 손바닥 안에서 부르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태상의 손을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몸이 탑 쪽으로 절로 기울어졌다. 태상은 발에 힘을 주어 따라 가지 않으려 했지만 워낙 순식간이었던 지라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심장에 탑에 닿았다.

눈을 시리게 만드는 붉은 빛이 순간 태상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갑자기 빛이 터졌던 곳을 다시 바라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새로운 것이 나타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태상의 손에 들린 악마의 심장이 탑과 닿은 부분에서 세로로 쭉 찢어져 안에 시커먼 무저갱 공간이 보였다. 딱 사람 한 명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악마의 심장은 더 이상 빛을 내뿜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이 잠시 탑 주변을 맴돌았다.

태상은 마나건을 들어 무저갱 공간을 향해 쏘았다.

타앙!!!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지만, 무언가가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안에서 악마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것인가 했으나 기다려 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무언가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 볼까?’

어차피 탑을 좀 더 조사해보려고 한 참이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 발로 변화를 보여주었으니 그냥 놓치긴 아쉬웠다.

결국 태상이 찢겨진 공간 안에 팔을 슬쩍 넣어보았다.

팔을 휘저어 봐도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안을 비춰 봐도 온통 시커먼 공간이 전부였기에 이대로 쉽게 무언가를 알아내진 못할 것이라 짐작했었다.

안으로 집어넣은 팔은 무척이나 찼다. 탑을 만졌을 때, 왜 차가운가 싶었는데 안도 똑같은 온도인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 팔을 빼려고 했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혼자 들어갈 순 없었다. 다른 계약자들과 함께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것마냥 갑자기 또 다시 그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

태상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주면서 버텼다. 정 안 되면 탑에 무력화를 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태상이 탑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무언가와 잠시 힘겨루기를 하던 태상은 결국 무저갱 공간 안에서 팔을 빼낼 수 있었다.

그러자 공간은 마치 토라지기라도 한 것 마냥 공간을 좁히기 시작했다.

탑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는 건 처음이었기에, 저 공간이 닫히는 걸 마냥 두고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공간은 태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작아지기 시작했다.

태상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에 들린 악마의 심장을 탑 가까이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그 행동이 색다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완전히 저 공간의 궁금증을 묻힐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릎 쓰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탑의 정체를 밝힐 것인가.

태상의 머릿속에 잠시 송이의 얼굴이 지나갔지만, 행동은 머리보다 빨랐다.

그가 팔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자, 공간은 얼씨구나 하며 그의 모든 몸을 순식간에 삼켜냈다. 그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공간은 완전히 닫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끈한 탑의 표면으로 돌아와 있었다.

**

탑 안으로 들어선 태상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하늘은 붉었고, 땅에는 시커먼 흙과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보였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원인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바로 탑. 그리고 악마의 심장 말이다.

하늘 위에서 끼이익!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를 바라보니 날개를 달고 있는 기이한 생명체가 어디론가 날아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태상은 그 생명체가 악마일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이곳이 바로 ‘마계’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나건과 악마의 심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심장을 통해 들어왔으니 나가는 것도 이 심장을 통해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계와 마계는 계약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왜 그들이 탑이라는 걸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젠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탑은 악마들이 나중에 침략을 할 때 인간계로 이동할 수단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탑을 통해 태상도 마계로 올 수 있었던 것일 테고 말이다.

카살라의 말에 따르면 천계는 더 이상 예전의 천계가 아니라고 했다. 악마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태상이 이곳에 있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는 악마 계약자도 아니라, 천사 계약자이지 않은가.

하지만 태상은 지금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왕 이렇게 마계에 왔으니 악마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태상은 카살라의 말에 의존하여 그들의 침략을 대비했다. 그런데 이젠 직접 상황을 두 눈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인간계로 다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이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이 싫다 해도 그가 선택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스스로가 저지른 행동으로 인한 결과에 불평불만 할 생각따위는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지금 현재 그가 서 있는 곳은 매마른 땅 위였다.

사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저 방금 전 새처럼 날아간 악마가 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놈이 그쪽으로 갔으니 그곳으로 계속 이동하다보면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이었다.

그런 짐작도 하지 않으면 그가 무엇을 이유로 하여 방향을 잡을지 막막해진다.

혹여 어디선가 악마가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그의 걸음걸이는 굉장히 신중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고 말이다.

당장 악마가 나타난다 해도 태상은 쉬이 죽지 않을 만큼 강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마나건 하나 뿐인지라 여러모로 신중해야 했다.

한참을 걸어 움직이자, 태상은 시야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그다지 좋은 쪽의 발견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의 시야에 있는 것이 악마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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