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1 천사 =========================================================================
“아아...!!”
카살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했던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익숙한 것을 본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태상님...”
카살라의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태상은 주춤 물러서며 사로나의 뒤로 이동했다. 그가 어쩐지 자신을 격하게 끌어안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사로나가 그런 태상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천하의 강태상이 울먹이는 남자 하나 때문에 뒷걸음질이라니.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이었기에 사로나가 대신 나서서 카살라를 살짝 안아주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서 정말 반가워요.”
“예. 정말 기쁩니다.”
카살라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제야 태상이 슬쩍 사로나의 뒤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카살라는 자신이 겪었던 일은 태상에게 남김없이 사실 그대로 전했다.
“....그렇게 천계에 악마들이 침략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간계를 이용한 거죠. 결국 천사들은 천계 중심부를 공격하는 대량의 악마들을 버텨내지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 죽었고, 전 악마들과 계속 싸우다가 어느 순간 이곳으로 이동되어졌습니다.”
태상은 카살라의 말에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럼 지금까지 갑자기 천계나 마계에 접속이 되지 않았던 것도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네?"
“네. 악마들은 자신의 계획이 계약자들로 인해 엉망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해서 아예 모두 차단을 시켜 버린 거죠. 그리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천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카살라는 오랜 시간 악마에게 대적하여 싸웠다고 말했다.
태상이 회사를 세우고,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를 하나로 묶는 시간동안 그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천사들은 패배했고, 악마는 천계를 접수했다.
태상은 악마들이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간계를 침략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심지어 천사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에도 인간계에 꾸준히 악마들을 보냈다.
그건 그들이 인간계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악마들이 천계를 모두 접수하고 천사들을 멸종시킨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아?”
태상이 심각한 목소리로 카살라에게 물었다.
카살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악마들은 거의 모든 천계를 접수한 상황이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남은 천사들만 깔끔하게 잡아들이면 됐다. 그럼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오랜 전쟁의 승리.
그럼......
이제 그 일이 모두 끝나면 악마는 무엇을 할까?
“아마 금방 인간계를 침략하진 않을 겁니다. 그들도 천사들과의 싸움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카살라가 뒷말을 흘리자 태상이 그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인간계도 천계처럼 침략하겠지. 그렇지?”
카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태상과 같은 생각을 했다. 악마들은 꾸준히 인간계를 침략하며 말 그대로 간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결국 악마에게 넘어가 인간계를 넘긴 ‘인간’ 때문이다.
태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동안 악마들을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드물게 몇몇의 악마만 보내 일부러 그들을 희생시키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태상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던 중, 갑자기 그들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카살라를 뒤늦게 따라 온 계약자와 짐이었다.
“카살라님!”
짐은 카살라가 낯선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 그를 불렀다.
그는 카살라의 표정을 보자마자 마음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짐은 일단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악마는 어디 있습니까?”
“악마는....”
카살라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갔을 때, 그가 만난 건 악마가 아니라 태상이었기 때문이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카살라를 본 태상이 한걸음 앞으로 나와 그들을 바라보고 물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야?”
“아, 이분들은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도움을 줬던 분들입니다.”
"도움? 어떤 도움?"
태상은 장담하건데 이들이 카살라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많을 거라 생각했다.
“태상님을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물론 이젠 필요 없어졌지만요.”
짐은 카살라의 말에 젠장! 하며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불안해했던 그의 예상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짐은 일단 하하하 소리내어 웃음을 짓고 태상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분들이 카살라님이 찾던 그 분들인가요?”
카살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짐이 보기에도 그들 사이는 굉장히 가까워보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건 짐의 기분을 무척이나 상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저희들이 카살라님을 위해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 몰랐네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나타난 악마를 잡아 주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간절한 일인지 몰랐던 카살라의 입장에선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맞았다. 물론 태상은 그들이 카살라를 어떻게 이용할 생각을 했을지 빤히 눈에 보였기에 말했다.
“그동안 제 동료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셔서 감사드리죠.”
태상의 말을 들은 짐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카살라가 자신의 사람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짐은 이대로 카살라를 그냥 놓아줄 수 없었다.
“영국 국민인 카살라님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영국 국민이요?”
태상은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 물었다. 짐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의 표정으로 말했다.
“예.”
‘이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카살라를 영국에 계속 묶어 놓기 위해 아무래도 별의 별 짓을 다 해놓은 상태인 듯 했다.
“풋!”
그때, 갑자기 태상이 웃음을 터트렸다. 짐은 당연히 당황할 거라 생각했던 태상이 웃음을 터트리자 당황스러워졌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본 태상이 말했다.
“아, 기분 나쁘셨나 봅니다. 죄송하네요. 저도 모르게 웃겨서....”
“어느 부분에서 웃음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그들은 카살라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해야 할 때에 저런 식으로 웃음을 터트린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태상이 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니, 카살라가 영국 국민이라는 게 너무 웃기잖아요. 거짓말을 하시려면 적당히 하셔야죠.”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짐이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태상은 웃음을 뚝 그치고 차가운 표정으로 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설명해보시죠. 왜 카살라가 영국 국민이 된 겁니까? 어떻게요?”
“카살라님은 모든 절차를 합법하게 거쳐서 저희 영국 시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 소속 계약자로 계약까지 마친 상태시고요.”
짐의 표정이 당당했다. 그는 카살라에게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카살라님이 그러셨지 않습니까. 저희 영국을 위해 악마와 싸우겠다고요. 약속을 하시면서 계약서에 지장까지 찍으셨습니다.”
카살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계약서가 뭔지 알기나 했겠는가. 그냥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해야 악마를 잡으러 갈 수 있다고 하기에 한 것 뿐이었다.
태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사기를 친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짐을 바라봤다.
짐은 점점 살기가 짙어지는 탓에 자신의 몸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영국은 사람이 아닌 자를 사람으로 둔갑해서 사기로 계약서에 싸인을 받아 시민으로 만드는 불법적인 일이 언제부터 합법이 된 겁니까?”
짐은 카살라가 자신이 천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녹음까지 해놓았다. 해서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술을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한 몫 했고 말이다.
“카살라. 네가 사람인가?”
“아닙니다.”
카살라가 태상의 질문에 딱 잘라 말했다. 짐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그에게 다시 물었다.
“카살라님은 천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전 천사가 아닙니다.”
태상은 짐이 뭘 믿고 저런 태도를 취했나 했더니 그가 그렇게 말할 것임을 알고 한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생각했다. 카살라는 ‘천사’가 아닐 뿐더러 사람’도 아니었다.
“맞습니다. 카살라는 천사가 아니죠. 하지만 사람도 아닙니다. 인정하지?”
“예.”
“그리고 저것들이 지금 네 목에 목줄을 걸고, 널 쥐고 흔들어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절 쥐고 흔든다고요? 그게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태상님을 화나게 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카살라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그도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알았다. 태상이 지금 화가 나 있고, 그를 화나게 한 이가 짐이라는 것도 알았다.
“저들을 죽일까요?”
“?!”
짐은 카살라의 살벌한 말에 경악하며 그를 봤다. 카살라를 감시하는 동안 그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철저히 분석을 해놨었다. 그는 강한 능력을 가진 것에 비해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맹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악마에 대한 살의가 깊은 것 빼면 그리 위험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를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이용해 먹기 좋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고작 태상이 화가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었던 이들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린 당신을 위해 많은 걸 해줬습니다!!”
태상은 속으로 도대체 뭘 그렇게 많이 해주었을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태상님을 찾아 주겠다고 한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분을 화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만으로도 당신들은 죽을 이유가 충분합니다.”
짐은 카살라가 왜 그토록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아야 한다 했는지 깨달았다. 그에게 강태상이라는 남자는 법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들 그 이상, 더 높은 법칙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상은 그럴 필요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카살라는 그의 말이 떨어지면 곧장 그들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가, 명령이 철회되자 살기를 풀었다. 그러자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워졌던 그의 분위기가 평소처럼 맹하게 바뀌었다. 덕분인지 살기로 인해 쿵쿵 거칠 게 뛰던 짐의 심장도 안도감에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태상은 그들을 향해 불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불안하던지, 짐의 심장이 쿵 하고 또 다시 내려앉았다.
사로나가 걱정이 되는지 작은 목소리로 태상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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