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60화 (160/251)

00160  천사  =========================================================================

그는 날개를 펄럭이며 익숙하지 않은, 어쩐지 입고 싶지 않은 옷을 바라봤다.

“이걸 꼭 입어야 합니까?”

그에게는 피에 엉망이 되긴 했지만, 전투에 적합한 훌륭한 갑옷이 있었다. 하지만 계약자 아니, 인간들은 그에게 불편한 다른 옷을 입을 것을 권했다.

그들이 카살라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는 이유는, 남들의 눈에 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살라는 그들이 가져다 준 옷은 방어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쓸모없는 천조가리들을 불만스레 내려다봤다. 이런 것을 입고 어떻게 악마를 상대한단 말인가!

“입으셔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날개 때문에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카살라를 계속 호텔에 가둬둘 순 없었다. 하루는 어떻게 설득하여 이곳에 두게 했지만, 그가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은 얌전히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고 있지만, 언제 돌발 행동을 할 지 몰랐다.

관계를 엉망으로 망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강제로 가두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설득하여 좀 더 그를 확실하게 가둘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했다.카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날개가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날개 때문이라면 없앨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꺼냈다. 그가 목걸이에 무슨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는지, 빛이 없던 목걸이에서 희미하게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놀랍게도 그의 날개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날개가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이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를 보고 있던 계약자들이 놀란 것은 날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가 꺼낸 목걸이 때문에 놀랐다.

“억!”

“저 목걸이는...!”

그가 돌발행동을 할 때를 대비하여 계약자들이 그를 호위겸 감시하고 있었는데, 카살라의 목걸이를 보고 반응을 한 것이다.

“진짜 천사가 아니라 계약자였습니까?”

날개를 봤을 땐 천사일거란 생각을 했는데, 목걸이까지 갖고 있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천사라고 하기엔 덩치도 작았고, 생김새도 인간과 너무 똑같았다.

카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계약자로 신분을 위장하기로 해서 목걸이를 들고 다니는 거였다.

“맞습니다. 날개는 그냥 제 능력일 뿐입니다.”

“과연....그런 거였군요.”

계약자들끼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카살라를 담당하는 일반인인 짐은 그게 무슨 말인지 물었다.

“저 사람은 진짜 계약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생김새도 천사랑 너무 다르고, 본인도 아니라고 하잖습니까.”

“그럼 그 날개는 어떻게 설명하고요?”

“날개는 본인 능력이라고 합니다.”

계약자들은 각자 고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일반인도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예에...알겠습니다.”

짐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미 카살라가 천사가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계약자라기엔 이곳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그동안 누구도 접속이 되지 않았던 천계에 접속해서 악마를 죽이고 다녔다.

그런 자가 천사가 아니라고 우기는 게 더 어이없는 거였다.

그를 상대하는 계약자는 멋도 모르고 카살라의 우김에 넘어갔지만, 그는 자신의 감이 정확할 것이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카살라가 짐에게 물었다.

“강태상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까?”

짐은 그의 말에 움찔 몸을 떨다가 무척 안타까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최선을 다해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이 세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겠습니까.”

카살라가 그들에게 협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들은 카살라가 찾는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자신들이 대신 찾아주겠다고 하고 그의 협조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카살라는 놀랍게도 혼자서도 높은 등급의 악마를 잡을 수 있는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영국은 카살라가 나타나 준 덕분에 CMC 회사에 들어갈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가뜩이나 악마들로 인해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모로 드는 돈이 많았다.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지금, 그들은 카살라를 어떻게든 구슬려 나라를 지키는 데 사용을 해야 했다.

‘날개를 숨길 수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짐은 속으로 왜 이제서야 카살라가 날개를 숨겼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카살라는 원래 자신의 봉인을 스스로 해제하거나 풀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사들이 죽어 나갔고,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 오자 라마스는 카살라의 봉인을 스스로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 그가 이렇게 봉인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은 임시로 자리를 마련한 곳입니다.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짐의 말에 카살라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굳이 이곳저곳 자꾸만 이동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여기서 나와서 스스로 태상을 찾으러 움직일까 고민도 많이 해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이 넓은 땅에서 사람을 찾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며 카살라를 설득했다.

최대한 빠르게 그에게 태상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강태상'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사용하는 나라는 아시아권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였기에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찾기엔 영국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었다.

진짜 카살라가 말하는 남자를 찾으려 했다면 그를 데리고 한국으로 갔어야 하는 게 맞았다. 이를 모르는 카살라는 그들의 말을 얌전하게 따르고 있었다.

“날개를 숨겼으니 옷은 굳이 갈아입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부터 날개가 문제였지 옷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계약자들이 카살라와 같이 갑옷 비슷한 옷들을 입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이젠 일반인들도 갑작스러운 악마들의 습격에 대비한다며 갑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그의 말에 카살라가 활짝 얼굴이 펴졌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무슨 일이야?”

그는 카살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말을 듣고 그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뭐? 악마가 또 나타났다고?! 맙소사!"

악마를 죽인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악마라니....!

짐이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계약자를 파견하겠다는 말을 하는 상대방에게 그가 잠깐! 하고 멈추게 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갔다. 그는 지금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등급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정확히 어떤 놈인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덩치가 작은 놈인 것 같은데, 공격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적어도 B등급 이상일 것 같습니다.]

“B등급 이상? 제길!”

주먹을 꽉 쥐었다. B등급 이상 악마를 잡으려면 또 얼마의 계약자들이 희생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더욱이 계약자들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야 할 돈도 문제였다.

머리를 싸메고 고민하는 그의 시야에 문득 카살라가 들어왔다.

카살라의 눈동자가 정확히 남자를 향하고 있었기에 둘의 시선은 정확히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통화내용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자리를 조금 움직였지만 청력이 좋은 카살라는 모두 똑똑히 듣고 있었다.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 모두를 말이다.

[다행이 시민이 대피한 파괴 된 곳에 나타나서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만, 이동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언제 시민들이 있는 곳을 덮칠 지모를 일이었다.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카살라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짐이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카살라를 다가오는 바라봤다.

“악마가 있는 곳이 어딥니까?”

“.....그건 왜 물으시죠?”

“전 악마를 죽여야 합니다.”

계약자나 천사나 악마를 적대시하는 건 다 알고 있는 바였다. 그는 설마 카살라가 지금 나타난 악마를 죽이러 가겠다는 말인가 싶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악마를 죽여주시겠다는 겁니까?”

“악마는 없어져야 할 존재입니다. 전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악마를 죽일 겁니다.”

꿀꺽.

짐이 침을 크게 삼켰다.

“정말 저희 영국을 위해 그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카살라는 그의 말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악마를 죽여 줄 수 있냐는 물음이라 생각했다. 해서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악마를 죽이겠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십시오.”

카살라의 대답에 짐의 표정이 환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찍은 영상 덕분에 카살라가 악마를 일격에 죽이는 것을 본 그다. 지금 그가 나서면 최소한의 피해로 악마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카살라에게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악마를 죽이고 나서 원하는 보상이 있습니까? 저희들이 최대한 맞춰 보겠지만 현재 재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악마를 죽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카살라는 미션 보상을 이야기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저었다. 아이라에게 괜히 악마의 심장이 필요없다며 내민 게 아니었다. 그의 삶은 오로지 악마를 죽이는 것과, 태상의 곁에서 그의 힘이 되어주는 것.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카살라의 말은 짐에겐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원하던 말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위치 보내주게. 다른 계약자들은 굳이 파견할 필요 없네. 지금 그 악마를 죽이러 갈 계약자가 내 옆에 있어."

짐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기에 서둘러 카살라를 데리고 악마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한 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피해가 적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랐다.

**

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헬기가 썩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카살라는 이착륙이 무척이나 거추장스럽다 생각하며 봉인을 풀었다.

붉은 하늘과 어울리지 않은 새하얀 날개가 밖으로 나오자, 묶여 있던 그의 힘도 함께 주변에 요동쳤다.

카살라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무너진 건물에서 또 다시 콰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악마가 계속해서 날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살라는 잠시 그쪽을 향해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확인해보지 않을 순 없었다. 그가 날개를 펄럭이며 그곳을 향해 가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짐이 카살라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카살라가 묻자 그는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는 말을 했다.

"위험합니다."

"절 지키는 계약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카살라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두 눈으로 꼭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악마를 잡고 카살라가 다른 곳에 가지 않게 감시를 해야 했다. 물론 후자의 이유는 카살라에게 말하지 않고 속으로 숨겨야 했지만 말이다.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

카살라가 계약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계약자가 아닌 짐을 안아서 움직여야 했기에 조금 속도가 늦을 수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카살라는 알겠다며 그들이 함께 따라오는 것에 동의했다. 카살라가 먼저 앞장 서서 움직였고, 짐을 챙긴 계약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보이지 않아.'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다. 악마로 보이는 것이 말이다. 가장 최근에 소리가 들린 곳으로 이동했다. 카살라는 연기가 피어나는 곳 근처에 착지했다.

조금 늦게 그를 따라 온 계약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찾았습니까?"

"아뇨, 악마가 보이지 않네요."

그때, 저 멀리서 쿠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어딘가에서 공격이 시작 된 것이다.

카살라는 계약자들을 기다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날아 움직였다.

카살라가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분명 방금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움푹 파인 바닥이 보였다.

"안녕, 카살라."

"!!!"

카살라는 놀라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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