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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62화 (162/251)

00162  천사  =========================================================================

“저들을 그냥 두고 가는 게 나은 선택일까?”

“아아, 괜찮아.”

태상이 사로나에게 걱정할 필요 없다며 손을 휘저었다. 카살라는 그가 왜 저렇게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카살라는 눈치 챘나보네.”

카살라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느껴집니다. 무척 가깝군요..”

“뭐가 느껴진다는 거야?”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는 뜻이야.”

“기운?”

태상은 더 이상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가자. 네가 돌아왔다는 걸 알면 다들 좋아할 거야.”

“그곳에 혜연님과 아이라님도 있나요?”

카살라는 오랜만에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기대감에 부푼 모양이었다. 뒤쪽에서 짐이 안 됩니다!! 가실 수 없습니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짐은 총을 꺼내 태상 일행을 겨누고 있었다.

총은 충분히 계약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무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날랬고, 강했다. 해서 총을 쏘기도 전에 당할 확률이 많았다. 그럼에도 칼로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야 총이 훨씬 위협적이긴 했다.

해서 짐이 태상을 겨눈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계약자들도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공격을 할 생각인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상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겸 말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CMC 회사에 의뢰는 넣지 마. 헛수고가 될 테니까. 앞으로 CMC는 영국의 모든 의뢰는 거절할 거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당장 뒤돌아서!! 그리고 당신이 뭔데 CMC 회사 얘기를 들먹이는 거지?!”

짐이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경고했다. 태상은 그가 원하는 데로 뒤로 돌아서서 짐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했다.

“내가 CMC 회사 사장이거든.”

“.......뭐?”

짐의 표정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의 거센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짐과 계약자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몸을 굴렸다. 하지만 태상과 사로나 카살라는 재빨리 땅을 박차고 뛰었다.

“아아악!!!”

짐의 다리에 바위가 덮쳤다. 짐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하늘로 든 순간, 보라색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소용돌이가 그의 시야에 보였다.

짐은 설마 설마 하며 아닐 거라 고개를 저었다.

“안 돼...안 돼...이건 아니야..이럴 순 없어...안 된다고!!”

짐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데리고 가줄 계약자를 찾았다.

하지만 나머지 계약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있는 곳 위에 소용돌이가 나타났음을 확인하자마자 몸을 피하기 시작한 후였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 줄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진으로 인해 계약자들도 제대로 몸을 못 가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짐을 챙길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그들도 돈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했으니 말이다.

“안 돼!!! 돌아 와!!! 날 데려가란 말이야!!! 살려줘!! 살려달라고!!!”

짐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어느새 지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꿀꺽-

짐이 침을 삼켰다.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의 다리는 돌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독 안에 든 쥐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악!!”

그때, 짐의 머리 위에서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짐은 졸지에 온 몸에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를 뒤집어 써야 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기척을 내고 있는, 끈적끈적한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흐아아아악!!!!”

짐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머리 위에 거대한 눈동자를 한 악마가 정확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그것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돌덩이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그의 시도는 그의 목숨을 지켜주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무척이나 안타깝게도 말이다.

콰드득!

악마가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어 짐의 몸통을 꿀꺽 삼켰다. 그의 몸에서 피가 튀어나오며 사방을 적셨고, 악마는 그의 생명을 빼앗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곳을 향해 퉤! 하고 그를 뱉어버렸다.

상체는 저 멀리에, 그리고 하체는 여전히 돌덩이에 끼어 있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악마는 짐 하나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주변을 쭉 훑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계약자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악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였다.

제법 거대한 놈인데도 불구하고 녀석이 날개를 움직여 날기 시작하자, 도망치는 계약자들을 따라잡기 충분한 속도가 나왔다. 계약자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멀리 떠나버린 터라 그들의 피가 결국 바닥을 적셨다.

**

물론 태상도 알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악마가 날뛰는 인간계가 아니다. 해서 영국에 악마가 설치게 내버려두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상이 짐에게 CMC회사는 더 이상 영국의 의뢰를 받지 않을 것이라 한 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적당한 때에 계약자들을 보내 악마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악마가 인간계에서 날뛰는 꼴을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 악마를 상대하는 방향을, 그리고 계약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영국의 악마를 죽이는 대가로 넉넉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할 테지만 말이다.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그가 가진 것들이 모자랐다.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회사를 빠른 속도로 키워갔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태상이 회사를 만들지 않고, 한 치 앞만 보고 움직였다면 절대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CMC 회사가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더불어 그 뿐만 아니라 모든 계약자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카살라~!!”

그의 컴백 소식은 혜연과 아이라, 그리고 반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의뢰를 갔다가 CMC 회사에 태상보다 미리 들어와 있었다.

“더 이상 접속할 수 없었을 때, 다신 카살라를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혜연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요. 시선이 장난이 아니네요.”

혜연이 회사 로비에서 카살라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꽉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 준 덕분에 계약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로 꽂힌 상황이었다.

이 시선의 대부분은 혜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아까 모습을 누군가가 사진을 찍었다면 내일 인터넷에는 혜연의 연애 스캔들로 난리가 날 것이다. 무려 카살라와의 격한 포옹을 로비에서 시원하게 보여 준 혜연은 그것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라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며 카살라의 왼쪽 팔에 팔짱을 끼었다.

카살라는 그녀의 행동이 무척 어색한 듯 했지만, 아이라는 그의 어색함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아이라가 카살라를 질질 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혜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갔던 일은 잘 하고 온 거냐?]

호들갑스러운 여자 그룹이 먼저 앞장을 서자 반이 태상에게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그도 얘기를 들어 영국에서 카살라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란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잘 해결 됐어. 아마 곧 영국에 계약자를 다시 파견해야 할 거야.]

[영국에?]

[응. 거기에 악마가 또 나타났거든.]

“여기가 길드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에요.”

카살라에게 이곳을 소개시켜 주는 혜연이었다. 그때, 둘 사이를 끼어들고 아이라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카살라씨는 어떻게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잘하시는 거에요?”

그는 아이라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껌뻑였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냥 계속 듣다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떤 이유에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천사였던 과거 때문에 그 능력 중 하나 일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아이라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카살라가 너무 쉽게 한국말을 하니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난 왜 그런 능력이 없지? 진짜 부러워요.”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았다면, 모두에게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이, 죄송할 것까지야 없죠. 그냥 부러워서 물어본 거에요.”

카살라가 덩달아 아이라처럼 시무룩해지자 그녀가 서둘러 그를 다독였다.

“아무튼, 앞으로 카살라가 지낼 곳을 마련해줘야겠다.”

태상은 얘기가 다른 곳으로 세자 주제를 다시 바꿨다.

“네, 알겠습니다.”

혜연이 그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반과 사로나에게 회의 내용을 통역해주었는데, 반이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

[뭐하러 또 집을 구해. 우리 집에 노는 방이 몇 갠데. 혼자서 여기서 지내려면 여러 가지 알려줘야 할 것들이 많을 테니 그냥 우리 집에서 재우지 뭐.]

확실히 카살라는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네가 워낙 넓은 곳으로 마련해줘서 전혀 문제없다고. 뭐...카살라가 나랑 한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태상이 반의 말에 카살라를 바라봤다. 그는 눈을 깜빡거리며 반과 태상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살라는 영어건 한국어건 모두 알아 들을 수 있는 통역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얼굴이라는 건....

태상이 그의 표정을 보다가 반에게 말했다.

[얜 뭐든 괜찮을 거야.]

그리고 그의 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카살라 거취 문제는 둘째 치고, 다들 들을 얘기가 있어. 천계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보다 훨씬 심상치가 않아."

그들은 카살라에게 천계의 상황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천사들이 죽었고, 악마는 천계를 접수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인간'.

바로 계약자들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들은 그들은 모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혀야 했다.

"그런데, 천계를 접수 했으면서 왜 계속 악마들이 이곳을 노리는 걸까요?"

그들은 천사들과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인간계에 악마를 등장시켰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접속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던 그들이다. 카살라가 이곳에 등장해준 덕분에 이제 그 이유가 밝혀 질 수 있게 되긴 하겠지만 그들은 그것보다 훨씬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알아야 했다.

"우리들도 결국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네요. 천사들처럼."

"그렇겠지. 그리고 그러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체제를 바꿔야 해."

"바꾼다고요?"

혜연이 의문을 표하자 태상이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면 계약자들을 강하게 만드는 거야."

악마는 숫자가 많았고, 그들 혼자만 강해지는 건 옳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계약자들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줄어들기만 하는 계약자의 수를 대폭 늘려야 했다.

한 마디로 군사 양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저희들이 가진 가치있는 정보를 모두에게 공개해야 해요."

혜연은 태상과 함께 회사를 지금 이 자리에 까지 오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 정보는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주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혜연의 얼굴에 잔뜩 불만과 아쉬움이 서렸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의 주인인 태상은 전혀 아까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오히려 이 일이 그에게 더 큰 것들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한 일이었어. 이 사실이 밝혀지면 심장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높아질 거야.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또 세상이 뒤집어 지겠네요. 심장이 계약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알려지고, 또 그게 계약자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요."

아이라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계약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강해지는 것이고, 일반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계약자가 되는 일이다. 그 열쇠를 악마의 심장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태상은 그 열쇠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갖고 있었다.

앞으로 태상은 열쇠를 이용해 무엇을 할지만 결정하면 된다. 그러니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절대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좀 더 정보가 알려질 때까지 기다려서 심장을 사모은다면, 태상이 얻게 될 이익이 더 많아 지는 건 맞았다. 혜연이 아쉬워 할 만도 하다. 카살라가 나타나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인간계를 악마에게 넘겨줄 순 없는 일이 아닌가.

태상은 지금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악마들이 정비를 모두 끝내기 전에, 인간계는 그들을 맞이 할 준비를 끝내놓아야 했다.

"지금이 움직여야 할 때야. 너무 아까워하지 말라고."

태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작품 후기 ============================

짐 이름이 왜 짐이냐고 물으신다면 짐이라서 짐이라고 지었....

후원쿠폰 감사합니다.ㅜㅜ 연참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열심히 쓰는 게 2연참인지라 ㅠㅠㅠㅠㅠ 추천, 코멘 감사합니다.

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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