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천사 =========================================================================
그는 일단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날개는 다행히 다친 곳 없이 멀쩡한 편이었기에 하늘을 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하늘 위로 오르자 화려한 건물들 사이로 부셔진 건물 잔해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는 날개를 펄럭여 건물 옥상에 무사히 안착하는 데 성공하자 기척이 없는 황량한 주변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계인가?”
하늘이 붉었기에 마계일 확률은 높았다.
그렇다면 악마는 어디에 있는 거지?
그는 이를 으드득 갈았다. 비록 몸 상태가 좋지 않다 해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목숨이라는 게 무의미해진 상황이었다.
살고자 해도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해도 죽는다.
그렇다면 한 명의 악마라도 더 길동무를 만들어 갈 생각이었다. 그는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나있음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기척을 찾아 움직이기 위해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몸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가 바람에 휘날려 그가 지나온 곳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상처에 대한 고통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계가 아닌가?’
그는 잠시 공중에서 멈췄다. 주변을 살피면 살필수록 이곳이 마계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긴 하지만 마계라고 하기엔 주변에 너무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저런 이상한 건물들은 도저히 이곳이 마계라고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언컨데 그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마계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래 쪽에 다량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척의 주인공이 악마는 아닌 것 같았지만, 확인을 위해 아래로 몸을 내렸다. 그러자 그는 그제야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기척이 악마들의 기척이 아니라 계약자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계약자들이 갑자기 왜 이런 곳에 튀어나왔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천계와 마계에는 더 이상 계약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이 마계일 수도 없고, 천계일 수도 없다는 뜻이 됐다.
‘도대체 내가 어디로 이동된 거지...?’
일단 그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뒤로 치우고, 앞에 있는 중요한 일을 처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날개를 펄럭여 날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주변을 살피지 않았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어느덧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바로 악마였다. 저 악마를 처단하는 것. 그것이 혼란스러운 것들을 모두 뒤로 치우게 만든 이유였다. 그는 한 명의 악마라도 더 처단하기로 이미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았다.
“크아아아아아!!!”
악마는 주변을 파괴하며 난리 치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놈을 막으려 애를 쓰고 있는 계약자들이 있었다. 왜 악마가 천사가 아닌 계약자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검을 들어올려 악마를 향해 겨누었다. 이 검으로 많은 악마들을 죽여 왔다. 저놈도 이 검의 희생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카살라가 가속도가 붙은 날개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악마를 향해 검을 그어냈다.
서걱! 하는 무언가를 베어내는 감촉이 느껴졌다. 카살라는 무사히 바닥에 착지하고, 등 뒤에 날개를 접었다. 촤아악 하고 피분수가 뿜어져 나와 그의 흰 날개를 핏빛으로 적셨다.
쿵!!!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카살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제 악마는 생명을 다했을 것이다. 카살라는 뒤를 돌아 악마를 보았다. 목이 잘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악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악마의 시체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악마를 향해 손을 뻗자 시체가 사라지고 악마의 심장이 나타났다.
카살라는 익숙한 손길로 심장을 손에 쥐고, 날개를 다시 펄럭였다. 그런 그의 행동을 주변의 계약자들이 똑똑히 보고 있었다.
“저건....천사잖아?”
"악마를 한 방에 죽이다니...."
"천사라기엔 생김새가 좀 이상한데?"
그러다가 계약자 중 누군가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살라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언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만히 듣고 앉아 있으니 서서히 그들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그를 가운데에 두고 계약자들이 뭐라고 계속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카살라는 그들의 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오자 입을 열었다.
“이곳이 어딥니까?”
“마, 말 했다!”
말을 하는 게 뭐가 그렇게 놀랍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카살라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당신들은 계약자입니까?”
“당신, 그 날개....천사 맞죠?”
계약자들은 카살라의 등 뒤에 달린 날개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카살라는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전 천사가 아닙니다.”
천사였으나 이젠 천사가 아니다.
“천사가 아니라면 그 날개는 뭡니까?”
카살라는 곤란하다는 듯 날개를 펄럭였다.
“날개를 달았다고 다 천사는 아닙니다. 아직 제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어디 입니까?”
“.....여긴 런던입니다.”
“런던? 처음 듣는 군요. 마계는 아닌 것 같은데 맞습니까?”
‘아니라더니 천사 맞잖아!’
악마가 악마를 죽일 리 없으니 카살라가 천사라는 건 거의 확실한 거였다. 천사에게 런던이니 뭐니 그런 나라 이름을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계약자 중 한 명이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했다.
“여긴 계약자들이 사는 인간계입니다.”
“인간계요?”
카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계.....인간계에 왜 아직도 악마가 있지? 전부 천계로 온 게 아니었나? 아니, 것보다 자신이 어떻게 인간계로 올 수 있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악마는 그동안 많이 보아왔지만, 천사는 오랜만이었기에 계약자들 사이에서 경계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새삼 천사들이 왜 인간계로 왔는지 궁금했다.
만약 악마들에 더불어 천사들까지 인간계를 침략하려는 것이라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계약자들은 서서히 한 명씩 카살라에게 무기를 겨누기 시작했다.
“천사가 왜 인간계로 온 거지? 그렇게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놓고?”
카살라는 계약자들이 점점 자신을 향해 살기를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천계와 마계에 접속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이 일방적으로 자신들과의 관계를 끊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악마가 인간계를 침략했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싫어서 쓰고 버린 거라 생각하는 거다.
물론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말하기가 꺼려졌다.
지금 천계와 마계의 상황을 말하면 그들이 과연 이 적대감을 줄여줄까?
그건 아니라고 봤다.
“그렇지 않습니다....전 천사가 아니니 굳이 그들의 사정을 변명할 이유가 없긴 하지만 천계에 접속이 되지 않는 건 악마들의 수작이었습니다.”
악마들이 접속을 막은 거였다.
천계와 마계는 서로 나뉘어져 있는 공간이었다. 해서 서로의 세계로 이동을 해야 공격을 하거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악마가 그 나뉘어져 있던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버렸다. 바로 천계와 마계를 구분시켜 주는 인간계를 이용해서 말이다.
“악마들의 수작이었다고?”
계약자들은 카살라의 말에 동요를 보였다.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카살라의 머릿속에서 이곳이 인간계라면 혹시나 태상을 만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태상....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이다. 그와 함께 지냈을 때가 카살라가 기억하는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그가 사라지고, 천계와 마계는 엉망이 됐다.
싸움. 전투. 전쟁. 피. 죽음.
그 단어들이 카살라의 시간을 지배했다. 그의 모든 시간이 악마와의 싸움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곳으로 이동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올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악마들과 한참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아무 곳이나 이동해서 잠시 몸을 추스르려고 공간을 이동했는데, 이곳으로 와진 거였다.
“혹시 강태상이라는 분을 모르십니까?”
안타깝게도 태상을 찾아보려 하는 카살라의 시도는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인간계에서 공식적으로 강명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니 그가 강태상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찾는다 해도 아는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찾는다 해도 동명이인일 것이다.
“강태상? 그 남자는 왜 찾는 거지? 당신 계약자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천사가 아닙니다. 그러니 계약자가 있을 수 없죠. 하지만 전 그분께 가야 합니다.”
그동안은 악마를 죽이는 것밖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렇게 살았지만, 태상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중요한 일의 순서가 바뀌게 됐다.
그동안 악마를 죽이는 것이 1순위였다면, 지금은 태상을 찾아 그의 곁에 있는 게 1순위가 되야 했다. 애초부터 그는 천사도, 악마도 받아주지 않는 몸이었다. 그런 그를 받아 준 것이 바로 태상이었다.
그의 목숨은 천사들을 위해 쓰여야 할 게 아니었다. 태상을 위해 쓰이는 게 맞았다. 그동안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를 만날 수도 있으니 그 확률이 1%라도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천사들이 아니라고 하니까 묻습니다만, 그럼 진짜 천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죠?”
그때, 계약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카살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살라는 그 질문을 던진 이를 힐끗 바라 보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들은.....”
그는 또 다시 선뜻 입 밖으로 그것을 말 할 수가 없었다. 입 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 마냥 텁텁하고 썼다. 그건 아마 그의 기분이 현재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죽었습니다. 악마들의 공격으로 천계는 무너졌고, 그로인해 천사들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재 천계는 더 이상 옛날의 천계가 아닙니다.”
천계가 무너졌다.
악마는 승리했고, 그로인해 많은 천사들이 죽었다.
남은 천사들은 악마들에게 붙잡혀 갇히거나 굴욕을 당했다. 그렇지 않은 천사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싸우다가 죽어갔고 말이다. 카살라는 후자에 속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밀려들어오는 악마들을 죽이다가 이곳에 이동되어 진 것이었다.
마계와 천계는 더 이상 두 가지로 구분되지 않았다. 왜냐면 이젠 천계를 자유자재로 악마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카살라는 계약자들에게 다시 한 번 재차 사실을 인지시켰다.
“천마전쟁은 끝났습니다. 악마의 승리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계약자들을 동요시켰다.
"말도 안 돼...악마가 이겼다고?"
악마는 인간계를 지금도 꾸준히 침략해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긴 것이 인간계에 있는 계약자들에게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악마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갑자기 악마들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오랜 시간동안 계속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악마가 이겨요? 말도 안 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카살라는 그들의 말에 헛웃음을 토해냈다. 지금 천사들이 전쟁에서 지게 된 것은 그들이 인간계를 악마에게 가져다가 받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일이 그렇게 됐냐며 따진다.
당연히 황당했다.
“모르신다니 알려드리죠.”
카살라의 목소리가 차갑게 굳었다.
아무리 그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존재라고 하지만 어찌됐든 천사 쪽에서 싸우며 계속해서 악마들을 죽여왔다. 그러니 천사들을 지게 만든 원인을 만든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할 순 없었다.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카살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계약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채 그의 말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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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예상하셨던 것처럼 그놈이 그놈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