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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51화 (151/251)

00151  CMC (Contractors Management Company)  =========================================================================

한 번도 대외적으로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터라 뒤로 구린 게 있다느니 하는 등의 말이 많았던 것이다.

민아는 솔직히 태상의 얼굴이 잘생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혜연을 내세울 게 아니라 스스로 나서는 게 훨씬 회사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못 생긴 것보다 잘 생긴 게 더 낫고, 남한테 시키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더 일처리가 확실한 법이었다.

그가 직접 세상에 나서게 된다면 뒤로 호박씨 까는 것들도 없어질 것이고, 좋은 일 하고 있다는 생색도 낼 수 있었다. 그런 좋은 것들을 두고 왜 뒤에 숨어 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너한테 왜 알려줘야 해?"

"그건...!"

그럴 이유가 없는 건 맞긴 했다. 그래도 민아는 최대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화제를 꺼내기로 했다.

"좋아, 알겠어. 그냥 앞에 나서기 귀찮으니까 그런 거겠지. 맞지?"

민아의 예리한 말에 태상은 흐음....하고 신음을 뱉었다. 단순히 귀찮아서 그랬을 거라 생각은 안 들지만 그냥 넘기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용케 정답을 맞춘 것이다. 물론 정답을 맞췄다 해도 그게 정답인지 모를 테지만 말이다.

태상은 굳이 자신이 새롭게 나설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미 혜연이 충분히 유명해졌는데, 굳이 자신이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유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유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의 이름 석자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곳의 사장은 엄연히 혜연이 아니라 강명진이라는 이름의 태상이었으니 말이다.

혜연은 사방에서 출연해달라는 요청 때문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자 신비주의니 뭐니 하면서 출연제의가 넘쳐나는데, 한 번 출연하기 시작하면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민아는 손에 쥐고 있던 수첩에 무언가를 대충 끄적이며 적었다. 태상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금 자신을 막무가내로 취재를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무슨 베짱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야? 내가 정말 너랑 얼굴 한 번 마주쳤었다고 인터뷰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온 건가? 지금 이 자리를 빌미로 나한테 인터뷰를 했다면서 기사를 내면 바로 고소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태상은 더 이상 민아의 장난에 놀아 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취재 허락 못 맡은 거 알아. 당연히 아니지. 그런 걸 해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우리 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당연히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

강태상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 그녀는 그를 주시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었다. 그러나 도중에 갑작스러운 세상의 변화로 그러지 못했었고, 조금 안정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 덕분인지 다시 민아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시간이 헛수고라는 걸 알고도 찾아 왔다 이건가? 왜?"

태상이 민아가 다른 꿍꿍이로 찾아 온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민아의 얼굴이 놀랍도록 차가워지며 그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당신이 태상 오빠 죽였지?"

"......."

태상은 민아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왜 그녀가 그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태상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네가 계약자고, 계약자들은 놀랍도록 신기한 능력들을 사용하니까. 여기 사장도 계약자라며. 그럼 네가 사장이니까 계약자라는 거 아냐? 태상 오빠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해서 지금 내 앞에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는 거잖아!!"

태상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전혀 상관도 없는 남자가 갑자기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는 계약자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특별한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다.

그럼 그가 만약 강태상을 죽이고, 그 가족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 지금의 자리에 온 거라면?

민아는 그 생각에까지 미치자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는 그가 강태상을 죽였다는 증거를 잡아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그녀의 바지 주머니에는 증거를 위해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건 모두 민아의 착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아니지? 일단 강태상의 몸을 한 이명진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긴 했으니 아예 전부 다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긴 했다. 태상은 민아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앞에서 그 추측들을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에 내가 진짜 그랬다면 널 죽여서 입을 막을 수도 있는데, 제 발로 여길 왜 찾아 온 거지? 강태상이 그렇게 좋디? 그렇게 그놈이 너한테서 의미가 깊은 놈이었나?"

솔직히 태상에겐 전혀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을 듣고도 금방 생각해내지 못할 만큼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미미했다.

“넌 범죄자야! 이 회사를 만든 것도 모두 태상 오빠 것들로 시작한 거잖아.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 아니야!”

민아는 아무래도 그가 강태상을 죽인 살인자라고 확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혜연이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차가 들려 있었다. 혜연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태상과 민아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노크를 하기 전에 민아의 목소리를 들었던 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너 여기 앉아봐."

"제가요?"

혜연이 놀란 표정으로 태상에게 물었다. 그는 앉아있던 자리를 비켜주며 그녀에게 자신의 옆에 앉도록 만들었다.

민아는 그런 혜연을 빤히 바라봤다. 혜연이 그의 정체를 알고도 옆에 있는 건지, 아니면 모르고 그녀도 당하고 있는 피해자인지 알 수 없었다.

태상이 굳이 혜연을 앉힌 것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런 말을 떠들어 대는 민아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냥 죽여버리기엔 자신이 좋아 저러는 건데, 너무 매정한 일이고. 그렇다고 살려서 그냥 내버려두기엔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강명진씨와는 어떤 사이시죠? 소문처럼 정말 내연 관계인가요? 저 남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도 숨겨주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모르고 당하고 있는 건가요?”

민아의 말에 태상이 파핫! 하고 웃었다.

태상도 혜연과 자신의 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가 근래에 알게 된 거였다. 아니 뗀 굴뚝에 도대체 왜 연기가 나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혜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차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사이 아닙니다. 지금은 바빠서 못했지만 예전에는 사모님을 모셨었는걸요? 그런 사이일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무척 애처가이십니다. 근데 제가 뭘 모른다고 하는 거죠?"

혜연이 영 모르는 얼굴을 하자 민아가 태상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 사장님이 강태상이라는 남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았다는 걸 말이에요!!”

혜연이 이게 도대체 뭔 소리냐는 식으로 태상을 바라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태상은 어깨를 으쓱하며 소파에 기댔던 몸을 일으킨 뒤 말했다.

‘저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네.’

가장 평화롭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강태상이라는 것을 알리는 건데, 민아에게 왜 그걸 알려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측근도 아니었으며 가족도 아닌데 말이다.

설명을 해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저런 오해를 하게 가만히 내버려두기도 뭐한 상황.

민아는 태상과 혜연이 서로 눈을 마주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저들끼리 신호를 주고 받는 듯해 보이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혜연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악당인 강명진을 돕는 조력자였던 것이다!

민아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왜 아무런 말도 안 하시는 거죠? 알고 계셨던 건가요?”

“음.....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던 중이에요.”

“왜요? 제 말이 거짓말 같나요? 아니면 알고 있던 사실을 들켜서 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도 한 건가요?”

민아의 뾰족한 말투에 단단히 깊은 오해가 박혀 있음을 깨달은 혜연은 울상을 지었다. 일단 혜연은 그녀에게 오해라고 말을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말로 설득하고 이해시켜보는 시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저희 사장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어요.”

“결국 당신도 저 나쁜 놈이랑 한 편이었군요? 그동안 대외적으로 보였던 행동들 전부 다 가식이었어!”

민아가 주먹을 쥐었다. 어서 말해! 태상 오빠를 죽였다고 말하라고!!

민아는 그가 어서 사실을 털어놓기를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도발을 했는데, 자기네들끼리만 있는 이곳에서도 가면을 쓰고 시치미를 뗄 리가 없었다.

혜연은 어쩐지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아 태상에게 못 하겠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자 태상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진짜 얘는 예전이고 지금이고 사람 귀찮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나가봐. 내가 해결 할 테니까.”

“말씀하시게요?”

혜연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는 저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보이자 말했다.

“내일 내가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 당신이 저지른 내용이 담긴 기사가 깔리게 될 거야! 내가 그 정도 장치도 안 해놓고 여기 온 줄 알아?? 어서 인정 해! 태상 오빠 당신이 죽였지?!”

민아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혜연은 결국 태상과 민아 둘이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태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소리를 지르고 그에게 대들긴 했지만, 무섭기는 한 모양인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그와 거리를 벌렸다.

“다, 다가오지 마!!”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순식간에 움직여 그녀의 앞에 떡하니 나타난 상태였다. 민아가 꺄아악!!하고 소리를 지르려는데, 태상의 손바닥이 민아의 입을 덥쳤다.

“으읍!! 읍!!”

민아가 발버둥을 친다 해도 계약자인 태상을 그녀가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상이 민아에게 말했다.

“제발 좀 그만 귀찮게 해라. 응?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래? 내가 말했잖아.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좀 그만 쓰라고. 너 이거 완전 스토커거든? 좋아해주는 마음은 갸륵한데, 받는 사람이 싫으면 그만 해줘야 하는 거다. 알겠냐?”

“읍! 으으읍! 읍읍!!”

민아가 눈을 치켜뜨고 그를 계속해서 노려봤다. 뭔가 항의의 말을 하려는 건지 계속해서 읍읍 거리는 소리를 냈고 말이다.

이 귀찮은 걸 떼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같잖은 짓 그만하고, 거래를 해보자고."

태상이 그녀의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민아는 어떻게 그걸 태상이 알았는지 몰라 눈동자가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상은 녹음기를 단 번에 아귀 힘만으로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

민아가 더욱 표독스럽게 말했다.

"거래? 내가 그딴 거에 넘어갈 것 같아?!"

"넘어가지 않으면 네가 죽을 텐데?"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강태상에 대한 진실을 알려 줄 테니, 앞으로 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그럼 살려는 줄게.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처다. 진짜 더 이상 귀찮게 하면 확 악마 앞에 떨궈놔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태상은 그녀가 기자라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마침 언론 쪽에 사람을 한 명 구해야 하던 참이었다. 앞으로 언론 플레이를 할 때 그녀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강태상 따라서 죽어야 해. 네 말대로 입을 막기 위해선 그게 가장 효과가 빠르니까. 그러니 반항하지 말고 내 제안을 받아들여. 영리하게 생각해. 기회 줄 때. 진짜 이 기회를 거절하면......"

태상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살기를 담아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말했다.

"..넌 이 자리에서 죽는 거야."

민아는 처음 경험해보는 진정한 살기에 놀라 몸이 절로 딱딱하게 굳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크게 덜컹거리며 내려갔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민아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진짜 죽는다는 게 이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상은 민아의 그런 상황을 눈치 채고 말을 시작했다.

"네 말이 맞아. 강태상은 손으로 죽였어. 그놈이 엄청 나쁜 짓을 했거든."

'태상 오빠가 나쁜 짓을 했다고...?'

"그놈이 남의 몸을 빼앗아서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어. 기분 더럽게 말야. 그래서 응징해줬지. 내 몸을 빼앗았는데,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

민아는 태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시키도록 친절하게 얘기를 해줄 이유가 없었던 태상은 말했다.

"자, 이제 거래는 끝났어. 어떻게 할래? 이대로 죽을래? 아니면 나랑 거래를 하고 살건가?"

태상은 민아가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요구했다. 민아는 사실 이미 그의 살기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태상은 손을 움직여 민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목을 쥔 이 손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나, 나는...."

민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정말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그녀는 죽을지도 몰랐다. 절대 그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온 자리였다. 하지만 한 번도 진짜 살기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본 적 없었던 그녀는 태상의 기세를 받아 내기에 무리가 많았다.

그녀는 결국 바짝 마른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굴욕적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사..사..살려..주세요."

그녀의 눈동자는 바닥을 바라봤다. 태상의 눈동자가 너무 무서웠기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그녀의 생존 본능이 결구 스스로의 자존심을 꺾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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