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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37화 (137/251)

00137  붉은하늘  =========================================================================

하긴,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니 그냥 멀뚱히 서서 두고 보고 있긴 어려웠을 것이다. 여진은 원래 평소에도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여자다. 그러니 저러고 다니는 것은 태상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일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송이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는 안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더욱이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해도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았으니 알게 모르게 충격이 컸을 거란 뜻이다.

태상은 송이가 낑낑거리며 바위 아래에서 다리가 깔린 남자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태상아!”

송이에게 비키라는 듯 그녀의 몸을 살짝 뒤로 밀고, 태상이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려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당겼다. 바위를 그냥 던져버려도 됐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놀랄 테니 대신 바위를 들었다는 듯 보이게 하면서 남자를 당긴 것이다.

남자의 다리는 역시나 피범벅이었다.

다리가 바닥에 끌리자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그야 익숙한 광경인지라 별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송이가 보는 건 좋지 않을 광경이었기에 태상이 그녀를 바라봤다.

“왜 이러고 있어. 너 몸 조심해야 하는 거 몰라?”

“조심했어. 나 걱정했구나? 갔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다친 곳 없는 거지? 빨리 와서 다행이다.”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 않는, 알 수 없는 일을 처리하러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태상이 나타나 의아했다. 일단 무사해보여 다행스러웠지만 말이다. 다친 곳도 없어보였고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태상은 송이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방에 이 남자처럼 흉측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태상은 의외로 생각보다 훨씬 그녀가 이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 저런 것들 보고도 괜찮은 거야?”

“응? 아, 환자들 상처 보고 나 놀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송이가 그의 걱정이 기분 나쁘지 않은지 웃음을 보였다. 그러며 자신이 왜 이런 끔찍한 상처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지 알려주었다.

“나 예전에 병원에서 일했었잖아. 비록 청소부지만 왔다갔다 거리면서 이런 상처 본 적 있어. 지금도 끔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비명만 지르고 있을 순 없잖아."

송이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병원을 다니면 종종 로비로 들어오는 환자들로 인해 험한 꼴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송이는 그런 것들을 질색하기엔 곱게 자라지가 않았다.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

송이의 눈동자를 본 태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너무 그녀를 과하게 걱정하고 있다고 말이다.

“곧 119가 와서 사람들 실어갈 거야. 경찰차 사이렌 소리 들었어.”

“응, 들린다. 구하러 왔나봐. 다행이야.”

그때, 태상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핸드폰을 확인하니, 세연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오늘 그가 어디에 갔는지 알고 있으니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한 게 분명했다. 태상은 그녀가 걱정할 것이 분명했기에 핸드폰을 송이에게 넘겼다.

“나 괜찮다고 전해줘.”

“어머니야?”

“어.”

송이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너 괜찮니?? 태상이는?]

세연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다급해보였다.

“태상도, 저도 다 괜찮아요. 다친 곳 없어요. 어머님은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세상에, 도대체 왜 이런다니?! 소식 듣고 심장이 내려갔어! 그쪽으로 사람들 보냈으니까 경호 받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렴. 알겠지? 아마 곧 도착 할 거야.]

“네 그럴게요. 안전하게 집으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송이는 세연에게 재차 자신들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세연이 그녀의 말에 크게 뛰던 심장이 수그러드는지 안정 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안전한 나라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렴. 그곳으로 움직이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네? 안전한 나라요?”

[지금 한국은 안전하지가 않잖니. 지진이 나고 난리가 났는데 이곳에 계속 있을 순 없지. 하늘도 이상하고....이 일이 해결 될 때까지 다른 나라로 피해 있기로 했다.]

송이가 세연의 말을 듣고 당황해 태상을 바라봤다.

태상은 통화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기에 그녀의 당황을 눈치 채고 말했다.

“일단은 그렇게 한다고 해.”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어머님.”

그 후로 몇 마디 더 나누다가 통화를 끊자 송이가 태상에게 곧바로 물었다.

“설마, 정말 다른 나라로 피신해 있는 거야?”

“종종 그래.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다른 나라에 대피소 같은 걸 만들어두지. 아마 그것들 중에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갈 거야.”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피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세연은 태상은 두고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자신이 저 탑의 문제를 빠른 시일 내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진짜 그런 것들을 마련해놓는구나...”

그때,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도착을 했는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 안쪽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 그들은 장비를 든 채 뛰어오고 있었다. 태상은 송이에게 말했다.

“이만 돌아가자.”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도착해서 인지 그녀의 얼굴에 안도감이 감돌았다.

아마 지금쯤 태상이 상대했던 악마 놈의 시체가 있었던 곳을 조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을 조사한다 해도 나올 건 없었다.

악마는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핏자국은 있을 테지만, 이미 보석 같은 것으로 바뀌어 태상의 품에 있었다.

태상은 그것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악마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놔두었겠는가.

여진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살아남은 사람들을 돕겠다며 함께 갈 것을 거절했다. 송이는 먼저 가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돕겠다고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태상은 송이가 그런 생각을 할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그녀를 붙잡아놨다. 그리고 곧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세연이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다.

태상은 송이를 차에 태우고 차문을 닫았다. 송이가 당황하며 다시 차문을 열어 나오곤 말했다.

“너는 왜 안 타?”

“조금만 있다가 뒤 따라 갈게.”

그에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

송이는 태상의 옷깃을 쥐고 한동안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끝내 그의 옷깃을 놓아주었다. 태상은 그녀가 자신을 믿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았다.

♪♪♩♬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리며 혜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상님! 악마가...!]

혜연의 말을 듣던 태상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했다.

“방금 한 명를 죽였어.”

[제 앞에도 지금 악마가 있어요. 아무래도 하늘이 붉은 건 마계랑 관련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일단 잡아야지. 여기를 엉망이 되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지금 인터넷에서 각 나라에 악마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해요. 지진이 일어나더니 탑이 땅에서 솟아났다고요. 동영상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오고 있어서....아, 그리고 그 후로 악마가 나타났대요. 사람들은 악마를 몬스터니 뭐니 그런 걸로 떠들어 대고 있어요.]

악마가 인간계에 나타났다.

이건 사건이 너무 컸다. 악마가 인간계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면, 천사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그러니 천사들이 이 현상을 해결해주는 게 맞았다.

헌데 문제는 그들이 인간계에 헌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곳에 올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으며, 계약을 할 때 뿐이었다.

이곳이 천사와 악마들의 전쟁터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악마들이 인간계에 있는 천사 계약자들과 무고한 일반인들까지 모두 죽일 수 있었다.

인간계가 악마들의 손에 들어가는 건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악마들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에 태상이 이곳에서 태상처럼 능력을 사용했던 놈들을 처치했던 S등급 미션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붉은 하늘이 한국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고 하니, 더욱 걱정이 됐다. 태상과 사로나, 혜연 셋이서 해결하기엔 문제가 너무 크다 라는 거다.

그들의 몸은 하나다. 그에 비해 그들은 쪽수가 많았다.

지금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

천사 계약자들이 저놈들을 잡을 수 있도록 능력을 이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이 인간계에서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면, 이곳을 천사 계약자와 악마 계약자들의 싸움터로 만드는 꼴이었다.

“일단 알겠어. 너무 악마들을 잡는다고 혼자 섣불리 나서지 말고 상대할 수 있는 놈들만 상대해.”

태상이 없는 상황에서 혜연 혼자서 너무 나섰다가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혜연이 알겠다고 태상에게 대답을 하곤 통화를 종료했다.

태상은 곧장 검붉은 탑으로 향했다.

지금 이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그곳을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탑 주변에는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기자들은 겁도 없이 이곳에 출동을 해서 특종을 잡아 보겠다고 경찰들을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경찰들은 사람들을 막고, 무장한 군인들은 탑 주변을 쭉 둘러싸며 근처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저렇게 가까이에 있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

아마 저들도 이 탑이 악마가 나타나는 원인일 거라 짐작했을 것이다.

갑자기 멀쩡했던 땅이 치솟아 나타난 탑이다. 당연히 의심할 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저들 때문에 태상이 탑에 다가가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안개가 없었다면 아마 엄청 곤란했을 거다.

안개가 누굴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 태상에겐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최대한 없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탑 주변에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던 군인들은 잠시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뭐였지?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데, 주변을 살펴봤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거친 바람이 불었던 것이라 짐작하고 제 일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바람을 휘몰고 온 사람인 태상은 안개 속으로 몸을 집어  넣은 후였다. 안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태상의 감각까지는 무디게 만들 수 없었다.

그는 이곳을 돌아다니는 군인들을 요리조리 피해 탑 가까이로 접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탑에 손을 데어 만져보니 매끈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누구냐!? 손들어!!”

그때, 태상의 가까이에서 누군가가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서늘한 기운이 태상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태상의 몸이 빙그르르 돌려지며, 반을 움직여 돌려차기를 했다. 그의 발에 맞은 총이 저 멀리 내팽개쳐지고, 태상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던 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눕혔다.

“컥!”

단발마의 비명소리를 끝으로 정신을 잃은 상대를 본 태상은 그가 군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군인들 때문에 귀찮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다음편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 해주시면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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