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6 붉은하늘 =========================================================================
“쳐다보지 마.”
태상이 송이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돌 아래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걸 보면 송이가 충격을 받을 건 당연했다. 주변에 무너져 있는 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태상은 왜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진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길쭉하고 거대한 탑이 나타나면서 생긴 지진이 분명했다. 태상은 그 탑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향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송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검붉은 탑은 사람들이 많은 도시 중앙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터라 인명 피해가 컸을 것이다. 붉은 하늘 위에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생긴 연기가 구름처럼 메우기 시작했다.
여진은 속이 울렁거리는지 저 멀리서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참고로 여진은 생긴 것과는 달리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다. 송이가 걱정스레 여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가 태상에게 물었다.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다친 곳 없지?”
“....거기에 출구라곤 창문밖에 없었는데 너야 말로 다친 곳 없는 거야?”
더욱이 자신들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길 여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여기에 서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여긴 위험한 것 같으니까 움직이는 게 좋겠다.”
사방에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들을 구해주겠다고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저들을 살리자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서둘러 송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놓고, 탑을 조사하러 움직이는 게 더 생길지 모르는 희생자를 줄이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물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을 그의 차를 찾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니, 어차피 있었다고 해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로 도로 주변이 난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론적으로는 걸어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찌그러진 차들과, 죽은 사람들의 시신 그리고 무너진 건물들과 불로 인해 검은연기까지.
사방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여진은 한 차례 구토를 끝내고 너덜너덜해진 얼굴을 했다. 하지만 정신이 좀 드는지 그녀는 태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남편, 사람 맞니?”
송이는 그녀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방금 전에 겪은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는 일도 있었는데,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멀쩡한 건 솔직히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송이가 아무런 말도 하질 않자 여진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볼을 꼬집어 봤는데 아팠고, 지금 토해서 속이 쓰리고 난리인 걸 보면 방금 꿈을 꾼 게 아니라는 거거든? 근데 내가 방금 본 건 저 사람이 창문 밖으로 나랑 널 데리고 뛰어내렸다는 거야. 더 놀라운 건 아무도 안 다치게 착지까지 했다는 거고. 혹시 내가 미친 것 같니?”
송이가 그녀를 위해 고개를 저어주었지만, 정작 태상은 여진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태상은 감각을 활짝 열고, 주변에 혹여 있을 위험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우려처럼 정말로 그의 감각을 건드리는 불길한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부디 아니길 바랐으나 그것이 진실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놈의 기운이 자신에게 아주 익숙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맞았다. 이 이상한 일이 괜히 일어날 리가 없었다. 하늘이 붉은 것도, 저 이상한 탑이 생긴 것도 모두 마계와 연관 된 일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놈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송이가 불안한 얼굴을 했다.
태상은 여진에게 말했다.
“홍여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지금 이쪽으로 악마가 오고 있어. 놈은 충분히 내가 상대할 수 있는데, 송이가 걱정이거든? 네가 알아서 송이 안전하게 챙겨라 알았지?”
여진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져 그를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너무 진지하자 여진은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장난치지 말라고 해선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꾸륵! 꾸륵! 꾸륵!
태상은 놈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귀로 알 수 있었다. 주변에 퍼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놈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울리고 있었다.
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남자의 비명소리에 여진과 송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녀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기에 이제 어느덧 송이와 여진의 귓가에도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된 것이다.
놈이 건물을 내려친 것인지, 멀리서 건물이 쓰러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태상은 자신이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안 돼!! 어디가!!”
송이가 필사적으로 태상의 팔을 꽉 붙잡았다. 아무래도 송이는 그가 이럴 것이라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처리하고 돌아오는 게 더 낫다. 여기서 싸우면 네가 위험해져.”
“난 내가 위험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네가 위험하다는 걸 얘기하고 있는 거야!!!”
송이가 화가 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생각지 못한 박력에 여진이 의외라는 시선으로 송이를 보았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알잖아. 네가 모르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왜 몸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명진이 사용하던 알 수 없는 힘은 무엇인지. 그 힘을 상처 없이 이긴 태상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송이는 그동안 많은 이상한 것들을 목격해왔고,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캐묻지 않았고, 알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일은 그곳 일이야. 이곳이 다시 안전해지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이고. 이곳에선 그걸 해결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 만약 위험에 처하면 내 이름을 불러. 반드시 구하러 올 테니까. 내 이름 알잖아.”
“......”
송이가 눈가에 눈물을 맺었다.
그녀는 그를 이대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상아...”
“여진이는 믿어도 된다. 나랑 어릴 때부터 친구 녀석이야. 오지랖이 넓어서 문제이긴 한데, 설마 임신한 널 내버려두고 오지랖 떨진 않겠지. 너한테 일부러 접근한 의도가 불순하지만,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니까.”
“........???”
여진은 태상과 송이의 대화를 들으며 점점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들의 대화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는 대화들이었다.
갑자기 여기서 왜 태상의 이름이 튀어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자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강명진의 말은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저 녀석 말은 마치 자신이 강태상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송이 임신한 거 알지? 네 손에 두 목숨이 달린 거야. 알겠어?”
“........”
여진은 울상을 지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를 지켜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태상이 그녀를 두고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녀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악마는 근처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태상이 말도 안 되는 점프를 섞어 달려가자 여진이 송이에게 물었다.
“네 남편 진짜 사람 맞니?”
“......”
송이는 이번에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
악마는 사람 한 명을 들고 저 멀리 하늘로 던져버리려 하고 있었다.
악마는 동화에서 나오는 거인처럼 거대한 크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날개가 앙증맞아 보일 정도였다. 놈은 식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을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는 거다. 이 땅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악마는 사람을 하늘로 던져버리지 못했다.
그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놈은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잠시 꿈틀거리다가 기절했는지 몸이 축 늘어졌다. 시끄럽게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지르던 놈이었다. 오줌을 지렸는지 그의 바지가 축축했다.
그것을 본 악마는 놈이 자신의 팔을 자른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자신의 팔을 자른 걸까?
그가 하나 밖에 없는 눈을 데굴데굴 굴려 자신을 공격한 이를 바라봤다.
놈은 놀랍게도 천사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처리해왔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의 팔을 잘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악마는 본능적으로 놈이 ‘계약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마인 자신을 공격한 것이라면 놈은 거의 90% 천사 계약자라는 뜻이었다.
천사 계약자가 어떻게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악마가 꾸르륵! 하는 소리를 내더니 남은 한 팔을 이용해 놈을 낚아채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남은 팔마저 순식간에 잘려 바닥으로 떨어져나갔다.
악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생각을 이어서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팔 다음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이 악마의 목이었기 때문이다.
태상이 악마의 몸통 위로 뛰어올라가 죽어 있는 놈의 시신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을 쳤는지 스산한 바람이 태상의 주변을 알짱거릴 뿐이었다. 태상은 손에 들었던 식칼을 바닥에 던졌다.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식칼이 없었다면 공격할 방법이 없어 곤란했을 것이다. 주먹으로 치기엔 놈의 덩치가 너무 컸다. 조리용으로 보이는 식칼이 요란한 건물 잔해들 속에 보인 것은 태상으로서는 운이 좋은 일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그때, 하늘 위에서 헬기 소리가 났다. 삐용삐용하는 경찰차 소리도 났다.
아무래도 놈을 발견하고 처리를 하기 위해 온 국가 인력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악마를 죽일 수가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들과 마주치면 일이 곤란해질 것 같아 태상이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으나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 단 번에 바위 뒤쪽으로 넘어갔다. 그가 갑자기 나타나자 숨어 있던 녀석이 핸드폰을 떨어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악!!!"
태상은 동영상을 찍고 있는 화면을 보이고 있는 핸드폰을 발로 밟아 망가트렸다.
남자라고 부르기엔 어린 소년이 몸을 덜덜 떨며 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건가 아니면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건가?"
태상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누가 잡아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소년이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자신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그게 태상이 그랬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또 다시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지 않고 벌벌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태상은 한숨을 쉬고 송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잠깐이기도 했고, 그가 감각을 총 동원해 그녀가 위험하지 않도록 주변에 악마가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여진과 송이는 주변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구해주고 있었다.
태상이 이마를 짚었다. 역시나 저러고 있을 줄 알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진의 오지랖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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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어? 나가기 전에 추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