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8 붉은하늘 =========================================================================
태상은 아무래도 일을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다른 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멋모르고 방해하려 들기 전에 말이다.
태상이 탑의 벽에 손을 가져다 대고 무력화를 시전 했다.
그들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능력을 피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태상이 탑에 무력화를 걸자마자 주변을 자욱하게 감싸고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공중에서 사라졌다. 자욱한 안개는 역시나 탑이 무슨 수작을 부려 생긴 것인 거다.
하지만 문제는 안개가 걷히는 바람에 그곳을 수색하던 군인들이 태상을 모두 보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군인들이 탑 주변을 살피다가 갑자기 안개가 걷혀 놀란 표정을 짓다가 태상을 발견하고 그에게 총을 겨눴다.
“거기 누구냐!!”
“손들어!!”
그런데 그때, 태상을 경계하던 그들의 시선이 점점 이상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태상을 넘어 더 위쪽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태상이 이상함을 느낄 찰나, 군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괴, 괴, 괴물!!!”
“쏴!!!”
탕탕탕탕탕탕!!!!!
태상은 총알받이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눈 먼 총에 맞을 수가 있었다.
그들이 총구를 겨눠 쏘고 있는 곳은 그가 있던 곳에서부터 많이 올라간 위쪽이었다.
크어어어어어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탑이었던 것이 갑자기 거대한 괴물로 바뀌어 있었다. 태상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긴 했지만, 그는 적어도 사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공격할 대상을 잡은 것은 그들의 눈앞에 있는 괴물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놈의 몸에 총알이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악마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하는 군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당연히 군인들은 저 녀석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그러기 전에 태상이 나섰다.
태상은 지금 자신에게 딱히 공격할 마땅한 무기가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살라고 했다고, 그는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놈의 거대한 팔을 태상은 한 손으로 막아버렸다.
다가오는 거대한 악마의 손을 피하려고 뒷걸음질 치던 군인들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현상은 과히 정상적인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저 엄청난 크기의 손을 팔 하나로 막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막고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었다.
“혹시 칼 있어요? 검은 바라지도 않는데.”
태상이 군인들에게 물었다.
군인들은 얼이 빠져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아직 누구인지 정확히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공격은 안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편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상황 안 보여요? 내가 그쪽들 구하려고 칼 달라는 거잖아.”
태상이 그들이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자신의 상황을 상기시켜주었다. 지금 태상은 그들을 죽이려던 놈의 팔을 막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수상한 사람이라 해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군인 장교 중 한 명이 그에게 물었다.
“그 말은 당신이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겁니까??”
태상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도와줄 거면 말고. 번거롭지만 손으로 해야지. 대신 내 등을 공격하진 마세요. 그럼 악마 계약자로 생각하고 죽여 버릴 거니까.”
태상이 그들에게 자신을 공격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만약 저들 중 천사 계약자 혹은 악마 계약자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계약자 중 악마 쪽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보고 태상을 공격하라고 저들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를 공격하면, 곧장 악마 계약자로 간주하여 놈을 죽일 것이다.
악마가 대놓고 나온 상황에서 몸을 사리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저들은 태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를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괴물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지는 후에 대답한다고 약속하면 협조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군인이 손에 든 총을 태상에게 주겠다는 듯 손짓했다.
태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얌전히 연행돼서 시시콜콜하게 얘기를 떠벌릴 생각이 없거니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마나건도 아닌 저런 총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협상 결렬이네. 총은 내가 필요한 무기가 아니거든.”
그때, 악마가 그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내려고 발버둥을 폈다. 태상이 어딜!! 하며 손에 힘을 꽉 쥐어 비틀어버렸다.
그러자 우드득! 하는 살벌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군인들이 그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øºŒŁæʼnÆı!!!!]
악마가 태상을 향해 무언가 말을 했다.
천계나 마계에서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선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악마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건방진 인간...!!!! 이 손을 놔라!!!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크아아아!!”
이번에는 악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군인들은 괴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하자 사색이 되었다.
태상은 호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악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법 등급이 높은 놈이었구나?”
하긴, 그랬으니 지금 무력화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일 거다. 악마는 등급이라는 말에 태상을 향해 이를 으드득 갈았다.
“네놈.....계약자였구나.”
놈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저놈을 쉽게 죽이는 것보다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정보를 듣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짐작한데로 난 계약자가 맞아. 그래서 널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지.”
“크아아아!!! 도대체 왜 힘이 사용되지가 않는 거냐!!”
“그래, 왜 능력이 안 써지나 당황스럽지? 너도 생명체인데, 이렇게 죽고 싶진 않을 거 아냐? 그러니 생각 잘 해. 지금부터 내 질문에 답을 잘 하면 널 살려줄 수도 있으니.”
물론 살려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무력화가 없어지기 전에 놈에게 최대한 정보를 빼내고 죽일 생각이었다. 악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태상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내가 그 거짓말에 속을 거라 생각하느냐? 천사 계약자인 네 녀석이 날 살려준다고? 하하하하!!!”
음, 아무래도 좀 무리수가 있는 거짓말인 듯 했다.
“음...그래? 아무래도 좀 안 먹힐 변명인가?”
“비록 나는 이렇게 사라지지만 내 동료들까진 막지 못할 거다. 흐흐흐....인간들이여 자신들의 땅이 지옥으로 변하는 걸 보며 즐겨라!!! 내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의기양양해 있지만, 이건 피할 수 없을 거다. 흐흐하하하하!!”
태상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놈의 몸에서 갑자기 열기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태상은 놈이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젠장! 살고 싶으면 뛰어!!”
군인들을 챙겨 줄 정신은 안타깝지만 없었다. 태상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악마 놈이 자폭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태상이 먼저 뛰자 군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 거렸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은 그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게 만들었다.
콰아아아앙!!!!!!!
귀에서 삐------하는 이명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바람에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태상은 자신이 바닥에 쓰러졌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다행이 폭발의 여파에서 벗어난 듯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빼고 주변에 있던 기자나 무수한 경찰들, 그리고 군인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 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하게 되돌아왔다.
여러모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심장을 터트린 건가?”
악마가 자폭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하긴, 악마가 자폭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 싸우다가 죽지 말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놈이 자신의 심장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여파로 태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산 하나가 날아간 것처럼 넓은 공터가 만들어져 처참한 흙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태상은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탑을 없앴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알아낸 것도 그다지 없었고 말이다.
하늘은 여전히 붉었고, 주변은 엉망이었다. 놈의 동료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결국 여전히 그들을 막는 건 혼자서는 역부족하는 것만 다시 깨달을 뿐이었다.
또 다른 탑을 찾아 없앤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다.
바로 천계에 접속하는 것 말이다.
**
천계에 접속하려면 잠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마음 놓고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해서 접속을 할 때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송이는 그의 몸에 자잘자잘한 상처가 났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지만, 그가 다짜고짜 잠을 자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침대에 들어가자 당황스러워했다.
송이에게는 나중에 모두 설명을 해주겠다고 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라마스가 그를 부르기라도 한 것마냥 침대에 눕자마자 그는 천계로 접속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라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마스도 당연히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태상은 천사들에게 향하는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딴 일이 일어나는 거야?!”
태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라마스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당연하지!!! 저번에 나한테 분명 얘기 했었어. S등급 미션을 해결하면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또 일어난 거지? 너희들은 도대체 그동안 뭘하고 있었던 거야!!”
그의 터전이 엉망이 됐다.
그러니 태상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다.
“악마들은 계약자들을 모조리 없애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 인간계를 접수하려는 속셈이 분명해.”
“.........”
라마스가 알고 있는 사실인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들은 이걸 그냥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거야?”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지금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상황 파악만 언제까지 할 생각인데?”
태상의 분노는 기세에서도 느껴졌다. 라마스는 결국 그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들이 지금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인간계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라마스의 말에 태상이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그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일이다. 인간계가 결국 계약자들의 싸움터가 될 것임이 자명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마스가 털어놓길, 이미 다른 천사들이 계약자들에게 현실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는 물약을 무상으로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태상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그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해결방법이긴 했다.
============================ 작품 후기 ============================
추천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