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7 민아 =========================================================================
“보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시간 되시면 저랑 데이트 안 하실래요?”
민아가 애교를 가득 담아 말하니 세연은 귀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송이가 아니었다면 태상을 민아와 이어줄 생각이 있었던 그녀다. 민아의 집안이 조금 딸리긴 하지만, 세연의 마음에 쏙 들었기에 은근히 밀어 줄 생각이었다.
더욱이 태상을 좋아하는 티가 팍팍 나서, 그녀와 결혼을 하면 태상이 적어도 사랑받고 살겠구나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어 난감해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태상 오빠한테 연락이 안 될까요? 요즘 모임에도 안 나온다고 하고, 여러모로 좀 걱정이 돼서요.”
그리고 역시나, 민아가 태상에게 대해 묻기 시작했다.
세연은 새초롬하게 말했다.
[태상이 보고 싶어서 아줌마한테 전화한 거구나?]
민아가 부정은 하지 않고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이젠 바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깝긴 아까운 아이였다.
세연은 민아에게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앞으로도 태상이랑 연락 안 될 거야.]
“네? 왜요?”
이유를 물으면 세연은 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음....자세히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근데 집안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네.]
세연의 말에 민아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집안 사정이라 말할 수 없다는데, 민아가 뭐라 더 캐물을 순 없지 않은가.
그녀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그동안 태상 오빠와 연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가. 이대로 있다간 약속 받았던 선 자리가 모두 없어질 판이었다.
세연이 난감한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태상에게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민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활짝 웃으며 네 어머니! 하고 말했다.
민아는 세연과 통화를 끊고, 방금 전 애교를 가득 담은 목소리를 내던 여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후계자에서 떨어졌다곤 해도 내가 열심히 내조해서 다시 올리면 되잖아? 어떤 놈인지 몰라도 이렇게 물러날 순 없지. 태상 오빠도 분명 다른 생각이 있을 거야.”
분명 그럴 거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당하기만 하는 남자를 자신이 찍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굳이 태상과 결혼을 하려고 노력을 한 것은 그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호그룹 후계자가 될 것이기에 그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이상형이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면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 그의 위기가 민아에게는 기회일 지도 모르는 것이다.
민아는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곱게 잘린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움직였다. 또각또각 움직이는 그녀를 남자들이 힐끔힐끔 훔쳐봤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그녀의 몸매가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옷과 신발 그리고 장신구, 핸드백이 모두 다 합쳐서 몇 천은 되어 보였기에 여자들의 시선도 함께 끌었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도도하고 당당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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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내보내세요.”
태상이 카드를 던졌다.
“오늘은 예정했던 날이 아니지 않습니까?”
태상은 일주일에 두 번씩 날짜를 정해 체육관을 아예 비우도록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했던 날이 아닌지라 체육관 안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안 됩니까?”
태상이 사람들을 힐끗 보곤 물었다. 한 두 명이라면 어떻게 했겠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아 여러모로 곤란했다.
“혹시 위층에 있는 체육관에 가보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위층에도 체육관이 있나요?”
태상이 몰랐던 사실이었던지라 관장에게 물었다.
“예전에 망한 체육관인데, 아버지와 추억 때문에 문은 닫지 않고 딸이 운영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망했다면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하루쯤은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관장의 말에 태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은 자신이 얘기를 하겠다고 직접 나섰다.
위층으로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장이 내려와 태상에게 올라가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태상은 알아서 일 처리를 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그가 다니던 곳보단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참고 쓸 정도였다. 시설이 낡아서 그렇지, 먼지가 쌓인 곳은 없었다. 딸이 운영을 한다고 하더니, 매일 쓸고 닦고 하는 듯 했다.
태상이 처음부터 까다롭게 체육관을 전부 다 빌린 건 아니었다.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복싱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왔던 태상은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운동신경을 가진 덕분에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체육관을 아예 빌려서 혼자 운동을 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있는 곳에서 운동을 하기엔 그의 운동법은 걸리는 게 많았다.
악마 계약자들을, 그리고 악마들을 죽여야 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장이 텅 빈 체육관으로 그를 안내해주고 사라지자 태상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집에서 운동복을 입고 나왔기에 굳이 옷을 따로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돈을 받은 만큼 체육관 관장은 지금까지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도록 해 그를 흡족하게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자리가 바뀌었기에, 신중하기 위해 감각을 열어 체육관을 한 번 쭉 훑으려 했다.
지잉---지잉—지잉--
그때였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태상은 주변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또 세연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근처에 있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세연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급하게 일이 있어 받지 못했다고 변명하면 됐다.
그가 복싱에서 배운 스텝을 밞아보며 몸을 천천히 달궜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살짝 몸을 뛰었다. 그리고 이내 곧 윽! 하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태상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슥슥 쓸었다. 분명 머리에 천장이 닿았었다.
힘주어 뛰면 물론 천장까지 닿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그는 다리에 그렇게 많은 힘을 준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머리가 천장에 박을 정도로 높이 뛴 거다. 태상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몸을 휘감았던 열기가 내렸을 때부터 몸이 굉장히 가볍다고 느끼고 있긴 했었다.
그런데 그 가벼움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번엔 좀 더 몸을 이완시키고 가볍게 발을 움직였다. 여전히 생각보다 훨씬 높이 뛰어올랐지만, 천장에 머리를 박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가 뛰면서 돌려차기를 했다.
휘이잉~!
눈 깜짝 할 사이에 그의 몸이 돌려지며, 바람이 휘날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너무 빨리 몸이 빙글 도는 바람에 균형을 잡지 못해 휘청거렸다.
“후우....”
태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돌려차기도 엄청나게 속도가 빨라져서, 아무래도 실전에 사용하려면 적응하는 시간이 좀 걸릴 듯싶었다.
‘저 남자는 도대체.....’
그런 태상의 운동을 숨죽여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이 체육관의 주인이었으며 아랫집 원수인 체육관 관장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빌려줘야 했던 지은이었다. 본래 그녀의 집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복싱 체육관이었지만, 아래층에 체육관을 내고 좋은 장비를 들여와 손님을 모두 빼앗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공백기 동안 손님을 모두 아래층 체육관에 빼앗기고 말이다. 결국 그렇게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체육관은 소리 소문 없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아래층 체육관 관장에게 있다 믿고 있는 그녀는 그에게 조금의 복수라도 하기 위해 계속 체육관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돈이 없으니 낡은 장비들을 새 것으로 교체할 수도 없었고, 홍보를 많이 해봤자 아래층에서 손님을 다 빼앗기므로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녀를 무척이나 슬프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기회가 생겼다. 아래층 체육관 관장이 아주 귀한 손님이라며 그녀에게 이곳을 오늘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값은 충분히 치르겠다며 그녀에게 사정을 했다. 아래층 체육관 관장이 자신에게 이렇게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던 지라 도대체 저 남자를 저렇게 만들 정도의 손님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해서 그녀는 체육관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빌려주는 척 하며 승낙했다.
아래층 관장이 그녀에게 반드시 자리를 피해줘야 한다고 했으나 당연히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체육관을 빌려 준 것이 손님을 빼앗아 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으니 당연했다. 자신을 만만히 본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숨어 있던 거였는데.......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곧 지은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 동작은 운동인 이라면 꿈에 그리는 것들이었다. 저 남자가 만약 대회에 나간다면 1등도 확실할 것이다.
지은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 나가야 할지, 아니면 위험하니 계속 숨어 있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녀가 잘못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바닥에 깔려 있는 나무 장판이 작게 끼익- 하는 소리를 냈다.
“........!!”
지은이 흡! 하고 숨을 멈췄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겼다. 아직 나설지 말지 결정을 못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들키는 위기가 생길 줄 몰랐다.
그리고 태상은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 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 순식간에 여자가 숨어 있던 테이블을 뛰어넘어 그녀의 앞에 섰다. 지은은 눈으로 보이는 남자의 두 다리에 놀라 질끈 눈을 감았다.
태상은 그녀가 아무리 숨을 멈추고, 기척을 숨기고 있다 해도 찾아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가 테이블 아래에 손을 넣어 여자를 한 번에 끌어당겼다.
지은의 몸이 강한 힘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밖으로 끌려나왔다. 지은은 덜덜 몸을 떨며 슬며시 눈을 뜨자 태상이 그녀를 차가운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상이 지은의 목을 강하게 잡았다.
“넌 누구지?”
지은은 숨이 막혀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태상은 지은의 여린 목을 금방이라도 꺾어버릴 듯 했다. 그가 겁먹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계약자인가?”
“....쿨럭! 이, 이것 좀....”
지은이 대답을 하고 싶어도 목을 숨 막히게 잡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태상이 손에 힘을 살작 풀자 지은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저, 저는 여기 주, 주인이에요!!”
그러고 보니 체육관 관장이 이곳을 딸이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그는 체육관 관장이 당연히 딸을 데리고 나갔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난감해져 신음을 흘렸다.
"이곳 주인이라고?"
태상이 일단 지은의 목을 잡았던 손을 풀어주었다.
그녀가 계약자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너무 과한 반응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굳이 숨어서 자신을 지켜 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상이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 물었다.
"난 돈을 내고 정당하게 이곳을 빌린 걸로 알고 있는데?"
지은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켈룩...알고 있어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지은이 기침을 토해냈다.
============================ 작품 후기 ============================
예! 주인공 호구설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더불어 살아가야죠. 전 태상이 혼자만 강하게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길드원들 모두 함께 강해지게 할 거에요. 이건 제 소신이니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주인공만 짱쌔! 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은 제 글이 답답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실...나중에 밝힐 일이지만, 인드고의 눈물을 저기서 먹었으면 태상이는 죽었어요!! 네!! 스포합니다!! 나중에 얘기 할 건데 인드고 눈물은 영약과 같은 겁니다. 예전에 태상이 인드고눈물 먹었을 때, 피 몇 방울 흘린 걸로 요정들 집 살렸던 것 기억하시는 분들 계시나요?? 인드고눈물 자체도 심장처럼 많은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걸 먹었으면 과한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펑 터져서 죽었을 겁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순식간에 모두 다 치료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담겨 있는 게 인드고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반은 아직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면 반은....!!!!! (누군가의 손에 입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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