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26화 (126/251)

00126  민아  =========================================================================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송이가 재차 물었으나 태상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말 말 그대로 최상의 몸 상태였다. 악마의 심장이 제 자리를 찾아 그의 몸에 모두 스며든 게 확실했다.

“내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괜찮아진다고 했잖아. 이렇게 괜찮아졌고.”

송이가 의사 흉내를 내며 그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두 살폈지만 정말 멀쩡했다. 체온도, 안색도 말이다. 결국 송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병원을 끌고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태상은 듣지 않은 척하며 넘겼다.

그때, 세연이 다급하게 태상과 송이가 있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발걸음이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려주었다. 세연이 큰 목소리로 태상을 불렀다.

"태상아~!!! 태상아!!"

송이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님이신 것 같은데?"

"...아, 젠장."

태상이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기어코 그녀가 소식을 듣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송이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 정말 말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지..?"

"아까 전에 죽 준비해달라고 고용인한테 전화했었잖아. 그 고용인이 엄마한테 말했겠지."

고용인들 중 엄마의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오래 전부터 늘 세연의 귓가에 들어가곤 했으니까. 송이는 그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얘기가 세연한테 들어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생활 침해에 속했으니 말이다.

"원래 여기 이런 거야??"

태상은 어릴 적부터 늘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솔직히 얘기하자면 원래 이런 게 맞았다. 그를 돌보는 고용인들은 모두 세연의 사람이었고, 당연하게 일거수 일투족을 그녀에게 보고했다.

"예전에야 당연히 원래 그랬지. 근데 앞으로 고용인들은 네 사람들로 싹 바꾸는 게 좋을 거야. 다신 이런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제 결혼도 했으니 세연은 이만 태상을 놓아주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던 일을 갑자기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일이 귀찮게 되었다 싶자 재빨리 태상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나가서 엄마 좀 못 들어오게 막아봐."

"뭐? 내가?"

송이가 당황스러워하자 태상이 말했다.

"지금 이 상태로 엄마랑 만나면 병원에서 며칠은 갇혀 지내야 돼."

"며칠 씩이나?"

"어서!"

송이가 태상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방을 나갔다. 바로 앞에서 세연이 문을 열려고 했는지, 송이가 나가자마자 그녀를 맞닥뜨려야 했다.

태상은 옷을 모두 갈아입자 차키와 지갑 그리고 핸드폰을 챙겨 창문을 열었다.

그는 창문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잘못 전달 됐나 봐요. 제가 죽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거였는데.....이렇게 다급하게 오실 줄 몰랐어요.”

송이가 문을 최대한 사수하며 말했다. 세연은 의심의 눈초리를 하며 말했다.

“내가 듣기론 태상이가 아파서 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아니에요! 태상이 멀쩡해요. 진짜로요.”

“.....어찌됐든 태상이 안에 있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태상이가 못 된 놈이 수를 써서 몸이 바뀌었잖니. 내가 생각을 해보니까 그 몸이 예전엔 어떻게 관리를 했을지 알게 뭔가 싶더라고. 그냥 이번 기회에 건강검진 좀 받아놔야겠다 싶다. 그리고 너도 받을 수 있는 검사는 싹 다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알렴.”

송이가 아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세연이 매정하게도 그녀를 지나쳐 문을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연이 방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들을 주워들은 그녀가 송이에게 물었다.

“얘 어디 간 거야?”

방문 앞에서 세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방안에는 당연히 태상이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송이가 어리둥절해져 네? 하고 되물었다.

“태상이 어디 갔냐고.”

“어, 없.....죠! 나갔어요.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해서요.”

없어요? 하고 질문을 하려했다가 말을 바꾼 송이다.

“옷이 아직 따듯한데....”

“아~주 방금 나갔거든요. 안타깝네요. 어머님 오시는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했을 텐데.”

“그러게. 연락 하고 올 걸 그랬네. 태상이가 아프다는 말에 내가 워낙 정신이 없었어.”

송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순 없었지만, 일단 태상이 없어 건강검진은 뒤로 미뤄져야 했다. 그녀도 건강검진을 받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워낙 당황스럽게 갑자기 제안하는 세연 때문에 당황한 상태였다.

“제가 나중에 들어오면 말해놓을게요. 건강검진 한 번 받으러 가자고요.”

세연이 송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하지 마. 걔가 어릴 적부터 병원이라면 질색을 하거든. 분명 말하면 절대 안 간다고 할 거야.”

“제가 설득해볼게요. 건강검진을 받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희랑 어머님도 다 같이 건강검진 받게 해놓을게요. 시간 괜찮으신 날 알려주세요. 아! 아버님도 다 같이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되실까요?”

세연이 송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받자고? 거기다 그이까지?”

“당연히 어머님이랑 아버님도 받으셔야죠. 이제부터 어머님 아버님 건강은 제가 챙길게요.”

“......”

세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자신은 늘 이 집안 남자들을 챙기기만 했지, 챙김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송이가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챙긴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세연이 괜스레 송이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우리 가족들이 다니는 병원이 어딘지 알려줄게.”

“네, 어머님!”

송이가 활짝 웃으며 싹싹하게 말했다.

태상이 없자 세연은 흥이 떨어졌는지 일이 있다며 미련없이 나갔다. 정말 그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다 내팽겨치고 차를 돌려 이곳에 온 것이었다. 자신이 잘못 안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다시 가려던 곳을 가야 했다.

송이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었고 말이다.

잠시 후 세연이 돌아가자 송이가 재빨리 태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가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태상의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바로 혜연과 사로나였다. 태상의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접속을 해제했기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들에게 자신은 괜찮다는 전화를 굳이 하진 않았다.

자신을 찾고 있을 게 뻔한 송이의 전화를 받은 태상이 물었다.

“잘 해결 했어?”

[응. 근데 건강검진은 받아 놓는 게 좋으니까 내가 하자고 했어. 어머님이랑 아버님도 다 같이 받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스케줄 한 번 맞춰 보겠다고 하시더라고.]

태상이 그녀의 말에 질색을 했다.

“난 싫어.”

[쓰읍! 이제 아빠가 될 텐데, 오래 살려면 건강 조심하셔야지요?]

“.......”

병원 가지 않으려고 이렇게 급하게 도망친 거였는데, 무용지물이 되자 태상이 울상을 지었다. 그녀가 ‘아빠’라는 단어를 쓰자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근데 도대체 너 지금 어디야?]

“밖이지.”

[밖이라고? 어떻게 나갔어? 문 없었잖아. 나 모르는 문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리 살펴도 나갈 곳이 없는데, 태상이 너무 태연하게 말하자 송이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당연히 아니었다. 태상이 태연하게 말했다.

“창문으로 나왔어.”

[창문? 어디 창문?]

방에 창문은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방 창문.”

[.....지금 농담하는 거지?]

여기가 몇 층인데 창문으로 뛰어내린단 말인가! 태상이 불길함을 느끼고 서둘러 말했다.

“나 운전하니까 끊는다.”

송이가 분명 뒤에 잔소리를 할 것 같아 답을 회피한 것이다. 하지만 곧 태상의 전화는 엄마 때문에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분명 방금 있었던 일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리라. 태상은 전화를 받지 않고, 무시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이 괜찮은지 점검을 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였으나, 움직임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악마의 심장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곳엔 송이도 있고 여러모로 보는 눈이 많았다. 그가 다니던 체육관이 있었기에 차라리 그곳에 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덤으로 세연도 피하고 말이다.

태상은 차를 운전하면서 자신의 시야가 엄청나게 넓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일반인이 앞과 양 옆을 느낄 수 있다면, 태상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차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전부 다 느끼고 있었다. 훨씬 시야와 감각이 넓어진 것이다.

그는 좀 더 서둘러 차를 몰았다. 어서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

민아는 황당한 소리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Are you crazy?”

“네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몰랐던 거지, 이거 다 아는 얘기거든?”

수정이 와인을 마시며 민아에게 확인사살을 했다. 민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정의 말이 장난일 거라 생각했다.

“ok! 내가 직접 전화해볼 거야.”

“안 받을 걸~”

“oh, no. 난 절대 못 믿어.”

민아가 핸드폰을 쥐고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정의 말대로 상대방은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아는 고집스럽게도 계속해서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계속 통화에 실패했다.

민아의 그런 고집에 수정이 쯧쯧 혀를 찼다.

“진짜 안 받네....”

민아가 우울해했다. 수정이 말했다.

“요새 모임에도 안 나온다니까? 완전 잠수야. 더군다나 걔 말고 다른 놈이 후계자라고 떵떵거리고 다닌다고. 덕분에 강호그룹이 난리가 났지. 주식 안 떨어지는 게 용해.”

“그건 또 뭔 소리야? 다른 놈이 후계자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강호그룹은 원래 태상 오빠가 후계자잖아! 오빠가 그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어?”

“가만히는 커녕 나타나지도 않던데? 그리고 완전히 후계자로 인정받는 분위기야.”

민아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정이 어딜 가냐고 묻자 말했다.

“어머님이 태상 오빠랑 결혼시켜 준다고 했단 말이야! 근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니? 당장 확인하러 가야겠어!”

“워우~ 언제 그런 약속을 받아 놨대?”

어쩐지 소식이 뜸하다 싶었다. 세연에게 같은 알랑방귀를 뀌어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확답을 받고서, 일이 생겨 외국에 나갔었던 민아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태상 오빠는 자신이 점찍어 놓은 신랑감이었다. 민아의 집안이 조금 딸려서 이렇게 세연에게 갖은 애교를 부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 강태상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노력을 해서라도 쟁취할 만한 남자였다.

민아는 칵테일 바에서 나오며 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태상처럼 묵묵부답은 아니었다. 세연이 민아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어머니~!”

민아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누가 봐도 내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고운 목소리였다.

[어머~ 민아구나! 잘 다녀왔니?]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사실 그 어떤 때보다도 고생을 했지만, 그걸 세세하게 민아에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민아는 외국에 나가 있느라 세연이 납치를 당했었던 일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