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15화 (115/251)

00115  결혼식  =========================================================================

"조심해. 많이 놀랐어?"

"까, 깜짝이야."

"홀몸도 아닌데 좀 정신 차리고 다니지?"

태상이 그녀에게 엄하게 말했다. 송이도 태상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웨딩드레스 입은 것도 예뻤는데, 난 이게 더 예쁘다."

태상이 송이의 한복 입은 고운 자태를 매우 흡족하게 쭉 훑었다.

"너, 너도 멋있어."

송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태상은 웬일로 저렇게 부끄러움을 타나 싶어 말했다.

"웬일로 이렇게 부끄럼을 타? 곧 있을 첫날밤 때문에 그런 건가?"

송이가 그의 농담에 살짝 그를 흘겨봤다. 첫날밤은 무슨 첫날밤이란 말인가.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말이다.

"첫날밤은 무슨..."

"뭐냐? 지금 첫날밤 무시 하냐? 그것도 결혼의 한 과정이거든?"

태상은 설마 송이가 첫날밤을 대충 보낼까 싶어 확실하게 얘기했다. 그는 절대 첫날밤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송이는 그냥 이대로 발 뻗고 자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빨리 가자. 하객 분들 기다리시겠다."

송이가 말을 돌렸다. 하지만 꽤 효과적인 말 돌리기였는지 태상이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알겠다고 말했다.

"오~ 저기 주인공들이 오는구먼!"

강회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태상과 송이가 오자 그들을 맞이했다. 짝짝 박수소리가 나자 태상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선남선녀들이구만 선남선녀들이야."

"강회장님이 늘그막에 아주 미인인 며느리를 보셨습니다! 하하하!!"

세연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그의 진짜 엄마가 자신인데, 부모좌석에도 앉지 못해 여간 화가 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순 없었기에 호호호 웃는 표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어찌나 총애하시는지, 글쎄 곁에 두시면서 이것저것 가르치신다고 하시네요."

세연의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의 말은 지금 태상이 진짜 후계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말을 세연이 했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세연과 태상은 대외적으로 적대시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녀의 아들인 강태상이 떡하니 있는데, 새로운 후계자로 밀고 들어오는 이명진이 나타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친 아들인 강태상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세연은 이명진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버님 정말 너무하세요. 제게 설명을 하시고 제 호적에 넣으셨어야 했다고요. 이게 뭐에요. 엄마인데 엄마라는 말도 못 듣고...”

세연이 강회장에게 투정을 부렸다. 강회장은 그런 세연이 귀엽게 느껴져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굳이 강회장이 옆에 있어 줄 필요 없이 태상이 이미 이곳에 온 이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직접 송이와 함께 다니며 말을 주고 받았다.

"신부님이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제가 얼굴을 좀 밝히다보니. 앞으로 외모 뜯어먹고 살 거거든요."

"예? 하하하! 사모님 사랑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태상이 낯부끄러운 말을 하자 송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상이 자신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그가 준비 된 후계자임을 알 수 있었다. 준비 된 자가 아니라면 처음 보는 이들의 이름과 직책을 줄줄이 알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태상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 속으로 한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원래 강호그룹에는 다른 후계자가 있지 않습니까? 강회장님의 총애가 대단하신데 그분과는 모두 얘기가 끝난 건가요?"

"......"

그가 한 말에 주변의 소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다들 알고 싶었으나 겉으로는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태상은 목을 축일 정도만의 와인을 한모금 마신 뒤 그 질문을 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상은 남자를 빤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어디서 뭘 하시는 분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그건 제가 한 질문의 답이 아닙니다만."

남자는 태상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한 질문에 답을 하길 원했다. 태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이 호텔 보안이 썩 좋지는 않나 봅니다. 기자를 함부로 들이는 걸 보니 말입니다."

"...기자?"

"기자라고?"

남자가 태상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직업을 정확히 들킨 것이다.

"전 기자가 아니라 이곳에 초대를 받은 손님입니다."

그가 결혼식 초대장을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태상은 소란을 듣고 찾아 온 경호원이 그 초대장을 살피려 하자 손을 들어 올려 막았다. 굳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가짜가 아니라 진짜일 것이다.

"아마 진짜겠죠. 돈을 받고 샀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았을 겁니다."

"제가 그랬다는 증거 있습니까? 전 정정당당하게 여기에 초대를 받은 손님입니다. 그런 식의 발언, 굉장히 듣기 거북하군요. 그리고 제 질문에 빨리 대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강호그룹 주식이 좀 있어서요. 갑자기 생뚱맞은 후계자가 튀어나오니 걱정이 되네요."

사실 태상이 한 말은 정확했다. 기자는 결혼식장에서 여자 3명을 주시했다. 그들이 신부쪽 친구들이라는 것을 미리 봐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그녀들의 초대장을 돈주고 샀다. 그 초대장으로 연회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이 사정을 태상이 알 리가 없었기에 기자는 더더욱 당당하게 나가기로 결심을 한 상태였다. 자신의 손에 있는 건 진짜 초대장이 맞았으니까 말이다.

태상이 뻔뻔하게 나오는 기자에게 말했다.

"그 초대장 뒷면을 좀 보여주시죠."

"....뒷면이요?"

"아마 듣지 못하셨을 겁니다. 당신은 이곳에 초대 받을 사람이 아니니까. 초대장 뒷면에는 금색 테두리가 없으면 연회장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자님의 초대장에는 금색 테두리가 없죠."

태상의 말에 기자가 뒷면을 살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금색 테두리가 없었다.

그가 이곳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기자는 할 말을 잃어 입을 꾹 다문 채 얼굴이 붉혔다. 경호원들은 신속하게 그를 붙잡았다.

"끌고 가세요."

태상이 싸늘한 표정으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박진우는 결국 그들에게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송이가 놀라 태상의 옷깃을 잡았다.

"아는 사람이야?"

"조금.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가 본래의 몸에 있었을 때, 자신을 꽤나 귀찮게 하던 놈이었다. 강호그룹의 주식이 있다고? 전부 다 개소리였다.

저놈은 오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도 주변에서 강호그룹에 관심을 보이는 놈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자신의 결혼식에 겁도 없이 나타난 게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 것이다.

기자가 사라지긴 했지만, 이미 그의 질문 때문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나빠진 후였다. 태상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지금 가장 설명하기 힘든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명진은 지금 그를 피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쥐새끼처럼 잘 숨어 있지만, 놈을 반드시 잡아 후환을 없앨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주들에게 강태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을 해야 한다.

강태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실히 해야 이명진의 몸을 한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잡음이 일지 않을 것이다.

그때, 세연이 태상을 도우려고 나서려 했다. 하지만 강회장은 그런 세연을 막았다. 지금 그녀가 나서는 건 그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우리들도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그동안 강회장님이 손자였던 강태상군을 후계로 낙점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바뀌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우리들은 기자가 아니니 설명을 바라도 되겠습니까??"

한 중년의 나이 지긋한 남성이 물었다. 그는 분명히 강호그룹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가 맞았다. 해서 태상이 그 남자에게 설명을 바라는 것은 분명 무리있는 일이 아니었다.

"맞아요, 우리도 도대체 요즘 왜 강태상 군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갑자기 양자라니요."

"갑자기 나타난 후계자를 우리더러 인정하라고 하시지만 저희들은 솔직히 불안합니다."

그들의 불안감은 당연했다. 그들은 이명진의 몸을 한 강태상을 처음 보는 것일 테니 말이다.

태상이 그들의 불만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지금 제 신상정보 조사 안 해보고 오신 분 계십니까? 만약 있다면 초대장이 잘못 간 걸 겁니다."

태상이 농을 담아 말했다.

그 정도 정보력도 갖추지 못한 자는 이 정도 자리까지 올 자격이 없는 어리숙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곳에서 그에 대해 조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제 이름이 이명진이라는 것도 아실 테니 굳이 일일이 찾아가서 다 아는 얘기 떠드는 건 생략하겠습니다. 그런 지루하고, 어린애 같은 자기소개 시간은 그만하고,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걸 말씀드리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군요."

모두들 태상의 말에 집중했다.

자신들의 질문에 곤란하거나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무의식 중에 흘러 나오는 여유가 평범한 이들은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명진이 고아라는 것과,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그들은 도대체 저 여유를 어떻게 배운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의 삶은 여유로운 것과는 많이 다른 삶이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다들 불안해 하시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인증받지 못한 제 능력과, 혹시 있을지 모를 후계자 싸움이 걱정이 되시겠죠. 후계자 싸움이 불거지면 아무래도 회사에 영향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다들 태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모두 우려하던 것들이었다. 태상이 시원하게 먼저 얘기를 꺼내주니 그들로서는 반색할 일이었다.

"희소식을 먼저 알려드릴까요, 아니면 나쁜 소식을 먼저 알려드릴까요?"

태상이 하객들을 쭉 훑었다.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새 송이는 그와 한발작 떨어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부터 듣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태상이 잠시 침묵 했다. 그 잠깐의 뜸이 사람들을 긴장하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제가 단언드리겠습니다. 후계자 싸움은 없을 겁니다."

웅성웅성

태상이 너무나도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게 한 선언에 다들 수군거렸다. 그러자 태상이 그 잡음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제 말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쁜 소식도 들으셔야죠."

태상이 말하자 소란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송이는 저 많은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태상의 모습을 보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앞으로 전 여기 계시는 강회장님의 모든 업무를 대신 하게 될 겁니다. 문제는 제가 강회장님 보다 조금 더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사람들은 괜스레 잔뜩 긴장했다가 태상의 허무한 말에 숨통이 트인 듯 숨을 내쉬었다.

강회장은 태상이 그들을 사로잡는 것을 흡족하게 지켜보다가 태상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놈이 내 양아들이야. 그리고 앞으로 내 회사를 이끌어갈 놈이지. 다들 소식이 늦구만. 원래 후계자였던 내 손자놈은 사고로 죽었네."

"사고요?!"

당연히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강회장은 어차피 놈을 찾으면 그의 손으로 놈을 죽일 생각이었던 지라 지금 발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것을 확실히 해줘야 앞으로 태상이 걸어갈 길에 잡음이 없을 것이다.

세연이 친아들을 제 목숨처럼 아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였다. 사람들이 세연을 힐끗거리며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세연은 그들에게 자신의 표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강회장의 말에 반박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도 그의 말이 사실임을, 그리고 세연도 인정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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