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여왕 2 =========================================================================
“앗! 반카이씨가 지휘관이에요?”
“예, 예...”
혜연이 그를 아는 눈치를 보이자 남자는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자신이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딱 보니 반카이와 태상 일행은 안면이 있는 게 분명했다.
반카이와 안면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자라는 얘기였다. 실력자와 척을 지는 걸 좋아할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남자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강태상이 왔다고 전하면 알 겁니다.”
태상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기...제가 워낙 정신 없는 상황이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웠습니다. 방금 전 일은...."
"됐습니다. 신경 안 써요."
태상의 말에 남자의 안색이 그나마 펴졌다.
어차피 남자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더 이상 그에게 건방졌던 태도에 대해 얘기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아니, 이런 일로 속좁게 떠드는 건 태상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남자는 태상이 자신의 실수를 넘어가주기로 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움직였다. 더 이상 그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올라가 반카이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자, 그에게 고개를 숙였던 게 다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죄송한데 지금 누가 찾아와서요."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만."
대책 회의 중에 갑자기 난입해 들어와 눈살을 찌푸리던 반카이가 말했다. 남자는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저도 알긴 한데, 강태상이라는 남자가 지휘관님을 꼭 만나뵈야 겠다고 해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강태상씨라고 하셨어요?”
천사 계약자들이 속속이 도착해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단순히 시간 끌기밖에 되질 않아 표정이 좋지 못했던 반카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가운 소식에 활짝 얼굴을 폈다.
“네....아시는 분이신가요?”
“당장 모셔오세요! 아니, 내가 직접 가야겠습니다. 그가 왔다면 이번 전투,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카이의 말을 들은 남자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정도로 강태상이라는 남자가 대단한 사람인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카이가 회의를 하다가 말고 계단을 내려와 태상을 반겼다. 그는 태상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를 끌어 안을 정도였다.
“태상! 정말 반갑습니다. 이렇게 와주시다니.”
“고생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래도 이제 태상씨가 왔으니 제 고생 좀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카이가 안내해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몇몇의 처음 보는 계약자들과 천사가 있었다. 천사는 태상을 응시하더니 말했다.
“라마스의 계약자시군요.”
그의 입에서 라마스가 나올 줄 몰라 태상이 물었다.
“라마스랑 아는 사이?”
“네, 맞습니다.”
엔드가 그렇게 대답하며 태상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마침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오기로 한 걸 알고 있었나봐?"
"예, 라마스가 자신의 계약자에게도 미션을 말하겠노라 말했으니까요. 당신에게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부탁하고 싶은 일?
그는 단순히 이곳에서 악마 계약자들과 싸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온 참이었다. 엔드의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으나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무슨 부탁인데?"
“지금 이곳 대피소에 있던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라마스가 설명을 했었기에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지금 아주 중요한 이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자를 절대 악마에게 빼앗기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이를 악마에게 빼앗기지 않고 옮겨달라라.....
이렇게 미션 안에서 미션을 또 받는 건 처음인지라 태상은 굳이 자신에게 부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굳이 이 미션을 나한테 주는 건지 물어봐도 돼?”
“강태상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내 능력 때문에?”
그가 호송할 이는 ‘여왕’이었다.
엔드는 그가 ‘무력화’라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힘을 알게 된 엔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만약 강태상이 여왕에게 능력을 사용한 후 죽이면 과연 여왕은 어떻게 될까?
천사들이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지도 몰랐다. 그는 그 가능성을 열어 두고자 굳이 그에게 이 부탁을 한 것이었다.
“예. 만약 그것을 악마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면, 태상님의 능력을 사용한 후 죽여주십시오. 차라리 죽일지언정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천사들은 그녀를 무사히 호송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더 나은 결과였다. 일단 그 속마음은 숨긴 채 태상에게 말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엔드 미션을 받은 태상 일행은 그가 알려 준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들을 안내한 것은 그를 보좌하는 천사 카반이었다. 태상은 카반을 본 적 있었다. 과거 여왕을 죽이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공헌도 2위를 한 태상에게 인드고의 눈물을 주었던 천사였다.
성벽을 걸어 내려가는데, 카살라가 온 몸에 피를 묻힌 채 날개를 펄럭이며 태상 일행 앞에 내려앉았다. 그는 깃털에 묻은 피를 강아지가 물기 털듯이 털어내고, 태상에게로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다친 곳은 없어?”
“예.”
그의 숨이 거친 것을 보니 어지간히 날뛰다 온 모양이었다.
“카살라님...?”
“절 아십니까?”
카반이 카살라를 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살라가 그를 응시하며 묻자 카반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태상은 이동하기 전에 카살라에게 다시 봉인을 해 날개를 숨겼다. 지금부터는 싸움이 아니라 단순한 호송임무였기에 계속 날개를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카반과 함께 이동한 곳은 성벽 안에 있는 성이었다.
그곳에 있었을 게 분명한 이들이 모두 대피를 해서 텅 빈 상태였고, 급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알려주듯 이곳저곳에 엉망으로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이쪽으로.”
카반은 태상 일행을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스산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익숙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아아악!!!!!!!!!
“?!”
놀라는 태상 일행을 본 카반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원래 가끔 저럽니다.”
“가끔 저렇게 비명을 지른다고요?”
혜연이 어이가 없어 묻자 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호송할 인물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그곳에선 다른 이들의 이목이 있는지라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호송하게 될 인물이 특별한 존재 인가요?”
“이제부터 그녀에 대해 알려드려야겠군요. 여러분이 호송하게 될 자는‘여왕’이라는 자입니다.”
태상 일행이 갑자기 여기서 여왕이라는 게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션으로 여왕을 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혜연이 말했다.
“여왕이라면 저희들이 예전에 죽인 적이 있는 그 여자 아닌가요? 악마를 낳던.....”
“네, 동일인물 맞습니다. 이곳에서 여왕은 단 한 존재를 일컫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여왕은 죽었잖아요. 목이 잘렸을 텐데..?”
“아뇨, 여왕은 죽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보셨던 여왕이 맞죠. 본디 평범한 악마 계약자였지만, 불사의 소원을 빌어 죽지 못하는 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왕은 계속해서 악마의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야 했고요.”
꺄아아아아아악!!!!!!!!!!
그 설명을 듣던 일행들의 귓가에 또 다시 방금과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두 번째라 그런지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혜연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못하자 카반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들이 뒤늦게 그곳으로 가 여왕을 데리고 왔습니다. 말했다시피 여왕은 죽지 않으니까요.”
전혀 몰랐던 사실이기에 태상 일행의 얼굴이 오묘해졌다.
“자, 이곳입니다.”
카반이 철장 문을 열었다. 그곳은 마치 과거 태상 일행이 여왕을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이 침대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아래에는 새끼 악마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여왕으로 보이는 여자가 여전히 나체의 모습으로 있었고 말이다.
“이런 그세 또 한 마리를 낳았네요.”
카반이 악마에게 다가가 놈의 목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꺾었다. 새끼 악마가 우드득 소리와 함께 축 늘어졌다. 카반은 놈을 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카반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여왕에게 말을 걸었다.
“잠든 척 하지 말고 일어나시죠?”
“........”
여왕은 카반의 말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반은 한숨을 푹 쉬더니 태상에게 말했다.
“이 여자를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카반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게 증명됐다. 분명 목이 잘린 채 죽었던 여왕이 멀쩡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쳐들어 온 게 이 여자 때문인가?”
“예,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난감했는지 몰라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네요.”
카반이 갑자기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는 여왕을 발로 차 굴러 떨어트렸다. 여왕의 몸이 그대로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
혜연이 놀라 몸을 움찔 떨자 카반이 이런...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난폭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저 계집은 원래 맞는 걸 좋아합니다. 평생 죽지 않게 해달라고 해놓고, 지금은 죽는 게 소원이거든요.”
카반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에 답을 하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도 예전 일이거든? 지금은 난폭한 거 딱 질색이야. 어차피 죽여주지도 못할 거면 때리지 마.”
“......!!”
태상 일행이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축 늘어져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던 여왕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표정이 서리자 숨길 수 없는 색스러운 느낌이 풍겨왔다.
여왕은 태상 일행을 쭉 훑었다.
"고작 이런 애들이 날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보낸 거야?"
여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충분하죠. 넘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그리 얌전히 따라가지 않을 건데?"
"봉인구 때문에 능력을 사용 못하니까 겁 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소리죠."
카반이 여왕의 말에 초를 쳤다. 여왕은 김이 셌다는 듯 칫! 하고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래서, 이 여자를 어디로 데려가면 되는데?"
태상이 카반에게 물었다. 불행이도 카반은 곧장 엔드를 보좌하러 가야 했기에 그들과 쭉 함께 이동할 수 없었다. 그가 태상에게 시계를 건네며 말했다.
"건물 뒤쪽으로 나가면 제가 만들어놓은 이동마법진이 있습니다. 방향은 이 시계가 알려드릴 겁니다. 그곳까지 데려가셔서 이동하시기만 하면 다른 천사들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여왕을 넘기시면 됩니다. 제가 함께 하고 싶지만, 보다시피 지금 악마 놈들을 막는 데에도 급급한지라 어쩔 수가 없네요."
"걱정하지 마시고 가보세요."
태상은 그가 준 시계를 팔목에 찼고, 혜연이 카반에게 말했다. 카반은 혜연을 힐끔 보더니 그녀에게 고맙다는 듯 윙크를 했다. 혜연은 그의 윙크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기에 속으로 역시나 특이한 천사야...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 여자 말은 싹 다 무시하는 게 좋을 겁니다. 워낙 오래 살아서 능구렁이거든요. 간편하게 입을 틀어 막는 게 편하실 겁니다. 그럼 이만."
카반이 그리 말하고 날개를 펄럭였다. 그는 왔던 계단을 빠르게 역주행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왕은 불만스런 얼굴을 한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사로나는 그녀의 차림새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여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것이 그녀의 나체인 몸을 다 가려주진 못하겠으나 일단 뭐라도 가려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거라도 입으시죠."
여왕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보고 이런 촌스러운 걸 입으라고? 그냥 이대로 있고 싶은데....이대로도 충분히 아름답잖아."
사로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여왕의 몸은 깡말랐고, 배만 툭 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유일하게 봐줄만한 곳이 있다면 얼굴일 것이다.
"보기 흉합니다."
사로나의 직설적인 말에 여왕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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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나 극딜....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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