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7 여왕 2 =========================================================================
“악마 계약자들이 공격하고 있는 곳은 천계 심층부 중 하나입니다. 그곳의 명칭은 ‘천계 대피소’. 만약 그곳을 악마들에게 함락당한다면 그곳에 있던 존재들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대피소라면...악마들을 피해 숨은 이들이 있는 곳인가?”
“맞습니다. 그들은 악마를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약한 존재들입니다. 해서 저희들이 악마로부터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곳이 함락 당한다면 많은 희생이 생기게 될 겁니다. 지금 현재 급하게 그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길드원 전체 다 공유해서 가야겠지?”
“예.”
“좋아, 알겠어.”
태상이 미션을 받기 위해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라마스는 그에게 미션을 받아준 뒤, 말했다.
“그리고....제가 며칠간 태상님께 신경을 써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뭐?”
태상은 그게 무슨 소리일까 싶어 의문을 표했다.
“요즘 악마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해서 아무래도 제가 나서서 동태를 살피고 와야 할 듯싶어서요.”
그러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태상에게 미션을 준다던가, 소식을 전한다는 등의 일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그의 말을 이해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알았어.”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천사들이 계약자들 모르게 계속해서 악마와 싸워 왔다는 것을 태상은 잘 알고 있었다. 태상도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 될 진 모르겠으나,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이곳 생활이 그의 삶에 활력을 준다 해도, 이런 전투를 죽을 때까지 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곧장 미션 공유를 받고, 움직여주시면 됩니다. 급한 연락을 하셔야 할 때는 목걸이를 통해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며칠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니 태상님께 카살라에 대한 결정권을 잠시 맡기겠습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태상님께서 재량껏 그를 컨트롤 해주십시오.”
카살라는 천사이나 악마로부터 태어난 존재다. 그렇기에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그에게 제약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라마스가 카살라에 대한 것을 모두 통제하고 있었는데, 혹여 그가 자리를 비운사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에 그에게 잠시 맡긴 것이다. 라마스가 태상을 믿지 않는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라마스가 태상의 목걸이에 손을 올려 무언가 힘을 사용했다. 그러자 목걸이가 잠시 영롱하게 빛나다가 사그라들었다.
"카살라의 봉인을 해제땐 그의 목걸이를 이곳에 가져다 대서 공명하시면 됩니다. 다시 봉인을 할 때에도 같은 식으로 하시면 되고요."
카살라의 목걸이를 단순히 모조품이라 생각했는데,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기능도 있을 줄은 몰랐다. 태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재도 계속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좋았다. 태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길드 건물로 이동했다.
길드 건물에는 사로나와 아이라, 혜연 카살라가 태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션을 굳이 공유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 모두가 이미 미션을 받아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천사들이 접속해 있는 계약자란 계약자 모두에게 다 미션을 준 모양이었다. 천계의 중요한 심층부가 위험하다는 데 꾸물거릴 이유가 없었다.
태상까지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미션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넌 안 돼.”
하지만 사로나가 움직이기 전, 아이라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태상도 이번에는 그녀의 의견과 같았기에 아이라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미션은 그녀가 참가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올지 모르는 곳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아이라가 적어도 몇 번의 전투 경험이 있었다면 태상은 그녀를 두고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에겐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더욱이 그곳엔 지금 악마 계약자들이 공격을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라를 지키면서 싸우기엔 무리가 많았다. 아이라가 반박하려 했으나 태상이 그러지 못하도록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만약 네가 우겨서 간다고 하면 사로나는 널 지키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할 거고, 그럼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어쩌면 죽을 수도 있고.”
“.......‘
태상의 말에 아이라의 입이 꾹 닫혔다. 그저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으로 가겠다고 하려던 건데, 짐이 된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여기서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릴게.”
“무사히 다녀올게.”
사로나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아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이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지 마.”
“그래.”
서로 데면데면하던 사이가 이제는 완전히 풀려 예전의 다정다감한 자매 사이로 돌아와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이가 되돌아 온 것은 사로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라를 설득해서 계약한 천사와 만났다.
사로나는 천사와 만나자마자 따지기 시작했다. 이 계약은 잘못 된 계약이라고. 능력이 되지 않아 진짜 엄마를 살린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가짜를 만들어낸 것 뿐이지 않냐며 말이다.
천사는 이미 엄마가 죽어 확인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발뺌을 했다.
사로나도 증거가 없는 이상 그에게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천사에게 자신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으니 다시 한 번만 더 아이라를 기만하려 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천사라고 아이라의 친언니가 계약자였을 거라고 알았을까.
계약은 파장이 맞는 인간들 중 한 명으로 랜덤 선택되기에 그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천사도 똥 밟은 일인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으나 이제부터 섣불리 아이라를 조종하려 할 순 없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라는 사로나가 자신을 위해 천사와 다투는 것을 모두 보았기에 그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모두 풀 수밖에 없었다.
천사와 헤어지고, 아이라는 제대로 사로나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사로나의 속을 썩였다며 미안하다고 말이다. 사로나는 그런 아이라의 사과를 따듯하게 받아주었다. 그렇게 둘 사이는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훨씬 더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태상 일행은 미션지로 이동시켜주는 천사에게로 갔다.
다 함께 미션지로 이동되자,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커다란 폭발음이었다.
콰아아아앙!!!!!!!
콰앙!! 쾅쾅!!!!!
폭발음은 단순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긴급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지 알려주듯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난장판이네요.”
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성벽 위였다.
하늘 위에는 천사들이 날개를 펼치고, 아래에 있는 악마 계약자들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태상이 보고 있던 천사는 그리 오랫동안 하늘 위를 날지 못했다. 그를 향해 날카로운 빛줄기가 쏘아졌고, 그것이 천사의 몸을 관통하자,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일 분 일 초에 수 십 명의 목숨이 사라지고 있는 비극적인 광경이었다.
태상은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흩어지지 마. 뭉쳐서 움직인다.”
“네!”
“응.”
“예.”
혜연, 사로나 그리고 카살라가 이어서 대답했고, 혜연의 팔에 안겨 있던 야호가 바닥으로 매끄럽게 착지한 뒤 울음을 토해냈다.
천사들의 죽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기에 야호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녀석은 곧장 자신의 몸 크기를 키웠다. 어느새 많이 자라 태상의 몸보다 훨씬 커진 터라 녀석의 등장에 천사 계약자들의 시선이 잠시 몰렸다.
계약자들은 저마다 모두 목걸이를 꺼내들어 서로의 진영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있었다. 해서 태상 일행도 옷 아래에 있던 목걸이를 밖으로 꺼내놔야 했다.
그때, 카살라가 갑자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날개를 꺼내 싸워도 되겠습니까?”
천사들도 많이 있었기에 카살라가 날개를 꺼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태상의 허락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라마스가 그에게 권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래, 근데 날개 꺼냈다가 저 천사 꼴은 나지 마라.”
“...예, 물론입니다.”
태상의 걱정을 읽었는지 카살라가 수줍게 대답했다.
카살라가 목걸이를 꺼내 태상에게 건네주었다. 태상은 목걸이를 받아들고, 자신의 목걸이와 접촉했다. 그러자 카살라의 목걸이에서 시작 된 빛이 태상에게로 넘어가며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카살라의 등 뒤에 보이지 않았던 날개가 펄럭이며 겉으로 드러났다.
카살라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몸을 스트레칭 했다. 그동안 봉인 됐던 힘이 되돌아오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카살라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살기를 담은 목소리에 태상이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다른 천사들처럼 하늘 위에서 소극적으로 공격하진 않았다. 그는 악마 계약자들 사이로 직접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앙!!
카살라가 만들어낸 폭발에 야호가 그르르릉 거리며 자신도 싸우고 싶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힘이 봉인 당했을 때 카살라는 태상 일행을 힐러처럼 돕지만, 그는 본디 A등급 천사였다. 저렇게 전장 속으로 뛰어들어 악마들을 죽이는 것이 본래 그의 힘이었다.
이렇게 카살라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은 태상도 처음 보는지라 새삼 그를 다시 보게 됐다.
“대단하네요.”
“우리도 움직인다.”
태상이 말했다.
그들이 움직인 곳은 성벽 문 쪽이었다. 악마 계약자들이 가장 많이 공략하고 있는 곳이었다. 태상 일행은 성벽 쪽에 소환되어 졌기에 그곳을 따라 쭉 움직이니 성문 위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천사와 계약자들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해서 계단 위에 발을 놓으려는데, 그런 태상을 막는 목소리가 있었다.
“거기! 뭡니까?”
태상 일행을 발견한 계약자가 물었다.
그는 목걸이를 확인하고서야 굳은 표정을 풀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도우러 왔습니다.”
“압니다. 여기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성벽을 타고 오르는 악마 놈들이나 처리하세요. 꼭 이렇게 귀찮게 하는 초보 놈들이 있다니까.”
그가 매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하냐며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젠장! 타칼로스가 또 오잖아!!”
그때, 태상에게 투덜대던 남자가 전방을 확인하더니 외쳤다. 태상은 그에게 뭐라 한 마디를 할까 생각하다가 남자가 말한 타칼로스가 무엇인지 궁금해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거북이형 악마가 쿵! 쿵! 땅을 울리며 성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미 한 놈을 죽였었는데, 똑같이 생긴 놈이 또 나타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놈이 생긴 건 저렇게 느려터지게 생겼어도, 발도 빠르고 힘도 굉장히 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의 방어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저놈이 성문을 향해 달려가 몸을 부딪힌다면, 큰 충격이 가해 질 게 분명했다. 어쩌면 성문이 부셔질 수도 있는 일이었고 말이다.
놈을 막기 위해선 서둘러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래야 다른 계약자들이 타칼로스를 발견하고 공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 태상이 마나건을 들어 타칼로스를 향해 겨눴다.
남자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봐! 거기서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아무리 저놈이 방어력이 약하다고 해도 지금 여기서 그런 공격을 한다고 저놈이 쓰러질 리가 없....?!”
남자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총성이 한동안 주변을 울리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타칼로스의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허무하게도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악마 몇이 깔려 죽음을 맞이했다. 갑자기 타칼로스가 죽었을 리는 없고, 저 녀석이 저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었다.
태상이 타칼로스에게 무력화를 사용한 후 마나건으로 공격해 놈이 죽은 것이다. 혜연이 그 옆에서 그를 도와 염력으로 놈을 공격한 것도 한 몫했다.
“이, 이게 도대체?”
남자가 경악하여 태상을 바라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성벽에 오르는 악마 놈들이나 처리하러 가자.”
“네~”
혜연이 천연덕스럽게 그의 말을 받았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러 온 초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 자, 잠깐만요!!!! 제가 사람을 잘 못 알아 봤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지휘관님과 만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글쎄, 그냥 성벽 오르는 악마나 처리하라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알아보지도 못하고...호, 혹시 성함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재빠르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지휘관이 누구죠?”
“반카이님이십니다.”
혜연이 반카이라는 말에 반가운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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