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6 여왕 2 =========================================================================
키이이익 킥....키키키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어두운 수풀 속에서 희미하게 계속해서 들려왔다.
키킥...키이이이....키이...키키키키킥
그 음산한 소리가 얼마나 계속 되었을까? 수풀 근처를 지나던 계약자 한 명이 소리를 알아 차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응? 소리라고?”
“어. 지금 이 키키거리는 이상한 소리 말이야. 안 들려?”
“뭔 소리야.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아니야, 들어봐. 지금 방금도 들렸잖아. 저쪽인 것 같은데...”
옆에 있던 동료는 전혀 듣지 못하는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며 굳이 확인을 하려 했다. 그가 어두운 수풀 쪽으로 움직이자 동료가 그의 옷깃을 잡아 말렸다.
“그냥 대충 해. 이제 1시간만 버티면 미션 끝나잖아.”
“아니 그래도 명색이 호위 미션인데, 확인은 해봐야지.”
그랬다. 그들이 하고 있는 미션은 누군가를 지키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를 지키는 건지는 모른다. 천사가 알려주지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 다만 일정 시간동안 주변을 계속 순찰만 하면 미션에 성공할 수 있는 쉬운 거라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동료는 대충 하자며 귀찮아했지만, 남자는 지루한 순찰 미션에 진이 다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에겐 1시간밖에 남지 않은 게 아니라 1시간이나 남은 거다. 그러니 이런 작은 일탈이 그에겐 지루한 시간을 견뎌낼 좋은 구실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봐.”
“아니 진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데 왜 그러는 거야?”
동료가 계속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키..키..키키킥...키이익....
이렇게 분명하게 소리가 들리는데 왜 안 들린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정도로 수상한 소리가 나는거면 확인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가슴까지 오는 긴 수풀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든지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무기는 그의 손에 든든하게 들려 있었다.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소리는 계속해서 똑같은 세기로 들려왔다. 이쪽이 아닌가 싶어 다른 방향을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는 여전히 처음과 똑같았다.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
동료는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린 채 수풀 속으로 사라진 동료를 기다렸다. 도대체 뭔 소리가 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따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이씨, 왜 이렇게 안와?”
한참을 기다린 것 같은데, 영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
목소리를 제법 크게 냈기에 분명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의 목소리의 뒤를 잇는 것은 소름끼치는 침묵뿐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가 무기를 꺼내들었다.
“얌마. 살았으면 대답해!”
.........
여전히 누구의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자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이 이상한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남자의 귀에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킥.
킥키키킥...키이이이킥...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남자가 소리를 의식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소리는 분명히 수풀 속에서 나고 있었다. 동료가 생사를 알 수 없이 사라진 이상,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가 뒤를 돌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둠이 내려 앉아 있던 수풀 속에서 노오란 눈동자 수십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남자가 그것을 목격하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흐, 흐아아아악....!”
남자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노란 눈동자들이 그의 몸 위로 순식간에 덮쳐왔기 때문이다. 남자가 살고자 발버둥쳤다.
하지만 노란 눈동자는 무자비했다. 남자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한 마리가 남자의 목에 이를 박았다. 다른 노란 눈동자 한 마리는 남자의 귀를 물어 뜯어낸 후 으적으적 씹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남자의 눈알을 손으로 파내 사탕처럼 입속에 넣고 굴리다가 꿀꺽 삼켰다.
녀석들은 남자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귀가 바람에 펄럭일 정도로 크지만 몸 크기는 성인 남자의 허벅지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남자를 그렇게 모조리 씹어 먹은 후 서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킥키킥킥 키이익 킥
킥! 키킥!
한 마리가 킥킥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하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킥킥댔다. 두 남자 계약자가 들었던 킥킥거리는 소리는 그들의 대화소리였다.
그들은 아직 배가 고팠다. 고작 두 명으로 만족하기엔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먹잇감이 더 필요하다.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
스스스스스스슥-
바람에 의해 풀잎들이 서로 부딪혀 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의 근원은 단순히 풀잎들이 부딪혀 난 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 백 개의 노란 눈동자가 천계에 존재하는 먹이들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들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척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킨 악마가 포효했다. 그 울음소리에 동조하듯 악마들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캬아아아아
끼이이익 끼이이익!
수풀 속에서 시작 된 소리는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하나.
거대한 성벽이었다.
**
악마들이, 천계를 습격했다.
하지만 이 일은 단순히 악마가 천계를 습격했다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원래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다. 천사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심층부였다. 악마들이 어떻게 심층부를 알고 쳐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사들도 마계의 심층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악마도 천계의 심층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서로의 심층부를 들킨다면 그곳을 빼앗으려 난리가 날 것이기에 철저히 숨기곤 했다.
그렇다면 심층부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천사들이 이토록 놀랐느냐.
그곳은 아직 전투를 할 수 없는 어린 천사들이 보호를 받으며 머무르는 곳도 있었고, 천계의 고위 간부들이 머무르는 곳이 있기도 했다. 천사들이 태어나는 천계수가 있는 곳도 심층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악마가 습격한 곳이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한 심층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덮친 심층부는 대피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심층부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도가 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곳이 함락당한다고 천사들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오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악마들이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철저히 숨겨놓고 있었는데....결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지금 우리가 회의에 참석하러 가고 있는 거지.”
라마스는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며 재잘대는 나니엔에게 대충 답해주며 날개를 강하게 펄럭였다. 그의 몸이 나니엔을 지나쳐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앗! 라마스님! 같이 가요!”
나니엔이 서둘러 라마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라마스가 날개를 접고 땅에 착지했다. 그곳엔 라마스보다 빨리 와 있는 천사들이 있었다. 라마스는 우선 안면이 있는 천사에게 인사를 했다.
“엔드, 오랜만입니다.”
“라마스.”
엔드는 이번에 악마가 습격했던 심층부를 관리하는 A등급 천사였다. 해서 그가 이곳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대피소는 어떻습니까?”
“계속해서 악마들이 공격을 가하고 있는 중입니다.”
“천사들로는 부족한 가요?”
“처음엔 하급 악마들로 습격을 시작하다가 이젠 계약자들까지 불러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얼마 버티지 못할 테죠.”
“저희들도 계약자들을 보내야겠군요. 그런데, 어쩌다가 심층부가 들킨 겁니까?”
라마스의 물음에 엔드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엔드님은 잘못 하신 게 없습니다.”
엔드가 라마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려는데, 카반이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라마스의 시선이 카반에게로 향했다. 카반은 엔드를 곁에서 수행하는 천사였다. 지금 라마스의 옆에 있는 나니엔처럼 말이다.
“말해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제가 여왕에게 붙여진 위치 추적을 탐색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래서 놈들이 여왕을 데려갔다가 그렇게 쉽게 보내준 거였군요.”
라마스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엔드가 그의 말을 받았다.
“네. 그래서 악마 놈들한테 심층부 위치를 들켰습니다. 놈들은 그곳을 차지하기 전까지 후퇴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계속 끊임없이 계약자들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제대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군요....”
“더욱이 하필이면 대피소인지라, 그곳이 함락되면...”
“여왕 하나의 문제가 아니죠. 그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위험해 질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악마가 그들을 얻게 되면 기세등등해져 더욱 날뛰게 될 것이다. 그건 절대 막아야 했다. 대피소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악마들을 상대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이었다. 천사들은 그들을 악마로부터 지켜주며 보호해주고 있었다.
악마들은 그들을 별미로 잡아 먹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악마 계약자들한테 당했던 지라... 심층부이기도 하고, 그곳 결계가 강해 여왕을 숨기는 데 가장 적절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카반이 계속해서 자책했다. 라마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다독였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듯 싶습니다. 일단 대피소에 있는 그들부터 옮기도록 하시죠. 그게 가장 시급할 것 같네요. 시간은 계약자들에게 끌도록 시키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예.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곧 회의가 시작 될 것이고, 지금 라마스가 엔드와 나눴던 대화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라마스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악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들과 전쟁을 한지 600년이다.
그 600년 동안 계속해서 치열하게 싸웠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속에서 휴식기가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 악마들은 마치 끝장이라도 볼 것 같이 날뛰고 있었다. 천사들을 계속해서 압박한다면 결국 서로가 함께 최악의 결과밖에 나올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얼마 후, 참석하는 천사들이 모두 도착하자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는 엔드와 라마스가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결정 내렸지만, 라마스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라마스는 직접 나서서라도 악마들의 동태를 주시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려면 라마스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
“악마들의 공격을 막아달라고?”
“예.”
그동안 마계를 습격한 적은 있어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태상은 색다른 미션에 호기심을 보였다.
“지금 계속해서 악마 계약자들이 공격을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들만으로는 부족해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악마가 아니라 계약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거지?”
“악마들도 공격해오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악마 계약자들 일 겁니다. 그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해보신 건 처음이시죠?”
“응. 인간계에서 상대해본 적이 있긴 한데, 거기서 싸워봤던 건 솔직히 치기 뭐하니까.”
“일반적인 악마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보통 악마와 싸울 땐 다수 대 일로 싸우지만, 계약자끼리 싸울 땐 다르기 때문이죠.”
지금 상황은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봐도 됐다. 각자 고유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 빼곤 인간계의 전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될 것이다. 지금 미션을 받지 않으면 그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악마 계약자들과의 싸움을 피할 순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전투라면, 태상은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 것을 선택한다.
“좋아, 흥미롭네. 어떻게 하면 되는 미션인데?”
라마스는 그럴 줄 알았다며 미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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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후원쿠폰, 추천, 코멘 늘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제목 '아이라'편에 많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사실 그 편이 하렘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아 본래 갔어야 할 방향을 급히 바꾼 화인지라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코멘에 지적해주신 부분들,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부분을 최대한 수정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남겨주시고, 부족한 부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