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05화 (105/251)

00105  아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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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을 받은 태상은 사로나를 위해 일처리를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여러 입김이 닿은 덕분인지 사로나와 아이라는 경찰서에서 그리 오랜 시간동안 머물지 않을 수 있었다.

놈은 마계와 인간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칼을 사용한 덕분에 살인죄를 면할 길이 없었다. 또한 이 사건은 워낙에 목격자가 많았기에 변명도 소용없었다.

사로나가 계속 가짜엄마라고 주장하던 그녀는 호적까지 완벽했기에 실제로 사망신고를 직접 해야 했다.

사로나는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과 말투를 했다.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 마냥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여자의 죽음을 절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슬퍼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태상의 결혼식에 참석을 한 후에 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녀는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절대 그녀의 죽음에 동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장례식조차 없는 간단한 절차로 갑자기 사로나의 삶에 끼어든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그에 비해 아이라는 엄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때문인지 그녀는 방에 틀어박혀 쉬이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만 허용될 뿐, 사로나는 아이라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지 삼일 째가 되는 날 그녀의 방문을 억지로 열어버렸다.

아이라에게 사로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가짜야. 진짜가 아니었어. 그러니 네가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어.”

아이라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진짜 엄마가 맞았다고 말이다. 큰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의좋은 자매로 자라왔던 그녀들의 사이가 틀어진 첫 싸움이었다.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일로 다투어 봤다면, 서로의 화를 풀 방법을 알았겠으나 이렇게 크게 싸운 건 그녀들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서 사로나와 아이라는 틀어진 사이를 되돌리는 방법을 몰랐다.

둘 사이에 냉전 체재가 이어졌다.

지금 그런 둘 사이를 돌려놓을 수 있는 건 태상밖에 없었다. 태상이 아이라에게 천계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다. 엄마는 죽었지만, 아이라는 여전히 계약자였고 천계에 있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사로나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태상이 먼저 말을 꺼내주자 반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고맙다는 시선을 보냈다. 자신이 말하고 싶었으나 둘 사이가 어색해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라는 태상도 계약자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했다. 그는 사실 사로나와 처음 만난 것이 천계라고 말하며, 아이라도 이렇게 계약자가 되었으니 앞으로 일을 도와줄 것이라 말했다. 아이라는 크게 안도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언니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자신에겐 한 마디 말도 안 해주고 숨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서 사로나, 태상 그리고 아이라는 지금 천계에서 만난 상태였다.

인간계가 아닌, 천계에서의 만남이 서로 어색했던 그들은 만나고 나서 잠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라와 사로나는 여전히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천계에 와서 그동안 뭘 하고 있었어?”

태상은 아이라가 이곳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라는 것을 알았기에 우선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냥...이것저것 알아보고...길드를 드는 게 좋다고 해서 알아보고 다녔어요.”

“길드는 알아보지 않아도 돼. 사로나랑 내가 함께 하고 있는 길드가 있어. 사로나가 있으니까 우리 길드에 드는 게 좋지?”

본디 그는 초보자를 받아 쩔을 해주는 식의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라 때문에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사로나는 태상에게 무척이나 미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로나는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그에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사정을 모르는 아이라는 사로나가 자신과 같은 길드에 들기 싫다고 말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버렸다. 언니가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다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넌 아이라를 다른 길드에 보낼 작정이야?”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다만 아이라 때문에 태상이 피해를 보지 않길 바랐을 뿐이었다.

“네가 말했었잖아. 초보자들 지원해주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나 때문에 네 말을 어긴다고? 그렇게 만들 순 없어."

태상이 사로나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난 또 뭐라고. 단순히 초보자들을 키우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놈들 키울 생각 없다는 거였다. 같이 강해지는 거. 누가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게 아니라 동료로 함께 나아가는 걸 바랐을 뿐이야.”

“하지만 아이라는 약해.”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왜 시작도 해보지 않은 아이를 약하다고 단정 짓는 거지? 계약자가 된 이상 강해지는 건 스스로가 하기에 달렸어. 아이라가 스스로 강해지길 바라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강해질 수 있어.”

태상의 단호한 말에 사로나가 침묵했다.

“하지만...!”

“좀 솔직해지는 게 어때? 그냥 네 동생이 험한 일을 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잖아. 아이라가 약해서 안 될 거라는 게 아니라, 이런 위험한 일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걱정되면 걱정 된다 말하면 되잖아. 가족끼리 왜 그렇게 솔직하질 못해?”

“아이라 천사랑 만나 볼 거야. 계약을 파기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건 아이라가 싫다고 했잖아.”

"아직 어려서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 뿐이야.”

태상과 사로나의 대화에 아이라가 끼어들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야. 왜 언니는 내가 뭐든 못 할 거라고 단정 지어? 나도 할 수 있어. 다른 사람보다야 느리겠지만,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그러면 난 도대체 뭘 위해 태어난 거야? 난 언니 힘들게 하려고 태어났어?”

아이라는 사로나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몸이 다 나았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아이라에게 하지 말라는 말만 해댔다.

그래서 아픈 곳도 없는데, 자꾸 병원을 다녔고 그녀를 도울 수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 된 건 언니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라는 이제 자신도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로나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도 같았다.

“아이라한테 기회를 줘봐. 네가 동생을 많이 아낀다는 걸 알지만 아이라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막을 권리를 가진 건 아니야.”

태상의 말에 아이라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다행인 일이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그가 쏙쏙 모두 다 대신 얘기해주고 있었다.

사로나는 태상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아이라가 그런 사로나에게 조금 더 확고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언니는 날 너무 과보호해. 난 스스로도 할 수 있어. 충분히.”

사로나가 한숨을 쉬었다.

인정한다. 자신이 아이라를 과보호 하는 것은. 하지만 그건 엄연히 이유가 있어서다. 아이라는 계약자들처럼 전투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그걸 알았기에 계속 반대하고 있는 거였다.

“네가 정말 계약자가 되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를 공격...아니, 죽여야 하는 데도?”

그 누군가는 악마 계약자가 될 것이고, 그 악마 계약자는 인간계에선 우연히 길가다 마주칠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번 일도 그것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천계와 마계에서 서로 적으로 만난 적 있던 남자가 그녀를 인간계에서 보고 죽이려 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을 아이라가 견뎌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라도 그 부분에 대해선 계약을 할 때 못한다고 말했었다. 소원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로나가 그것을 꼬집었지만 아이라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나 능력이 보조계열이야. 그러니까 굳이 누굴 죽이지 않고, 보조만 해도 된다고 했어.”

“보조계열? 어떤 능력인데?”

태상이 생각지 못한 말에 놀라 물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태상도 아이라가 무기를 들고, 사로나처럼 싸우는 모습이 상상 되질 않았다.

“탐색이라는 능력이에요. 이 능력으로 악마들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고, 그 악마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굉장히 좋은 보조 능력이라고, 천사가 계약자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도 했어요.”

그나마 아이라가 공격 계열 능력자가 아니라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 덕분에 사로나는 더욱 할 말이 없어지고, 태상과 아이라는 주장을 밀고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럼 앞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네. 아이라가 사로나를 돕고 싶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우리 길드에 들어와서 열심히 능력을 쌓고, 도움을 주는 거야.”

“전 좋아요!”

“.....”

아이라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했다.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로나에게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 허락 못해.”

여전히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사로나였다. 하지만 태상의 일괄에 더 이상 그 고집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단호한 표정과 말로 그녀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네가 허락하고 말고의 일은 아니지. 스스로의 결정이 중요한 일이니까."

“......”

지금까지 사로나는 아이라의 모든 것을 다 자신이 결정했다. 아이라가 저렇게 스스로 의지를 갖고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할 거야. 언니가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라의 확고한 결심이 담긴 말까지 이어지자 더 이상 사로나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로나의 표정에 포기가 깃들자, 태상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우리 길드원이 된 기념으로 길드 건물로 가볼까? 거기에 소개시켜 줄 길드원이 더 있거든.”

“네!”

아이라가 적극적으로 태상의 말에 답했다.

엄마의 죽음 때문에 그녀의 저렇게 행동하는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새로운 길드원이라며 혜연과 카살라에게 아이라를 소개하자 그들은 아이라를 환영했다. 사로나의 동생이라는 말에 혜연이 특히 놀라워했는데, 어쩜 가족이면서 성격이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보였다.

사로나는 아이라를 이렇게 길드원으로 받아드리는 게 잘한 일인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혜연과 카살라에게 이야기를 듣느라 아이라가 잠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 태상이 사로나가 앉아 있는 옆자리로 와 털썩 앉은 후 입을 열었다.

“아이라를 그냥 뒀으면 그분의 죽음 때문에 계속 너랑 어긋났을 거야. 이건 아이라를 위한 선택이라고 봐.”

그녀가 걱정하는 부분은 태상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아이라를 잘 지켜주면 되잖아. 위험할 거라 단정 짓고 앞길을 막지 마. 그건 아이라를 위한 일이 아니야. 네 고집이지.”

“.........”

사로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태상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널 만나지 않고, 계속 혼자 다녔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이렇게 해결할 수 없었을 거야. 도와줘서 고마워.”

태상이 중간에 나서주지 않았다면 아이라와의 냉전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결말로 끝이 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해결이 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로나는 아이라와 자신이 싸웠다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목숨보다 아끼는 아이가 바로 아이라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아이라의 마음 속에 큰 상처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해서 예전처럼 맑은 웃음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태상이 그녀를 다독여주니 다른 사람과 저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은 아이라가 혼자서 감당해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태가 그녀를 마음 껏 다독여 줄 수 있는 상황도 못됐다.

태상이 아이라의 편을 든 것은 마음에들지 않았지만,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해결되지 않고, 점점 악화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 잘 지켜봐. 그게 이제부터 네가 아이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일 테니까."

태상이 더 이상 사로나에게 미련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로나가 걸어가는 태상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이내 아이라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생각지 못한 동료가 늘었다. 지금은 사로나에겐 절망적인 일이었지만, 앞으로 마냥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태상이 그녀를 키워주기로 결심했고, 사로나도 아이라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등장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길드에 새로운 바람이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다음 파트는 잠시 떡밥으로 남겨두었던 '여왕'을 회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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