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03화 (103/251)

00103  아이라  =========================================================================

“24시간 항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의심되는 놈이 나타나면 곧장 연락이 갈 거야.”

“신경 써줘서 고마워. 만약 악마 계약자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내가 처리 할 수 있어.”

태상도 사로나의 실력을 믿었기에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말에 굳이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음...저 여자 분을 아이라와 계속 함께 두는 건 괜찮아?”

“솔직히 많이 찝찝하지. 하지만 아이라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해서 어쩔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저 여자 옆을 졸졸 따라다니거든. 어찌나 저 가짜를 좋아하는지....그래서 더 속상해.”

태상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이라는 마치 예전부터 네 어머니와 쭉 함께 살았던 것처럼 행동한다고 했지?”

“응.”

“예전에도 아이라가 저렇게 어머님을 잘 따랐어?”

“뭐...어렸을 때야 당연한 일이잖아.”

“네 말을 들으니까 좀 의문이 드는데? 솔직히 아이라가 계속 쭉 함께 살았다고 알고 있는 것치곤 그녀에게 너무 심하게 집착하는 것 같거든. 한 시도 떨어져 있을 생각을 안 한다는 게 보통 모녀 관계에서 정상적인 건가? 어떤 딸도 그렇게 쭉 함께 살았으면 저렇게 집착하지 않아.”

태상이 예리한 말을 했으나, 사로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라는 계속 병원에서 자랐다. 해서 그녀의 가족이 다른 가족보다 훨씬 더 애틋하고 친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라의 저런 태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였다.

“그럼 지금 아이라가 저 여자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행동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그건 그렇지.”

아이라가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계약자가 아니니 그럴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의 말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일이다. 태상이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정황상을 따져 봤을 때, 최대한 추리를 해본 것뿐이었다. 워낙 답답한 상황이기 때문에 말이다. 사로나도 그것을 알기에 표정을 금세 풀었다.

"혹시 된다면 저 여자한테 네 능력을 사용해줄 수 있겠어? 분명 뭔가 수작을 부렸으니까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 능력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던 지라 태상이 흥미롭다는 듯 흐음...하고 신음을 뱉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는 없었다. 아이라의 앞에서 그랬다가 갑자기 엄마가 다른 여자로 변하거나,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라가 저 수상한 여자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아이라가 없을 때 해보는 게 좋겠어. 놀랄 지도 몰라."

"응. 고마워."

사로나가 그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렇게 서로 잠깐 대화를 하는 사이, 아이라는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엄마와 함께 내려왔다.

“어때?”

사로나와 태상의 앞에 선 아이라가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돌아 자신의 옷을 뽐냈다. 머리를 풀고 있었는데, 엄마가 해준 것인지 그녀의 머리엔 예쁜 리본이 달려 있었다.

“내 예상대로 예쁘네, 잘 어울린다.”

태상의 칭찬에 부끄러워하던 아이라가 사로나의 손을 끌었다.

“언니도 어서 올라가서 갈아입고 와 봐. 언니 옷도 정말 예쁘거든.”

“나까지? 난 됐어. 나중에 입어 볼게.”

“사준 성의가 있지! 어서~!”

아이라의 고집에 사로나는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저 도도한 아가씨가 아이라에게는 당해내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다음날, 아이라는 본격적으로 사로나와 엄마의 사이를 친해지게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함께 웃고 떠들다보면 사로나도 결국 엄마에게 마음을 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아이라의 노력 속에 한국에서의 여행은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시작부터 일이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했다.

“으잉....분명 여기가 맞는데 왜 없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냥 편하게 가이드한테 길 안내 받자고 했잖아."

헤매는 건 상관이 없지만, 아이라의 몸이 또 좋지 않아질까봐 걱정이 됐다. 천사에게 소원을 빈 덕분에 아이라의 병은 모두 씻은 듯이 나았지만 사로나에게는 여전히 아이라는 약하디 약한 아이에 불과했다. 때문에 사로나는 그녀가 너무 걱정되어 가이드를 다시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야! 나도 자료 검색해서 한국에 대해 많이 알아왔어. 그러니까 할 수 있다구.”

아이라는 한국을 한 번 여행 다녀온 후로 그곳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서 이번 여행에는 가이드 없이 자신이 언니와 엄마를 안내해서 여행을 해보려고 했다. 자신도 있었고 말이다.

한 번 다녀와 본 곳인지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의욕은 좋았으나 이렇게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이라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로나는 다시 가이드를 부르겠다며 핸드폰을 들었지만 단호하게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버렸다.

“싫어! 내가 할 수 있어.”

나도 무언가를 책임감 있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사로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긴 더 이상 옛날의 아팠던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이라고 말이다.

사로나는 불안 불안한 아이라의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라가 하게 두렴.”

“........”

그런 사로나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엄마가 사로나를 향해 시선을 주더니 그렇게 말했다. 사로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휙 돌려 버릴 뿐이었다. 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엄마의 표정이 씁쓸하게 가라앉았다.

“으으으음.....여기도 아닌 것 같은데....”

아이라는 한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로나나 엄마 둘 모두 느긋하게 그녀가 일을 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이라는 그렇지가 못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초조해졌고, 그녀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때, 아이라의 시야에 한국인 남자 두 명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정말 엉뚱한 길로 온 것인지 인적이 드문 곳에 왔기에 그런 둘의 모습은 아이라에게 희망과도 같았다. 아이라는 그동안 자신이 배운 한국어를 사용해보기로 하고, 남자들을 향해 뛰어가 팔을 덥석 잡았다.

[저기요!]

[뭐야?]

[외국애네. 헬로우?]

아이라는 남자 두 명이서 빠른 한국어를 내뱉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자 생각하며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하는 대신 눈앞에 지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곤 한 곳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합니까?]

어눌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였다. 아이라의 질문에 남자 두 명이 지도를 보는 대신 아이라에게 말을 시켰다.

[한국말 할 줄 알아?]

[귀엽다. 몇 살이야?]

[한국말 어렵습니다. 조금만 압니다. 이곳을 가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니까 몇 살이냐고. 대답하면 알려 준다니까?]

남자들이 아이라를 둘러쌌다.

[진짜 귀엽게 생겼네. 여행 온 거야?]

[오빠들이 한국 구경시켜 줄까?]

자신이 배운 한국어가 드문드문 끼어들어 있었지만, 아이라는 그들의 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빨랐고, 그들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게 어쩐지 무서웠다.

아이라는 본능적으로 뭔가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 된 기분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두 남자 중 한 명이 아이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찢어질 듯 커다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아이라, 뒤로 물러나 있어.”

“언니!!”

아이라는 너무 놀라 눈을 왕방울만하게 떴다.

사로나가 성인 남자 두 명을 각각 한 손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그녀의 놀라운 모습에 아이라는 입을 벌리며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손을 놓기는커녕 점점 강도가 세지는 사로나의 손아귀 힘 때문에 더욱 더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정체를 밝혀! 무슨 수작질을 하려고 아이라한테 접근 했지? 네놈들이 이 일을 계획한 놈들인가?!”

사로나는 놈들이 악마 계약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국말을 전혀 모르기에 생긴 일이었다. 아이라는 서둘러 말했다.

“어,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그냥 길 물어보려고 한 거였을 뿐이야! 저러다가 사람 죽겠어!”

남자들은 정말 죽을 듯이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지금 사로나가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저 남자들의 팔의 뼈는 모두 산산조각 나고 말 것이다.

아이라는 그들에게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말하는 한국어를 전부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일단 사로나를 말렸다.

그녀가 이상한 오해를 했다 생각한 것이다.

사로나가 힘주었던 손을 풀자 남자들이 팔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 거렸다.

남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경찰에 신고 좀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살려~!!!!]

[아아아악!! 내 팔!!!!]

사로나는 일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아이라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에 악마 계약자 놈들이라고 생각해 과하게 손을 썼던 아이라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저렇게 남자 두 명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런 약한 고통에도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냥 일반인이었던 듯싶었다. 자신이 오해를 했음을 깨달았기에 사로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자.”

사로나가 넋을 놓고 있는 아이라의 정신을 깨웠다. 일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곳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 것이다.

그건 태상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었기에, 사로나는 재빨리 아이라와 엄마의 손목을 붙잡았다.

사로나가 달리기 시작하자, 아이라와 엄마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끌려 달릴 수밖에 없었다.

골목을 지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도착해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그제야 사로나는 아이라와 엄마의 손을 풀어주었다.

한편, 길을 걷던 한 남자가 숨을 몰아쉬는 아이라를 다독이고 있는 사로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여자 때문에, 가던 길도 멈추고 서 있는 중이었다.

그 남자는 잠깐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눈을 비볐다가 사로나의 얼굴을 재차 확인했다.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년은 분명...천사 계약자 그년인데..?”

아무리 봐도 분명 그의 기억속에존재하는 그 여자였다. 남자가 자신의 왼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저 여자를 보니 왼쪽 어깨가 무척이나 시큰거렸다.

사실 그는 왼쪽팔에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팔을 이렇게 만든 존재를 다시 만나게 된 것 같았다.

어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왼쪽 어깨는 체력 물약을 먹어도 완전히 완치가 되질 않았다. 그의 어깨가 나으려면 '인드고의 눈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완치를 포기한 상태였던 것이다. 마계에서 싸우다가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는 현실의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곳에 워낙 여러가지 치료 방법이 있다보니 대부분의 상처는 거의 낫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상처는 예외적이었다. 아마 현실이었다면 그는 이미 팔을 잃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 상처를 힐러들이 치료하고, 체력물약을 먹고, 악마에게 점수를 주어 회복을 한 끝에서야 겨우겨우 지금처럼 사용을 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그는 자신의 팔을 이렇게 만든 여자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 것이, 마계와 천계가 워낙 넓어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그 년을 다시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으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남자의 얼굴에 살기가 서렸다.

지금 저 년을 보고도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구재불능한 멍청한 놈 취급을 받아도 쌀 것이다. 많은 인파와 함께 어느덧 움직이기 시작한 사로나의 뒷모습을 남자가 조심스럽게 따르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정체모를 행운을 따라서 말이다.

**

‘언니 힘이 원래 이렇게 쌨었나?’

아이라는 숨을 몰아쉬며 사로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녀가 방금 전에 본 광경에 너무 놀라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방금 전 일이 생겼던 곳에서 좀 멀어지자 사로나가 걸음을 우뚝 멈춰서서 아이라를 응시했다. 아이라는 찔끔한 표정으로 초조한 듯 사로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입에서 사자같은 포효가 터져나왔다

"누가 낯선 사람한테 말 걸래?! 여기 다른 나라야!!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가 있니?!”

아이라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사로나가 아무래도 아주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이라는 그녀의 잔뜩 화난 목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자신에게 늘 다정한 언니지만, 화가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라는 오늘 그녀 때문에 울음을 터트릴 지도 모른다.

이렇게 잔뜩 화가 날 때는 정말 확실하게 아이라를 혼내곤 했기 때문이다. 아이라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자신의 시야에 닿는 존재를 발견했다.

아이라가 슬금슬금 움직여 엄마의 옷깃을 잡고, 뒤로 몸을 숨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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