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아이라 =========================================================================
“언니! 이리와 봐.”
아이라가 부르니 갈 수밖에 없었다.
사로나가 억지웃음을 내며 다가가자 아이라가 사로나의 손을 덥석 잡고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세 명이서 같이 사진 찍자. 원래 여행은 사진이 남는 거라잖아.”
“사진? 난 싫어.”
웬만하면 아이라의 청은 뭐든 다 들어주지만 사진을 찍자는 건 조금 걸렸다. 그녀 스스로가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지금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가 ‘가짜엄마’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힘으로 한다면 사로나가 아이라에게 끌려갈 일이 없었겠지만, 꼭 반드시 찍어야 한다며 성화를 부리는 탓에 결국 질 수밖에 없었다. 단호하게 사로나를 엄마의 팔에 팔짱 끼운 아이라가 만족해했다. 그리고 자신도 반대편으로 가서 남은 엄마의 팔에 팔짱을 끼웠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핸드폰 소리가 나고, 행복한 듯 웃는 아이라와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엄마. 그리고 사로나의 난감한 표정을 담은 사진이 찍혔다.
사진이 찍히자마자 사로나는 팔짱을 풀고, 한 발작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으나 그 한걸음 차이로 많은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아이라는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라에게 사진이 잘 찍혔냐며 보여 달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사로나 몰래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니! 몸은 좀 어때?”
태상이 마련해준 숙소를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아이라와 엄마는 슬슬 출출해지자 사로나에게로 왔다. 구경을 하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소요 될 만큼 그곳은 굉장히 넓었다.
아이라가 함께 놀자고 했으나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했기에 혼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편의를 봐주던 고용인들이 알겠다며 20분 후에 모시러 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진 상태였다.
음식까지 풀코스로 대접을 받게 된 터라 아이라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따가는 수영장에 한 번 들어가 볼까도 생각 중이었고 말이다.
너무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이번 여행에서 결심했던 것을 놓치고 있던 아이라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데리러 온 거였다. 이번 여행에서 언니와 엄마 사이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야 그녀가 소원을 빈 것이 허공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사로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했다.
“많이 괜찮아졌어. 재밌게 놀았어?”
“응! 엄청 재밌어. 정말 없는 게 없더라고. 태상 오빠는 정말 대단한 부자인가봐.”
아이라는 이 재밌는 것을 그녀도 함께 했다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불어 엄마와 함께 말이다.
“아, 태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조금 있다가 태상이 올 거야.”
“태상? 태상이 누구니?”
그녀의 엄마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자 물었다. 사로나는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에 사는 아는 친구에요. 하고 소개를 했다.
“언니 남자친구라고 오해하면 안 돼요. 그 오빠는 이미 결혼했거든요.”
“그래? 아쉽네. 딸 남자친구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엄마가 아쉬워하자 아이라도 동조하며 저도요. 하고 말했다. 사로나는 그녀들의 말을 모두 무시했다. 아이라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짝!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럼 오빠랑 어디로 놀러 가지? 으음.... 밥 먹고, 수영장에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그건 내일로 미뤄야겠네. 오빠가 재밌는 곳을 알고 있으려나?”
“글쎄, 그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잠시 볼 일이 있어서 온 거거든. 요즘 태상이 결혼 때문에 바빠. 그러니까 너도 예의 없이 잡거나 귀찮게 하진 마.”
아이라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설마 하며 물었다.
“태상 오빠 설마 재혼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내가 임신을 했대. 그래서 축하도 하고, 겸사겸사 이벤트 식으로 다시 올린대.”
“아아~”
아이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신한 와이프를 축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결혼식을 올린다니....아이라의 두 뺨에 붉어졌다. 태상은 로맨티스트가 분명 하다. 아이라도 나중에 자신이 결혼을 한다면 그런 다정한 로맨티스트와 결혼하고 싶었다.
태상이 마음에 들면 들수록 아이라는 배가 아팠다. 얼마나 예쁘기에 우리 언니를 두고 다른 여자를 선택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신을 한 것은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기에, 축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태상 오빠 결혼식에 나도 갈 수 있어?”
“음...글쎄, 잘 모르겠네. 그것까진 물어보질 않아서.”
사로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라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은 눈치였다.
“태상 오빠가 오면 물어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그럼 언니가 한 번 말해볼게.”
아이라가 그녀의 말에 좋아하다가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사로나는 그녀의 표정변화에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
“입고 갈 옷이 없어. 어떡하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너희들을 위해 내가 준비를 해뒀거든.”
사로나와 아이라가 깜짝 놀라 갑자기 끼어든 남자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로나가 그를 불렀다.
“태상?”
“아앗!”
사로나와 아이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상이 문 쪽에서 그녀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기척도 없이 왔어?”
사로나의 물음에 태상이 유창하게 불어를 사용하며 말했다.
“다들 없기에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까 이 방에 모여 있다고 해서.”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야. 이제 정말 아가씨 다 됐네?”
“정말요?”
아이라가 배시시 웃었다.
“그래, 이제 연애해도 되겠어.”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보다 안색도 훨씬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그녀의 키가 제법 자랐다는 것이다. 천사에게 소원을 빌어 건강을 되찾은 아이라기에 그런 변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성장기였다.
태상의 시선이 아이라에게서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엄마에게로 향했다.
“이쪽 분이..?”
그의 물음에 사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머니셔.”
“역시 그렇구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태상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태상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진중했다. 이 여자가 모든 일의 근원이었으니, 결과를 찾으려면 그녀를 가장 먼저 살피는 게 맞았다.
“사로나와 아이라가 왜 이렇게 미인인가 했더니 어머님을 닮아 그랬네요.”
태상이 눈웃음을 치며 말하자 엄마는 꽤나 기분이 좋았는지 호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수줍은 홍조가 돌았다.
“손에 든 건 뭐에요?”
아이라는 태상의 손에 든 쇼핑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태상은 그녀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네가 아까 전에 걱정하던 옷이야. 이걸 입고 참석해준다면 좋을 것 같아.”
“우와~ 감사해요! 뭘 입고 갈지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헤헤.”
“이런 건 왜 준비해. 내가 사주면 되는데.”
“내 결혼식에 참석해주려고 멀리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태상이 말하면서 사로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둘이서만 따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신호였다. 사로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아이라에게 말했다.
“옷 갈아입고 와 볼래? 잘 어울리는지 봐줄게. 어머니, 아이라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이라와 엄마가 별다른 의심 없이 그녀의 말에 자리를 옮겼다. 태상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갈아입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로나의 말 덕분에 둘이 남게 되자 그녀가 먼저 입을 뗐다.
“어때?”
그녀의 말이 ‘엄마’라는 저 정체 모를 이에 대한 것을 묻는 것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태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평범하네.”
“난 처음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어.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뭘 노리고? 짐작 할 만한 게 없어서 정말 미쳐버리겠어. 저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얼마나 참아 줄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어. 이대로 있다간 아이라가 있는 앞에서 저 가증스러운 여자를 죽여버릴 지도 몰라.”
“진짜 어머니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거야?”
“엄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 그런 엄마가 다시 돌아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추억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 것쯤 얼마든지 손을 쓸 수 있지. 뭔들 못하겠어. 죽은 사람과 똑같은 얼굴을 해서 저렇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
사로나의 말을 그도 차마 부정할 수 없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사로나처럼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로나는 죽은 사람이 돌아왔고, 그는 멀쩡하게 살던 자신의 몸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는 일을 겪었다.
이 모든 게 천계와 마계의 싸움 때문이기에 태상의 마음이 좋지가 못했다.
지금 상황이 딱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꼴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들의 싸움으로 인간계가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신이 우려했던 일들이 서서히 하나 둘 일어나고 있었기에 이번 일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아이라 몰래 저 여자랑 얘기해봤어. 장난치지 말라고, 내 엄마 행세 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정말 내 엄마인 것처럼 날 혼내더라고. 끝까지 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얘기하지 않았어. 연기력 하나는 뛰어나. 나도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더 미치겠는 것이다.
“아이라 때문에 더 조심스럽겠네.”
태상이 그녀의 고충을 이해했다.
“부디 그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이 일이 끝났으면 좋겠어.”
“천계나 마계 쪽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근데 너한테 이런 짓을 해서 이익인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혹시 네 주변에 악마 계약자로 의심되는 놈 없어?”
“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별로 하고 다니지 않아. 내가 천사 계약자라는 걸 알 사람도 없고, 그런 걸 말할 만큼 친한 사람도 없어. 능력을 함부로 쓰고 다니지도 않았고.”
이런 얘기까지 해야 되나 싶긴 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다보니 그에게 모든 걸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은 이미 태상도 알고 있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그녀의 말은 의심되는 이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네가 천사 계약자인 걸 알게 된 악마 계약자가 네게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밖에 없어.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몸 조심히 다녀. 아이라 잘 챙기고.”
“응.”
태상이 그녀들을 호텔이 아닌 이곳으로 데려 온 이유가 있었다. 이곳 모든 곳에는 CCTV가 설치 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그녀들을 지켜보려 한다면 그 장면이 모두 찍힐 수밖에 없었다. 해서 그녀들을 이곳에 불러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놈을 잡아보려 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7분에 다음편 올라옵니다.